2012.07.05 17:00

이방인 4/8

조회 수 1376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갈림길 사이에서 스스로가 정한 답

"나와 이녀석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심판대에 선 것 같았다. 원고는 나루, 피고는 하미.
그리고 검사는 나나세 님.
판사 역할도 나나세 님이겠지만, 하미에게는 아무 소용 없었다. 무엇보다 나나세 님이 그 답변을 듣고 싶어하셨으니까. 그리고 나루도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듯 했다. 다시금 진지한 눈빛. 이 두 소년의 눈길에 하미의 마음은 앞뒤로 관통당하는 듯 했다.
그래. 지금까지 마음은 이방인으로써 낙원에서 떠나고 싶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나나세 님이 다정한 말씀을 하셨을 때는 참으로 기뻤다. 낙원에서도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난…… 내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나머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신경쓰지 못했다.
나나세 님과 결혼하면 나나세 님을 선택하는건 알고 있었어도, 이방으로 나가는게 나루를 선택한다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물론 낙원을 나가는건 나나세 님을 선택하는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루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두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미는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죄, 죄송해요!"
하미는 뛰쳐나갔다. 수업종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하미는 백지상태였다. 아무것도 할 수,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저 하늘만을 바라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 그렇게 선택하는게 힘들단 말인가!"
나나세 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배감에 접어들었다. 나루가 어깨를 토닥이자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며 돌아서서 말했다.
"반드시 네놈의 눈앞에서 하미는 날 선택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네놈의 일은 불문에 붙이겠다. 그때까지 실컷 낙원구경을 하거라."
"걱정 마시죠. 「낙원」은 이미 다 구경했으니까."
나루는 나나세 님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했고, 나나세 님은 씩씩거리던 터라 그걸 듣지 못했다. 사실 듣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밀어져가는 나나세 님의 등을 보며, 나루는 하미가 뛰쳐나간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정신없이 달리자 하미는 자신이 이미 학교밖임을 깨달았다. 이미 수업은 진행 중인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에 큰 오점이 생긴건가. 차라리 그 점이 하미에게는 속이 편했다. 사실 교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자신감은 없었으니까. 이제 급우들은 모두들 나를 경멸하겠지.
하미는 머리가 맑아짐을 느꼈다. 차라리 잘 됐다고 느꼈다. 적어도 「낙원」을 떠날 자신감은 조금이나마 생겼으니까. 하지만 나나세 님을 생각하자 하미는 죄책감이 생겼다. 그렇게 잘 해주셨는데, 이렇게 떠난다면 그를 배신하는게 아닐까, 하는. 자신은 아직도 그 호의에 다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보면 그때 나나세 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지. 하미는 생각했다. 하미야, 생일 축하해 이건 선물이야. 우와아~ 너무 기뻐요. 그렇게 기쁘면 나중에 내 신부가 되어주겠니? 네! 꼭 그럴게요! 반드시 오빠의 품격에 걸맞는 인성을 쌓고 청혼할게요! 그렇게 말을 해주니 오빠는 너무나 기쁘구나. 장난으로 한 이 말이 사실이었다니….
그래, 모두에게 숨겨온게 있었다. 하미와 나나세 님은 어릴적부터 알고 지냈다. 하미는 나나세 님을 오빠처럼 따랐고, 나나세 님은 하미를 친동생처럼 대해줬다. 비록 나나세 님은 후계자 수업을 받는 당시였지만,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하미를 찾아왔다. 아버지는 황송해했고, 나나세 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나루였다. 아버지에게 혼나거나 할 때면 「낙원」 너머 세계가 보이는 산등성이 밑 언덕이 보이는데, 나루는 그곳을 찾아온 것이다. 찾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나루는 도리어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안.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해서……."
