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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그녀는 한 몸에 두르고 있다.

 등에 펼친 다섯 쌍 날개는 그 하나하나가 열 단 풍성한 깃털로 뒤덮여 있다. 모두 펼치면 떠오르는 해조차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그녀 날개는 크다. 천사들과는 달리 그녀 두 귀는 요정들처럼 끝이 쫑긋 세워져 있다. 귓볼로부터 치솟듯 곧게 뻗어나간 유려한 선에 누구나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아름다운 꽃에 설령 가시가 있대도 그걸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때때로 붉은 피로 목욕을 하고, 드래건의 숨결 같은 파괴력 있는 마법을 퍼부어대어도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다며 칭송을 받는다. 그녀는 '천사'고, 거기다 '아름다웠다.' 이름 없이도 그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칭송받았다. 실은 진짜 천사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그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방, 그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말이다.






 온통 유리와 거울로 둘러싸인 집. 동이 트면 금빛 햇살이 그 창백한 표면에 어려 집 전체가 환상적으로 빛이 나는 듯하다. 반면 거울의 집 가장 깊숙한 곳, 그녀가 머무는 여기 침실 안까진 한 점 햇살도 스며들지 않는다. 잠을 자는 걸 방해받는 걸 그녀는 죽기만큼 싫어한다. 죄 없는 천사들의, 티 한 점 없는 순백 깃털에 둘러싸여 달콤한 꿈에 안긴 그 순간만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아서는 안 된다. 본래 천사들의 고향이었을 이 집은 어느 샌가부터 그녀 혼자만의 것이 되어 있다. 타인에게 방해받는 걸 극도로 꺼린 그녀가 거울의 집에 머물던 천사들을 모두 살해한 뒤론 지금까지 줄곧.

 깃털과 레이스, 분홍빛 천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그 방 한편에 나도 있다. 그녀가 가장 혐오하면서도 어쩌면, 그녀가 제멋대로 다룰 수 없는 유일한 상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사랑하는 동시에 혐오하고, 만족하는 동시에 자학하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 당신이 수컷이라면 나를 선망할지도 모르겠다. 비록 나 자신은 식스 팩은커녕 잠깐의 부주의에 산산 조각나는 유리몸이지만, 어쨌든 흠 없이 멀쩡한 동안엔 실컷 뭇 여성의 몸매 감상은 톡톡히 할 테니까. 그런다고 누구 하나 나를 치한 취급하거나 함부로 다루기는커녕 관심 어린 손길로 행여나 상할까 조심스럽게 대해 주기도 하고.

 엄한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이야기하는데, 내가 무슨 흑심이나 추잡한 욕망 때문에 이런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거울의 방'에 있는 건 내가 원했던 바는 아니었다. 내 발로 들어온 것도 아니다. 어차피 발이 없으니 하나마나한 얘긴가?

 그저 처음부터 지금껏 여기 이렇게 서 있었을 뿐이다. 저 여자가 태어난 때로부터 줄곧, 마치 여기 있는 게 자연스럽단 듯이. 하긴 이 '거울의 방'에 고작 '전신 거울'하나 있대도 뭐 대수겠는가?

 이제껏 떠들어댔는데도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당신, 더 이상 돌려 말하지도 않고 친절히 소개해 드리겠다. 방 한가운데 누운 그녀, 자칭 '천사'라고 말하는, 아리땁고도 잔혹한 그녀가 가진 유일무이한 전신 거울. 그게 바로 나다.






 내 얘긴 이 정도로 그치는 게 좋겠다. 당신도 남 따라하는 재주밖에 없는 전신 거울 사연 따위 관심 있지도 않을 테고. 어차피 당신이 관심 갖는 건 내가 아니라 저 여자 아닌가?

 물론 그녀가 일으킨 일련의 소동들에 대해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녀 탓에 세상이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게 되어버렸는지도 분명히 안다. 그 때문에 당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나라도 이 정도 얘기는 해 줄 수 있겠지 싶다.

