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7 11:34

[UNDEAD] 3. 되찾은 미소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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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AD] 3. 되찾은 미소 - 1     

 


 -……루이즈번의 해상 업이 발달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
연한 일일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바다에서 건질 수 있는 어획량이 얼마
없는데다 추운 기후로 인해 배를 만들 좋은 목재도 구하기 힘든 그들의
환경 때문이다. 그 덕에 엘헤미아는 풍부한 어획량과 그들의 기후만이 얻
을 수 있는 양질의 물자들을 루이즈번에게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었다. 먹
을 것이 풍족한 나라는 자연스럽게 생존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것에 관
심을 가지게 되기 마련, 그 당시 귀족들 최고의 호사품은 귀금속이었다.
몸을 치장하는 것보다 생존을 더 신경 써야 하는 루이즈번에게 귀금속은
별 필요 없는 물품이었기에 두 국가는 자연스럽게 거래의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그들의 대립이 3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무
역사업이 계속 명맥을 유지한 것을 보면 참으로 기묘한 공생관계라 할 수
있겠다.……-

                                      역사학자 포스먼 하일의 저서 中

 

 

 

 궁성 에펠 상층부에 있는 대장군의 집무실, 일반적으로는 보좌관인 튜더
만이 출입하는 곳으로 궁성 에펠 내에서도 특별히 중대사를 다루는 곳이
다. 오늘은 튜더 외에도 루즈라벤과 악살라스, 두 십인장이 같이 있었다.
세이건은 딱딱한 얼굴로 그 둘을 쳐다보았고 그들은 더 딱딱한 얼굴로 대
장군의 시선을 받았다. 서로 누구의 안면이 더 딱딱해질 수 있는지 시합
을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엘몬데드에서 다 따라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세이건의 불같은 외침에 악살라스의 얼굴이 썩은 나무처럼 변하자 루즈
라벤의 얼굴도 잘 말린 오징어처럼 변했다. 튜더 역시 엄격한 얼굴로 현
사태를 통감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클로드를 보냈으면 됐지 않은가! 루즈라벤. 이 사태가 얼마
나 중한지 감이 안 잡히나 보지? 믿었던 인실롭마저 실망시키는군!”

 

 대장군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다 단호하긴 해도 입에서 화염을 토하지
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입은 물론이고 눈과 코에서까지 불이 뿜어져 나
오는 것 같았다. 루즈라벤은 핼쑥한 표정으로 대장군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자칫했다간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해결사 루만
이 물었다.

 

 “지금이라도 제가 해결하러 갈까요?”

 

 “됐어! 자네는 여기 있는 언데드들이 난동을 부릴 때를 대비해서라도
남아있어야 해.”

 

 ‘구속자’이기에 해결사로 불리는 루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급한 나머지 상황분별력을 잃은 루즈라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
다.

 

 “지, 지금이라도 클로드를 보내겠습니다.”

 

 쾅! 대장군이 내려친 탁자는 그대로 부셔져 버렸고 루즈라벤은 목을 움
츠렸다. 골동품 수집광인 악살라스는 대장군이 부셔버린 유서 깊은 탁자
에 애통해했고 튜더는 대장군의 보좌관답게 다음번 탁자는 좀 더 단단한
재질의 것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의 생
각은 찰나의 순간밖에 되지 않았다. 세이건은 결국 입에서 불길을 토해냈
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루즈라벤!”

 

 튜더가 눈살을 찌푸리며 급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멍청한 소리하지 말게. 루즈라벤. 언데드는 양날의 칼이야. 클로드와
발락을 동시에 세상에 풀어줘 버렸다가 일이 틀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나.
인실롭이 나선다 해도 그 둘의 합쳐진 힘을 막을 순 없어. 그들이 우리에
게 완벽한 충성을 한다고 믿고 있는 건가?”

 

 악살라스도 거들었다.

 

 “현재 그들은 앞으로 우리가 약속한 풍족한 대우 덕에 우리말을 듣는 
거지 않나.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일세. 애초부터 루만이 없었으면
그들을 궁성에 풀어두지도 않았을 거야.”

