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2 10:17

지은이 못난이

조회 수 392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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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생긴 게.

 심장이 뛴다. 무서운 영화를 봐도, 차에 치일 번 해도 꿈쩍하지 않는 간 큰 나인데, 이런 말만 들으면, 손이 축축해진다. 정말 많이 들은 말인데, 적응 할 때는 옛날에 지났는데 참 못났다, 정말. 어떡하지? 다시 들어갈까?

 “선배, 솔직히 선배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요? 여드름하며, 작은 키에……. 이제 보니 탈모 끼도 있네요? 농담이에요. 처음 봤을 때부터 탈모인 거 알고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말을 해버릴까? 내가 문을 닫은 지 얼마 안됐는데, 나 들으라고 한 말일지도 몰라. 아무튼, 그래, 고민할 여지가 없다. 그냥 가던 길 가는 거지. 독서실로 가자.

 나는 살도 안 찌지 않았고 키도 적당하다. 가끔 생각한다. 아니, 이럴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내가 살이 쩌서 ‘그래도 살 빼면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유발시키거나, 키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최악이다. 내 외모. 튀어나온 광대에 구멍을 파다 만 눈, 넓은 이마. 이상한, 못생긴 구강구조. 중학교 때 들었던 말을 빌리자면, 너무 못생겨서 웃기지도 않는 외모……. 에 이런 말이나 기억하고 있는 치졸한 나다. 안 밖으로 참. 가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일 듯 하다. 거울을 봐도 놀랍지 않고 주변의 시선도 익숙하다. 결국 지내다 보면 지나가는 것이니까.

 

 독서실에 도착했다. 오늘도 공부다. 어제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진도가 나갔다는 점이 있겠다. 토익, 이번에는 더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고3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좀더 좋았을까? 흥, 그때 생각해서 뭐해.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되면 그 단계보다 높은 곳을 부러워하겠지. 비록 예민하고 자주 꽁한 나지만, 그래도 장점이 하나 있다면 긍정적인 것 같다. 외모도 정신도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런 사고 방식은 그나마 강점 아닐까? 나 이제 졸업이고 그럼 완전 백수다. 언제까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주변의 우울한 사람들과 닮아질 것이다. 서른까지 아무 일 없이 공무원 준비만 허구한 날 히스테리만 부리는 게임마니아 김폐인이나, 알바를 전전하며 가끔 가는 클럽이 유일한 낙이라는 이죽순. 그런데 그들 모두 나처럼 못생기진 않았다. 나는 클럽도 가본적 없고 게임도 할 줄 모른다. 내 낙은 뭐지?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직장만 생기면, 여유 자금이 생기면 뭐라도 할 수 있겠지.

 

 하던 시간도 1년이 지났다. 면접만 가면 떨어지니…….

 “이지은씨는 자신감이 부족하네요.

 “이지은씨는 생각하는 게 저희 방향과 다른 것 같아요.

 “이지은씨는…….

 그냥 말해.

 못생겼다고.

 나만 보면, 그 표정은 정말, 내 외모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 표정을 보고 있자면 늘 그랬듯이. 심장이 뛰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이거 뭐 가식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예의라고 해야 하나. 암묵적인 놀림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

 오늘도 도서관에 간다. 저번주에 떨어진 면접에 대한 회복은, 회사를 나오자마자 완료 되었다. 그 날도 도서관에 갔고, 늘 그랬듯이 공부했으니까. 차이가 있었다면 진도를 나갔다는 점. 내일이면 또 다시 면접이다.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 자신 있다. 떨지 않을 자신도 있고, 당황하지 않을 거란 기대도 있다. 무엇보다, 이번엔 눈을 낮췄으니까.

 너무 경쟁률이 높은 회사들만 지원했다. 스팩이 비슷하다면 좀더 좋은 학교 졸업한 사람을 뽑는 게 당연하고, 영어 똑같이 잘하면 그래도 외국 살다 온 사람 뽑는 게 좋겠지. 그래도 예쁜 사람, 뽑는 것이 당연히 회사에 좋을 것이다. 결국 나의 가장 큰 강점은, 현실적이라는 것이니까.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늦어지면, 서른 하나 김폐인, 스물 여덟 이죽순.