 대단히 미안하게 됐다. 그러나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어째서냐고? 그녀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가? 정말 저 여자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가?

 그렇다면 별 수 없지. 설명을 해 주는 수밖에야.

 당신에게 진실 하나를 알려 주도록 하겠다.

 그녀가 모든 걸 엉망으로 휘젓고 다니는 건 모두 나 때문이다. 그녀가 나 보기를 지독히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 몸에 그녀가 비춰지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집의 어느 거울, 어느 유리벽에도 그녀 모습은 비추어지지 않지만.

 애초부터 그렇게 되먹은 세상이다. 이해가지 않더라도 일단은 머릿속에 담아 두곤 계시라.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보아도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아름다운 그녀는 항상 자기가 누구인지 고민했지만, 결코 그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설령 답을 얻을 수 없더라도 그 자신은, 반드시 누군가는 되어야 한다. 천사가 되던가, 신이나 마왕이 되던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혹은 엘프가, 이도저도 아니면 드래곤이라도.

 누군가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다. 손짓 하나, 가벼운 몸놀림 하나까지 완벽히 그 대상과 닮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아져서, 최종적으로 원본을 없애 버리면 그 자신이 원본이 될 수 있다. 흔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실제로 그녀는 그렇게 했다. 천사들을 살해해 10장 날개를 달고 깃털로 방을 치장하며 베게 삼았다. 신을 목 졸라 죽이고 천계에 올랐고, 마계로 내려가 마왕의 신부가 되려고도 했었다. 엘프들을 몰살한 뒤 그 귀를 뽑아 달기도 했다. 그녀가 이렇게나 치장에 집착했던 데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 자신은 여전히 내 표면에 비추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치장들, 천사의 날개나 엘프의 귀 같은 건 거울에 비추어졌으니까. 그녀는 점점 더 아름다워졌고, 스스로 보기에도 그랬다. 그녀는 보다 더 많은 치장을 바랐다. 인간의 피로 목욕을 하면서, 드래곤의 숨결을 모방하면서 거울엔 좀 더 많은 그녀의 일부가 비추어졌다. 거울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많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 그녀 본연의 모습을 제외하고 말이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가 되기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이 필요했다. 당신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당신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어째서 그런 걸 묻는가? 어떻게 해서 그녀가 남을 흉내 내게 되었냐고? 지금껏 설명하지 않았던가? 그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든 누군가가 되고 싶어서였다고.

 그렇지 않다? 그녀가, 누군가가 되고 싶어 했을지는 몰라도 어떻게 하면 그 누군가가 될 수 있을지 알지는 못했을 거라고? 어째서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대답하지 않는다면 나도 더는 당신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 없다. 거울이란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비춰주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 그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녀가 먼저 바랐기 때문에 내가 보여줬을 뿐.

 그녀가 날개를 바랐기 때문에 나는 천사들을 비추어줬다. 그녀 스스로 신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에 천계를 보여줬고, 신부되길 바랐기 때문에 마계를 비춰준 것뿐이다. 다른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엘프도, 드래곤도, 죄다 그녀가 욕망한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당신이 우연히 내다본 창 밖에 당신 맘에 드는 이성이 있었다고 하자. 용기를 내어 프러포즈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설령 그렇다 쳐도 당신은 창문에게 책임지라고 할 순 없는 게 아닌가.

 이래도 내게 계속 죄를 물을 셈인가? 그녀가 욕망하도록 부추겼다고?

 다시 한 번 확실히 해 두겠다.

 난 그녀가 보고 싶어 한 걸 보여줬을 뿐이다. 선택한 건 그녀 자신이었고.






 슬슬 이야기하는 것도 지루해진다.

 당신은 뭐가 그리도 궁금한 걸까? 그녀에 대해서라면 이미 충분히 다 털어놓은 것 같은데.

 어째서 그녀가 나를 놓아두는지 모르겠다고?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그녀가 행복해지기라도 했냐고? 난 고작 전신 거울일 뿐이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은 없다.

