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2 05:43

행동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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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는 눈이 내렸다. 집을 나서다 잠시 동안 멍해져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계절에 눈이라고? 아니, 눈이 아니다. 눈이라면 떨어져 내리던 게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갈 리 없을 테니까.


 흩날리는 건 눈이 아니라 새하얀 꽃가루였다. 그러고 보면 매년 이맘때마다 한 번씩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다. 꽃가루 흩날리는 모습을 보느라 걸음이 자연스레 느긋해졌다. 내가 맞고 있는 게 꽃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민망할 따름이었다. 별로 축복받을 일 한 게 없는데. 아니, 그보다 최근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그렇잖아도 길거리 지나다니는 사람들 얼굴 보기도 민망할 정도인데.


 산화공덕이란 말은 불교 용어지만, 고등학교 때 한번쯤 누구나 들어봤음 직한 단어다. 꽃을 뿌려 덕을 칭송하다. 부처에게 바치는 공경과 경외심이 흩날리는 수많은 꽃잎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그 꽃비 속을 거니는 부처와 제자들 속에 끼고 싶단 명예욕 자극받은 사람도 꽤 있었음직하다. 그러니 그 힘든 고행길 말없이 따르고, 설법 한 번 듣겠다고 수천 관중 틈에 끼여 긴 시간 지루하게 앉아 기다리는 사람이 생기지. 이런 엉뚱한 생각이나 하는 건 아무래도, 요즘 심사가 꽤 뒤틀려있단 증거지 싶다.


 불교의 다른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달과 손가락'이라는 것도 있다. 하늘에 뜬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가 가리킨 달을 봐야 하는데 자꾸 엉뚱하게 손가락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다. 달은 진리고 손가락은 법이다. 불법, 즉 부처 가르침을 받아 진리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일단 진리에 도달하면 가르침은 쓸모가 없다는 뜻이리라. 모든 종교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어쩌면 신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것이겠거니 싶다.


 신을 잊는다는 건 신이 없다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신념과 그것을 수호하는 감시자가 있다고 믿으며, 그 감시자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성실하게 법을 배워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차이는 분명하다. 교회나 기독교 모임을 가보면, 그 숱한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삶에 닥쳐온 시련과 괴로움을 극복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소위 간증이란 시간을 통해 그들은 삶을 신뢰하고, 눈앞의 걱정 대신 미래의 목적에 집중해 행동을 단순화하는 법을 배운다. 세상은 항상 선한 자에게 보답을 한다. 내가 올바로 섬으로써 세상 일이 올바르게 돌아간다. 그것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신은 잠시 잊는대도 상관없다.


 비슷한 신념은 기독교 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위나 도, 예라고 불렸던 것들이 그것이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고대 중국 유학자들은, 최고의 군주가 단지 제 자리를 지키며 오로지 예를 다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로 섰다고 믿었다. 나로 인해 가정이, 국가가, 나아가 온 세계가 평안해진다는 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중요한 건 앎이 아니라 행동이지 싶다. 지행합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며 신의 존재나 관념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결벽증에 가까운 제 윤리관에 묵묵히 헌신하며 살았단다. 두 번째 저서를 집필하면서, 그는 그 이전 자신이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과 과오를 떠올려 그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사람들 모두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했다고 한다.



 문제는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결국엔 그놈의 행동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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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은 낯서니까 짧게...
 막연히 떠올라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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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시 2011.05.15 11:55

    결론은 행동이 문제라는 것인데 달과 손가락을 읽고 딱 와닿는 느낌은 아닌것 같아요. 불교쪽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걸 간증하는 기독교에 적용하자면 '너무 당연히 신은 있기때문에 신을 가끔 잊는다.' 로 해석이 될 것같아요. '내가 착하게 살면 천국 가겠지, 세상도 잘 돌아가겠지'는 저가 불교는 잘 몰라도 그나마 기독교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는거 같아요. 이러한 점에서 비슷한 신념은~ 문장은 좀 과도하게 짧았지 않았을까 좀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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