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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저 오만불손한 마녀에게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어. 진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첫 시도는 마녀가 듣기엔 지나치게 작은 속삭임에 그쳤다. 도와줘.


 "뭐라고 했지?"


 마녀가 되물었을 때 진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가장 하기 싫은 이야기를 제 발로 다시 한 번 꺼내란 말이야? 혹시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까? 제대로 들었으면서도 못들은 척, 불쾌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굴욕감을 한껏 안겨주려는 건 아니야?

 진연은 그 때 다시 눈앞에 있는 그림자들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그녀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도와주란 말이야! 제발 저 기분 나쁜 것들 좀 쫓아줘! 왕좌를 찾아내는 걸 도와주라고! 어때? 이것도 다시 한 번 말해줘야 해?"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마녀 씨."


 진연의 등 뒤에서 바리는 목소리를 내어 그녀를 도왔다. 진연을 쳐다보던 마녀는 일부러 바리를 향해 그 시선을 돌리진 않았다. 다만 침묵을 지켜 바리가 마음껏 제 하고 싶은 말을 내뱉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은 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짓궂은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요. 그년 정말 당신 말고는 기댈 사람이 없는걸요. 아시겠어요? 가족이란 말예요. 당신과 진연 씬. 서로 좋던, 싫던. 스스로 그랬죠? 엄밀히 말하면 당신도 윤주 씨 딸이라고."

 "제 무덤을 판 꼴이다, 이거지?"


 마녀는 피식 웃었다. 여전히 시선은 진연에게 고정한 채였다. 알았어. 그 말이 마녀 입에서 떨어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해."

 "도와주겠다고?"

 "당연하지. 네 부탁 따위 받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으니까."

 "뭐라고?"

 "윤주 그 년 부탁이었어."


 사실을 밝히며 마녀는 몇 걸음을 옮겨 진연 앞에 섰다. 그것만으로도 마녀는 그림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진연을 가로막는 위치가 되었다. 멋대가리 없는 검정색은 질색이야. 형태 구분 없이 몸 윤곽만 간신히 있는 그림자들을 보면서 마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이어지는 그녀 말만을 기다리는 진연에게 답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널 도와주라고 말이야."

 "그럼 지금껏 약 올리던 건,"

 "그저 짓궂은 장난이었던 것뿐이야, 저 애 말처럼."


 바리를 흘겨보며 마녀가 말했다. 진연은 기가 막혀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 너희 본 적 있어."


 대치하는 가운데 마녀가 입을 열었다. 의미만으로 보자면 그건 갑자기 들이닥친 그림자들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얘기를 하는 마녀 목소리는 거기 있는 누구에게라도, 특히 진연에게도 확실히 들릴 정도로 과장되게 컸다.


 "너희 주인이 누군지도 난 알아. 쿡쿡,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여기 있을 거란 걸 말이야."


 바보들. 멍텅구리들. 마녀는 대청마루 위에 서서 마당에 있는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눈을 흘겼다. 추잡한 것, 아무 가치도 없는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마녀는 그들을 보았고 그런 그녀 시선을 받은 그림자들은 눈에 띄게 떨었다. 진연이 보기엔 그 그림자들이 겁에 질린 것이라기 보단 궁지에 몰리자 온 몸 털 한 올 한 올을 곧추세우는 짐승들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만 같았다. 반면 마녀는 한없이 거만하고 여유로웠다.


 "이러면 우리가 눈치 채잖니. 왕좌를 가져간 게 누구인지를."


 그림자들이 일제히 몸을 바짝 치켜세웠다. 바짝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윗몸을 치켜세운 그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아 진연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 꼴을 본 마녀가 혀를 차더니 다시 크게 외쳤다. 이번엔 그림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쉬고 있을 참이야, 반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녀석 몸이 터져 산산조각 흩어져 버렸다. 동시에 그 녀석 몸 안에 갇혀 있던 반려 여자가 그림자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서둘러 몸을 돌렸지만 그 사이 반려 여자는 자기 주위 두 녀석을 재빨리 베었다. 한 녀석은 두 토막이 났고, 다른 녀석은 어깨로부터 오른쪽 허리춤까지 길게 베여 마당 한구석에 나뒹굴었다.


 "괜찮아요, 아가씨?"

 "당연하지. 쟤가 내 발목 잡는 일 할 거 같아? 저런 것쯤 깨트리고 나오는 게 당연하잖아, 마녀의 반려라면."


 자신들에게도 의외인 상황에 놀란 진연과 바리를 보며 마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정작 당사자인 반려는 이 모든 상황에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손에 든 '장미 가시'에 묻어난 짙은 검정을 바닥에 털어냈다. '신랑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반려 여자가 중얼거린 말을 듣고 마녀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노을 아래서 그것은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올라 사라져 버렸다.

 마당에 남은 그림자는 이제 한 녀석뿐이었다. 반려 여자가 휘두른 칼 '장미 가시'가 충분히 깊게 베지 못했던 모양인지, 깨끗이 양단되지 못한 녀석은 꺾어진 나무 가지처럼 축 처진 오른 왼쪽 어깨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장미 가시'가 베고 지나간 상처는 컸고 쉽게 아물지도 않았다. 녀석은 간신히 벽에 기대 몸을 일으켰다. 물끄러미 그것을 지켜보던 마녀가 반려에게 말했다.