아참, 잊고 있었다. 하미는 이런 번뇌가 나루에게서 기인한 것임을 알고 분노가 치밀었으나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루가 없어도 언젠가는 맞닿아뜨릴 장벽이지. 나루는 단지 촉매였을 뿐이다. 하미는 밝게 맞이했다.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는데. 찾느라 힘들었지?"
"하미 네게 말하고 싶은게 있어."
"응?"
나루는 하미가 알던 평상시의 나루가 아니었다. 눈빛은 간절해보였고, 사실 이제서야 안거지만, 나루는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뭐지? 나루는 다급해보였다. 설마 나나세 님에게 들켜서 그런건가? 이대로 나루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하미는 내심 서운해졌다.
"내가 나나세 녀석을, ……미안. 너희는 나나세에게 세뇌되었지. 여튼, 제3자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나나세는 위험한 인물이야. 네가 나나세를 따른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나나세는 냉정하고 주도면밀만 사람이야. 사랑이라는 감정도 조작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분명 행복함을 느끼겠지만 그건 나나세에 의해 조작되는게 틀림없을 거야.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고 했고,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지? 네가 나나세의 신부가 된다면 그 어느것도 찾을 수 없어. 모든 여자들이 호의를 갖는게 이상하게 생각되서 조사를 해봤지. 나나세는 생각보다 더 위험하고 거대한 인물이야.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을 다 통제가 가능하다니…… 이런 생각은 우리도 차마 생각을 하지 못할거야. 선대때부터 그럴지 모르겠지만, 「낙원」은 무서운 곳이야. 넌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나루는 이방인(OutSider)에 걸맞는 속사포로 말을 쏳아놓은 후 하미의 표정을 살폈다. 하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나루는 새삼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은게 후회가 됐다. 조금이라도 미사여구를 붙일걸. 아 나란 놈은 이래서 안된다니까.
하지만 하미에게서 나온 대답은 나루도 놀랄만한 것이었다.
"알고 있었어. 나나세 님이 나를 이용하는 것임을."
"뭐!?"
순식간에 대화의 주도권은 하미가 잡게 되었다. 하미는 나루의 멍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눈치채지 못하게 지었다. 이건 나를 끌어들인 벌이야.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잖아. 나나세 님은 유독 나에게만 잘해준게 아니었어. 그러니 「낙원」의 사람 중에서 나나세 님을 싫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지. 아, 나나세 님의 적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신기하게도 나나세 님은 아버지와 다퉈 틀어질 때 자주 찾아오셨다. 나나세 님은 하미에게 모든 문제를 털어놓으라고. 다 들어줄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금기시 된 내용에 순박한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니. 하미는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다. 스스로가 나나세 님을 어느 정도 경계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나세 님 빠순이 행렬에도 끼지 못했고.
나나세 님은 사실 하미를 신경쓰지 않았다. 하미와 관계된 스스로를 신경썼던 것이지. 본연의 모습인 하미를 신경쓰는게 아니었다. 자신의 신부가 될 하미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하미는 이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나나세 님이 하미에게 예전만큼 자주 찾아오지 않는데도 책임은 있다) 하지만 그게 뭔지 어렴풋이 알면서도 확실하게 짐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나세 님이 날 신부로 선택했다는 말에 충격을 먹었어. 나말고 다른 여자도 있을텐데……."
이런 일에는 나루가 훨ㅡ씬 경험이 더 많았다. 나루는 금새 멍한 표정을 지웠다.
"사실, 권력층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거든. 너를 정실에 들여놓고 첩을 만들 수도 있어. 그렇잖아? 「낙원」 권력의 충주는 촌장 뿐인걸. 너는 그저 새장에 갇혀 지내는 거라고. 너니까 이런 말을 하는거야! 「낙원」 너머를 보고 싶었잖아?  널 지켜줄게. 약속해!"
그 말에 하미는 멍해졌다. 나루의 말이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무한재생되고 있었다. 널 지켜줄게. 지켜줄게. 지켜줄게. 나나세 님도 하미에게 같은 말을 하셨다.
