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6 01:27

3월 15일 병원에서

조회 수 529 추천 수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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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렇게 까지 떨리지 않았다. 과학고 입학시험, 수능, 아르바이트 면접,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때 보았던 경시대회까지 온갖 시험을 봤지만 단 한번도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온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전의 확률상 이번 면접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하지만 이전까지의 확률이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정말 조그만 확률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실패는 이번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만큼은 성공하기를, 이번 만큼은 성공하기를……

 병원에 다다를 때까지 속으로 이 말을 계속 반복하며 걸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는데 가끔 입으로 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내 사정을 말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셨나요?

 친절한 목소리로 카운터 간호사가 나에게 말했다.

 아뇨.

 집에 컴퓨터가 없다.

 그럼 여기 이거 작성해 주세요.

 간호사 누나는 나에게 a4용지 크기의 종이 한 장을 주었다. 받아 놓고 보니 얇은 종이 세장이 겹쳐있는 거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가 작문 해야 하는 부분은 마지막 종이의 반쪽 조금 안 되는 양이었다. 글 쓰는데 재주가 없다 보니 내 상황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 했었는데, 예/아니오 부분과 숫자로 답하는 부분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음료수 자판기 앞에 의자에 앉아 서류를 작성했다.

 여기 다 썼어요.

 카운터로 가 종이 뭉치를 내며 내가 말했다.

 가지고 계시고요, 이름이 호명되면 지정된 진료실로 가지고 가시면 되요.

 누나는 친절히 웃으며 안내해주었다. 이번 면접을 통과하면 이런 아름다운 미소도 못 보게 되겠다 싶어서 조금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열망보다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열망이 더 큰 사람 아닌가? 한시간 반쯤 지나고 세 명의 사람들이 내가 들어갈 진료실에서 나오자 내 차례가 왔다.

 김지선씨?

 내가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나는 덤덤하게 인사를 하며 내 종이 뭉치를 전달했다. 꽤 준수하게 생긴 훈남 타입의 남성이 어서 웃음이 나오는데 최대한 우울한 표정을 지으려고 한쪽 어금니를 꽉 물고 바닥을 응시하고 앉았다.

 이렇게 예쁘신 분이……”

 의사 선생님이 내 정보를 확인하면서 나지막히 말했다.

 부모님 안계시네요. 사고로 돌아가셨나요?

 나를 보고 물었다.

 . 두분이 같이 트럭으로 장사를 하시는데 물건 받고 오다가 사고가 나서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내가 답했다.

“친척은 없나요? 아니면 도와주시는 분은?

“친척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만나 본적은 없어요. 도와주는 사람 없었고요. 매춘 하고 나서는 정부 지원금은 집세에 다 쓰고 있구요.

 나는 억울한 마음에 속사포처럼 묻지 않은 지원금에 관한 말까지 했다. 살면서 항상 내 위치를 확인하고 살았다. 집세를 낼 때, 음식을 살 때, 직장에서 일할 때, 약 먹을 때, 좁은 방에서 혼자 잘 때 의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불운한 인생을 되돌아 보았다. 그러기 싫었는데도 내 의지로 막을 수 없이 계속해서 우울해 졌다.

 직업이…… 굉장히 어려운 직업을 가지고 계시네요? 자살하시는 이유에 직업적인 스트레스도 있나요?

“네. 제 적성도 아니고 그 때문에 병도 얻었으니까요.

“치료는 하셨나요?

“낙태까지 했는데요. 근데 이제 약값이 좀 부담스러워서 이렇게 왔습니다.

“그 병은 아직 완치법은 없으니까. 그거 참 안됐네요.

 의사는 내가 작성한 문서를 뚫어져라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의사라 그런지 에이즈 감염 사실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하지 않는 것은 참 좋은데, 나의 가장 우울한 부분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었다. 계속해서 건조한 표정이었다. 쭉 보다가 종이를 파일 처리하고 책상에 꽂으며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선씨. 병원을 통한 자살에 몇 명이나 성공할까요?

 내 인생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네?

