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5 07:43

나와 그녀의 생존전략 2화

조회 수 397 추천 수 1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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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개는 물러나라!"

 "맞아! 물러나라!"

 "너희 나라로 꺼져버려!"


 한 명이 외치던 소리는, 어느새라고 할 것도 없이 일제히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딱히 진지하고 심각한 정치적 구호같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킥킥대면서,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선 양쯔강에게 모욕을 주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적을 마주하며 기다리던 양쯔강도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살짝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이것들이 진짜!"


 거리가 조금 있어서 얼굴까진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선 분명 우리의 장난스런 구호에 당황해하고 있단 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더욱더 낄낄댔다. 심지어 선생님 역시 교단 위에서 이 상황을 방관한 채 오히려 지긋이 미소짓고 있었다.


 강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지만, 우리만큼이나,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인간적이었다. 동시에 계약에 대해서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지키려는 습성이 있었다. 아무리 자신에게 모욕이 쏟아져도 신성동맹이란 계약이 있는 한, 양쯔강은 우리를 내버려두고 가 버릴 수 없다. 어떠한 제제나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강 자신들의 양심 문제 때문인 듯했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없는 건 아니어서, 우리의 놀림에 불쾌해하기도 하고 자국민들의 응원에 얼굴 붉히기도 한다. 얼마전 TV에 나왔던, 미시시피강은 열광적인 환대를 받으며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강들은 진정으로, 우리들 세상에 살아 숨쉬는 만화속 슈퍼 히어로였다. 인류를 구원한다는 사명과, 개인적인 갈등과 고뇌를 동시에 가진.


 "어느쪽이 이기건 지건 상관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양쯔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녀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말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 건 나뿐인 듯했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던 탓에 다른 애들은 듣지 못했던 것이리라.


 내가 보고 있단 걸 깨닫고 녀석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번엔 저 강이 이길지도 몰라. 하지만 언제까지나 계속 그럴 수 있을까? 산왕은 계속해 인간에게 칼을 들이밀어. 정말 강이 단 한 번 실수도 없이 산왕의 공격을 전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녀석은 제멋대로 떠들어댔다.


 "산왕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어. 일본처럼 아주 산왕에게 넘어가버린 곳도 있고. 우리가 일본이랑 다른 게 뭐야? 변변찮은 강도 없이 양쯔강에 기대고 있을 뿐이지, 산지 비율은 비슷하잖아. 산왕의 군대가 각지의 산에서부터 내려온단 건 알고 있지? 단지 걔넨 우리보다 재수가 더 없었던 것뿐야."


 두서없이 얘기하지만, 녀석의 패배주의에 나는 조금 공감했다. 이 작은 땅덩이에서, 자국을 지켜줄 변변한 강도 없이 우리는 근근히 이웃의 도움을 받아 생존하고 있었다. 4대강, 즉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선 저 양쯔나 미시시피처럼 신성동맹을 맺을 '강'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몇몇 학자들은 강의 규모와 주변의 산업화 정도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정치가들은 과거 이들 강에 대해 행해진 대규모 토목 공사와 정비 작업이 '강'들을 사라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유야 어쨌건 '강'이 없다는 건 오늘날 국가적인 문제다. '강'없이 산왕을 막아낼 방법은 아직까지 없으니 말이다. '강'의 유무가 오늘날 한 국가의 힘을 증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아주 조금은, 져버려도 좋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애인이 죽어버린 뒤, 나는 한동안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도 했었다. 그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친구들이나 가족들, 어른들이 말리는 통에 죽을 수 없었다. 아니,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걸 핑계로 죽지 않았다.


