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간 독자들 사이에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왜 이리 볼만한 책이 없어?
작가 또한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왜 이리 괜찮은 독자가 없어?
서로 그럴 거 같기도 합니다.
말이 되나?
말은 됩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볼 책이 없다. 쓸데없는 책들이 너무 많다.
동의하나? 저는 동의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난감한 글(비단 판타지, 무협만이 아니더라도)들이 많아집니다. 출판되는 책들의 반이상은 자신의 색깔이 없습니다. 그냥 볼만한 수준인 글이 최상의 색깔이라고 해야 할까요? 초보 독자라면 그 정도의 글을 보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보 수준을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뭔가 다른 걸 찾게 됩니다.
물론 어떤 작가분(S노벨 분들도 포함해서)들은 독자들 눈치를 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독자들은 당연히 자기 입맛에 맞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길 바랍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독자란 애초에 그런 생물입니다. 모든 독자가 OK하는 작품이란 있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면서(물론 그 방식은 독자의 기대치보다 높아야 하겠죠) 충격과 전율을 안겨줄 때, 혹은 작품 속에서 깊이 있고 공감 가는 메시지를 발견했을 때 열광하기도 하는 생물입니다.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독자보다 앞서 나가지 않을 거라면, 독자보다 독창적이지 않을 거라면, 독자보다 심지가 곧고 깊지 않을 거라면 자신을 작가라고 부르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독자가 그런 분의 글을 읽는데 시간 떄우기 외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장르 문학의 속성상, 대리만족감, 환상, 흥미 추구하는 것 맞습니다. 비록 흥미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장르소설이라도 어느 정도는 삶의 지혜나 작가만의 경험이 묻어나와야지요. 흥미본위의 한계를 깨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장르소설이 출판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천편일률적 내용의 개선이야말로 장르 문학의 미래가 사는 답이라는 관념입니다.
1, 2권 내고 작가라고 하면서 인기 없다 싶으면 그냥 사라지는 분들이나 자기 작품의 완결조차 내지 않고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작가분들은 과연 생계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이해받아야 하는지? 물론 동정론은 이해가 가지만 소비하는 견해에서는 가슴으로 이해하지만, 머리로는 용서가 안 됩니다.
드라마가 크랭크인 됐는데 미뤄지는 거 보셨습니까? 작가가 아, 스토리 안 떠올라 몇 주 미루자. 이러는 거 보셨나요? 글을 쓰는데 준비도 안 된 사람들이 날뛰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무작정 권수를 늘이는 것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과연 그 글이 7~8권 갈 가치가 있나? 아니, 가치 이전에 그럴만한 이야기인가? 제가 보기에 정말 그렇다. 라고 할만한 글은 정말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냥 대여점용(10대)으로 팔리니까 서점에서 팔리는 게 아니니까 늘릴 뿐이라고 생각되는 글들 많습니다. 가장 문젠 주변 잡기를 쓰면서 그게 스토리에서 꼭 필요하다. 라고 착각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런 환경의 주체는 바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서 읽는 겁니다. 누군가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사람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줄거란 기대에서입니다. 이미 경험해본 걸 되새김질 하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닙니다. 그 간접경험에는 같은 사건을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 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소하거나 커다란 진리들, 세상엔 이런 일, 이런 것,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사고의 확장, 예상을 뛰어넘는 상상력, 기상천외한 사건들, 논리정연한 지적유희, 가끔 계몽적인 훈계들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것만은 순수문학이건 장르 문학이건 전문서적이건 동화책이건 라이트 노벨이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일 뿐이죠.
만약 앞으로도 치고받고 싸우고, 약하다가 더 강해지고, 좀 더 강해지고, 더 강해져서 지존먹고(꼭 물리적인 강함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지위가 될 수도 있고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가 될 수도 있고), 주변의 어여쁜 여성들이 주인공에게만 줄기차게 꼬이는 그런 뻔한 내용만 나올 거라면 전 소설(라이트 노벨)보다는 차라리 만화를 보겠습니다. 그 편이 훨씬 박진감 있고 속도도 빠릅니다.
지금 말하는 양산형은 지금 가장 잘 팔리는 주류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잘 팔리니까 많이 나오고, 많이 나오니까 주류이고, 또한 양산형이란 이야기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게 좋은가?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라고 묻는다면, 저도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왜 아닌가? 선도하는 작가. 앞서 가는 작가는 절대로 대세라는 쪽으로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변덕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작가야 잘해야 월 1권이지만 독자는 수십 권을 볼 수 있는 기간입니다. 당연히 여러 번 본 건 물리기 마련이거든요. 누구도 그걸 욕할 순 없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출판사 탓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편집자가 간섭할 테니까요. 하지만,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고 인세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신인이건 뭐건 간에 프로입니다. 편집자와 싸워서라도 자기 글에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세상 어떤 분야든 프로는 아마추어와 다릅니다. 못하면 가차없이 2군행입니다. 뛰어들 때 충분한 각오를 하고 자기가 갈 길을 확고하게 해야 할 겁니다.
그럼 누구 잘못일까요?
독자 잘못입니다.