 그렇기에 조금 놀라 말했다. 병원 시스템에 대한 질문인가? 나는 당황했다.

“병원 쪽에서는 의사가 자살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을 자살을 허용 할만한지 측정하는걸 원하는게 아니에요. 이런 일에서는 자살을 말릴수록 의사에게 특별 수당이 가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실적 때문에 나의 중대한 결정에 방해를 하겠다는 것인가? 방해가 아니라 이건 완전한 무시였다. 개무시.

 정말 이기적이시네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의사에게 완전히 도끼눈을 뜨고 말을 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세상을 살면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에 따라 행동한다. 물론 나도 나만을 위해 산다면 할 말없다. 다만 변명하자면 난 남을 도울 입장과는 조금 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만을 만나며 살았는데 죽음의 순간 까지도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죽음에 대한 열망이 끓는 것을 느꼈다.

 지선씨는 지금까지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요. 여기 보면 여러 단체나 협회에 가셨는데 잘 안된 모양이에요. 친척들도 좀 찾아 다녔는데 전부 도와 주지 않았구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고를 제외하면 지선씨가 자살까지 생각하게 된 것은 사람들의 이기심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제 이기심은 지선씨를 도왔어요. 생명을 지켰잖습니까?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위로라고 하는 걸까? 나에게 위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고 분노로서 생을 이어가게 해주겠다는 깊은 뜻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카운터에 진료비를 냈다. 의사의 특별수당이 될 진료비.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라디오에선 흥미로운 뉴스가 들려왔다.

“이회장이 병원에서 자살 허가를 받고 자살했다는 소식입니다. 이회장은 전부터 나라의 공직에 연관된 상황에서도 불법을 저질러 수감되고도 공직 때문에 다시 풀려나는 상황에서 상당히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고 사회로 돌아가서 자신의 조기 출소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공식 석상에서 자 회사의 위기를 거짓으로 말한 것에 대해 모두 고백하고 의사의 자살허가를 받았다는 후문입니다.

 특이 취향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자살하는 이의 꿈인 ‘병원을 통한 고통 없는 자살. 죽는 방법도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게 아닌 것이다. 지금 나는 옥상에서 불행한 나의 인생에 화룡정점을 찍으려는 참이다. 내 초라한 유서에는 세상에 남길 격언도, 특별히 복수 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 구지 찾자면 나 진료한 이진석 의사 선생님, 당신이 자살을 불허한 사람은 결국 자살했습니다. 이진석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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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ilerecan119 2011.03.16 06:58

    집이 아니어도 인터넷 할 곳은 많은데 ㅋㅋㅋ

    주인공 김지선 씨는 간호사 준비하는 구나 ㅎㅎ

    그런데 조금 부정적이다. 환경이 안좋아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주변사람들도 친하게 지낼수 있는데...

    의사 말 따위는 무시하시고요.

    힘들 땐 신나는 노래라도 들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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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尹主] 2011.03.16 07:20

     안락사 비슷한 개념이려나요? 자살을 용인하는 제도라니 신선하네요;


     이건 추측이지만, 마무리를 조급하게 맺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낯선 제도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야 없겠지만서도 마지막엔 어느 정도 배경설명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해요;

     사실 그것보다도, 라디오 뉴스를 듣는 부분에서 급하게 끝맺으셨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상황에서도, ...수감되고도, ...상황에서, ...느끼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문장이 길게 이어지는데, 지나치게 길어서 정리가 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글은 재미있었습니다. 흥미롭기도 하고요. 다만 마무리할 때 조금만 더 여유를 갖고 쓰셨다면 더 좋은 글 나올 수 있지 않았나 멋대로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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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2011.03.16 08:46

    배경설명은 당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서 안했는데 뉴스부분은 확실히 급하네요;;뉴스부분 쓸때 너무 흥분해서리;;

    윤주님 댓글은 상상이 아닌듯하네요 ㅋㅋㅋ 너무 공감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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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어^^ 2011.03.16 08:37

    허걱! 결말이 좀 충격적이네요...;;

    지선씨, 좀만 더 힘을 내시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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