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도시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입니다. (기억이 어렴풋하여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2002 한일 월드컵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오로지 즐기는 것에만 눈이 밝았던 초등학생 시절, 게임을 너무도 좋아하여 공부를 제치고 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던 저의 생활은 게임 중독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런 게임 마니아적 성향을 몇 년간 가져왔기 때문인지, 어느날 문득 게임을 플레이만 하기 보다는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놈이 기특하게도요.
하지만 그러기엔 제 나이는 너무 어렸습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프로그래밍의 ㅍ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게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었지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고 간단하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란 동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이상을 등에 업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RPG만들기 툴'.. 당시 시리즈 최신 발매품이었던 RPG2000을 보고,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는 평을 보았을 때의 기분은 희미하지만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원하던 것이 눈 앞에 놓여있다는 어린 날의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RPG만들기 툴을 알게 되었고, 나름대로의 게임 제작을 시작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이트를 물색하던 도중, 이 부류의 메카라는 곳을 발견합니다.
그곳이 창조도시였습니다.
창조도시로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정말 '거대 커뮤니티'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그림동, 문학동, 음악동으로 세분화되기 이전, 순수하게 게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열정을 가진 이들이 뭉친 곳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지요.
당시 지속적으로 선정되었던 우수작들을 플레이해보며 감탄하고, 하루하루를 액션 RPG 만들기 강좌 연재가 계속 되기를 기다리고(매일같이 강좌 파트로 들어와 다음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분께 정말 감사했는데, 닉네임을 기억할 수가 없네요. 결국 연재는 마무리짓지 못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작들을 마주하고 하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습니다. 저의 하루는 그렇게 반복되었습니다. 눈을 뜨고, 등교, 하교, 창조도시, 취침.
어린 놈의 인생에 굉장한 부분을 차지했던 창조도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애착이 깊어졌습니다. 커져버린 애착 인지했을 때부터, 게시판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모두와 소통하고 싶었거든요.
하루에도 글은 끊임없이 올라왔고, 제 글도 그 부류에 점차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재미없는 글도, 장난 글도, 모두들 재미있게 응대해주었습니다.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모든 회원을 가족처럼 느꼈습니다. 오래 전 기억이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따뜻했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마땅한 닉네임이 없어 그냥 본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리뉴얼이 단행되고, 나도 창조도시에서 쓸 닉네임 하나 정해야겠다 싶어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돌대가리인지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어, 그냥 메모장에 대고 키보드를 휘갈기기 시작했습니다. ㅓㄹ멀ㅈ머자ㅣ럼 같은 식으로.
자음 모음의 폭풍 속에 멀쩡한 글자가 보였습니다. 간격을 띄고 나, 카, 리가 살아있었지요. 정말 단순하게 이걸로 하자라 정했고, 창조도시 활동을 위해 정했던 닉네임은 현재까지도 웹상에서의 저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창조도시의 존재로 인해 제 닉네임이 탄생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차례의 리뉴얼을 겪어오며 정말 수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모두를 기억할 순 없지만, 전부 재밌었고, 다정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과 자유게시판에서 만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 즐거움은 게임에 비할 바 없었지요. 그렇게 게임 중독에서는 멀어져가고, 창조도시 접속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일상에서의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받고, 힘을 낼 수 있게끔 함께들 해주셨고..
오그라듦과 과장이 혼재하는 멘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창조도시는 저에게 의사와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점점 창조도시가 게임 제작 포탈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종합 커뮤니티로 발돋움해갔습니다. 사이트가 커질 수록 저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창조도시와 수년을 함께했습니다. 저에겐 하나의 일상으로서 단단히 자리잡은 이곳을, 다른 회원 분들이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개편이 단행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떠나버린 분들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변화에 실망했던 모양입니다. 함께 집을 지어왔던 가족들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예전에 느꼈던 편안함과 따뜻함을 더이상 느낄 수 없었습니다.
창조도시와는 그렇게 멀어져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창조도시에 접속해있습니다. 예전 접속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가끔씩 들어와서 눈팅하는 식으로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천무님께서 지속적으로 창도의 현 현실을 논하는 저에게 이런 표현을 쓰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쇠퇴한 마을에 대한 애잔함'.
맞는 말입니다. 창조도시가 분명 예전의 활기를 잃었음은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않고 계속 찾게되는 것은, 진실로 제 삶의 일부였던 마을에 대한 애잔함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정할 순 없겠지요.
저에게는 확실히, 하나의 마을입니다.
이곳과 함께하며, 저는 초등학생에서 어엿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공백기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같이했던 이 사이트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변함 없습니다.
다시 전성기가 올 거라 굳게 믿습니다. 하루 빨리, 다시금 융성해진 저의 마을을 보고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