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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의 왕께 경배하라.

 

 검술학교의 배신자들이 그 말을 외치자, 도시의 일상은 죽었다.

 

 축구를 하겠답시고 돼지방광 하나를 쫓아다니던 수십 명의 사내들, 길거리로 흘러나오는 양의 피를 핥는 개들, 낭충병에 걸린 돼지고기를 내놓고 낮은 가격을 부르는 도축장 주인, 그 사이에서 뛰어 놀던 어린아이들. 싸움은 활발했으며 상거래는 성사되었고 삶은 충만했다.


 검은 판금갑옷을 입고 양손검을 든 사내가 도시 안을 걸었다.


 사내의 등 뒤로 그의 병졸들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 발바닥이 땅을 때리는 소리.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병자, 떠돌이. 흔한 사람들이지만, 도시에 충만했던 삶과는 인연 없는 사람들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두 눈에 구더기가 들끓지 않는다.

 피고름이 회반죽 대신 벽을 타고 흘렀다. 단번에 죽지 못한 사람들은 있는 힘껏 도망쳤다. 살았으나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과 공포에 몸부림 치다 죽었다. 가장 지독한 경우는 산 채로 죽은 자에게 끌려가는 것이었다. 한 남자는 해골들에게 붙들려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죽은 자의 왕이여, 부디 자비를! 그러나 왕은 자비를 몰랐다. 검술학교의 배신자들은 낄낄 웃으며 생존자들을 조롱하곤 심장을 찔렀다. 위대하고 영원한 왕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한 검술학교의 배신자는 죽음이 가득한 골목길에서 아직 숨이 붙은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에 물집이 잡히고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미친 파리떼가 그녀의 고름을 핥으려 덤벼들었지만 그녀는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러 그것들을 쫓아냈다. 신기한 광경이다. 이 도시에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저항할 기력도 없어야 할 텐데. 게다가 그녀는 사도를 똑바로 노려보기까지 했다. 흥미가 동한 배신자는 여인에게 걸어갔다. 그가 걸을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조금씩 높아졌다.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사도는 그녀를 천천히 살펴보더니 폭소했다. 그는 검 끝을 허공에서 한번 휘둘러 파리떼를 물렸다. 그제야 여인은 죽은 파리들을 입 밖으로 뱉어내며 기침을 거세게 내뿜었다.


 웃음을 멈춘 배신자가 물었다.


 "왜 아직 살아있지?"


 여인은 독기 어린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굴복할 것 같으냐, 이 더러운 시체야!"
 "좋은 말이군. 네 애비의 묘석에도 그리 새겼냐?"

 

 여인은 비웃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절규했다.

 

 "꺼져라! 난 살아 돌아갈 테다!"
 "무슨 재주로? 불가능해. 왕께서 행차하셨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해."
 "난 할 수 있어!"
 "흥미롭군. 어떻게?"

 

 여인은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 풀었다. 쩔그렁. 그 소리를 들은 사도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잠시 후, 밖으로 흘러나온 내용물의 일부를 본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잡동사니로군."

 

 교회 발행 금화와 조잡한 모방 성물, 그리고 약초 부스러기였다. 사도는 죽은 쥐를 집어들 듯 그 주머니를 들어올렸다.

 

 "이게 네 믿음의 근원이냐? 조야하고 애처롭다."
 "더 있어! 난 교회에 기부도 많이 했다고! 유명한 의사도 알아! 날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 호위병도 있어!"

 

 여인은 사도에게서 주머니를 낚아챘다. 그녀는 그 주머니를 자신의 심장처럼 꽉 붙들었다.

 

 "내가 죽을 리 없어! 당신들은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가졌어! 많이 가졌다고!"
 "무의미한 항변이로군. 왕은 그 누구보다도 부자야. 너희가 빈손이기에."

 

 사도는 검을 땅바닥에 박아 넣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투구를 붙들었다. 더러운 공기 속으로 드러난 해골이 말했다.

 

 "죽으면 백골이 될 뿐이지. 가졌든 안 가졌든. 진부한 사실이야."
 "난 아니야! 언젠가는 당신 말대로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여인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해골은 그녀를 다시 한번 비웃고는 투구를 썼다.

 

 "지금은 아니라고? 왕께서 행차하셨는데? 그래, 좋다. 왕께서 내게 주신 권능을 걸지. 내기하자."
 "내기라고?

 

 사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한 줄기 빛을 본 것처럼 희망을 되찾았다. 사도가 제안한 내기는 그녀의 예상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지옥 같은 장소는 벗어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디로든 도망쳐라. 내가 너를 쫓을 테니. 교회로 도망치겠나? 좋도록 해라. 의사를 찾겠나? 그것도 괜찮지. 기사들 뒤에 숨겠나? 과연 그들이 널 보호할 수 있을까?"

 

 여인은 기적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지 놀라기도 전에 도시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잊지 마라! 너는 왕의 이름으로 영원히 저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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