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2 23:42

[단편] 희망찬 여름

조회 수 344 추천 수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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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아프기 시작했던 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던 것 같다. 몸이 나른해지면서 축축 쳐지고, 이래저래 골도 아프고, 축 늘어지는 것이 마음에 안 들고. 하여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짜증도 내면서 왜 그랬냐고 소리도 쳐보고 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 정말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고 봄이 찾아와도 내 몸은 그대로였다. 흔히 말하는 병X 같은 몸이 되고 만 것이다.

  침대에 축 늘어져서 하얀 형광등이나 쳐다보는 신세라니. 정말 말 다했다. 그렇다고 어여쁜 간호사님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병원은 어떻게 된 것인지 뚱뚱한 아줌마들 뿐이다.


  "하아."


  땅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천장이 폭발할 기세로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혀를 치면서 고개를 반대편으로 휙 돌리는 것이 넓은 시야를 통해 들어왔다. '젊은 것이'라는 말은 덤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나이 20. 내가 80세에 죽는다면 이제까지 인생의 3/4만을 살아온 것인데, 병상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한숨만 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머니와 아버지는 생활고에 내 병원비까지 대시느라 뼈빠지게 일하고 계시고,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집안 걱정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고. 나만 병원에서 이 진상을 떨고 있는 상태다. 그냥 콱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텐데.


  하루에도 수도 없이 생각했다. 죽고 싶다. 이렇게 병X으로 살아 뭐하나. 그냥 콱 독약이라도 먹고 죽는 것이 낫겠다. 그런데 손도 못 움직이지, 발가락도 움찔하지 못하는 전신 불구이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혀라도 깨물고 죽으면 되지 않냐고? 치아가 거의 없어서 혀를 깨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병X 중에 상병X이다. 세상을 살아도 이렇게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인생의 막장을 달리는 폐차 중의 폐차다. 정말 나라는 쓰레기 같은 인생은 곧바로 세상에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한여름에 사라지는 이슬 방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없어져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되지 않는다.


  "하아......"


  긴 한숨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치며 울렸다. 내 폐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한숨 소리가 나를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숨쉬고 먹고 싸고 자는 건 다 되는데. 아니 생각하는 것도 다 할 수 있고, 죽는 방법도 수도 없이 연구할 수 있는데! 그런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목을 움직여 창 밖을 내다 보았다. 봄... 아니 이제 여름이라고 해야 하나?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의 코를 자극했다. 아름다운 철쭉꽃들이 저 멀리 창문 너머로 보였다. 내가 예쁘다, 아니다 내가 더 예쁘다. 그렇게 자랑하는 기분이었다. 쟤네도 움직이지 못하고, 나도 움직이지 못하지만, 저 녀석들 신세가 더 좋다.


  비가 오면 한껏 수분을 섭취하고, 땅에서 양분을 먹고. 그리고 씨앗을 맺어 이리저리 자손을 퍼뜨릴 테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결혼은 안드로메다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고, 그냥 이 상태로 60년도 넘게 더 살아야 하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지.


  "오빠! 나 왔어."


  귀에 익은 목소리. 향긋한 봄내음보다 더 향기로운 목소리. 눈을 옆으로 돌리지 않아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어느 성우보다도 아름다운, 정말로 하늘이 내린 미성을 지닌 나의 동생, 현주였다.


  "현주 왔구나."

  "응, 오빠. 오늘은 잘 지냈어?"


  콱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내 여동생. 어린애 티가 나던게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다 되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거기다가 아직 어린아이 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싱그러움이, 정말 식물들이 막 자라나는 봄의 여왕 그 자체였다.


  "나야 뭐 그렇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


  씁쓸한 미소를 얼굴에 짓자, 현주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졌다. 그러나 워낙에 천성이 맑고 고운 아이인지라 금방 구름은 가셨다.


  "내가 오늘 뭐 사왔는지 알아?"

  "레몬."

  "어? 어떻게 알았어?"

  "레몬 냄새가 나니까."

  "오빠 코 정말 개 코다.... 우아."


  여동생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눈빛,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사실 냄새로 안 것이 아니라 노란 레몬이 살짝 보인 것 뿐이다. 물론 코도 좋은 편이기는 하지만, 이 상태에서 그런 것 자랑해 봐야 소용도 없고.


  현주는 정성스럽게 레몬을 잘라서 나의 입에 가져다 댔다. 귀여운 동생이 주는 거니 받아 먹기는 해야 하는데, 사실 난 레몬이 싫다. 너무 셔서.


  "오빠 아!"

  "...야, 남사스럽게 뭔..."

  "왜 그래. 어차피 다들 주무시는데."

  "야 그래도 그렇지."


  자긴 뭘 자. 나중에 현주가 가고 나면 '고 아이 참 귀엽게 생겼네.'라든지, 아니면 '아이가 뭐여. 이제 처자지 처자. 결혼은 언제 할란가?', '고집 부모 아까워서 시집은 어띃게 보낸데?"라고 쑥덕거리니.


  남의 집 걱정 잘 하시는 노인네 양반들이다. 물론 손해날 것은 없지만.

  이런 병X에게 있어서 유일한 꿈과 희망이 현주니까. 만약에 현주 성격이 개판이었다면 나는 더더욱 죽고 싶었을 거다. 그나마 부모님도 성품이 좋아서 나를 안 버리고 병원에 계속 입원시켜 주시는 거고, 현주도 공부하느라 힘들 텐데도, 이렇게 계속 뭔가를 사다주고.


  문제는 내 취향을 전혀 모르는.... 아니 그냥 딱 잘라서 눈치가 거의 없는 순진무구한 아이라고 할까나? 사오는 것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반 이상이니. 그래소 4:6의 비율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오기는 한다. 딱 4만큼.


  나는 현주가 권하는 레몬을 입에 물었다. 상큼하고 시원한 레몬의 향이 입 안 가득히 퍼지면서 나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어때. 맛있어?"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아이만큼은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으면 좋으려만. 아니 나처럼 이상한 개망나니 같은 뺑소니놈한테 안 걸리고 잘 살아야 할 텐데.


  나는 여린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다시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우거진 푸른 나무들과 창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 벌써 여름이구나.




















--------------------

뭔 내용인지 나도 모름.

...........

글 연습을 하느라 계속해서 단편을 씁니다.


라기 보다는 병원에서 회진 다 돌고 나면 외래 환자는 거의 안 오는지라

(1. 한의원이 너무 많다 2. 광고를 안 하면 모른다 3. 일단 한의원보다 더 비싸다)


소설을 쓸 시간은 남아 도는 군요.

.....


하하하하하하!

Who's 乾天HaNeuL

노력하라. 그러면 꿈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마라.
성취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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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5.03 08:22
    잘 봤습니다~ 제목은 반어법인가요;;
  • ?
    乾天HaNeuL 2012.05.03 17:46

    그냥 지은 겁니다. 아무 생각 없지 짓고 난 뒤에 글을 쓰다보니, 남자 애가 전신불구가 되어 있더군요. 멍....

  • ?
    산늘 2012.05.08 04:10
    병원에 계셨다니.... 저에게는 이것이 반전(?)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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