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8 10:30

[단편] 죄의 이유

조회 수 375 추천 수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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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화요일,

 


 “응? 미안, 잘 못 들었어. 다시 말해줄래?”

 

 혜연은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아침부터 더없이 우울한 날이었다. 친한 오
빠 강현이 그 사건이 겪은 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았다. 어제 강현과 함
께 술을 많이 마신지라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속이 안 좋
은 진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숙취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
고 있는데 골을 울리게 하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귀찮은
전화는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왔다. 방 안이 뱅뱅 도는 것 같았고 금
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그러니까 어서 와. 끊어.”

 

 수화기 너머로 강현의 목소리가 들렸고 전화를 끊는 소리가 먼 곳에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직도 현실에 대한 구분이 가지 않았다.

 

 “설마 그럴 리가……, 아닐 거야.”

 

 차디차고 고통스러운 슬픔이 그림자를 드리울 때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
듯 그녀 역시 그 슬픔을 부정했다. 쓰린 속을 잊을 만큼 충격적이었기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한참을 멍하니 수화기를 잡고 있던 그녀는 전화를 끊으며 일어났다. 도
저히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그
대로 집 밖으로 나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는 곳은
보통 사람들은 그다지 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다.

 

 

 


 한참을 달린 그녀는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달린 이유는 억지로
라도 자신을 힘들게 하여 잡념들을 잊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머릿속 한 단어는 더욱 또렷해져만 갔다.
 죽음.
 한참동안 숨을 고른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직접 보지도 못했는
데 벌써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 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혜연은 그 순간 자신이
전혀 다른 공간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녀
앞에 강현이 초췌한 몰골로 서 있었다. 어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빠…….”

 

 “혜연이구나.”

 

 평소 같았으면 너무나 반가운 얼굴이었을 것이다. 이틀 전 그 일이 있
었기에 더욱더 그에게 잘해주려 마음먹었었다.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여
전히 탁하게 갈라졌다. 그의 건강 걱정부터 했을 그녀지만 지금 그녀는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이야? 정말이야?”

 

 강현은 씁쓸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혜연은 희망을 바라고 있었
다. 작은 가능성을 원하고 있었다. 강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속이 착
잡했다. 자신은 분명 전화로 모든 사실을 얘기해주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자신에게 희망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은 고통이 다가오면 부정부터 하는
것일까. 강현은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혜연은 그런 눈을 알고
있었다. 바로 이틀 전 강현의 눈이었다. 지독한 상실감. 소중한 것을 잃
은 사람의 눈. 너무나도 슬픈….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녀는 허물어지
고 말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강현은 그녀의 작은 희망을 제거해버
렸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는 그런 것을 견디기에는 너무나 벅차보였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계속해서 울었다.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
지 않았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거짓말이지?”

 

 “…….”

 

 강현은 쓰러진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뭐라 해줄 말이 없다, 혜연아.”

 

 강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잔인해질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더욱더 고통이 된다는 걸 이미 자신이 겪은 바였다. 고통은 멀리하려 하
면 할수록 더욱 아프게 자신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 고통을 받아들
이며 인내해야지만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강현은 탁한 목소리로 말했
다.

 

 “사실이야. 지수는 죽었어.”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는 손을 치우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
로 그를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강현은 그런 그녀의 표
정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의자의 앉혔다.

 

 “아까 전화로 얘기해준 대로야. 살해당했어. 어제 새벽 3시경에 발견
됐데.”

 

 강현은 속이 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경찰이다. 원래 같
았다면 오늘 그는 집에서 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반갑지 않
은 전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런 얼굴의 혜연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혜
연은 한참동안이나 오열했다. 강현은 답답했다. 참을 수 없이 답답했다.
 지수는 혜연의 남자친구였다. 이제 사귄지 막 일 년을 넘어가는 사이였
다. 강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지수를 좋아했는지……. 사람들
은 그 둘이 부럽다고 했었다. 서로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좋아하는 그런 연인이었기에.
 그런데 그가 살해당했다.
 칼로 난도질당했다고 한다. 혜연도 전화로 이미 그 사실을 들었다. 하지
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이곳에 달려온 것이다. 살아있을 거라고, 거짓
말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잔혹한 법이다. 이미 있었던 일이
눈을 뜨면 거짓말처럼 예전으로 돌아가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혜연은
그렇게 한참동안 오열하다 탈진해버렸다. 강현은 그녀를 적당한 곳에 눕
혔다. 강현은 쓰러진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취하는 것 같았다. 그 때 한 목소
리가 다시 그를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

 

 “강현.”

 

 강현은 뒤돌아보았다.

 

 “……예, 반장님.”

 

 “아무래도 저 아가씨한테 묻기는 그른 것 같다. 너한테 얘기하마. 에
휴, 운도 지랄 같은 자식. 그 일이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일은 더 말하지 말아주십시오.”

 

 “아, ……미안하다.”

 

 한 반장은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강현은 차갑게 바라
보았다.

 

 “어째 건 원래 휴가일 텐데, 미안하다. 아무래도 네가 좀 도와줘야겠구
나.”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저랑 관계있는 일이고.”

 

 “근데 너 왼손은 왜 그러냐? 깁스냐?”

 

 “아뇨. 좀 다쳐서……. 그냥 붕대로 감아 논 겁니다.”

 

 “저런 쯔쯧. 며칠 전만 해도 멀쩡하더니. 우울한 일 있다고 해서 그렇
게 몸 함부로 쓰지 마라.”

 

 한 반장은 컴퓨터 앞에 앉았고 강현 역시 그 옆에 따라 앉았다.

 

 “……피해자랑 저 아가씨랑은 연인관계였던 거냐?”

 

 “예.”