 그래서? 그러니까 당신 말인즉, 왜 그녀가 날 깨뜨려 버리지 않고 내버려뒀나, 이건가? 내가 보여준 것들을 모두 가졌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행복하지 않은데도?

 좋아. 정말이지 당신은 끝내 모두 다 알고 싶다 이거지? 정 그렇다면 이야기해 주도록 하겠다. 내가 무엇인지, 또 그녀가 무언지.






 이 집엔 정말 수많은 거울이 있다.

 나 같은 전신 거울만 수십 종,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거울들이 이 집 안엔 수도 없이 많다. 비추어지는 상대를 모방하는 것 이외엔 우리들 사이엔 별다른 공통점도 찾기 힘들다.

 모방 이외에 우리 거울들이 각기 가진 개성은 천차만별이라서, 개중엔 자꾸 새로운 것을 원하는 거울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자기가 거울이란 것도 모르는 녀석도 있을 법하다.

 딱히 특정한 누군가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사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좋다. 의뭉 떠는 건 이 정도로 해두자. 

 그녀가 내게 심하게 화를 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이전까진 한 번도 내게 섭섭하게 한 적 없던 그녀가, 꼭 지금의 당신처럼 내 책임을 따지고 들었다. 내 덕분에 실컷 행복해했으면서, 이제 와서 나 때문에 불행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화를 낸 걸로만 그쳤다면 나도 그런 얘기까진 꺼내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진심으로 이 집을 전부 허물어 버리려고 했다. 유리벽이며 거울 전부를 깨뜨려 헐어 버리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갑작스런 그녀 배신을 더는 용납해줄 수 없었다. 내가, 이 집이 어떻게 자신을 보살펴 왔는지 그녀는 잊고 있었다. 때문에 이렇게 말해 주었다.

 '잊었니? 너는 우리와 같아.

 정말 우리를, 이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어? 그러면 네 머리통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편이 훨씬 빠를걸?'

 정말 그녀도 우리랑 같으냐고? 그녀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그녀 본연의 모습이 우리들 거울에 비춰지지 않는 걸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당신이라면 알 것이다.






 내 몸을 돌려라. 아무 거울에나 비춰 보아라.

 거울엔 거울이 비추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테두리나 윤곽 같은 장식들만 비추어질 뿐이다.

 마치 그녀가 단, 새하얀 열 장 날개들처럼 말이다.

 이것이 이름 없는 그녀가 영영 누군가를 원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유다.


=========================================

 이야기를 꾸며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이 캐릭터 정체가 뭔지만 계속 떠오르네요;;
 이래서 팬픽을 못 써요...원작 캐릭터를 빌려와 스토리만 꾸며내야 하니까;;;

 아무튼 이번 미션글 제출합니다; 마뜩찮긴 하지만 더는 손 대기 힘들겠네요^^;
?
  • ?
    다시 2011.09.02 19:45

    오오 직접적인 ㄷㄷ

    만약 원작이 장편이라면 그것의 외전 같은 느낌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9.08 17:07

     감사합니다 ㅎ

     직접적이란 건 무슨 뜻일까요;;

  • ?
    乾天HaNeuL 2011.09.05 03:16

    음... 아직 잘 안 읽어봤는데요.... 나중에 더 읽어보겠습니다.(현재 댓글 시스템 확인 차 댓글 달고 있는데, 여긴 달리네요. 뭔가 희망이 보이는군.)

  • profile
    시우처럼 2011.09.05 16:30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요?

    태어남 이전의 나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음 이후의 나는 무엇일까요?

    존재의 근원과 최후가 결국 '아무것도 아님' 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어째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헛된 삶의 무게를 더하려 발버둥 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9.08 17:10

     글쎄요...다만 저게 유일한 삶의 방식은 아니지 않을까요 ㅎ

     본래 아무것도 아니라고 삶이 허무해지는 게 아니라, 본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존재에 삶을 채울 수 있는 거란 생각도 들어요....뭐 이건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죠 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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