 "반려, 저거 박아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려 여자는 '장미 가시'를 들어 녀석 왼편 어깻죽지에 온 힘을 다해 찔러 넣었다. 쾅, 소리가 크게 난 후 이상한 침묵이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장미 가시' 때문에 어깨가 벽에 붙박인 그림자 녀석은 처절하게 발버둥 쳤지만 소리만큼은 단 한 마디 단말마도 내지 못했다. 진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온 몸으로 내지르는 고통에 찬 비명이 그를 보는 자기 눈을 통해 전해져오는 것만 같아서였다.

 난동을 부리는 그림자 앞에 마녀가 다가섰다.


 "미안해, 진짜. 많이 아프겠지? 그렇지? 하지만 말인데, 팔이 네게 굳이 필요하긴 해? 어차피 입만 있으면 되잖아. 내 말 대신 그년한테 전할."


 종이 찢어지는 소리처럼 부욱, 하는 소리가 그림자에게서 났다. 동시에 마녀는 반려 여자가 내다꽂은 '장미 가시'를 재빨리 빼내어 도로 그림자에게 박아 넣었다. 오른편 어깻죽지를 뚫고 '장미 가시'가 벽에 깊숙이 박히자 그림자는 다시 요동을 쳤다. 찢겨나간 녀석의 왼편은 몇 번인가 꿈틀대다가 사라져 버렸다.


 "조심해. 다음번엔 네 다리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마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녀 웃음소리 앞에서 그림자는 거짓말처럼 무력해졌다. 그것이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자기 얘기를 듣고 있는 걸 확인한 후, 마녀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전해. 누군지 알고 있어. 물론 네가 왕좌를 가지고 있단 것도 물론 알아. 제정신인 녀석이라면 내 말 듣고 도로 온전히 가져다 놓겠지. 하지만 넌 안 그럴 거야. 맞지?"


 진연이 마녀를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즐겁다는 듯이,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이 미칠 듯이 기다려진다는 듯이 웃었다. 진연은 어렴풋이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마녀가 전하는 말은 계속되었다.


 "네가 훔친 거, 내가 빼앗아 줄께. 어디 한 번 끝까지 해보자고. 마녀가 치루는 전쟁이 어떤 건지 직접 온 몸으로 알게 될 때까지 말이야!"


 그림자에게 찔러 넣은 '장미 가시'를 마녀는 
단번에 뽑았다. 녀석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순간 마녀는 '장미 가시'를 높이 쳐들었다. 그림자가 제대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마녀가 내리친 '장미 가시'는 그림자 목을 잘라 쳐냈다. 그림자는 비명 소리 하나 없이 그 자리에서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바리가 마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살려 보내주긴 한다면서요, 얘기 전하라고."

 "그럴 필요 없어. 저 쪽은 내 얘기 전부 들었으니까."

 "그럴 리가요?"

 "그 녀석, 마지막에 웃었어."


 설명 대신 마녀는 마당 바닥에 칼끝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무것도 없는 계란형 둥글둥글한 원이다. 그 원 안에 마녀는 커다랗게 입을 그려 넣었다. 양쪽 끝이 쭉 치켜 올라간 데다 커다랗게 벌어진 입은 기분 나쁘게 낄낄대며 웃는 것처럼 보였다. 마녀는 그것이 자기가 본 그 녀석 마지막 모습이라고 말했다.


 "대체 뭐랑 싸우고 있는 거죠, 우린?"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바리가 마녀에게 물었다. 신부 이외에? 마녀는 애간장탈 정도로 뜸을 들였다.


 "'사랑하는 딸'이야. 최악의 적이지."


 낯익은 이름에 바리는 한 쪽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마녀를 보았다. 뻔뻔하게도 마녀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곤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

 <시크릿> 6장 마녀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이 뒤로는 최종보스격인 '사랑하는 딸'이 등장하게 됩니다만, 그 전에 잠시 쉬어가는 파트로 7장이 먼저 이어질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대충 7장과 8장 일부 이 정도까지겠네요;; 그나마 쓰고 있던 워드 프로그램이 오류가 났는지, 하마터면 이제껏 쓴 7, 8장을 전부 날릴 뻔했습니다...저장용으로 한글 프로그램으로도 보관해두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래도 요새 컴퓨터 상태가 이상해서, 조심해야겠네요...암튼 7장은 토요일 쯤해서 올릴게요^^;
?
  • profile
    클레어^^ 2011.03.25 03:44

    '사랑하는 딸'이라...;;

    혹시 진연씨와 깊은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나저나 마녀씨 은근히 잔인하네요...;; 그림자라 좀 덜하겠지만...

    '진연'하니까 그 고교 동창은 뭐하는 지 궁금해지네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3.25 08:30

     진연보단, 바리와 관련이 깊어요. 그건 다음 장, 그 다음 장에서 조금씩 나누어져 나올 거예요^^:


     마녀 성격을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걸로 잡아서 일부러 과격하게 표현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안하면, 의도한 대로 표현이 안될 거 같아서요;;;;

     고교 동창이라...그러고보면 고등학교 때 친구들 연락하기가 어렵네요. 휴대폰 바꾼 뒤로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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