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7 06:39

(비평) 당신의 유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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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무슨 놈의 고기값이 그렇게 비싸다냐."


 정육점 진열대를 둘러보던 어머니의 말씀이다. 삼겹살 사러 와서 판매대 앞을 서성이길 벌써 삼십 분 째다. 슬슬 다리가 신호를 보내온다. 이대로 십여 분만 더 서 있으면 내 다리도 저런 모양이 될까? 한구석에 쌓여 진열된 토실토실한 우족을 보고 있자니 처량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곁에 있던 재휘도 답답했는지 기어이 한소리를 해댄다.


 "그럼 저 쪽에 더 싼 고기도 있네. 그거 사면 되잖수."

 "아야, 그건 수입산 아니냐. 너네 아버지 성격 몰라서 그러냐?"


 물 건너온 돼지는 돼지 아닌가. 투덜대는 재휘를 놔두고 엄마는 계속 고민 삼매경이다. 푹푹, 엄마가 한숨을 쉴 때마다 여기서도 푹푹, 저기서도 푹푹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한숨 터져 나오는 건 그래, 별 문제는 없을지 모른다 치자. 붓다 붓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이놈의 장딴지는 대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단 말이요, 네?


 "이거 삼겹살 두 근만 주세요. 국산 맞죠, 이 고기?"


 별 수 없지. 여기선 아쉬운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하이힐과 스타킹 속에서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부풀어 오르는 내 다리를 구원할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인생, 어차피 혼자 살아가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얘, 놔둬라. 내가 산다니까, 야."


 엄마는 당황해 얼른 자기 지갑을 여신다.


 "됐소. 어차피 내 입으로 들어갈 건데, 내가 사도되지 뭐."

 "네가 돈이 어딨다고 그래. 그 돈 있으면 필요한 데나 쓰지는."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내 딴엔 충분히 가치 있는 데 썼지 싶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팠던 다리 한 짝 구제하는 데 이 정도면 싸게 먹혔지, 암.


 "이제 다 샀으면 집에나 갑시다. 아부지 우리 기다리느라 뱃가죽 등에 붙으셨겠네."


 계산을 마친 고기를 담은 장바구니가 꽤나 묵직해졌다. 주머니는 그만큼 가벼워졌지만 별 상관은 없을까? 어차피 1년 365일 단 한 번이라도 만족스레 채워진 적이 없는 낡은 지갑인걸 뭐. 가진 것을 비울수록 마음은 채워지는 법이랬다. 그 말이 맞는다면, 이 작은 나라에 무슨 놈의 십자가가 그리 많은지도 이해가 된다. 적어도 내 주변엔, 나를 포함해 성자 아닌 사람이 없거든. 주머니 사정만 본다면.






 주변 사람들에 대해 할 얘기가 또 하나 생각났다. 우리 집 식사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꽤나 재밌어한다. 특히나 남자들이 더 그렇더라. 애들 말고 남자들, 그러니까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병장 아저씨들이.


 "이제 먹자."


 아버지의 선언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 가족 네 사람은 거의 동시에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한다.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편식하지 말 것. 잡소리 내지 말 것.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진 삼겹살이 타고 있어도 절대 바로 입으로 가져가지 말 것. 고기는 반드시 야채 및 쌈장과 동승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 위대하신 아버지 수령님 젓가락 가는 길을 막거나, 방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그랬다가는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루고 말 테니까.

 쥐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가장 큰 소리는 고깃기름 불판에 이글대는 소리 정도다. 내가 타인이었다면 <아담스 패밀리>같은 컬트영화나 부조리극 속 한 장면이 아닐까 싶었을 거다. 불행한 건 내가 그 기괴한 희극의 관객이 아니라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만료 기한 없는 영구 전속 계약인 배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식사를 하던 중 우리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친히 그 입을 열어 한 말씀 하신 것이다.


 "고기가 맛이 없다?"


 이 말에 우리 인민 동지들은 일제히 입을 닫지 못하고 허걱 하는 표정으로 수령님 인상을 살폈다. 잠시 동안 다시 침묵이 식탁 위를 차지했다. 먼저 수습에 나선 건 수령님의 제 1측근인 우리 어머니다.


 "그, 그래요? 이상하다. 왜 그럴까,"

 "혹시 수입산 아냐, 이거?"


 아버지, 두 번째 폭탄 발언! 두 차례 충격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어느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할 수 없지. 여기선 장녀인 내가 나서야만 한다.


