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7 20:01

[단편] 성급한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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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1년더전것

 

 

 

 

<성급한 매장>

 

 

*  *  *

 

 

 그러니까 그 날은 뭐랄까.
 처음부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 왜, 누구나 그런 날은 가끔씩 겪는 법이잖아. 예컨대 어제 분명히 충전기에 꽂아둔 기억이 있는 핸드폰이 알고 보면 바지 주머니 안에 있다던가.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그래, 뭔가 좀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날 말이야.
 영호에게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이었어.
 사실 하는 일을 고려해보면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영호는 검시관이었거든. 검시관이 뭐냐고?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가끔씩 산이나 강, 그리고 인적이 드문 거리 같은 곳에서는 아무런 예고 없이 시체가 발견되기도 해. 무연고자라고 해야 하나. 사실 대부분의 경우는 노숙자나 가출한 청소년이 안전사고 혹은 굶주림으로 죽은 케이스지만 가끔씩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잡힐 때도 있거든.
 검시관이란 건 바로 그런 시체들을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야. 이야기가 산으로 갔네. 뭐,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문제는 그날 처리할 시체가 밀려 있었다는 거야. 아침부터 말이지. 글쎄, 여름 휴가철이기도 하고 뎬무라고 했던가? 간만에 큰 태풍이 불어 닥쳤으니까. 강가로 떠밀려온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몇 구 발견되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그걸 매스를 찢고 헤집어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거든. 아침부터 물 잔뜩 먹은 시체들이 거적 한 장씩 덮고 맨발만 내놓은 채로 죽 늘어선 부검대 위에 올라가 있는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봐. 끔찍하지 않니? 영호도 그랬을 거야. 흔히들 시체를 해부하는 사람들, 검시하는 사람들은 냉혈한이고 죽은 사람을 봐도 꿈쩍도 안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 누군가와 함께 일한다고 꼭 친한 것은 아니잖아. 이 경우도 마찬가지야. 단지 시체와 함께 일하는 것뿐이지.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래. 영호는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월급은 받아야 하니까. 입을 꾹 다물고 검시를 시작했어. 처음 시체는 젊은 여성이었지. 예뻤냐고? 아니, 글쎄. 미모의 여성이었을지도 모르지. 죽기 전에는 말이야. 하긴야 너는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일단 한 번 물에 불어버린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었는지, 네 말대로 예뻤는지 판단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눈두덩은 들어찬 물에 둥그렇게 튀어나오고 입술 역시 마치 벌에 쏘인 듯 심하게 부풀어버리거든. 음, 네가 라면을 먹다가 핸드폰이 울려 잠깐 동안 통화를 했다고 하자. 그 다음 식탁으로 돌아와서 젓가락을 들면 어느새 먹지 못할 정도로 면발이 불어 있잖아? 그래, 잠시 통화를 했을 뿐인데, 고 짧은 시간 새에 그렇게 변해버린 거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다만 이쪽은 몇 분이 아니라 하루 종일 물속에 있었다는 게 다르지만.
 아무튼 영호는 개도 절개를 시작했지. 음, 호흡기관. 기도랑 허파 같은 걸 살펴보기 시작했다는 뜻이야. 뭐, 물가에서 발견된 시체는 익사일 수밖에 없으니까. 몸에 딱히 특별한 외상이 없다면 그건 허파에 물이 차서 죽은 게 거의 확실하거든. 즉, 사고사로 분류되는 거지.
 시체는 총 여섯 구였어. 하루치 업무치고는 좀 많은 편이었어. 보통 검시관이라는 직업 자체가 느슨하거든. 부검이라는 게 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일이라서 그래. 정신건강에도 안 좋고. 보통 하루에 두 구 정도만 작업하면 끝인데, 오늘은 아니었지.
 익사. 사고사로 추정. 특기할 만한 외상없음. 사인은 물에 인한 기도 폐쇄. 영호는 싯누런 지방질과 물 섞인 피가 덕지덕지 묻은 메스를 내려놓고 소견서에 여자의 시체를 분석한 결과를 써내려갔지. 자, 이제 겨우 한 구 끝난 거야. 앞으로 다섯 구가 남았지. 시간을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어. 영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 그리고 다시 메스를 집어 들었어. 자, 어디 다음은 누굴까? 시체의 얼굴을 덮고 있던 거적을 벗겨내자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지. 뭐,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알아볼 수 있던 것은 겨우 그 정도뿐이었지만 말이야.
 영호는 기계적으로 메스를 휘둘러 일거리들을 하나씩 처리해 나갔어. 뭐 괜스레 세세한 사항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밥맛 떨어질 테니까. 그나저나, 뭐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참 다양하게도 빠져서 죽었더군. 아마 여름휴가철이어서 그랬겠지?
 