 

 “흠. 불행한 일은 왜 자꾸 한꺼번에 오는 건지. 이런 젠장맞을 세상 같
으니라고…….”

 

 “어떻게 죽었습니까?”

 

 한 반장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강현은 이미 고통을 받아들일 준
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한 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대답했다.

 

 “흠, 흠! 알다시피 칼로 찔려 죽었어. 수도 없이 찍혔더군. 자, 수사
보고서다.”

 

 수사 보고서를 받아든 강현은 그 것들을 읽어 내려갔다.

 

 “……절단한 상처도 있는 겁니까.”

 

 “그래, 어떤 지독한 녀석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 도배를 해났더
구만. 정말 끔찍하게 죽었어.”

 

 “…….”

 

 “특히 배를 갈라 안에 까지 처참하게 찢어 놓았어. 원한으로 저지른
살인이야, 분명.”

 

 강현은 보고서에서 눈을 들어 한 반장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직접 봐봐. 이해하게 될 거야.”

 

 한 반장은 수사 보고서에 한 부분을 손가락을 짚었다.

 

 “상태가 그렇게 처참한데도 의외로 증거가 별로 없어. 지문조차 남기
지 않았고. 그런데다 특별한 건 그 밑에 부분이야. 잘 봐, 이 사진.”

 

 강현은 눈을 찌푸렸다.

 

 “성기를 잘라버렸어. 그리곤 그걸 염산으로 녹여버렸더군. 아, 참. 특
이한 거 하나 더 있어. 파헤쳐진 복부 속에서 반지 하나를 발견했어. 어
디서 많이 본 반지 아니냐? 난 참 낯이 익는 것 같은데.”

 

 “글쎄요……, 전 잘 모르겠군요.”

 

 “다른 증거품들은 지금 검사 중이야. 조만간 결과가 나올 테지. 일단
유일한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반지랑 단추더군.”

 

 “단추?”

 

 “살인 현장 근처에 단추가 떨어져 있었어."

 

 강현은 눈을 찌푸렸다. 사체가 된 자신의 친구는 무척이나 끔찍하게 죽
어있었다. 사진 속엔 그가 알고 있던, 아니 전혀 다른 지수의 모습이 보
였다. 지수는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미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걸레조각과도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강현은 주머니에서 담배
를 꺼내들어 물었다. 씁쓸했다. 쓰러져 있는 혜연을 보자 더욱 답답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뀌는 듯했다. 문득 어제 혜연과 술을 마신 일이 생각
났다.

 

 

 


 6월 12일 월요일,


 새벽 1시였다.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강현은 조금도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혜연은 강현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그녀는 걱정스런 목소
리로 그를 위로했다.

 

 “오빠. 그렇게 너무 많이 마시면……, 이미 취했어.”

 

 강현은 묵묵히 계속해서 독한 술을 입속에 퍼부었다. 몰골이 초췌했다.
축 늘어진 어깨는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 했고, 그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다. 강현은 모든 게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졌다. 빈속에 아무리 술
을 털어 넣어도 상실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개자식!”

 

 “재현이…… 아니, 범인은 잡혔어?”

 

 “……행적을 감춰버렸어. 빌어먹을. 실종이래,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몰
라.”

 

 혜연은 그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말려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
었다. 그녀 역시 취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현의 상실감을 읽을 수 있었
던 탓이다. 강현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여동생, 연희. 그녀가 하루
전에 자살해버렸다. 그 소식은 혜연조차 강한 충격을 받게 했다. 자신에
게는 같은 학교 후배였던 그 착한 아이가 그렇게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
겠는가. 금방이라도 입에 작은 미소를 걸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한 때는
무척 친했었는데 1년 전 쯤부터 소원해졌다. 혜연이 그녀에게 못 해줬다
기보다는 연희가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래서 헤연은 한동안 연희가 어
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사건이 터
져버렸다. 혜연의 같은 동아리 친구 재현이 그녀를 강간했고, 연희는 그
충격으로 자살해버렸다. 재현은 그 후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다. 혜연은
자신의 주변 사람인 재현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
았지만 그를 변호해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자신도 별 친하지 않은
친구였고, 대학 내에서도 소문이 좋지 않은 친구였다. 정신적 장애라고
할 만큼 이기적이었고 괴상한 소유욕, 독특한 집착 따위를 가지고 있었
기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연희를 좋아했었다고 한다. 자
신이 생각해도 연희 같은 여성이 그런 남자를 좋아할 리 없단 생각이 들
었다. 분명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저지른 범죄란 생각이 들었다. 혜
연 역시 심한 갈증을 느꼈기에 한 잔 주욱 들이켰다. 강현은 흐느끼듯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그의 지독한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희만큼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나는 평범하게 살아도…… 그
애 만큼은 성공시켜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강현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졌다. 그는 흐느끼고 있었다. 혜연은 당장
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를 붙잡았다. 강현의 부모는 강현이 경찰서에
들어갔을 때 두 분 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렇기에 그가 여동생을
생각하는 감정은 남달랐다. 혜연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가슴
아팠다. 이제는 깅현 혼자였다. 더 이상 가정이라 부를만한 것이 그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강현은 계속해서 술잔을 마시며 세상을 부정하고 싶었
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범인이 잡힌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어. 이미 사라져버린 여동생이 돌
아오진 않아.”

 

 자신이 저 상황에 있지 않아서일까, 그녀는 조금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범인을 잡는다고 해서 죽어버린 사람이 되돌아오지는 않지만 범인
을 잡기 위해 무슨 수든 다 쓰는 모습이 좀 더 인간답지 않을까? 하지만
곧 그녀는 이해했다. 그는 경찰이라는 자신의 직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
다. 범인을 잡는 것은 마땅한 그의 의무다. 하지만 그 의무를 다한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사라져버린 사람이 돌아올 수는 없다.

