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3 09:07

현실과 꿈 아저씨편- 8

조회 수 411 추천 수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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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기운이군요.”

 애서를 뒤따르던 괴물이 말했다. 둘의 시야에는 아직 성으로 다가오는 미지의 인물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음산한 기운은 먼 거리에서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성주는 말없이 걸었다. 그는 기를 읽는 데에 열중했다. 크기가 너무 커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기약 없는 걸음은 해가 져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저기 뭔가 보입니다!”

 석양을 뒤로 걸어오는 두 형체를 발견한 애서의 부하가 말했다.

 “도발하지 말고 옆에서 가만히 있어. 선공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니 왜…….”

 “승산이 없어.”

 그들은 이 낯선 자들에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노란 눈을 한 남성과 키가 작은 여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그들 넷은 멈춰 섰다. 소녀와 애서는 서로가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퓌네도의 성주 애서라고 합니다.”

 그가 쾌활하게 소리쳤다. 소녀와 남자는 서로 소곤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가자.”

 애서가 부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들은 좀더 접근을 시도했다. 이제 넷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성함이?”

 애서가 소녀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느껴졌던 기운은 소녀의 것이 분명했다.

 “지혜요.”

 위험을 느끼는 데에 대한 긴장은 하지 않았으나 타인의 갑작스런 호의에 그녀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어색한 만남이었다.

 “저희 성에는 무슨 일로?”

 “살 곳을 찾고 있습니다.”

 옆에 서있던 남자가 말했다.

 ‘노란색 눈……. 마계출신인가?’

 “저희 성은 전쟁 지역이라 거주하시기엔 불편하실 겁니다. 차라리 티스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했다. 과한 호의였다.

 “일단 하루만이라도 묵을 수 있을까요? 너무 오래 걸었습니다.”

 남자가 애서에게 말했다.

 “그럼요. 따라오십시오.”

 애서가 친절하게 말했다. 부하는 갑작스럽게 변한 애서가 낯설고 민망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를 따랐다.

 성에 도착한 성주는 남자와 지혜에게 각각 방을 마련해주곤 자신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점점 더 심해지는 성주의 호의에 둘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내일 가실 때 종들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애서가 일어나며 말했다.

 “저희 한태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뭐죠?”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지혜가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애서는 가만히 지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오시죠.”

 애서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지혜와 애서는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애서는 깍지를 끼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적이 되면 곤란해.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어떤 경로로 여기에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지혜는 조금 망설여졌다. 어디서 믿어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정말 특이한 경로로 이곳에 있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긴장하신 것 같군요.”

 애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혜는 고민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거니와 어떻게 된 것인지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애서는 그녀가 요즘 화두인 나타난 사람들중 하나라는 것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말씀하시기 곤란하다면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그건 아닌데…….”

 여전히 지혜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제 능력을 사용하도록 하죠.”

 “?”

 “저는 과거를 볼 수 있습니다.”

 뜻밖의 말에 더욱 당황한 지혜였다. 전쟁 중이라지만 그의 성은 너무 조용하고 생명력이 없는 기괴한 느낌이었고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 베푼 친절은 비상식적이었다. 계속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받아왔던 지혜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보는 당신의 기억은 당신도 같이 볼 수 있으니까요.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을 성에 묵게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어떤 과거이든 내치지 않을 테니 허락해주세요.”

 “제 기억을요?”

 지혜의 물음에 애서는 침묵으로 답했다. 숙소와 식사, 행선지까지 제공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자신의 기억을 보겠다니, 껄끄러운 것이 당연했다.

 “중간에 그만하라고 하시면 바로 그만두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망설여지는 일이긴 하나 이만큼의 호의를 받은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사라졌다.

 

 애서와 지혜는 흰 공간 안에 서있었다. 바닥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떠있다는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지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부시지 않은 흰 벽 뿐 이었다. 정확히 벽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앉으시죠.”

