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18 01:30

크리스마스 선물

조회 수 469 추천 수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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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롤이 미친 듯이 퍼져나가고, 하필이면 불경기도 아니라서 사람들은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가운데, 나만 초록색 카운터에 앉아있다. 그렇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고 불리는 날이다.
“멤버쉽 카드 있으세요?”
“없어요.”
“천 오백원입니다.”
 현실감 넘치는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나온 아저씨는 추운지 자신의 팔을 문지르고는 컵라면 2개를 사갔다. 그렇다, 저런 아저씨도 컵라면을 2개를 사가는데, 이런 날 나는 혼자 있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 사람이 없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들은 같이 놀러가자고 했지만, 나는 현재 꼬시고 있는 그 분과의 약속을 미리, 쓸데없이 미리 걱정하여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쳤다. 괜한 짓이었다. 솔직히 크리스마스라면 기독교나 그 쪽 종교가 아니라면, 당연히 노는 날이고, 바로 이런 날에 일이 터져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 쪽도 넘어오고 있었고, 우리는 고백만을 앞둔 거의 사귄다고 생각되던 한 쌍이었다. 아? 나만 그렇냐고 따지면 도대체 왜 내가 ‘영화 보고 싶다’라는 소리에 ‘보러 갈래?’라고 했더니 수락까지 해놓고는 고맙다고, 답례로 연극을 보러 가는 건데? 그것도 커플이 가득가득한 연극을.
 그래서 나는 확신하고 있었고, 크리스마스에는 분명 뭔가 터질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운을 띄우자, 그 쪽의 한 마디
“아, 그 날 빠질 수 없는 집안 행사가 있어서”
 너 교회도 성당도 안 가잖아! 그 말은 삼켰다. 그래, 본인은 아니더라도 가족이 그럴 수는 있지.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자, ‘미안, 이미 사람을 많이 모아서’라는 소리와 ‘남녀 쌍이 안 맞으면 뻘쭘하잖아?’라는 거절의 이유까지 확실히 들었다.
 나는 현실적이었고, 크리스마스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쪽을 택했다. 시급이 아무래도 쎄니까. 게다가 이 황량한 편의점에는 비록 크리스마스 특별 물품들이 있다지만, 그나마 크리스마스를 피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의외로 손님도 없어서 다른 생각도 많이 들었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관한 생각이! 아니, 튕기더라도 이런 날 튕기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정말 집안 행사라고 해도, 그럴 거면 미리 말을 하던가. 그러면 나라도 열심히 놀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알바를 안 하고. 아니, 내가 지가 동물을 좋아한다고 해서,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햄스터는 쥐일 뿐이고, 강아지는 어차피 동물의 한 종류일 뿐인데, ‘귀엽다 귀엽다’고 연기까지 했었고, 사실 문자건 전화건 진짜 귀찮아하는데, 게다가 이모티콘도 솔직히 징그럽고, 왜 언어의 경제성을 박살내버리는지 알 수도 없는 건데도 붙여주면서 놀아줬는데, 이런 날, 이런 나를 버려?
 어쩔 수 없지만 화가 나서 몰래 음료수라도 마실까하다가, ‘크리스마스라서 원래 있던 알바가 못 온대, 너 시간 되냐?’라는 나와 문자 코드가 비슷한 점장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참았다. 내가 내 돈 내고 담배라고 필까 싶어서 뒤를 돌아서 등 뒤에 진열된 담배들을 보았다. 하긴, 그 쪽 앞에서는 담배도 안 피었지, 비흡연자라고 해서. 그렇게 뒤를 돌아서서, 평소에는 너무 간에 기별도 안 와서 피지도 않던 약한 놈으로 하나 잡았다. 문제는 그렇게 하나 잡아서 꺼내는 순간 떨어트렸고, 하필이면 계산대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녀석이 어떻게 그렇게도 절묘하게 굴러 들어갔다.