 

 루즈라벤은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에 수치를 느꼈다. 대장군
은 그를 무시한 채 지도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들이 또 하나의 ‘엘헤미아의 북벽’을 넘기 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났다. 변덕스러운 날씨
는 사전의 예고 없이 비를 뿌렸고 메말랐던 땅은 탐욕스럽게 수분을 빨아
들였다. 빗소리가 마치 피아노 건반소리처럼 서글프면서도 경쾌하게 대지
를 강타했다. 자연이 하사하는 이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매번 비슷하지만
귀 기울이는 이에 따라서는 이렇듯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지금 이 순간.
 그 것은 과연 희극일까?
 생명을 채색하듯 하늘은 끊임없이 비를 뿌렸다. 그런 생명력이 넘치는
경관을 일말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낯빛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알
자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수를 헤아리기라도 하듯 묵묵히 내리는
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오싹함을 느끼게 했
다.

 

 “비가 쉼 없이 내리는 군.”

 

 반가운 비였다. 하늘이 자신의 계획을 돕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
제 추적자들은 단원의 흔적을 찾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리더스카
이의 정찰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한동안은 문제없이 추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단장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몇 번 움직여 보았다. 컨디션은 이
상 없었다.

 

 ‘신이 나에게 지상에 발 디딜 수 있도록 허락한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

 

 현월단이 수면을 취하고 있는 이 동굴은 단장이 피트와 함께 미리 답사
해둔 도피처였다. 쉽게 찾기 힘들고 비를 피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
다. 그는 동굴 속, 단원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들 모두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단장은 굳이 짓궂게 세상을 알게 해주지
는 않았다. 그들이 도주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취한 수면이었다. 어차
피 조금 있으면 알아서 깨어날 것이다.

 

 ‘수면 시간이 비슷했기 때문에 또 추격을 해온다면 금방 따라 잡힐 터.
하지만 그들은 이제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예측할 수 없다. 다시 머
리 싸움이다.’

 

 고민하던 단장의 뒤로 기척이 느껴졌다. 단장은 굳이 뒤돌아보지 않았다.
누군 인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단원 중에서 이런 우아한 기척을 내는 여
성은 한명 밖에 없다. 원년제 테러 때 텔레파시 능력으로 활약했던 엘로
린이 천천히 단장 옆에 다가섰다. 언데드는 인간과 달리 자고 일어났다고
해서 특별한 영향은 받지 않기에 그녀의 용모는 여전히 깔끔하고 단아했
다. 귀 뒤로 넘긴 머릿결과 하얗게 드러나는 긴 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
었다. 특출한 미인도 아니고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
녀에겐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우아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벌써 일어나셨어요?”

 

 “아, 빗소리가 듣기 좋아서.”

 

 엘로린은 남들이 보면 미소라고 하기엔 퍽이나 모자란 얕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치 가면이 웃는 것 같았다.

 

 “낭만적이시네요.”

 

 “놀리는 건가?”

 

 “아뇨. 저도 좋네요.”

 

 엘로린은 얼굴 옆으로 내려온 머릿결을 다시 귀 뒤로 넘겼다. 단장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로군. 좀 더 제대로 웃지 그래? 보기 좋군.”

 

 “……저한텐 너무 어려운 부탁이네요.”

 

 단장은 엘로린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좀처럼 웃지 않는 이
유도 알고 있었다. 여리기 그지없는 그녀는 이런 삶을 살게 된 자신에 대
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물론 누구나 괴물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는 쪽은 항상 강한 쪽이다. 그녀는
과연 어느 쪽일까. 비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이 하염없이 흔들렸다.
그녀가 ‘살아 숨쉬고’있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다가왔다. 단장은 그 느
낌을 느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알자로는 손을 뻗어 엘로린의 머릿
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음 흔드는 짓은 하지 마세요. 여자들은 이런 거에 민감하니까요.”

 

 단장은 손길을 거두지 않고 무감정하게 물었다.

 

 “이틀 안으로 도착할 텐데 괜찮겠나?”

 

 엘로린은 흠칫하다가 단장의 손이 닿지 않게 조금 뒷걸음질 쳤다. 단장
은 손을 거두면서도 눈길은 거두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엘로린의 가슴
속 구석구석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엘로린은 손으로 가슴 한복판을 움
켜쥐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진 듯 표정이 괴로워 보였다.

 

 “왜 살아있지 않음에도 가슴은 한 없이 아픈 걸까요?”