 "아냐, 아빠. 이거 국산 맞아. 내가 일부러 물어보기까지 하고 샀는데, 그치 엄마?"

 "응? 응. 그래. 확인하고 산거에요. 딸내미가, 당신 드시라고 일부러 신경 써서 사온 거예요. 얘, 너도 같이 가서 봤잖니?"

 "으응,  네 그래요. 그랬어요. 하, 하."


 서로 오가는 눈짓과 함께 속속들이 이어지는 가족들의 증언들. 수령님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 불판 위에서 타들어가는 고기들엔 손도 대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애도만을 보냈던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어디서 사왔는데."


 아버지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모양이다. 날카로운 추궁에 우리는 별 수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밝혀야만 했다.


 "저, 시장 마트에서 사왔죠."

 "거기? 평소 가던 정육점은 어쩌고."

 "무, 문을 닫았더라고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며칠 문 못 연다고 쓰여 있어서 할 수 없이,"

 "흐흠."


 헛기침 소리에 움찔대는 가족들. 그래, 이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은 이해 안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지 않던가? 이해할 수 없는 진실도 때때로 존재한다는 것쯤은. 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화투판, 실업률은 감소했다는데 주변 사람들 중 취업 성공했단 사람은 어째선지 보기 드물고, 원 플러스 원 제품을 샀는데 어째선지 타 브랜드 단일 품목 제품 두 개 산 것보다 비싸더라 하는 등등 사례처럼.

 21세기 민주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전제 군주 같은 가부장 한둘쯤 있는 게 이상할 건 또 뭐람?


 "고기, 더 구울까요?"


 엄마 말에 못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식사 내내 아버지는 못마땅한 듯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우리는 혹시라도 불똥이 튈 새라 평소보다도 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나중에 재휘는 행여 숨소리도 시끄럽다고 하실까봐 숨도 쉬지 않은 채 꾸역꾸역 고기쌈을 입 안에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 사정이 또 눈물겨웠다. 아버지가 일어나기 전 먼저 자리를 뜨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동생 말대로라면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기까지 약 40여 분간 단 한 번도 숨을 쉬지 않은 게 되니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뭐, 어쨌거나 그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였단 거다.


 "수입 산이면 어떻고 국내산이면 어떻다고, 다 똑같은 고긴대."


 나중에 둘만 있을 때 재휘는 이런 식으로 투덜대며 심경을 털어놓았다. 글쎄, 유별나단 건 나도 인정해야겠다. 아직 중학생인 재휘가 이해하긴 너무 어릴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개성이란 건 있기 마련 아닌가. 어떤 사람은 잘만 마시는 우유를 누군가는 먹기만 해도 속이 부대끼는 것처럼, 비싼 국산 고기만 찾는 누군가에겐 외국산 고기가 체질상 맞지 않는 모양이지.






 '사건'이 터진 건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마실 갔다 오신다던 엄마는 한참 후, 창백해진 얼굴로 집에 돌아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그 집, 실은 수입 고기를 국산이라고 속여 팔았다더라."


 잠깐 동안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청히 서 있었다. 엄마가 말하는 '그 집'이란 뭘까? 마실 갖다 오신 양반이 갑자기 수입 고기 운운하는 말은 왜 하며, 그런 얘긴 또 어디서 듣고 오신 거란 말인가.

 다행히 재휘는 나보다 눈치가 훨씬 빠른 편이다.


 "그럼 그때 아빠가 수입 산이라고 한 말 진짜였나 보네?"


 아, 그 고기. 순간 냉장고에 꽁꽁 언 채 봉해져 있을 고기 덩이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수입 고기 아니냐고 했던 그 날 저녁, 결국 한 근 넘게 사온 고기 중 우리가 먹은 건 기껏 반 근 조금 넘는 정도였다. 생각해봐라. 그 분위기 험악한 자리에서 무슨 고기가 목구멍에 넘어가겠는가. 설령 우리가 구워 먹은 게 돼지 삼겹살이 아니라 1등급 한우 등심이라 한 들이야.


 "어디서 들었어?"

 "아니 민희 엄마랑 혁이 엄마가 그러대? 어디서 조사한다고 나와서 가게 다 헤집어 놓더라면서."

 "세상에……."


 그 얘길 듣고 탄식을 내뱉은 건 나였다. 이유? 뻔하지 않을까?


 "혹 아버지가 이 얘기 알게 되면,"

 "무슨 얘기?"


