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4 08:49

[초단편] 바람이 불었다.

조회 수 398 추천 수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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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건, 사람들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이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벌써 두 시간 째 정전은 계속되고 있었고, 누군가 있는 것마냥 창문은 쉼없이 덜컹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는 촛불이 몸을 흔들 때마다 그림자는 괴물에게서 달아나려 애쓰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런 그림자의 크기가 무서운 마냥 몸을 한껏 웅크리고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바람을 부르는 거란다-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제 큰 덩치를 이겨 넣느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 비명 소리에 놀란 촛불은 더욱 더 몸을 흔들어댔고, 더욱 어둠 속으로 숨고 싶어 하는 그림자는 촛불의 가느다란 빛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기 바빴다.

아가야,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이걸 기억하렴-

어머니는 나를 꼬옥 껴안으셨다. 바람은 기어코 안으로 들어오려는지 창문을 부술 듯 흔들어댔고, 낡은 창문은 버티려 안간힘을 쓰느라 삐그덕대었다. 바람은 흉폭했고 집요했다. 이쯤 되면 그냥 지나쳐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갈 만도 하련만 기어코 그 찬 채찍으로 나를 때리고야 말겠다며 더욱 더 힘을 쓰기 시작했다. 온 집이 우르릉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눈을 감고서 어머니 품에 파고들었다.

사람들의 소망은, 때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단다-

어머니는 그런 날 껴안고서 자장가를 불러 주셨고, 나는 그 익숙한 멜로디에 스르르 잠에 빠졌다.

누군가 너를 해하더라도, 넌 그를 미워하지 말으렴-

너도 바람을 불게 할 수 있으니까-

--------

"여기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ㅇㅇㅇ 마을입니다. 매 해 태풍에 인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이 마을에는 모두 서른 여섯 명의 마을 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만, 현재 확인 된 시신만 벌써 서른 다섯 구 입니다. 인명 구조 팀은 남은 한 명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현장을 취재하는 헬리콥터 소리에 뒤섞여 아나운서의 발음이 불분명하자 아나운서는 카메라 앞에서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그 말을 정정해야만 했다.

"이봐! 여기 사람이 있어! 깔린 것 같아!"

"잔해가 너무 무거워! 기중기! 기중기!"

가까스로 치운 잔해 밑에는 한 여인이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다. 마지막 시신이었다. 인명 구조 팀은 이 사실에 숙연해졌다. 마을 전체의 사람이 죽어버린 셈이었다. 태풍은 그렇게 잔인하게 한 마을의 주민 모두의 생명을 앗아갔다. 팀장은 마지막 시신의 눈을 감겨 주기 위해서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시신의 얼굴에는 한 치의 두려움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여서 오히려 미소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 을 발견하였다.

"아니! 이건!"

아직 탯줄조차 끊기지 않은 핏덩이가 그녀의 품 안에서 발견되었다. 아기는 그녀의 품 속에서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는 팀장은 시신의 몸이 이상스럽게 따뜻하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마을의 서른 일곱 번 째 주민을 구조 했음에 감사하였다.


바람이 불었다.

===============

 

2004년.

 

장편이 되려다 만 에피소드였지요. 바람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의 프로파일로 사용하려 했습니다만, 그냥 버려진 초단편이 되고 말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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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1.01.24 19:57

     인물 설정으론 좋을 거 같은데요 독특하기도 하고, ㅎㅎ

     혹시 <마녀>라는 만화책 보셨나요? 두 권짜리로 된, 좀 특이한 책인데...혹시 구하실 수 있다면 거기 에피소드나 분위기가 이 캐릭터 구체적으로 잡는 데 도움될 거 같아요. 

  • ?
    타이머 2011.01.25 05:29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_^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7 03:19

    왜 바람이 누군가의 소망인거죠?

    음, 그 부분이 설명이 안되어 있어서 좀 애매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어쩌면 저 아기가 바람을 조종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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