 

 “……오빠. 너무 취했어.”

 

 “제기랄! 취해봤으면 좋겠어! 나도 좀 취하고 싶다고! 빌어먹을!”

 

 그의 고함소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의미 없는 몸부림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도 혜연에게 화를 낼 수 없었기에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혜연의 눈에 그새 눈물이 고
였다. 너무 딱했다. 전부터 친했던 오빠였다. 그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도 같이 가슴 아파했던 그녀였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그의 곁에 없다
는 사실이 그녀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강현은 고개를 파묻
고 말을 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지수랑…… 잘돼가?”

 

 문득 그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갑자기 무슨……. 모르겠어. 갑자기 전화도 안 받아. 오빠랑 같이 술
마시려고 불렀는데. 휴, 어디서 뭐하는지…….”

 

 강현은 그저 피식 웃었다.

 

 “그 자식, 여전히 너한테 잘해주지?”

 

 “……당연하지. 오빠.”

 

 강현은 다시 한 번 웃더니 계속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너무
마셔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듯 했다. 문득 강현이 또 다시 엉뚱한 말
을 꺼냈다.

 

 “넌 내 슬픔 이해 못하겠지.”

 

 “응?”

 

 “소중한 사람을 잃는 다는 거, 모르지?”

 

 “오빠…….”

 

 강현은 미친 듯이 킥킥 거렸다. 아니, 차라리 그 것은 흐느낌이었다. 그
의 어깨가 떨렸다.

 

 “세상은 진짜 지랄 같다, 씨발. 왜 하필 그 애가. 왜 하필 연희가…….”

 

 강현은 결국 병째 소주병을 들어 마셨다.

 

 “어머, 오빠! 세상에! 뭐하는 짓이야!”

 

 그녀가 그를 말렸다. 더 이상 놔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제 풀에 지쳐 쓰러져버렸다. 혜연이 자신을 부르는 소
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6얼 14일 수요일,

 

 방 안이 너무 밝았다. 혜연의 얼굴 위로 햇살이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
다.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위였다.

 

 “으음~.”

 

 “깼어?”

 

 혜연이 얼굴을 들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강현이었다. 순간 그
녀는 자신의 몽롱한 감각이 현실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강현
의 집이었다. 약간 낯설게 느껴져서인지 밝은 아침마저 생소한 느낌이었
다. 강현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자신이
여기 누워있는 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기, 오빠.”

 

 “경찰서에서 업고 왔어.”

 

 혜연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제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니
었단 말인가?

 

 “나 집 어디 사는지 알잖아?”

 

 “미안.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혜연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지수의 부모님도 어제 오셨었어. 오열하시더군.”

 

 “…….”

 

 “모든 설명은 해드렸어. 조만간 장례식이 있을 거야. 연희 장례식도 해
야 되고.”

 

 강현의 말투는 무척이나 딱딱했다. 그녀의 기분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
은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지독한 슬
픔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최대한 딱딱하게 표현함으로서
자신의 괴로움을 들키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강현은 일어났다.

 

 “뭐 먹을래?”

 

 “……생각 없어.”

 

 그녀 역시 쌀쌀맞게 대답했다. 입맛이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식욕이 없
었다. 슬픔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 현실을 실감할 수 없었
다. 무언가 먼 과거의 일인 듯, 아니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인 듯 그렇
게 느껴졌다. 어제는 그토록 쉽게 흘러내리는 눈물도 오늘은 흐르지 않
았다. 마치 어제의 일이 거짓인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하면 그
가 웃으며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잠깐, 전화? 그녀의 머리로 퍼뜩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오빠! 어느 정도는 조사결과 나온 거지? 지수 오빠가 언제 죽은 거
야?”

 

 강현은 조금 놀란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저토록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
을 하리라곤 생각 못했던 것이다.

 

 “……밤 10시 20~30분쯤. 우리가 만나기 한 시간 전쯤에.”

 

 현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강현과 같이 술을 마시려 전화 했을 때
지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었다. 이미 죽은 후였던 것이다. 그토록 덤덤하
게 질문을 던진 그녀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상실감이자 현실의
자각이었다. 이젠 거짓이 아니었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강현이 다가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의 품에서 그녀는 그렇게 한참동안 울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6월 16일 금요일,

 

 결국 두 사람의 장례식은 모두 치러졌다.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재현은 여전히 실종 상태였고, 지수의 대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
다.
 혜연은 방에서 혼자 누워 있었다. 여러 가지로 공부를 더 해야 될 것
같은데도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지쳐있었다. 자신의 남자친구
가 죽은 충격에서 벗어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강현은 그
일 후로 계속해서 경찰서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자신도 죽은 지수
에 대해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이렇게 마냥 기다리는 것이 너무
나 무력했다. 장례식에서 그녀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었었다. 더 이상은
울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어떻게든 강인해져 보려 했지만 지금도 그녀의
눈엔 눈물이 그득했다. 당장이라도 지수가 자신을 향해 전화를 해줬으
면……, 그 순간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혜연이 얼른 수화
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헉헉. 나야…….”

 

 “예? 누구세요?”

 

 상대방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나 재현이야.”

 

 “예!? 누구라고요?”

 

 “제기랄! 재현이라고! 박재현!”

 

 혜연은 하마터면 수화기를 놓쳐버릴 뻔 했다.

 

 

 


 “강현.”

 

 “예, 반장님.”

 

 “단추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냈다.”

 

 강현이 한 반장을 쳐다보았다. 강현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지문이 나왔어. 흠, 그런데…….”

 

 한 반장이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씀하시죠.”

 

 “음, 저기, 그게…… 그 지문이 재현의 지문이더라.”

 

 강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자신의 여동생을 죽이게 만든 인물이
이 사건과도 연결이 되어있다?