  갑작스레 끼어든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움츠렸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 안 돼. 설마 아니겠지. 이게 무슨 영화나 소설 얘기도 아니고.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 가만있었더니,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전히 현관을 등진 채인걸 보면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 심정인 모양이다.


 "오셨어요? 그, 글쎄. 호호, 무슨 얘길까."

 "혹시 이걸 말하는 거야?"


 아버지가 '이거'라고 했기에 나도 재휘도 엄마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야 했다. 아버지가 내민 건 지역 신문의 한 면이었다. 얼마 전 실시한 지역 상점 위생 불시 점검에 대한 기사가 거기 있었다. 우리가 고기를 샀던 그 정육점 사진도 크진 않지만 실려 있었다.

 적어도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걸로 조금은 덜 상투적일 수 있다면야 뭐, 괜찮지 않을까?

 그날, 위대하신 우리 아버지 수령님은 그보다 더 위대해 보일 수 없었다. 어쨌건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고기가 국산이 아니란 걸 꿰뚫어본 건 아버지뿐이었으니까. 어머니를 비롯해 그날 장을 본 우리 삼인은 졸지에 장보는 눈도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한참을 훈계를 들어야 했고.

 그래, 그걸로 마무리되었다면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일화로 추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후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살던 얘기, 옛 추억 얘기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내 입에선 어느 순간, 그 수입 고기에 얽힌 웃지 못 할 사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여간 입맛 깐깐해서 맞춰주기 힘들단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끝맺었을 땐, 주위 분위기는 여전히 화기애애했다. 아버지에 대해 뒷담 화를 하다가, 그래도 그걸 알아차리신 건 신기하다는 얘기로 이어졌다. 그러다 이야기는 금세, 아버지들에 대한 뒷담화로 전개되었다. 시집가라 잔소리가 심하신 아버님, 이제 성인인데 옷차림에 간섭이 너무 심하신 아버님, 틈만 있으면 집에서 무기력하게 TV 채널만 돌리시는 아버님 얘기까지. 그렇게 많은 종류 아버지들이 세상에 있었다. 보는 사람 다 답답할 정도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 아버진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위로가 된다면 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걸로 아버지가 귀신은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란 사실만은 분명해지지 않는가.

 모임은 좋은 분위기를 타고 2차까지 이어졌다. 노래방에 간 우리는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러대며 노래 부르고 떠들며 놀았다. 나도 몇 곡인가 앞에 나가 부르곤 진이 빠져 소파에 기대어 다른 애들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푼 건 오래간만인 성 싶었다.

 그때 한 녀석이 옆에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학창 시절 인상이 그리 남지 않았던 평범한 남자애다. 처음엔 뒤늦게 고백이라도 하려는 줄 알았다. 이게 다 녀석이 지나치게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해서다. 결코 내가 설레발을 쳤다거나 눈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란 말이다!


 "아까 말한 얘기, 신문에 난데서 고기를 샀단 거 말야. 그 뒤로 무슨 일 없었어? 가족 중에 누가 탈이 났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는데. 왜? 누가 그랬대?"


 그런 건 아니라면서도, 녀석은 자세한 얘기는 꺼내길 피했다. 할 수 없다. 지가 얘기 안 하겠다는 데 무슨 수로 속사정을 알 텐가. 내가 초능력자도 아니고. 녀석 앞에 놓인 술잔을 더 바짝 걔 앞에 당겨 놓고 한가득 술을 따랐다. 술이 왜 술인가. 술술 잘 넘어가서 술이고, 퍼마시면 개(戌)가 된대서 술이고, 적당히 마시면 술술 분다고 해서 술이 아니겠는가.

 거부하는 녀석을 반쯤 협박으로, 또 반쯤 아양으로 속여 넘겨 취하게 한 다음 다시 속사정을 물었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녀석은 두 손을 들곤 자기가 아는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사건 우연히 내가 들은 게 있어서 말야. 경찰이 수입업자를 찾아냈다더라고. 겨우 고기를 들여왔을 때 입항과 하역 기록을 발견해냈는데 말야."

 "그런데?"

 "하역된 물품 가운데 고기는 단 1g도 없었다더라고."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고기를 내린 흔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의미하는 뜻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에.


 "정육점까지 유통 경로를 추적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더라. 그 부두에서 무언가를 옮긴 건 맞지만 고기는 아니었어. 아니, 거기서 가게로 고기를 옮겼을지는 모르겠지만 배에서 하역한 컨테이너 가운데 고기는 전혀 없었어. 그럼 말야, 과연 그 가게에선 판 건 대체 어디서 난 무엇이었을까?"


