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4 02:42

드래곤 나이트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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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or Name - Shadow. 02

2156.06.02 PM 10:41

 

 그 남자의 모습은 아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과연 그는 내 예상대로 세피아 빛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유쾌해 보이는 표정과, 여름에 입기에는 심히 더워 보이는 털 장식이 달린 탁한 녹색의 코트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 어,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문이 열리는 소리도 안 났는데?”

 

 내가 앉아있는 소파와 문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따지자면 가까운 편이었다. 이제야 눈치 채게 된 사실이었지만, 문은 고풍스럽게 생긴 장식과는 달리 여닫이 형식의 문이 아니라 우스꽝스럽게도 미닫이 형식의 자동문이었다. 그런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가 큰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이 방에서 문이 열렸다면 곧바로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아하- 놀랐구만? 이건 말이야, 그러니까…… 설명을 들었으려나 모르겠네. 초능력이란 거야.”

 

 말을 끝마친 남자는 웃고 있는 얼굴을 본래의 표정으로 가다듬은 뒤, 초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모습을 감추었다. 모습을 감추기까지의 시간은 짧았지만, 워낙 기묘한 광경이었기에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일단, 남자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같은 2차원의 얇은 형태가 되었다. 지금껏 초능력이라곤 본 적도 없었던 나였기에, 그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크게 놀랐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내 쪽으로 놀랐냐는 듯 약간 장난스런 시선을 보내더니, 이내 급속도로 축소하여 하나의 작은 직선이 되었다. 이미 방금 전의 모습을 잃은 직선은 점점 길이가 짧아지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되었다.

 

 너무나도 기묘한 현상이었던 나머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나는 잠시 동안 그 남자가 있던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나, 평면 홀로그램을 보고 있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림이나 홀로그램이었다면 저렇게 사라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렇게 내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광경’에 넋 놓고 벙 쪄있을 때, 그 남자가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을 역재생 이라도 한 듯이 원래 있던 자리에 같은 방법으로 방금 전 사라졌던 남자가 나타났다.

“어때, 놀랐지?”

 

 이 광경은 여러 번 보게 된다고 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초능력이라 하기에 기껏해야 텔레파시를 보내거나, 염력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수준을 생각했다. 불을 쏘아 보내거나 전격을 쏘아 보내는 것 역시도 예상 범위 내였다. 물론, 기계의 도움 없이 원래 있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텔레포트도 예상 범위 내였지만, 그 과정이 내 뇌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대…… 대단하네요. 초능력이라는 거.”

 

 그 광경을 표현할 법한 단어는, 그의 초능력을 처음 보고 접한 나로서는 ‘대단하다’든가 ‘굉장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너무 놀라기도 했던지라 저런 표현방식 밖에는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아하하. 뭐, 앞으로 초능력자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특이한 능력들을 많이 접할 수 있을 거야. 그나저나 아직 통성명을 안 했네. 네 이름은 서류로 미리 봤기에 알 수 있지만. ‘청 유하’라고 했던가? 내 이름은 ‘이사카 라이언헤드.’ 잘 부탁해.”

 

 그는 편하게 웃는 표정으로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몇 시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죽을 뻔 하기도 했고 기절도 했지만, 이 사람의 배려 덕분에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었다.

 

2156.06.02 PM 10:59

 

 시간은 슬슬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생인 유하는 다음 날도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평소라면 이미 책을 덮고 잘 준비를 하며 양치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평소라면 분명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 그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합쳐본다면 그의 평소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그 누구라도 용에게 쫓기는 것이 하루 일과에 포함되어 있을 리는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죽다 살아난 그는, 지금 어떤 건물의 고풍스러운 방에서 방금 전 이름을 밝힌 이사카라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세계기업이란 곳이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이 시대에 과연 누가 그런 망상을 할까.”

 

 이사카는 유쾌하게 웃으며 유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벙쪄 있는 유하와는 달리, 이사카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의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유하가 들은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세계기업의 탈을 쓰고 있는 오닉시스는 사실, 그가 줄기차게 봐 왔던 이종족과, 오늘 마주치게 된 초능력자들과 연관이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일반인들은 볼 수 조차 없는 오컬트 세계에서 그들은 ‘세계기업 오닉시스’가 아닌 ‘O or X’라는 집단으로 불리고 있었고, 오컬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들이 개입해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였다. 거기까지 들은 유하는 놀랐지만, 정작 벙 쪄 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거의 모든 국가에 지부를 두고 있는 오닉시스의 사원들은 모두 초능력자이거나 이종족 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에 잠시 동안 정신을 놓고 있던 유하의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 되자, 그에게는 몇 가지 의문이 남았다.