 

 단장은 대답 없이 천천히 빗길로 걸어 나갔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
리고 있었기에 어깨 위가 조금씩 젖기 시작했다. 흑의를 입고 비에 젖은
단장의 모습은 평소보다 훨씬 더 귀신같은 모습이었다. 어두운 하늘 밑에
뒤돌아선 그의 눈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엘로린은 그 눈을 보며 한 호
흡 정도는 잊고 말았다. 그녀의 눈 속 깊이 각인된 그 느낌은 처음 단장
을 보았던 때와 지금이나 똑같았다. 비를 맞던 단장의 입이 불현듯 열렸
고 허스키한 미성은 빗소리와 어울려 더 크게 울러 퍼졌다. 엘로린은 교
회의 종소리를 듣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왜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그녀의 눈이 물기를 머금으며 단장의 눈을 피했다.

 

 “……제 아이는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단장은 그녀가 세이지를 자신의 딸처럼 대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진심일까, 아니면 다시는 가지지 못할 자식의 대용품인가. 한참을 물끄러
미 쳐다보던 단장은 변함없는 음색으로 말했다.

 

 “엘로린. 이 계획에서 굳이 이 길을 택할 필요는 없었어. 네가 원해서
가자고 한 길이다.”

 

 “알고 있어요.”

 

 “지난 과거를 후회하고 있나? 아니면 주어진 삶을 후회하고 있나?”

 

 “……잘 모르겠어요.”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보군.”

 

 단장은 다시 동굴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엘로린. 지나간 과거를 부정할 수는 있어도 돌이킬 수는 없다. 다가올
미래는 예정되어 있지는 않아도 준비할 수는 있지. 현재는 네 몫이다.”

 단원들이 조금씩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단장은 엘로린을 스쳐지나
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명심해. 넌 아직 죽지 않았다.”

 

 엘로린은 지나가는 단장의 젖어있지 않은 어깨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히브레와 리지를 제외한 인실롭 일행은 리더스카이를 통해 엘몬데드 협
곡을 넘었다. 히브레는 태우고 날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리지는 더 이상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되었기에 인실롭이 그 둘을 궁성 에펠
로 돌려보냈다. 처음에는 그 둘이 궁성 에펠로 가지 않고 도주할 가능성
때문에 꺼림칙했으나 그들에게 보장된 궁성에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
라는 점과 히브레의 성격을 고려해 보니 괜찮을 거라 판단되었다. 이제
인실롭은 발락과 리더스카이가 추가된 새 멤버를 이끌고 다시 추격만 하
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원치 않은 장애물을 만났다. 인실롭은 쏟아지는
비를 보며 개탄(慨嘆)했다.

 

 “하늘마저 우릴 배신하다니!”

 

 인실롭은 팔짱을 끼고 있는 발락에 태평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대가 멍청한 짓만 안했어도 그들은 이미 잡혔다!”

 

 팔짱을 끼고 있던 발락이 코웃음 쳤다.

 

 “이봐, 아저씨. 내가 리더스카이를 타고 오지 않았으면 아저씨네는 여기
를 넘지도 못했어. 원래는 그들이 넘기 전에 아저씨가 잡았어야 되는 거
아냐? 십인장이란 족속들은 책임전가하기 바쁠 정도로 소인배였나?”

 

 발락의 직설적인 말에 대꾸할 말이 없어진 인실롭은 끓어오르는 화를 삭
이느라 바빴다. 하지만 발락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화를 내고 싶은 건 나라고! 설마 그렇게 어이없는 능력을 가진
짜식이 있을 줄 내가 어떻게 알아! 완전 재수 꽝 맞았네! 너희들이 그 짜
식만 죽여 놨어도 내가 다 죽일 수 있었을 텐데! 네들 대체 한 게 뭐야?
십인장이란 건 파리 한 마리 못 죽이는 짜식들한테 주는 직윈가 보지?”

 

 챙! 발락은 코앞에 있는 칼끝을 쳐다보았다. 발검 하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하라, 그대. 내 인내는 그리 질기지 않다.”

 

 인실롭은 관자놀이에 핏줄이 서릴 정도로 격노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은 그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을 살해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반항
하는 용이다.

 

 - 파지지직!

 

 인실롭은 칼끝을 치우며 몸을 움직여 떨어지는 전격을 피했다. 발락은
순식간에 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비가 흐르는 공간에서 그가 일으
키는 스파크는 더욱더 격렬했고 온몸이 전기로 뒤덮인 그의 모습은 그야
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인실롭조차 그 모습에 얼이 빠져 입을 벌렸다. 루
즈라벤을 당혹스럽게 한다는 그대가 이 그대였던가. 발락은 격렬히 자가
발전(自家發電)하고 있었다.