 

 “현장에서 범인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족흔이 발견 됐어. 크기는 275.
재현의 키가 177.5센티라고 하더군. 아마 그 정도면 발 사이즈도 그 정
도 할 거라고 생각되는군. 그리고 키가 그 정도라면 이 등 뒤에 찔린 상
처는 꽤나 유력해.”

 

 강현의 눈빛이 매서웠다. 한 반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재현의 발 크기를 알아보기도 해야 되고, 그 단추 건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될 것 같아서……, 뭐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재현의 집에
조사 나갈 생각이다.”

 

 “흐음, 제가 갈까요?”

 

 “아니, 됐어. 다른 사람 시키지 뭐. 자네는 좀 쉬게나.”

 

 강현이 충격을 받은 듯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재현, 박재현…
…. 그는 입으로 두어 번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엔 증오감이
가득했다.

 

 

 


 “박재현?!”

 

 “아, 미안. 소리쳐서 미안하다. 저, 저기…… 할 말이 있어. 정말 중요
한 얘기야.”

 

 혜연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
가 이제껏 들은 얘기를 종합한다면 지금 그녀는 강간범, 즉 범죄자랑 통
화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일까? 재현은 이제껏 어
떻게 도망 다니다 왜 자신에게로 전화를 한 것일까? 같은 동아리니까 전
화번호를 알아내는 거야 그다지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직접 이렇
게 전화가 걸려오자 그녀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등 뒤에 누가
서있는 것만 같아 얼른 뒤를 돌아보았지만 단순한 느낌이었다.
 혜연은 팔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억지로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넌 연희를 강간한 놈이잖아.”

 

 “씨팔, 그래 내가 그랬어! 내가 그랬다고! 하지만 그 년도 거부하지
않았어. 그건 강간이 아니라고!”

 

 혜연은 지저분한 욕지거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구역질나는 소리를 더
듣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 그녀는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 때 수화기 너
머로 다시금 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저기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니까 제발 들어줘.”

 

 재현의 목소리가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혜연은 순간 고민했다. 생각해보
니 어차피 강현에게 얘기해야 할 일이다. 그를 붙잡아야 하니까. 자신의
도움으로 그를 잡을 수 있다면 강현의 슬픔을 덜어줄 수 있을 거란 생각
이 들었다. 그녀는 일단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뭘 들어달라는 거야?”

 

 “제기랄, 지수 형이 죽다니…….”

 

 “뭐?”

 

 “그날 봤어, 12일 날. 지수 형이 날 봤다고. 그리고 난…….”

 

 12일이라면…… 지수가 살해당한 날이다. 강현이랑 같이 술을 마셨던…
…. 순간 그 생각 때문에 그의 뒷말을 잘 듣지 못했다.

 

 “지수 형을 죽인…….”

 

 뚝! 혜연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전화를 끊었다. 도저히 더 듣기엔 자
신의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날 지수가 재현을 봤다고? 뭐가 어떻
게 된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전화벨이 계속해서 울렸다. 그
녀는 수화기를 들어 올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어 비
스듬히 놔두었다. 수화기 너머로 재현이 계속해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더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문이 잠긴 걸 다시 확인한
후, 집 창문에 모든 커튼을 쳐버렸다.

 

 

 


 6월 17일 토요일,


 강현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자신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오빠, 나야.”

 

 “혜연이구나.”

 

 “같이 점심이나 먹자. 할 얘기가 있어.”

 

 “그래 그러자.”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달력과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곧 있으면 모든 결과가 나온다. 오늘인가…….’

 

 혜연은 예전에 강현이 대학 다닐 시절 자주 갔었던 식당으로 걸음을 옮
기고 있었다. 강현이 경찰이 된 후로는 가지 않았기에 그 느낌이 색달랐
다. 혜연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강현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식당
에 도착했을 때, 강현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혜연과는 달리 강현은 오랜
만에 오는 곳에 대한 특별한 감회는 없었다. 그런 것을 느끼기엔 이미
그의 심신은 무척이나 메말라 있었다. 묵묵히 자신이 즐겨먹던 메뉴를
시켰다.
 혜연이 뭔가 말을 하려다 강현의 팔을 보곤 얘기했다.

 

 “오빠, 그 깁스한 거 오래 가네?”

 

 “아, 별거 아냐. 금방 나을 거야.”

 

 “아…….”

 

 강현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굳이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
니?”

 

 “저, 그게…….”

 

 혜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강현은 그런 그녀를 재
촉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천천히 말해.”

 

 “그러니까 어제 밤에…… 재현이가 전화가 왔었어.”

 

 강현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혜연은 순간 주눅이 들고 말았다. 강현의
눈엔 살기가 가득했다. 분노, 그리고 걱정의 눈빛이었다. 이제껏 침착하
던 강현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새끼가 무슨 일로!? 무슨 일이야!”

 

 “오, 오빠…….”

 

 식당 안에 사람들이 강현을 쳐다보기 시작했지만 강현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자식이 무슨 짓 하지 않았지?”

 

 “오빠! 보는 대로 난 괜찮아. 그러니까 진정 해.”

 

 매섭게 뜬 강현의 눈이 다시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사나웠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혜연은 천천히 어
제 그녀가 겪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강현은 가만히 그 얘기를 듣더니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오빠한테 도움이 못 되서 미안해.”

 

 “아니, 괜찮아. 끊은 게 맞아. 그 놈이 무슨 짓이라도 했으면…….”

 

 순간 혜연은 강현이 반응이 생각 외로 너무 컸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
가 석연찮았다. 분명 놀라운 일이지만 왜 그렇게까지…….

 

 “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강현이 멀뚱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재현의 대한 반응이 뭔가 이상해. 뭔가 다른 거 있지?”