 

 지금까지 유하가 들은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일반인’들은 이종족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괴물의 모습이 아닌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 뿐 이었다면 이종족과 초능력자들의 정체가 금세 인간들의 사이에 알려졌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이종족들이나 초능력자들이 가진 능력 자체가 일반인들에겐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O or X’같은 조직이 관리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일반인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을 참지 못한 유하는 이러한 사항을 이사카에게 묻어 다시 확인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대로라면 이종족들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이야기잖아요? 따로 그렇게 관리 할 필요가 있나요?”

 

 유하의 질문에 잠시 놀란 그였지만, 이내 하하 웃어버리곤, 그건 마치 ‘당연히 나왔어야 할 질문이다’라는 식으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말이야.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 그래, 예를 들어 이 건물에 폭탄이 하나 설치되어 있다고 해 보자. 그리고, 이 건물 주위를 우연히 지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말이지. ……그렇다면, 이 폭탄이 터지면 건물에 있던 사람 이외에 피해를 입게 되는 건 누구일까?”

 

 그 이야기를 들은 유하는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당연히 ‘우연히 건물 주위를 지나가던 사람’이 어떠한 형태로든 폭발에 말려들 것이다. 폭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입을 확률은 적지만, 문제는 폭탄이 폭발하면서 날려버린 물건의 파편 같은 것에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지금껏 유하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초능력’과 이종족들이 사용하는 ‘이능력’으로는 일반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없지만, 반대로 간접적인 피해는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제시한 예시는 비유적인 표현이었지만, 반대로 상당히 적절한 예시이기도 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이종족과 초능력자들이 일반인에게 직접적으론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간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개입해서 관리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죠?”

 

“오오, 공부 잘하겠는데? 맞았어. 바로 그 이유지.”

 

 그는 감탄하며 유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이내 박수를 멈추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진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짓과 말투 때문인지, 유하의 귀에는 전혀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인간들이 이종족과 초능력자들의 존재에 대해 눈치 챌 수 없다면, 네 말대로 굳이 나서서 관리 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어. 어느 초능력자가 강한 염력으로 상업 지구의 건물들을 모조리 무너뜨렸다고 가정한다면…… 우리 O or X의 개입이 없더라도 다음 날 뉴스에는 ‘정체불명의 건물 붕괴’같은 제목이 아닌 ‘시내 한 복판의 지진’ 같은 제목으로 뉴스가 나오게 되지.”

 

 그러고 보니, 유하는 언젠가 그런 식의 이야기를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인간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이런 점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이라면 모두 같지만, 유독 인간만이 다른 것은 이런 ‘알 수 없는 힘’에 호기심을 가지고, 고민하고 생각하고 연구한 끝에, 그 힘을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 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과거의 인간들은 천재지변조차도 무서워했지만, 연구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천재지변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도 얼마 못 가. 지금 시대는 과학의 힘을 빌어 천재지변과 기상도 미리 예측할 수 있으니까. ‘예측하지 못한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난다면, 인간들은 결국 이종족과 초능력자들의 존재를 눈치 챌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

 

 현대, 그러니까 2100년도의 지구에서는 자연조차 이제 인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천재지변을 두려워하며 신을 숭상하던 때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며, 천재지변으로 인해 수천, 수만 명씩 죽어 나가던 시절에서도 100년 이상이 흘렀다. 지금 시대는 천재지변을 관측하고 조종하는 시대다. 그런 일은 어느 국가에서나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종족 혹은 초능력자의 능력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은 인간들이 관측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힘으로 인해 인간들의 관측과 통제에서 벗어난 천재지변이나 사건이 여럿 일어난다면, 인간들은 다시 자연을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이종족들과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은폐하지 못하고 인간들 앞에 드러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급이 다른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후로 있을 일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필요한 거야.”

 

 긴 말을 끝낸 그는 조금 전에 따라놓은 음료를 마시며, 새로 컵을 꺼내 유하에게도 권했다. 유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자신이 음료를 마시는지 음료가 자신을 마시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마음이 두근거려 오기 시작했다.

 

‘내가 보아왔던 세계가 정말로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유하는 오늘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부적절한 어휘나 오타, 부드럽지 못한 묘사, 띄어쓰기 등등의 지적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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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3.16 04:41

    흐음... 이사카가 혹시 혼혈 쪽인가요?

    아니면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22세기의 모습이라... 궁금해지는 군요.(하지만 그 때엔 전 세상에 없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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