 

 “한번 해보자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아저씨.”

 

 발락의 모습 뒤로 풍경이 어긋나 보일 정도의 맹렬한 전류가 흐르기 시
작했다. 인실롭은 허탈하게 웃었다. 반항룡이라고? 정말 이름 하나 잘 지
었군.

 

 “루즈라벤이 못 당해낸다던 언데드 꼬마가 그대였군. 아무래도 내가 오
늘 그대 버릇을 좀 고쳐나야겠다.”

 

 발락은 인실롭의 도발에 찢어지는 전격을 가차 없이 내던졌다. 엘몬데드
협곡이 순식간에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인실롭은 황급히 몸을 놀리며 피
했고 몬반 역시 자신의 무기가 전류에 닿을까봐 저만치 물러났다. 인실롭
은 이 싸움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전기뱀장어와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발락은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꿇리지? 아저씨.”

 

 인실롭은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더러운 기분이었다. 물러서기엔 자존심
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그 둘 사이로 클라보가 걸어 나왔다. 클라보는
발락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발락은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찌끄레기는 물러서지?”

 

 발락은 얼굴을 얻어맞고 튕겨져 나갔다. 뭐? 나동그라진 발락은 어처구
니가 없어서 자신의 얼굴을 쓸어 만졌다. 순간적으로 길어졌던 클라보의
팔이 다시 줄어들어서야 자신이 얻어맞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발락은 분노를 느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넘버 6가 나를 때렸다고?’

 

 발락은 믿을 수가 없어 다시 전기를 만들어 내려했다. 클라보는 발락이
전격을 휘두르기도 전에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켜 그를 쓰러뜨렸다. 발락
은 자신이 완전히 농락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클라보
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비가 내리면 능력이 강해지는 건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알다시피 클라보가 능력에 비해 넘버가 낮게 책정된 것은 북진용으로 쓸
모가 없기 때문이다. 루이즈번에서 클라보의 능력은 스스로의 몸을 얼어
붙게 만드는 자살카드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과소평가된 그의 능력은
실제론 넘버를 초월하는 우월한 것이었다. 로한의 불길도 꺼뜨릴 수 있고
발락의 전기조차 흡수할 수 있는 액체인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최
고 강점은 비가 오는 날씨에는 시한에 관계없이 액체 상태를 무한대로 유
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액체로 변한 저한테 당신의 공격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쯤
하면 됐잖아요?”

 

 발락은 자신이 출전한 이후로 제대로 된 활약은커녕 넘버 26-피트한테
죽을 뻔하고 넘버 6-클라보한테 얻어터지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는 꿈
에도 생각 못했기에 뇌가 마비되는 것 같은 이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
다. 클라보는 그의 충격을 무시하고는 인실롭을 쳐다보았다.

 

 “인실롭 씨도 지휘관이라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셨어야죠. 애 장단에
맞춰주시면 어떡하겠다는 거죠?”

 

 “애, 애라고…….”

 

 발락은 충격으로 세상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인실롭도 그다지 상황이 유
쾌하지는 않았다. 클라보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정신 차리고 빨리 추격하지 않으면 놓쳐요.”

 

 인실롭은 팔짱을 끼며 고민했다.

 

 “리더스카이를 이용하는 방안 외엔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비가
오니 막막하군.”

 

 클라보는 소매를 내리며 여자처럼 미소 지었다.

 

 “아니죠. 비가 와서 오히려 다행이죠.”

 

 

 


 수면을 마친 현월단은 다시금 기세를 올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비는 여
전히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비를 맞는다고 해서 감기 걸릴 일이
없는 그들의 도주는 여전히 신속했다. 속도는 조금 떨어진다 해도 체력은
다음 수면기까지 떨어질 일이 없으니까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이다. 지리
에 밝은 피트가 선두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었고 그 뒤로 단장과 로한이
달리고 있었다. 단장의 흑의가 비를 맞아 펄럭이며 물기를 날렸다. 수많은
낱알의 물방울을 어쩔 수 없이 맞으며 뒤에서 달리고 있는 이들은 보호를
요하는 세이지와 엘로린이었고 그 뒤로 매튜와 린이 호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탐지에 능한 스캇이 후미에서 그들을 받쳐주고 있었
다. 대열에 후방에 속하는 매튜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망치를 흔들었
다.

 

 “크하하핫! 꼴좋다! 자식들아! 뭐? 반항룡? 반항도마뱀이겠지! 푸훼훼휏!”