 짜증이 났지만, 몸을 숙여서 담배를 꺼내고 있는데, ‘딸랑’소리가 들리면서 손님이 ‘나 왔다’고 표시를 했다. 좀 물건이라도 고르든가, 곧바로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탁’ 소리가 내려놓고는
“레X XX 하나”
 라고 내가 떨어트렸던 담배 이름은 기막히게 내놓으면서, 말꼬리는 내놓지 않았다. 결국 담배 꺼내는 건, 이거 계산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숙였던 몸을 드는데, 왜 이렇게 허리가 아픈지. 운동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서 눈앞에 보이는 건 잘 포장된 육각형의 피임기구. 그렇지, 크리스마스니까 어디 한 번 쓰러트려 보겠구나 싶어서 사는 거구나. 적당히 분위기로 어찌 넘어트리려고.
 내 얼굴에는 자동으로 비웃음이 떠올랐고, 뒤돌아서 밤의 역사를 준비하는 손님을 위해 아까 말한 담배를 꺼내면서 바코드에 찍고, 우리나라 저출산의 하나인 잘 만들어진 기구도 바코드를 찍고는 고개를 들어서
“멤버쉽 카……”
 언제나 말하는 말이라서 틀린 적이 없던 ‘멤버쉽 카드 있으세요?’를 차마 못 한 것은. 내 앞에서 있는 새끼가 ‘가족 행사’ 때문에 나를 버렸고, 근 한 달간 내가 이 새끼 앞에서 담배도 안 피고, 이 새끼 앞에서는 쥐새끼로 밖에 안 보이는 걸 보면서 귀엽다 귀엽다 해줬고, 아 심지어 먹으면 맛있는 토끼 앞에서도 ‘귀엽네!’라는 소리까지 하게 만들었고, 장문의 문자를 통해서 심지어 MMS도 보내게 만들었고, 쓸모없는 이모티콘까지 쓰게 만든 새끼가 내 앞에서 콘돔과 담배를 계산하려고 서있는 것이었다.
 내 앞에 아까까지만 해도 손님5였던 새끼는 근 한 달간 잘 꼬셔보려고 했던 새끼에서 가족 t행사로 그 짓을 하는 새끼로 변해있었다. 물론 녀석의 표정도 ‘어쩌다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스스로를 향한 핑계에서, ‘걸렸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가족 행사가 이거냐?”
 나는 이 새끼 앞에서 ‘오빠’라는 단어와 ‘~어요’라는 말꼬리를 썼지만, 과감하게 다 버렸다. 내 앞에 있는 새끼는 ‘어버버’하면서 외국인인 척하는 건지 몰라도, 한국어 구사 능력이 생후 2개월 수준이었다. 나는 이 새끼가 손에 덜덜 떨면서 들고 있던 카드를 뺏어서 계산을 하고는 영수증과 함께 담배와 콘돔을 내밀어줬다. 내 표정은 ‘이 새끼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였지만, 이 새끼는 ‘꺼져’로 들었는지 물건도 제대로 못 받고, 커다란 사내새끼가, 그것도 평균보다 더 큰 새끼가 지가 신데렐라라고 되나, 담배를 떨어트리고는 튀어버렸다.
 나는 어느새 손이 안 닿던 약한 놈 대신 그 새끼가 떨구고 간 담배를 다시 진열대에 꽂았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서 떨어트린 담배를 꺼냈다. 결국, 기가 막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새끼는 나에게 담배를, 하느님은 나를 다만 악에서 구해주셨다. 정말 고맙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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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해보니까, 창도에 글쓴게

작년이예요...

와...

 

미친 것 같아요.

 

요새 할 일이 많아요!

 

그 탓에 취미생활하니까

재밌네요!

과제는 안 하고.

 

 

아, 엽편 쓸때마다 말하지만, 실화 아닙니다.

?
  • ?
    乾天HaNeuL 2011.05.18 05:13

    ...............어째 님 소설엔 인간 말종이 자주 등장하는 듯한 기분은 착각이겠죠? ㅡ.ㅡ

  • profile
    idtptkd 2011.05.18 09:07

    흡... 제가 삶의 스트레스를 표현되면서 아무래도 훈훈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상큼한 캐릭터가 나오기 힘든 것 같네요ㅠㅠㅠㅠ

  • profile
    윤주[尹主] 2011.05.19 17:10

     오...기막힌 글입니다 ㅎㅎ


     '밤의 역사' 운운 할 때부터 피식하긴 했지만 '내 앞에 서 있는 새끼'할 때부턴 '으악, 어떡해!'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가족 행사가 이거냐'는 주인공 대사도 던지는 타이밍이 좋았네요. 세상 님같은 재치와 타이밍 감각이 있으면 저도 좋을텐데 ㅠㅠ


     비결 있으면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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