 오늘도 도서관엔 사람들이 많다. 하마터면 자리를 잡지 못할 뻔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자리가 아예 없었는데 다행이 여고생 한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 삭은 중학생일 수도 있겠지만, 이 대낮에 자리를 뜨는 것을 보니 놀러 가나보다. 저 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나는 특별히 놀러 다니진 않았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하고 잡담 하는 것도 참 꿀 재미였지. 자기소개서를 다시 확인해 본다. 이번 면접은, 꼭.

 

 이랬던 것도 어느새 어제의 일이다.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소녀를 보고 감상에 빠지고 아무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도서관 독서실에 앉아 시간이나 버리고. 뭔가, 경쟁력 있는 그런 책이라도 읽었다면, 아니야. 지금이 내 최적의 상태다 자신감을 가지자. 하루하루, 나름 성실하게 살았지 않았나? 뭐가 꿀릴게 있다고?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자, 눈 앞에, 꿀리는 게 하나 있었다.

 

 “이지은씨.

 “네?

 회색머리지만 조금 젊은, 50대? 정도로 보이는 사장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분명 질문에는 잘 대답한 것 같은데.

 “지은씨 못생겼습니다.

 !

 “근데 저희 회사는 연예 기획사가 아니에요.

 뭔가 느낌이 온다. 이건……. 분명 긍정적인 뉘앙스다. 심장이 뛴다.

 “지은씨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지금까지 취직이 안됐다니, 저희 회사에겐 잘 된 일이지만 정말 통탄할 일이네요. 실력을 보고 뽑아야 하는 것인데…….지금까지 지원하신 목록을 들어보니 정말 기가 찹니다.

 됐다.

 됐다! 됐어! 드디어 출근할 수 있어! 이제야 도서관 생활이 끝나는 건가? 대학교 1학년부터 근 5년 아니, 고등학교 2학년부터 7년이라고 해야 하나? 그 지겨운 예비, 준비생 자리에서 벗어나는 건가!

 불과 몇 시간 전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심장이 뛴다. 뭐지? 흥분, 그래 흥분한 것 같다. 드디어 취직이라니! 눈을 낮춘 내 선택이 탁월했다. 나 만한 스팩을 가진 지원자가 없다고 했었다. 사장님도 좋은 분 같고. 아, 드디어 내 인생도 피는 구나!

 집에 도착하니 엄마, 아빠가 긴장된 표정, 기대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나이에 놀라게 하도록 문자 한 통 없이 집에 온 것은 조금 유치했나? 하지만, 정말 기쁜 일인걸! 나는 최대한 표정을 숨기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현관에서 조용히 거실 소파로가 털썩 주저 앉았다. 그 분들은 여전히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됐어.

 최대한 힘을 빼고 한숨을 쉬듯,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말투로 내가 말했다.

 “응?

 엄마가 물었다.

 “나 취직했다고!

 내가 외쳤다. 엄마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눈을 한껏 크게 뜨셨다. 아빠는 애써 의연한 척 하는 것 같았으나 기뻐하는 것을 숨기지는 못하고 방실방실……. 아 이제 진짜 행복의 시작이구나!

 “사장님도 진짜 좋은 분이야. 근무 환경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외모만 보고 성실함을 보지 못한 다른 기업들이 안타깝고 고맙데!

 나도 눈가가 축축해져서 말했다. 이 날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왔나. 주변에 즐거운 소식을 축하해주면서, 부러워하면서, 이제 나도 주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라? 엄마 아빠 표정이 이상하다.

 “지은아.

 엄마 정색을 하고 나를 본다. 무슨 일이지?

 “응?

 상당히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무슨 일이야?

 “너 안 못생겼어.


 꺼진 티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2 18:44
    서른 하나 김폐인, 스물 여덟 이죽순....ㅠㅠ

    같은 채용공고 지원한 사람들, 월 200안팎의 자리에 지원한, 막 경력 10년차다, 대학원까지 나왔다 하는 사람들 보면 후덜덜 하더군요. 이런 사람들 속에서 내가 어떻게 뽑히겠어, 싶고요...더이상 하면 신세한탄이 되니 적당히 하겠습니다;;

    공감이 많이 갑니다. 끝. 두 번째 문단 하단부에, '서른까지 아무 일 없이 공무원 준비만 허구한 날 히스테리만 부리는'이란 문장은 쓰시는 와중에 미처 발견하시지 못한 비문인 듯 합니다. 계속 공부하고 계셔선가, 실력이 날이 다르게 늘어만 가시네요 ㅎ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
    다시 2012.05.04 03:24
    ㅋ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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