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어떤 철학자가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생각만으로 살아있는 것이라면, 수면을 위해 생각을 멈춘 인간은 죽은 것일까? 꿈 속에서 생각하는 인간은 살아있는 것일까? 살아있다면, 꿈 속의 인간이 살아있는 것인지, 꿈을 꾸는 인간이 살아있는 것인지.. 뜬구름 없는 소리긴 한데, 나는 이런 고민이라도 해야한다. 안그러면 원통에 갇힌 꿈을 견디는 게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아 진짜 독방도 여기보단 낫겠다. 혼자있는건 똑같지만 최소한 몸은 움직일 수 있잖아. 진장맞을거.
꿈을 꾸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불안감이 가시지는 않는다. 되려 더 강해지는 느낌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각을 멈추고 있으면 꿈은 더 빨리 끝난다. 잠에 빠지는 거겠지. 하지만 꿈 속에서 잠에 들었다면, 나의 현실은 꿈 속의 꿈일 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 역시 꿈 속의 꿈이고..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이게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또 존재하는 나라는 것이 끝을 알 수 없는 꿈의 감옥 속에 있는 것이라면, 실제의 나는 어떤 존재일까?
호접지몽이었던가, 사람이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사람이 되는 꿈을 꾼 것인지 알 수없었다는 아리송한 이야기가 있다. 나도 꿈 속에선 이게 꿈이구나 라고 자각하기 힘들다. 눈을 꿰뚫린 후 안대를 하고 다니는 여자가 된 적도 있고, 송전탑 위에서 꼭대기부터 부숴내려가는 2차원 캐릭터가 된 적도 있고, 항복하기 위해 적의 성에 파견되었다가 화살비를 맞은 중국의 장군이 된 적도 있다. 심지어 화산재인지 낙진인지 모를 것이 덮쳐오는 위기의 도시에서 초강력 장풍을 날려 사람들을 지키는 아메리칸 무림고수였던 적도 있지.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데. 다음엔 우주를 누비는 죽음의 왕눈깔이라도 될라나. ..여튼, 그런 환상들에 휘말리면서도 내가 현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세계가 있는 것은, 반드시 그곳으로 돌아가기에 그런 것이다. 그 어떤 꿈을 꾸던지, 꿈을 깨면 나는 지구의 대한민국의 어느 병원에 있는 한준호니까. 그것마저도 없다면 인생은 호접지몽이 아니라 방랑과 혼돈 그 자체다. 꿈과 현실에서 현실이란 것은 정신의 고향이 아닐까.
하지만 현실이 견딜수 없이 괴로운 나머지 방랑과 혼돈에서 안식을 찾는 사람도 있다.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꿈이었다면 '아, 참 괴상한 꿈이었어' 하고 꿈 밖의 현실을 살겠고, 현실이라면 정말 끝은 끝으로만 남겠지. 꿈의 끝도, 현실의 끝인 죽음도, 언제 대면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만 알고 있다. 하지만 진짜 힘든 건 그걸 알아내는게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모든 인간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심지어 죽음을 권리나 약속된 평화, 구원으로 상징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상징행위의 이면에는 영혼이라는 가설이 반드시 들어가있다. 몸은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새 삶을 살 것이다.. 불교의 윤회설도 그렇고, 생명은 단 한 번의 생을 살고 완벽하게 흩어져버린다는 생각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못한 것 같다. 영혼이 진짜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의 궁리도 바보같은 잡념이 되겠지만.. 증명할 수 없으니 인정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 죄가 없는 사람이 누명을 뒤집어썼을때,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했다고 '나는 유죄'라고 하진 않는다. 설사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애초에 그건 인정이 아니라 날조이고. 성질이 다른 문제인건 알지만, 결국 내 결론은 이거다. 나는 영혼의 존재를 의심한다. 또한 내 존재의 일회성을 고려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미 죽었음에도 계속 살아있는 나는 무엇인가. 죽음이란 존재함의 끝이 아닌가? 시체와 나란히 서있던 나는 육체를 빠져나온 영혼인가, 죽은 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인가. 경험이란 복제가 가능한 것인가. 경험으로 형성된 인격에 고유한 속성따위는 없는 것인가.
죽음 이후에도 정말 무언가가 남아서 내 존재를 이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비록 환상이고 착각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