 

 강현이 가만히 있다가 담배를 꺼내들어 물었다. 초조해지면 나오는 그
의 버릇이었다. 혜연은 그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재현이랑
관련이 있다. 어제 재현이 지수를 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나한테 말해줄 건 없는 거야?”

 

 강현의 얼굴을 무척이나 초췌했다.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괴롭히듯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마냥 기다리기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을 붙이며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에게 있
어선 견디기 어려운 초조함이었지만 그를 보채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범인의 윤곽이 잡혀가.”

 

 “뭐? 정말이야?!”

 

 “……. 원래 일반인한테 할 말은 아니지만.”

 

 “오빠, 괜찮아. 얘기해줘. 나도 알고 싶어.”

 

 강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생각보다 강한 여자였다. 오랫동안
지수에 대해 슬퍼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침착했다. 하지만 그는
곳 그 것이 그녀의 가면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큰 슬픔을 저
토록 강한 척하며 자기위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수없이 자기 맘에 그렇게 되새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한 꺼풀만 걷어내면 나약한 면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
녀를 몰아붙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자신도 슬퍼했고, 그녀도 슬퍼
하고 있다.
 강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수를 죽인 범인. 여, 연희…….”

 

 “응?”

 

 강현은 앞에 있는 물 잔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빛이 초조하게 떨려왔다.
설마…….

 

 “연희를 죽인 녀석…….”

 

 그녀가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목 뒤로 소름이 쫘악 돋는 느낌이
었다. 그녀가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재, 재현?!”

 

 강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혜연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
을 받았다. 믿기지 않았다. 사건이 이런 식으로 연결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수가 그를 봤기에 죽여 버린 것일까? 강현 역시 혜연의 그 생
각이 맞을 거라고 얘기했다. 혜연은 재현이 자신에게 전화한 이유는 살
인범이 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현
은 혜연이 지수와 사귀는 걸 몰랐나?

 

 “하지만 지수가 단순히 보았다는 이유 때문에 죽인 건 아닐 꺼라 생각해.”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살해 방법이 너무 잔인하거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지수는 정말 잔인
하게 죽었어.”

 

 강현은 그녀의 눈을 보았다. 그녀는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눈을
하고 있었다. 강현은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후우~ 담배 연기를 뿜
어낸 후, 그가 여전히 탁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 현장 주변에서 증거물을 찾았어. 옷 단추 말이야. 그 옷 단추에 녀
석의 지문이 묻어 있었어.”

 

 그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증거물들을 종합해 본 결과 그 살인이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지수의 등 뒤엔 아주 깊
게 찍힌 상처가 있었다. 그 것이 가장 처음 생긴 상처였다. 재현은 지수
의 등 뒤를 찔렀고 지수는 고통에 쓰러졌다. 뒤돌아보는 지수를 재현은
강압적으로 쓰러뜨리고 다시금 칼을 들어 가슴부위를 여러 번 찔렀다.
그 상황에서 지수는 최후의 힘을 발휘해 그의 단추를 떨어뜨렸다. 하지
만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지수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했고, 재현은
그런 그를 무참히 난도질한 것이다. 강현은 그녀에게 차마 그의 복부까
지 갈라 속을 헤집어놓고 성기를 잘라 염산으로 녹인 얘기까지는 할 수
없었다.

 

 “등 뒤에 찔린 상처?”

 

 “응. 지수의 등 뒤에 난 상처의 위치는 보통 키 175~178센티 정도
체구의 남자가 칼을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상처야. 상처라는 건 위치
나 그 크기 정도에 따라서 그런 것들을 추측할 수 있어. 범인은 왼손잡
이야. 재현 역시 왼손잡이라고 네가 나한테 얘기해준 적 있지? 그리고
결정적인 건 역시 단추지. 그의 지문이 나왔으니까.”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왜, 왜 살해한 거지?”

 

 “그야 아무도 자세하게 모르지. 근데 아마…….”

 

 “아마?”

 

 강현은 다시 물을 마셨다. 심한 갈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의 인상이
심하게 찌푸려 져있었다.

 

 “너 그거 알아?”

 

 “응?”

 

 “그 새끼가 연희를 좋아했던 거?”

 

 “으, 으응.”

 

 “그런데 이건 모를 거야.”

 

 “……?”

 

 “연희는 지수를 좋아했어.”

 

 그녀의 눈이 커졌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강현은 앞에 나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상실감을 그렇게나마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혜연은 떨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현은 말
을 이어나갔다.

 

 “재현, 그 자식은 약간 정신적인 장애가 있었던 듯 해. 네가 말했었지
않아?”

 

 “으응. 모두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이기적이라고.”

 

 “아마 삐뚤어진 소유욕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자기 혼자 집착에 가까
운 사랑을 했겠지. 연희의 마음을 얻을 수 없으니까 연희를 강간했고, 연
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신 화풀이를 한 거지. 뭐 어디까지나 추측이
지만.”

 

 그녀는 젓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강현 오빠랑 나는 이렇게 애매하
게 얽힌 사이가 되어버렸구나. 심정이 복잡했다. 강현의 슬픔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자신 역시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더 이상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강현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
때 강현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강현은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강현이 전화를 끊었다.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오빠, 누구 전화야?”

 

 “반장님 전화야. 재현이…… 있는 곳을 알아냈데.”

 

 “뭐!?”

 

 “나도 출동해야겠지. 넌 빠져있어.”

 

 혜연이 눈을 부릅떴다.

 

 “그럴 수 없어! 나도 가겠어, 오빠!”

 

 강현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강현은 한
숨을 내쉬었다.

 

 “좋아. 대신 꼭 다른 경찰들 뒤에 있어. 너는 현장에 들어갈 수 없는
거야.”