 이 얘기를 듣고 나선 기억이 거의 없다. 정신이 조금 남아 있었을 땐 그저 화장실로 자신이 정신없이 달려갔단 것, 그리고 변기에 대고 여태껏 먹었던 것들 전부를 게워냈다는 것만 기억했을 뿐이다.

 정신이 들었을 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집에 있었다. 그 후로도 한참을 고민했다. 이 얘기를 과연 가족들에게도 해줘야 할까? 해준다고 뭐가 달라지긴 할까? 하지만 가족들도 사실은 알아야 하지 않는가, 실은 그들도…….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 돌연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화장실로 뛰어갔던 생각이 난다.

 결국 어떻게 됐냐고? 물론 말했다. 가족들에게, 내가 들은 사실 전부를. 파장은 굉장했다. 그 위대하신 아버지조차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엄마나 재휘는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걸 토해내기에 바빴으니까. 이미 엄마를 비롯해 우리 셋이 장 보는 눈이 있네, 없네 하는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가부장의 권위며 위신 따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큰 문제가, 아마도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된 해답은 영영 듣고 싶지 않았을 문제가 새로이 등장했으니까 : 대체 그 날 우리가 먹은 고기는 무엇이었을까?






 얼마 뒤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새로 생긴 대형 할인 마트를 찾았다.

 창고처럼 거대한 건물 안, 수없이 많은 물건들이 제각기 진열되어 있었다. 일부는 수박처럼 팔레트 위에 무너지지 않게 쌓여 있고, 또 일부는 생전복처럼 수조 안에 담겨 있기도 하고.

 그 속을 정신없이 거닐다 길을 잃고 말았다.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 혼자 양편에 줄줄이 늘어선 과자 봉지들 사이에 홀로 헤매고 있었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과자들, 저 과일들과 해산물들. 이것들은 대체 다 어디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 태국에서 왔다는 저 새우와 프랑스에서 왔다는 저 쇠고기, 북한에서 왔다는 바지락과 미국에서 왔다는 오렌지는 다들 어디서 무엇을 먹고 자라다 이국만리 여기까지 왔을까? 이 냉동 완당이 베트남에서 왔단 게 정말일까? 이 포도는 모두 몇 종류나 되는 농약을 써서 키운 걸까?

 별안간 이 모든 게 머릿속에서 핑핑 돌았다. 세상은 내가 모두 알기엔 너무나도 복잡하고 또 거대하단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내 입으로 향하는 것들에 한해서만도 그것들의 모든 이력을 알기란 불가능했다. 그것들은 마치 유령들 같았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 이해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유령들이, 나의 입을 위해서, 또 당신의 입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나 물어보자. 당신을 위해 봉사하는 당신의 유령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키가 큰가, 작은가? 몸무게가 많은가, 적은가? 혹은 양심적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그들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혹은 얼마나 잘 알 수 있을까?

 문득 집 옥상에 자기 텃밭을 갖고 싶어지는가? 아마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

 어려운 미션이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쓸 얘기가 생각 안나긴 또 오랜만이네요;;
 사회 비평도 어려운데 거기다 유머까지...;; 덕분에 한 번 쓰기 시작한 거 뒤집고 아예 새로운 이야기로 적었습니다. 그래도 뭐, 웃기진 않네요;;

 계획대로라면 막판에 아버지 높은 콧대를 꺾어서 비웃어줘야 했는데, 실제론 어설픈 공포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렸다는 게 유머라면 유머입니다....농담이고요;
 암튼 결론은, 농담 잘 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 미션이었네요 ㄷㄷ;
?
  • profile
    Yes-Man 2011.06.27 08:05

    뇌가 굳어서 글자가 머리에 잘 안 들어옵니다...ㅠㅠ


    어떤 이야기인지,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는 독자로서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비평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할지는 복귀하기 전까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6.27 09:17

     읽기 힘든 게 예스맨님 탓인 건 아닐 겁니다. 이번에 기한 맞추느라 안 떠오르는 거 급히 쓰기도 했고;;;


     너무 독자에게 얘기해주는 게 많은 게 아닌가 걱정하는 중입니다. 긍정적으로 봐주시는 듯해 다행이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아무튼 비평도 잘 부탁드릴게요^^;

  • profile
    시우처럼 2011.06.28 05:16

    고기맛 고무? 플라스틱?

    헐... 어쩌면 저 가족은 앞으로 강박증세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6.28 07:01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

     먹을 거 찾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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