 

 “저게 드디어 미쳤구나. 발작하는 걸 보니.”

 

 린이 시끄럽다는 듯이 흘겨보았고 피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요. 운이 안 좋았으면 위험했습니다.”

 

 매튜는 앞서 가고 있는 피트를 향해 크게 외쳤다.

 

 “피트. 넌 진짜 바지를 벗겨봐야 될 것 같아! 사이즈가 얼마만한지 내
가 직접 봐야겠어. 녀석들을 물 먹였는데 아직도 간이 콩알만 해져있
냐?”“나도 네 거시기가 망치만한지 보자! 거기도 근육질이냐?”“저기
여러분, 세이지 양도 있는데 그런 대사는 좀…….”

 

 로한은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매튜와 린을 무시하며 단장에게 물었다.

 

 “솔직하게 물어봐도 되겠나, 단장?”

 

 “말해. 로한.”

 

 “내가 발락을 이길 수 있을까?”

 

 단장은 물끄러미 로한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이미 마음속에 결론을 내린 후에 하는 질문이라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로한.”

 

 로한은 기절 이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강했어. 소문은 들었었지만 실제로 붙는 건 처음이었는데 넘버 3인 내
자신이 우스울 정도였어. 넘버 2가 그 정도라면 대체 클로드라는 녀석은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지?”

 

 “클로드의 능력은 기록에도 없어서 나 역시 모른다. 알려진 거라고는
영혼살해자라는 별명뿐. 분명 강한 인물이겠지.”

 

 로한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단장은 그런 그에게 확신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자책하지 마라. 로한. 그때의 너는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분명 발
락은 강하지만 그렇다고 그 역시 무적인건 아니지. 우리가 녀석들과 전력
을 따지면서 계획을 세웠다면 애초부터 이 일은 시작조차 불가능했어.”

 

 “내가 우리들 중에 최고전력이잖아. 더 강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단장은 빙긋 웃었다.

 

 “그렇게 될 거다. 태양은 우리에게로 기울었으니까.”

 

 앞서 달려가던 단장은 고개를 돌려 엘로린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의 얼
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의 목적지는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았지만 알자로는 지속적으로 그녀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을
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감이 좋은 단장이 갑자기
다가온 기습에 한발 늦게 반응한 것은.
 공격은 순식간이었다.
 후미에서 그들을 보조하던 스캇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액체로
된 팔이 스캇의 다리를 잡아채서 그대로 끌어올렸다. 모두들 황급히 자신
들의 무기를 뽑으며 후방을 쳐다보았다. 두 번째 공격은 매튜를 향했다.
매튜는 준비 자세를 취하며 거칠게 망치를 휘둘렀다. 다가오던 액체형태
의 손이 순식간에 부셔지며 튕겨져 나갔다. 왼손으로 잡아채졌던 스캇은
그대로 공중에서 낙하하며 땅에 곤두박질쳤다. 쿵! 충격이 상당했을 터이
지만 제때 늑대로 변신한 스캇은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마 단장
이 처음부터 기습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힘들었을
것이다. 스캇과 세이지조차도 비 오는 날, 물의 냄새와 소리까지 신경 쓰
지는 못했을 테니까.

 

 “클라보!”

 

 넘버 6인 액체인간 클라보가 자신의 몸 상태를 완전히 액체로 바꾼 채
그들 앞에 나타났다.

 


==================================================================
 클라보의 재발견. 버리기엔 아까운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2주 만에 새 챕터로 돌아왔습니다. 재미있지 않은 글 재미있게 즐겨달라
는 모순된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 최면을 걸어드리겠습니다. 재미있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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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7.29 18:11
    다른 건 몰라도 장면장면을 디테일하게 연출해 그리시는 건 확실히 부럽네요. 마지막 클라보 등장신을 보고 그렇게 느꼈지만, 다시 훑어보면 다른 장면들도 마찬가지더군요 ㅎ

    이래저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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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7.30 02:39
    역시 저의 최면에 걸리셨군요, 하하!! 윤주 님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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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욀슨 2012.08.02 04:49
    간단한 능력 치고 약한 녀석은 없죠.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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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arsas 2012.08.02 07:31
    언데드라는 작품은 소년만화처럼 능력자들끼리의 능력충돌이 주로 다루어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분명 재미는 있겠지만.. 음, 설정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의 능력자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복잡한 능력을 가진 인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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