 

 “응. 괜찮아, 그거면.”

 

 강현은 더 이상 다른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
다. 그리곤 계산 후,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로 혜연이 숨 가
쁘게 그를 쫓았다. 혜연은 강현의 이런 표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던 그는 어떤 건물 앞에 서더니 그 건물 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무척이나 낡은 건물이었다. 주변엔 아무런 사람도 보이지 않
았다. 다른 경찰들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혜연이 뒤따라 들어가자 강
현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대체 왜 그래?”

 

 강현이 손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 이제부턴 위험해. 내 손 잡아.”

 혜연은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그 건물의 지하실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
했다. 강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한 반장은 전화를 끊었다. 방금 모든 검사 결과가 곧 나온다고 강현에
게 본서로 돌아오라고 전화를 한 참이었다. 그는 살인 사건에 대한 자료
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흠, 범죄 현장에 남아있는 발자국의 발 크기가 275……. 이것 봐. 재
현의 집에 확인하러 갔다는 놈 돌아왔지? 신발 가지고 왔데?”

 

 “예, 가지고 왔습니다.”

 

 “가져와봐.”

 

 “예!”

 

 조사팀원 중 한 명이 신발을 가져왔다. 한 반장은 신발을 들어 올려 신
발 사이즈를 확인했다. 선명하게 270이라 적혀 있는 숫자가 보였다.

 

 “뭐?”

 

 그는 조사 보고서의 증거 사진들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했다. 이미 재현은 유력한 범인 후보였고, 이미 범인이라 단정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신발 사이즈는……. 만약 용의자가 용
의주도하게 자신의 발 사이즈보다 큰 신발을 신었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뒤에서 다른 경찰관 한 명이 나타났다.

 

 “저기, 반장님.”

 

 “응, 왜 그러나?”

 

 “근데 참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그 피해자의 배 속에서 나온 반지 있잖습니까.”

 

 “그게 왜?”

 

 “피해자가 끼고 있던 반지랑 똑같더라고요.”

 

 “뭐?”

 

 복부에 심겨놓은 반지…….

 

 “어엇!”

 

 “엇, 왜 그러십니까?”

 

 한 반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전에 어떤 기억이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숨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분명 그 반지를 본 기억이 있었다. 그
반지의 소유주가 드디어 생각났다.

 

 ‘이 반지 말입니까? 우정의 반지랍니다. 제 제일 친한 친구 녀석이 준
겁니다. 항상 같이 끼고 다니죠.’

 

 남자들끼리 무슨 반지 타령이냐고 놀렸던 것들이 생각났다.

 

 ‘친구가 누구냐고요? 말해도 모르실 거면서. 지수라고 해요, 지수. 제
소중한 친굽니다.’

 

 연이어 다른 기억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붙
잡는 경찰을 밀치며 한 반장은 빠르게 일어났다. 자신의 부하직원 기록
부를 찾아 떨리는 손으로 강현의 프로필을 찾아 확인했다. 발 사이즈
275……. 세상이 빨갛게 물드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부하
직원이었다.

 

 “저기, 반장님?”

 

 “…….”

 

 뒤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왔다.

 

 “이거 다른 조사결과 나왔는데요. 그 단추 말입니다. 단추 구멍 속에
미세한 핏자국이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근데 그 것이 피해자의 피도 아
니고 용의자인 재현의 피도 아니라고 하는데요.”

 

 한 반장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한 반장이 고개를 돌려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당장 애들 풀어! 강현이 범인이다! 빨리, 빨리! 당장 수색해!”

 

 

 


 끝도 없다 싶을 정도로 깊은 계단을 내려오자 지하실이 나타났다.

 

 “오, 오빠?”

 

 지하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음침하고 기분 나쁜 고기 썩은 듯한 냄새가
자욱한 곳이었다.

 

 “정말 이 곳에 재현이 있는 거 맞아?”

 

 강현이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그 얼굴이 마치 가면처럼 딱딱했다. 그녀
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단 한 번도 저토록 무서운 얼굴
을 본 적이 없었다. 왜 강현이 저런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강현의 목소리가 지금 음산한 이곳의 분위기보다 더욱 차가웠다.

 

 “고마워.”

 

 “오빠?”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줘서.”

 

 “무, 무슨?”

 

 강현이 미친 듯 킬킬 거렸다.

 

 “소중한 것을 잃은 기분, 이제는 알지?”

 

 “……!”

 

 강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슬퍼?”

 

 “오빠 대체 왜 그래?”

 

 “그딴 자식이 죽어서 슬프냐고!”

 

 혜연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뭐!?”

 

 강현이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넌 지수 놈이 무척 착한 놈인 줄 알고 있겠지?”

 

 “오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지수 오빠가 왜?”

 

 “연희가 재현이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천만에! 연희를 죽인 건 바
로 지수야.”

 

 혜연은 머릿속이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강현이 대체 왜? 방금 들은 말
이 자신의 귓속을 맴돌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무
참히 말을 이어나갔다.

 

 “지수 놈은 인간쓰레기야.”

 

 “오빠!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혜연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지수가 어떤 놈인지 말해줄까? 그 녀석은 내 여동생이 자신을 좋아한
다고 하자 내 여동생을 꼬드겨서 같이 하룻밤을 잔 놈이야.”

 

 “……!”

 

 “네가 나쁜 놈이라고 한 재현이랑 똑같은 놈이라고.”

 

 “오빠.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할 거라면 난 나갈 거야. 이, 이런 장난,
조금도 재미없어.”

 

 혜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하며 얼른 뒤돌아섰다. 얼른 이 곳을 도망
치고 싶었다. 현실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다시금 그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강현은 조금도 이 악몽에서 그녀를 깨워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모르겠어, 혜연아?”

 

 “시끄러, 더 듣기 싫어.”