독자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런 글 원하지 않았어!
난 양산형(미소녀 지향 라이트 노벨) 안 봐!!
누구든 그렇습니다.
1,000권 팔릴 글보다는 3,000권 팔릴 글을.
3,000보다는 1만 팔릴 글을 원합니다.
많은 독자가 원하는 글을 작가는 씁니다.
출판사도 많은 독자가 원하는 글을 출판합니다.
하지만, 독자는 책을 사느냐, 안 사느냐로 호불호를 말합니다. 거기에 다른 요소들은 다 필요 없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합니다. 출판사는 오직 '진품'을 찾기 위해서 뛰어다녀야 합니다. 대개의 작품이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작품은 무진장 많은데도 독자의 선택 폭은 오히려 좁아집니다. 시장이란 건 경제학자들의 복잡한 이론들을 제쳐놓으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그럼 독자가 다 잘못한 거냐? 작가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독자만 죽일 놈이냐? 그럴 리가요. 근본적인 원인은 작가에게 매우 크게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장르 문학.
순수문학과는 다르게 마음의 양식을 찾기라기보다는 재미를 위해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대리만족하고 통쾌함을 얻는 그런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통쾌함을 얻기도 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족한 글들이 출판되어 나온다는 것은 독자들보다는 작가와 출판사의 잘못이 크다고 저는 봅니다. 소비자가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독자로서 제 생각을 두서없이 써 내려봤습니다. 물론 생각은 독자들 마다도 다 틀립니다. 작가분들도 생각이 다 다르듯이. 이건 순전히 제 개인의 생각이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각자 나름입니다.
작가분들이나 출판사에서 독자들은 시장을 몰라, 라고 한다면 전 당신들은 독자를 몰라요라고 말해주겠습니다. 서로 몰랐을 때 누가 더 손해인지는 각자 판단해야겠죠. 작가분들이나 출판사는 어려운 시장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치들이 있으면 취하면 됩니다. 그리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 됩니다. 독자들은 그런 조치들에 대해서 지지나 반대를 할 수도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책임은 전적으로 각자에게 있는 겁니다.
ex : 문피아 금강님의 글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이것도 재미있는 얘기네요;
기왕 나온 얘기니까 라이트노벨에 대해 생각해볼게요. 라이트노벨이 만들어지고 읽혀지기까지 대략 작가 - 편집자 - 독자 이 단계를 거칠 겁니다. 이건 사실 이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작가 - 독자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 독자가 현명하게 선택하고, 독자의 선택에 따라 작가가 각성하는 과정이 자연스레 일어날테니까요. 이론적으론 그렇습니다. 비록 수많은 인터넷 소설들이 욕을 먹고 있음에도....
작가 - 편집자 - 독자는 작가 - 독자의 과정에 중간 단계가 하나 추가된 겁니다. 이 경우 작가는 독자 반응을 곧바로 알 수 없고, 독자는 작가 글을 바로 읽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편집자를 거쳐야 하니까요. 특히나 라이트노벨처럼 작가 다수, 독자 다수인 경우 편집자는 작가 작품을 출판할 권리를 위임받는 동시에, 독자의 독서 목록 선정 권리를 위임받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쉽게 말해 편집자 맘에 드는 작품만 출판되고, 편집자가 찍은 작품들 중에서만 읽을 수 있단 겁니다. 인기 없는 출판서 자르는 것도 편집자고, 인기 없을 것같은 글 출판 거부하면서 모험하지 않는 것도 편집자고...
왜 편집자가 이렇게 큰 권력을 가질까요? 편집자에게 작가와 독자에게 없는 전문 지식이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평가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고, 독자의 취향을 읽어낼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거죠. 편집자가 '이게 독자 취향이야'라고 하면 작가는 믿어야 하고, '이게 좋은 작품이야'라고 하면 독자는 믿어야 합니다. 루갈백작님이 문제삼는 건, 이렇게 편집자가 선택한 작품들이 수준 이하라는 것 아니신지요? 그렇다면 저는 작가의 수준에 대해 논하기 앞서 편집자의 수준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출판사, 편집자들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상적이라면 그들은 독자 취향이 어떤 것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그것을 작가군에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투고된 작품들에 대해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나쁜 작품인지 분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 도구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의견만 생각한 거고...
루갈백작님 의견대로, 사고의 확장, 흥미 이외의 무언가, 소설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이 없다는 건 작가의 잘못이 제법 큽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편집자들은 무얼 하고 있나요? 그저 인터넷에 나돌아다녀도 좋을 글들을 굳이 시중에 꺼내놓은 편집자들의 생각은 뭔가요? 그렇게 시중에 풀린 글들을 한 번 읽어본 작가군들은, '아, 이 정도 쓰면 나도 출판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작가들이 자비출판해 질 나쁜 글을 내놓았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장르소설, 라이트노벨계 같은 경우라면 폐기처분해야 할 고물 중고차를 '아직 팔아도 괜찮다'고 설득해 중고차 시장에 올려놓은 딜러들, 그 같은 비전문적인 편집자들이 상당 부분 책임을 느껴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