 만약 산왕이 본격적으로 우리들을 공격하고, 저 양쯔강이 그를 막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여자친구를 따라 목숨을 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말려줄 주변 사람이 모두 사라진 그 때에는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교내 방송용 스피커에서 대피 신호가 울려 퍼졌다. 교사들의 인솔에 따라 지하 방공호로 대피하는 바람에 양쯔강의 싸움은 더이상 구경하지 못했다. 삼, 사십 분 정도 방공호에 앉아 있다가, 양쯔강이 상대를 격퇴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다시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그 뒤로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          *          *          *          *


 평소처럼 학원에 들렸다가, 한밤중이 다 되서야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과 네온사인 불빛에 시내 길거리는 환했지만, 집에 거의 다 이르러 골목길에 들어서자 주위는 금세 어두컴컴해졌다. 인적까지 드물어 을씨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문득 학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내 여자친구는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나는 부모님, 혹은 친구, 혹은 주위 사람들 핑계를 대면서 부질없이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었다. 그건 옳은 일일까? 여친도 없는 세상에서, 난 대체 무엇에 희망을 걸고 구차하게 남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실은 죽을 각오나 용기따윈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게 아닐까?


 "죽고 싶다고 하느냐."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독백 중에 끼어들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골목 저편 어둠 속에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반신반의하는 사이, 그 인영은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난 그 생명이란 걸 이렇게나 간절히 바라는데, 넌 그것을 기회만 되면 순순히 내어 놓겠다고 말하는게냐?"


 그 형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무심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뭔지는 몰라도 그 상대랑 마주치는 것은 위험하다. 이성적으로 깨닫기 전, 이미 몸이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피하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좌우간 가까이 다가서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녀석은 또다시 말을 걸었다. 여전히 상대 형체를 알아보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목소리 톤이 다소 높아, 간신히 상대가 여성이란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도 죽고 싶다면 그 목숨, 내가 조금 일찍 받아 간대도 상관은 없을 테다!"


 아차, 하는 순간 상대는 이미 눈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공간을, 상대가 휘두른 무언가가 예리하게 양단했다. 타이밍이 조금만 더 절묘했더라면 내 몸이 허리춤에서부터 썰리는 장면을 실시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제야 나는 상대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몸에 딱 맞춘 듯 타이트한 검정 재킷과 양복 바지 차림을 하고서, 이상하게도 얼굴엔 도깨비 가면을 썼다. 그것도 그냥 도깨비가 아니라, 부리부리한 눈이 네 개나 달린 이상한 도깨비 가면이다. 마치 검치호처럼 툭 불거진 두 쌍 어금니가 눈과 함께 양각되어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불빛 아래서, 정체가 드러난 괴한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산왕의 남반(南班)이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자여, 남은 생명 이 몸이 감사히 받겠다!"


=========================================

 두 번째 화 올립니다.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긴 말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
  • profile
    yarsas 2012.07.05 08:39
    오 업뎃이군요 ㅎ 무언가 흥미진진합니다. 아직은 좀 더 전개를 지켜봐야겠군요. 그런데 무슨 일 있습니까?제정신이 아니라뇨?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5 16:15
    ....후반 습격 들어가는 장면을 음주 상태로 써서요;;;
    별 일은 없었어요 ㅎ 야르사스 님 글도 곧 볼 수 있겠네요^^
  • profile
    욀슨 2012.07.05 09:30
    사람 사는 동네도 안전하진 않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5 16:19
    댓글 감사합니다 ㅎ 아직 주연 인물이 등장하질 않아서 이야기가 본궤도에도 못 올랐네요; 재밌게 보신다면 좋겠지만,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세요;;
  • profile
    ㄴㅏㄹㅏㅣ 2012.07.06 01:26
    전개가 넘 느려요 ㅠㅠㅠ
    개그 같은걸 넣으면 어떨까 생각 하는데....
  • ?
    츤데레 포인트걸 2012.07.06 01:26
    따, 딱히 ㄴㅏㄹㅏㅣ님이 좋아서 10포인트를 지급하는건 아니야!!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6 06:20
    계획과 다르게 한 장면을 더 넣어봤는데, 아무래도 좀 느려지네요; 괜히 넣나...;;

    이번 글은 왠만하면 개그 없이 가려고요. 분위기에 너무 안 맞는 거 괜히 넣어봐야 별로 좋지 않을 거 같아요 ㅎ
  • profile
    클레어^^ 2012.07.06 04:59
    오호~. 초반에 4대강 사업 비판??
    잘 봤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7.06 06:22
    비판은요 ㅎ
    그냥 소소하게 즐길거리 대신 넣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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