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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는 그런 기술 없어?"

".....그런 거 있으면 내가 먼저 배웠겠다."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녀석은 바람이었다.

말 그대로 바람이다. 꽃을 흩날리게 하고, 나무를 춤추게 하는 바람.

가끔 여자의 치마를 들추고 다니는 걸 보면 분명 변태임에 틀림없다.

 

아무튼 그를 만난 건 한참 일을 잡지 못해 백수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백수로서는 딱히 할일이 없었기에 뒷산에 올라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곤 하였다.

 

가끔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하면, 가끔 마주치던 미스테리한 청년이 있었다.

항상 아줌마처럼 허리를 나무에 부딪히면서 '어허어허'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청년.

 

아무튼 이 녀석이 어느 날 내가 쉬고 있는 벤치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귀에 '후~'하고 바람을 불었다.

 

변태자식.

주먹을 굳게 쥐었다가, 폈다. 그냥 무시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정상이 아니다. 정상인 내가 참아야지.

 

이번에는 내 앞으로 다가온 바람은 이제 내 이마에 바람을 후욱 후욱 불어댄다.

머리칼이 살랑살랑 댄다.

 

잠시 뭔가 심하게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은 바람이었다.

그리고 손으로 내 머리를 뒤로 스윽스윽 넘긴다.

 

슬슬 짜증이 올라와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손은 이번에는 내가 입고 온 티로 가서 티를 펄럭펄럭거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녀석의 멱살을 잡고,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뒤로 밀어 버렸다.

 

의외로 녀석의 몸무게는 너무 가벼워서 너무 쉽게 들렸고, 너무 멀리 날아가 버렸다.

퍽하고 뒷 나무에 부딪힌 바람은 머리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예상 밖의 과도한 리액션에 은근히 걱정이 된 나는 그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바람은 쉭하는 순간에 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길래 왜 사람을 놀려?"

 

바람은 나무 뒤에 숨여서 훌쩍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뭘... 뭘 어쨌다구... 맨날 하던대로 했는데 왜 너만 난리야..."

"그야 네가 미쳤다고 생각했으니까 다들 넘어간 거 아냐?"

"설마... 그런 거였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무 뒤에 숨어있는 바람에게 다가갔다.

얼굴은 아무리 봐도 멀쩡한 녀석이다. 오히려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게 생긴 곱상한 스타일이다.

스포츠 머리 스타일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지만 말이다.

 

쪼그려 앉아서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던 녀석이 내가 온 걸 보자 벌떡 일어나서 다가왔다.

눈물을 슥슥 닦고서 말했다.

 

"안녕. 난 바람이라고 해. 잘 부탁해."

 

왠지 모를 부드러운 미소의 인사에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 그래."

 

"그럼 우린 이제 친구야."

인사 한 번 했다고 친구를 주장하는 이 청년 역시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이제 친구니까. 나한테 아까 그 기술 가르쳐 주라."

"기술?"

"응."

"그런거 없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라. 그냥 힘만 있으면... 이렇게 쥐고 올리면 된다고."

"그럼 어디...?"

 

바람은 갑자기 내 앞에 다가와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려고 했다.

낑낑대곤 있지만 진도가 안 나간다. 헉헉 대면서 스스로 지쳐서 앉아버렸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어려워. 좀 쉬운 기술 없어?"

"그런거 없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는 그런 기술 없어?"

".....그런 거 있으면 내가 먼저 배웠겠다."

"완전 치사해."

 

양팔을 끼고 나를 삐진 듯이 보던 녀석을 두고, 나는 천천히 길을 따라 집으로 내려갔다.

그 청년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는 거야?"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길에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놀라 주저 앉은 내 옆에는 아까 그 파란머리 청년이 서 있었다.

 

"언.. 언제 따라온 거야? 왜 변태처럼 귀에다가 말하고 난리야."

"아까 전부터 주욱 따라 오고 있었는 걸? 멀리서 말하는 데 계속 못 들은 척하니까. 귀에다가 말한 것 뿐이다..뭐."

 

살짝 삐진 듯 보였다.

"너. 혹시 집 없냐?"

"여기가 다 내 집인 걸?"

그는 양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제자리에서 돌았다.

왠지 모르겠지만, 약간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시원함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녀석이 돌고 있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태풍이 불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 녀석과 나는 태풍의 눈 한 가운데 있었다.

 

그대로 나는 눈을 감았다. 분명 이건 꿈인 것이다. 아니, 내가 요즘 잠을 많이 못 자서 제 정신이 아닌거야.

눈을 뜨면 그 수상한 녀석은 없고, 분명, 분명 아무 일도 없다.

봐봐 조용하잖아. 아무일도 없는 듯이.

서서히 눈을 떴다.

 

주변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고요했다.

역시 내가 뭔가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오늘은 참 이상한 일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밖에서 팟하고 TV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지역뉴스 특보입니다. 오늘 낮 11시, 서울 XX구 XX동의 뒷산에서 알 수 없는 큰 바람이 불어 올라가 산 정상에서 운동을 하던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하는 소동이 발생했습니다. 지역 주민의 말을 들어보시죠. 김XX기자?...."

 

"왜? 이제 좀 무서워?"

내 귀 옆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개그버전.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 녀석의 복부에 주먹을 크게 내질렀다.

"썩을.. 어디서 동네 민폐에 변태짓이야. 미친 개나리가...."

 

복부에 맞아 헛구역질을 일으키면서 주저 앉은 바람을 보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잡것들 때문에 일 짤리고, 참아줬더니. 어디서 지랄이야 지랄이!"

말과 함께 나간 분노의 킥을 맞은 바람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썩을 잣놈이 몸은 왜 이렇게 약한거야."

곧 멀쩡히 깨어날 것을 알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그렇게 바람의 간호를 하고 있는 어느 백수의 하루였다.

또한 이미 다 나아서 눈을 뜨고 싶지만 맞을까봐 눈을 뜨지 못한 바람의 하루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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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산늘 2012.05.08 03:47
    제일 변태는 봄바람 입니까? ㅋㅋ 요즘은 아쉽게도(?) 봄이 짧아지고 여름이 길어져 가는 것 같네요.
  • profile
    클레어^^ 2012.05.07 04:53
    '탁치니 억하고 죽는' 이란 말에 전 왜 역사적인 사실이 떠올랐을까요?
    1987년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보도하였다는 소리가 있거든요.
    (참고로 클레어는 그 당시에 겨우 3살...;; )
  • ?
    산늘 2012.05.08 03:43
    예전에 써놨던 글인데, 글 쓸 때 갑자기 떠올라서 집어넣어봤습니다 ^^~
    알아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7 21:45
    동화 풍 이야기를 좋아하시나 봐요? 단편만화같은 느낌도 나고요^^;
    섬세하게 쓰인 이야기는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ㅎ
  • ?
    산늘 2012.05.08 03:47

    평소 생활이 왕진지라 나름 가볍게 적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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