 

 “이 상황을 보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거야? 난 네가 좀 더 똑똑할 거
라고 생각했는데.”

 

 혜연은 대꾸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다. 이 칙칙하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얼른 탈출하고 싶었다. 회색빛 방
에 칙칙한 조명이 껌뻑껌뻑 거렸다. 재수 없기 그지없는 공간이었다. 그
녀가 문 쪽에 거의 도착 했을 쯤, 그녀의 등 뒤에서 강현의 차가운 목소
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지수를 죽인 건 나란 소리다.”

 

 혜연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동공이 크게 열렸다. 그녀는 뒤돌아
보았다. 어느새 강현은 칼을 들고 있었다.

 

 “그 놈은 내 동생을 범했어. 그리고 무참히 버렸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너랑 계속해서 사귀더군. 결국 자포자기한 내 동생은 재현의 강제
적인 요구에도 반항하지 못했지.”

 

 “…….”

 

 그녀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강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녀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내 동생은 흔히 말한 걸레가 되었어. 병신, 그 딴 녀석을 왜 좋
아해서.”

 

 “오, 오빠. 그, 그래서 지수 오빠를……!”

 

 강현은 점차 다가왔고, 그녀는 앉은 채로 점점 물러났다. 차가운 벽이
등에 와 닿았고 그녀는 더 물러서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문득 무언가를
건드렸다. 뭔가 물컹한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고 헛바람을
들이켰다. 너무나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구석 벽 안쪽에 재현
의 시체가 있었다. 역시 잔인하게 난도질당해 있었고 상처 부위엔 구더
기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경악에 몸이 굳어버렸다. 이토록 잔인한 시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앞에 강현이 다가왔다. 강현은 그녀의 턱을 잡아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녀가 강현을 밀치려할 때, 어느새 칼이 그녀의 목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 재현은 내가 죽이려 쫓고 있을 때 너한테 전화를 한 거야. 너한
테 진실을 알려주려고.”

 

 혜연은 경악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네가 재현의 전화를 받을 때 아니, 네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을
상황에 난 그 녀석을 죽이고 있었어. 그 녀석은 지수가 죽는 걸 본 유일
한 목격자야. 하지만 자신도 이미 범죄자인 상황에서 녀석은 경찰서로
갈 수 없었지, 크큭. 너는 내가 경찰서에 계속 있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
실은 계속 녀석을 쫓아 다녔어. 그리고 죽여 버렸지. 그리고 지수의 살인
현장에 재현의 단추를 떨어뜨려 놓은 것도 나야.”

 

 순간 혜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강현한테 재현이 왼
손잡이라는 걸 얘기한 건 자신이었다.

 

 ‘오빠, 나랑 같은 동아리에 재현이라는 애가 오빠 동생한테 관심 있데.
어떤 놈이냐고? 그냥 좀 이상한 애야. 아, 맞다. 오빠랑 똑같아서 기억해
둔 게 있어. 오빠도 왼손잡이지? 그 애도 왼손잡이야.”

 

 강현이 왼팔의 붕대를 풀어 내렸다. 그녀의 눈이 그의 손가락 쪽으로
갔다. 반지가 없었다. 지수랑 같이 끼고 다니던 우정의 반지가 없었다.

 

 “웬만큼 신경 써서 저지른 살인이지만 어차피 완전범죄는 불가능하다
고 생각했어. 단추를 떨어뜨릴 때, 왼손에 내 피가 흐르고 있더라고. 뭐
지수의 공격 때문이었지만. 아마 그 피 때문에 덜미를 잡히겠지. 조만간
경찰들도 증거를 찾아낼 거야. 뭐, 상관없어. 어차피 더 살 생각도 없었
으니까.”

 

 “오, 오빠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

 

 “오빠는 살인자야!”

 

 강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토혈하듯 윽박질렀다. 혜연은 너무나도
무서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녀의 볼엔 눈물이 축축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바보야? 난 너의 복수도 대신해준 거라고!”

 

 강현이 애원하듯 얘기했다. 그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려왔다.

 

 “그 놈은 내 우정을 배신했어. 혜연아.”

 

 “동생이 죽은 것 때문에 사람을 헤치다니…….”

 

 “병신, 넌 정말 바보야. 난 마땅히 응징해야 할 놈을 내 손으로 처리한
것뿐이야.”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강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그녀가 알던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흡사 동물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이미 강현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인간의 그 것이 아니었다.

 

 “너랑 술 마실 때, 이미 지수를 죽인 후였어.”

 

 “어,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이 봐, 나쁜 놈은 지수라고, 내가 아니라.”

 

 혜연은 그를 어떻게든 강제적으로 밀쳐내려 마음먹었다. 그 때, 그녀의
몸이 굳고 말았다. 강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넌, 정말 그 놈을 좋아했나 보구나……. 내가 이토록 말하는 데도 그
녀석을 변호하는 것을 보면…….”

 

 강현의 입에서 짐승과도 같은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혜연아, 미안하다.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이젠 받아들여라. 이제 내
인생은 끝을 내야 해. 너를 죽임으로서 마지막을 장식할거야.”

 

 강현은 칼을 쥐었다.

 

 “용서해라.”

 

 강현의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혜연은 반항할 수 없었다. 그의 눈이 너
무나 슬퍼 보였다. 세상 모든 것을 삼킬 듯한 그 눈은 혜연을 멈춰있게
만들었다. 순간이 영원 같은 시간이었다.

 

 - 탕!

 

 거대한 총성이 지하실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강현은 오른팔로 왼
팔을 잡았다. 왼팔에서 피가 솟구쳤다. 강현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칼을 떨어뜨렸다. 그의 뒤에 한 반장이 서 있었다. 강현이 분노에 찬 표
정을 지었다.