 애서가 지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뒤에는 의자가 생겨나 있었다. 지혜가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뒤에서 의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앉았다. 둘을 마주보고 있게 하던 의자는 점점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도록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영화관처럼 스크린 같은 검은색 선으로 된 직육면체가 나타났다. 그 직육면체는 점점 검게 변하더니 완전히 검게 된 이후로는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야를 완전히 장악했을 때 영화가 시작됐다.

 장면의 시작은 애서와 지혜가 만났을 때부터였다. 시야는 지혜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유로운 카메라가 움직이는 듯한 것이었다. 지혜와 남자는 뒷걸음질을 쳤다. 시간을 거꾸로 움직이는 듯 했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영상은 남자와 지혜가 만났을 때에서 멈췄다. 애서는 지혜가 마을사람들에게 폭행당하는 남자를 자신의 힘으로 구해주는 장면을 천천히 살펴본 후 다시 시간을 돌렸다. 이번엔 지혜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지혜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다 마지막엔 벽돌을 맞고 기절했었다. 그 이후의 기억은 화면의 잡음이 너무 심해 볼 수 가없었다. 애서에게 건물, 복장, 사람들 모두 너무나 생소한 세계의 모습이었다. 그는 옆에 앉아있던 지혜의 표정을 확인했다. 처음의 기대와 호기심에 가득 찬 소녀의 얼굴은 모두 사라지고 완전히 굳은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애서는 자신의 능력을 멈췄다. 그들은 다시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평소 애서가 적을 상대할 때에는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신력이 극대화 되는 세계에서 그는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고 그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잇는 기억들 만을 들춰내 반복하여 보여준 후 정신적으로 황폐화된 적을 부하로 삼는 전술을 취했었다. 그러나 기운은 정신력에 비례하는 것, 지혜에게는 그런 전술을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 해도 너무 어리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기억을 통해 본 지혜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로운 아이, 그러나 동급생에게 준 살인을 당한 불행한 아이였다. 불의에 대한 적대심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고 사람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을 것이었다.

 ‘부족해.’

 그러나 이것으로는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없었다. 지혜는 어떤 것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를 조종할 수 있는 약점을 찾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게 기대지 않는다면…… 내가 기대자.’

 “지혜님.”

 애서가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지혜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격동적이었던 자신의 과거에 젖어있던 지혜였다.

 “저의 성이 전쟁 중인 이유는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냥 들어주세요. “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지혜님처럼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억울한 학살을 당하고 있었죠.”

 지혜는 그런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는 뭉치기로 했고 이곳을 점령했습니다. 살기 위해선 저항해야 했어요.”

 지혜 본인도 저항을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그녀의 약점은 동정심이었다. 약자에 대한 동정심. 이것은 대체로 미덕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약점이자 단점이었다. 이 세계에서 그녀보다 강한 것은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약하고 강한 정도가 선악의 구분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보다 한참 약한 것들은 언제든지 학살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티스로 가주세요. 그곳이 우리의 핵심지 입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그녀의 정의가 끓어올랐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건가요?”

 “아뇨 지켜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티스는 깊은 곳에 위치한 성으로 마계 세력이 점령한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주민이 전투병력인 마계입장에서는 거의 비워두는 성이었는데, 애서는 그곳에 그녀를 두길 원했다. 괜히 앞에서 싸우다가 사실- 마계가 인간들을 학살, 약탈하고 있다는-을 아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좀더 얘기를 나눠보죠.”

 “피곤하실 텐데 주무신 다음에 하는 것이…….”

 “저는 잠을 안 자요.”

 ‘온통 이상한 여자다.’

 둘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하는 애서의 입장에선 죽을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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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3 15:42
    애서 쪽 이야기는 아저씨 얘기가 아니라 지혜 얘기였군요 ㅎ
    이번 화에서 많은 게 밝혀지네요. 지혜가 어째서 아저씨와 싸우게 되었는지, 애서의 능력이 뭔지 등등이요.
    잘 봤습니다. 다음 주도 잘 부탁드려요~
  • profile
    클레어^^ 2012.07.04 06:46
    호오~. 그럼 여기서 현실에서 온 사람이 일단 3명이군요.
    뭐 제 4의 현실인은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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