 여섯 구의 시체를 처리하고 나서 영호는 굽은 어깨를 피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냈지. 부검실 창문으로 비치는 바깥 풍경은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어. 이제 마지막 하나만 끝내면 되는 거야. 영호는 고개를 돌렸어.
 부검실의 구석, 빛도 들지 않는 저 만치 언저리에 위치한 부검대 위에서 ‘그것’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어. 영호는 깜짝 놀랐지. 뭐라고 해야 하지. 거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고 어느새 시체의 목은 틀어져서 그를 향하고 있었던 거야.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게. 이 바닥에서는 꽤나 고참 축에 드는 그조차 견디기 힘들더라고.
 영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시체에게 다가갔어. 무기로 쓰겠다는 식으로 메스를 손아귀가 하얗게 되도록 꽉 움켜진 채로 말이야.
 젊은 남자였어. 목이 부러져 있었지. 완전히 경추가 함몰되어 있었지 뭐야. 그 왜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있잖아. 목 부분이 스프링으로 되어 있어서 머리랑 몸이 따로 노는 피에로 인형 같은 거 말이야. 딱 그 꼴이었다니까? 그러니까 그게 부검대 위에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에 불과한 것뿐이야. 뭐, 인턴들 실수겠지.
 영호는 심호흡을 몇 번이고 한 뒤에서야 간신히 시체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었어. 그래, 대충 째고 쑤셔서 폐 안에 물이 차 있는 것만 확인하면 오늘 일은 끝이야. 좀 기분 나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것만 끝내면……. 
 왁!
 놀랐지? 뭐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그냥 이야기일 뿐인데. 음, 영호는 침착하게 메스를 움직여 부검을 시작했어. 구개수, 그러니까 목젖 부분을 날렵한 손놀림으로 도려내고 그대로 가슴께까지 거침없이 살을 그어냈지. 너무 작업에 골몰해서 영호는 축 늘어진 머리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
 영호는 메스로 쓱쓱 허파도 쑤시고 식도도 헤집었어. 물이 잔뜩 튀어나왔지. 뭐,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 익사가 틀림없었어. 목뼈가 부러진 건? 아, 뭐 강가로 밀려오면서 돌에라도 부딪쳤나보지. 영호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녀석한테서 벗어나고 싶었어. 왠지 기분이 나빴거든. 그래, 맨 첫머리에서 이야기하던 그거. 괜스레 누군가 지켜보는 것만 같고.
 영호는 피범벅이 된 메스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 검시결과를 쓰기 시작했어. 뭐, 성별과 나이. 20대 남성으로 추정. 익사. 목뼈 골절. 개천 하류에 휩쓸리면서 생긴 외상인 것으로 추측. 사인은 물에 의한 기도 폐쇄. 노란 서류철에 볼펜으로 부검 결과를 휘갈겨 쓰고 있던 영호의 손이 떨렸어.
 빨리, 빨리 더 빨리 정말 께름칙하지 뭐야. 영호는 정말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한시라도 더 빨리 부검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그 때 갑자기 영호는…….
 아, 맞다. 한 가지 그냥 넘어간 게 있구나.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면 안 되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말해줄게. 이걸 넘기면 하나도 재미없거든.
 자 지금이라도 스크롤을 올려서 확인해 봐. 음, 아마 ‘아무튼 영호는 개도 절개를 시작했지.’의 다음 문단일 거야. 응, 그래 맞아. 시체는 총 여섯 구였어.
 근데 잠깐만. 분명히 영호는……. 음, 이걸 그냥 말해버리면 재미없겠지? 뭐, 똑똑한 너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쓱쓱. 볼펜으로 급히 글자를 휘갈기고 있던 영호는 숨을 멈췄어. 그리고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단지 아침부터 무리해서 작업한 피로가 쌓여서 그렇다고. 목 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숨결은 그저 피곤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등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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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Jeffery.K 2012.01.27 20:02

    진짜 예전에 써둔것들 엄청 많고 다 소중한데 어디갔는지 ㅜㅜㅜ 컴 바꾸니까 다 사라졌어요 활동하던 카페는 공중분해되고 -ㅂ- 이거 다 어디갔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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