 

 “방해하지 마!”

 

 강현은 총을 뽑아들었다. 한 반장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강현의
몸이 흔들렸다.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그는 비틀거렸다. 한 반장은 계
속해서 몇 방 더 쏘았다. 강현의 몸이 자지러지며 요동쳤다. 사방으로 피
가 뿜어져 나왔다. 혜연은 자신의 몸에 묻는 피에 경악했다. 그녀의 눈엔
지수가 죽는 장면이 겹쳐보였다. 비틀거리던 강현은 결국 쓰러졌다.

 

 “괜찮습니까?”

 

 한 반장이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살폈고, 한 반장 뒤로 경찰들이 나타
나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혜연은 천천히 걸어 나가며 강현을 보았
다. 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간절히 그녀를 쳐다
보고 있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곧 죽을 상태인 그가 사력을 다해 그녀
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녀 역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결국 상황은 종료되었고 혜연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상하게도 강현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 덕에 위치 추적을 할 수 있
었고 경찰이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경찰인 강현이
뒤통수를 침으로서 모두를 경악케 한 사건이었다. 한 반장의 총기 남용
은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불문에 처해졌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왜
혜연을 죽이려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심지어 혜연 조차도…….

 

 

 


 6월 14일 수요일,


 새벽에 강현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침대에 혜연을 눕혔다.
그녀는 경찰서에서 기절한 후로 지금껏 일어나지 못했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강현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운 별빛이 그녀의 얼굴
을 비추고 있었다. 강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내가 살인자라는 걸 알면, 넌 날 비난할 테지.”

 

 강현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방안 공기가 탁해졌고 혜연은 잠결에 얼굴
을 찌푸렸다. 강현은 피던 담배를 짓이기며 일어섰다.

 

 “내가 재현을 죽이려는 건 내 동생 연희 때문이지. 하지만 지수를 응
징한 건 결국 너 때문이었어. 지수랑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하
니.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고 지수한테 얘기했어. 지수는 저런 여자는 별
로라고 하더군. 그런데 일주일도 채 안 됐는데 너희 둘이 사귄다는 소리
가 들리더라. 난 솔직히 왜 그 녀석이 그렇게 인기 있는 지 지금도 이해
하지 못하겠어. 얼굴이 괜찮으면 그렇게 쉽게 여자들을 손에 넣을 수 있
는 거야?
 ……넌 정말 그 녀석을 사랑한 거니?”

 

 강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수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건 녀석이 길거리에서 다른 여자랑
놀고 있는 걸 발견하고 나서였어. 그 녀석 정말 능숙하게 여자들을 다루
고 있더라. 너를 놔두고 말이야. 내 동생이 그 자식 때문에 자살하고 난
후에도 녀석은 변함없었어. 나랑 같이 술 마시자고 얘기할 생각 같은 건
그 순간 사라져 버렸지.”

 

 강현의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서 불러내 죽여 버렸어. 너랑 술 마시기 전에…….”

 

 강현이 다시 한 번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세상에서 가장 용서 받지 못할 짓이 뭔지 알아? 그건 배신이야.”

 

 눈물로 얼룩진 그의 볼이 번들거렸다.

 

 “난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그딴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배
신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친구 녀석이 날 배신한 것보다도 더욱 말
이야.”

 

 그의 얼굴이 점차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난 너한테 미안해하지 않을 거야. 난 널 배신하지만 너도
마찬가지거든. 결코 너한테 용서 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그녀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혜연아, 사랑해.”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포개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용서 받지 못할 짓이 뭔지 알아?

 

 그건 배신이야….

 

 

------------------------------------------------------------------------------------------

 제가 18살 때쯤 한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아서 제 방식대로 써봤던 글
입니다. 지금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예전에 썼던 감성을 건
드리고 싶지는 않기에 엉성해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립니다.
 예전에 썼었던 부끄러운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한참 글에 관심을 가졌던
초창기 때의 글을 보며 내가 얼마나 성장했나 되돌아보기 위함도 있고,
불현듯 지난날의 감성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글을 쓰던 당시 스스로
외모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었고, 좋아하던 여성이 잘생긴 제 친구랑
사귀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어렸던 저는 바보같이 여자애가 외모 때문
에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착각과 함께 고작 그런 것 때문
에 제 친구를 선택하나 하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경멸했었죠. 차마 입으
로 꺼내기도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뭐 누구나 어릴 때는 미숙한 법이니
까요. 갑자기 좀 센티멘탈해졌습니다.
 하여간 제게는 의미가 남다른 글입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2.06.28 16:10
    예전 글이라시지만 문장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연출이나, 장면 선택이나....그런 면들이 그동안 많이 발전하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ㅎ

    잘 봤습니다. 저도 글쓰기 시작한 건 7, 8년 전쯤이었던 거 같네요. 소소하게 뭔가 이전과 달라진 거 같긴 한데, 여전히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채워지지 않는 것같기만 하네요;
  • profile
    yarsas 2012.06.28 17:05
    문장의 완성이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단계지만, 아마도 이영도 님 글의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지금과 공통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나와서 비슷하게 느껴지시지 않나 싶네요.
    윤주 님 글은 제가 느끼기에는 분명 진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뭐라 평가할 입장은 못 되지만 예전 글이 세계관 후에 글이 오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세계관과 글이 같이 간다는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몰입력도 좋구요.
    꽤나 늦은 시간에 글을 올렸는데 빨리 댓글을 달아주셔서 깜짝;;
  • profile
    2012.06.28 17:41

    정말 장문인데두 불구하고 순식간에 스크롤을 다 내렸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profile
    yarsas 2012.06.28 19:28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 긴 글이라 순식간에 스크롤 내렸다는 줄 알고... 아, 그렇구나... 했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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