힘들지. 힘들면 내 옆으로 와. 그러면 편안해질 수 있어. 너에게 해가 되는 것에게서 언제나 지켜줄게. 그래. 하미는 행복하고 싶었다. 사실은 낙원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에 맞지 않는다는걸 알고, 떠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줄 사람이 있다. 감싸줄 사람이 있다. 하미는 나나세 님이 하신 말에 행복을 느꼈다. 잠깐이지만.
하미는 나루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나루는 진심이었다. 어쩌면 나루는 하미를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나나세 님은 나루에게서 하미의 마음속 연애전선에게 밀려나갔다.
"응! 그 말을 듣고 싶었어! 나, 결심했어! 이제야 떠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그 말에 나루는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복잡한 기분도 읽을 수 있겠다. 젠장, 돌아가면 카밀에게 한 소리 듣겠는걸. 하지만 하미는 애써 모른척 했다. 고뇌하던 것들이 나루라는 청명한 바람에 씻기듯 사라져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그렇게 하미네 집에 당도했다. 촌장의 부하가 대기하고 있었다.
"촌장님이 뵙고자 하십니다. 그쪽 연고를 알 수 없는 분도 같이 참석해 주십시오."
=================================================================================
다음 편이 이 단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6 06:30
    잘 봤습니다~ 초반부가 정석적인 흐름이라면, 중반부터는 약간 단편만화처럼 빠르고 독특하게 전개되네요. 어쩌면 그림이나 만화로 표현되었어도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ㅎ
  • profile
    ㄴㅏㄹㅏㅣ 2012.07.06 17:33
    전개될 수록 더 빨라집니다, , 더, 더, 더, 더
    종국에는 독자들도 못따라오겠죠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3940 이방인 6/8 3 ㄴㅏㄹㅏㅣ 2012.07.07 297 1
3939 『1999년 4월 1일』타임슬립 로맨스! 장기일【4화】 2 ♀미니♂ban 2012.07.07 428 1
3938 [UNDEAD] 2. 창공의 불청객 - 5 2 yarsas 2012.07.06 453 2
3937 하림의 세계 3-1 3 ㄴㅏㄹㅏㅣ 2012.07.06 301 2
3936 이방인 5/8 2 ㄴㅏㄹㅏㅣ 2012.07.06 283 1
3935 하림의 세계 2 3 ㄴㅏㄹㅏㅣ 2012.07.05 1553 2
» 이방인 4/8 2 ㄴㅏㄹㅏㅣ 2012.07.05 1376 1
3933 나와 그녀의 생존전략 2화 9 윤주[尹主] 2012.07.05 397 1
3932 하림의 세계 1 3 ㄴㅏㄹㅏㅣ 2012.07.04 1316 2
3931 이방인 4/8 2 ㄴㅏㄹㅏㅣ 2012.07.04 1519 1
3930 『2012년 3월 25일』타임슬립 로맨스!장기일【3화】 3 ♀미니♂ban 2012.07.03 932 1
3929 - mine - 2화 3 2012.07.03 1094 1
3928 하림의 세계 ~새로운 4천왕~ 0 3 ㄴㅏㄹㅏㅣ 2012.07.03 350 1
3927 이방인 3/8 2 ㄴㅏㄹㅏㅣ 2012.07.03 336 1
3926 다섯번째 밤과 세번째 새벽 사이 3 SinJ-★ 2012.07.03 1368 1
3925 현실과 꿈 아저씨편- 8 2 다시 2012.07.03 411 2
3924 이방인 2/8 2 ㄴㅏㄹㅏㅣ 2012.07.02 354 1
3923 이방인 1/8 1 ㄴㅏㄹㅏㅣ 2012.07.01 326 1
3922 [그러고 보니...]기억해줄래 - 4. 예기치 못한 이별 2 클레어^^ 2012.07.01 390 1
3921 이상한 나라의 동시 1 -H- 2012.07.01 511 0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