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27 02:21

단편-뽁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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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백 퍼센트 픽션입니다. 정 체, 물, 튼 로 는 그 떤 도 가 을 다.


얼마 전에 휴가를 나가서 제대한 친구 녀석을 만났지.  사람들은 다 이상하다는 편견을 심어준 애였는데, 괴팍하기로만 따지면 아마 대한민국에서 100위 안에 들 거야. 전방에서 복무해서 (자학풍으로) 자기도 나름 대한민국 5%라고 자부하는 녀석이었는데, 분명히 전역했으니 싱글벙글한 표정이어야 함에도 어딘가 질려 있는 표정이었어. 싫다는 녀석을 동네 싸구려 호프로 끌고 가서 맥주에 치킨을 곁들이며-나는 술을 못하니까 치킨에 맥주를 곁들였지만-무슨 일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녀석은 고개만 계속 흔들며 술만 퍼먹었어. 결국 얼굴이 벌겋게 될 때까지 맥주를 퍼마시고야 한숨을 쉬며 걔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


"때는 11월, 눈이 내리네 마네, 나는 빼빼로를 옆엣놈보다 얼마나 더 받았네 하는 게 주된 관심사이던 시절이었지. 내가 모처럼 소포를 받아 풀고 있을 때였어. 그 지긋지긋한 뽁뽁이를 풀고 안에 있는 과자님의 옥체를 알현하는 동안, 옆에서 세 달 아래 후임 녀석이 침을 흘리면서-문자 그대로!-보고 있더라. 내용물이 아무리 과자라도 그렇지, 세상에. 눈빛이 완전히 애니 윌크스*의 그것이었어. 가만히 뒀다간 소포 채로 잡아먹힐 것 같았지. 그래서 난 후임에게 과자 하나를 내밀며 말했어. "얌마, 이거 줄 테니까 침부터 좀 닦아라." 그런데 녀석의 대답이 참 가관이더라. 또라이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였을 줄이야.


"살 찌는 과자 같은 건 필요없고, 그 뭐냐. 톡톡 터뜨리는 비닐 그거 주십쇼."


"미친놈. 뽁뽁이 말야? 옛다."


평소에도 제정신은 아닌 놈이라서 또 병이 도졌나보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난 분명히 봤어. 뽁뽁이를 받아든 녀석이 침상의 자기 자리에서 귀기어린 얼굴로 비닐의 방울을 하나씩... 하나씩 터뜨리는 걸 말야. 마치 부모님의 원수를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손톱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는 것 같았지. 후임 녀석의 그런 모습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 과자 먹을 입맛도 싹 떨어졌던 덕분에 대충 상자를 어딘가 짱박아 둔 다음 사지방이라도 가려고 생활관을 나왔는데, 계단을 올라가는 그때까지도 톡, 톡, 톡. 뽁뽁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렸어.


*애니 윌크스: 러브코미디 영화 '미저리'의 등장인물. 섹시한 여간호사로 주인공과 함께 뜨거운 겨울휴가를 보낸다. 그 외에 추천할만한 영화로는 명절 가족드라마 '샤이닝', 일 중독자 작가가 사연이 있는 호텔 방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가까운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휴머니즘 다큐멘터리 '1408'등이 있다.

저녁에도 녀석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지. 아까 그걸 보고 무서워서 되도록이면 떨어져 다녔는데,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샤워할 때도 녀석은 뽁뽁이를 손에서 놓질 않더군. 점호 때가 다 되자 결국 그것도 다 터뜨려 버렸는지 빈 손으로 있었는데, 곁눈질로 보니까 녀석의 손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어. 엄지랑 검지만. 높으신 분 눈에 그게 딱 걸리는 바람에 애 관리 잘하라고 쿠사리를 먹었지. 결국 놈을 갈궜어. 근데 갈구는 도중에도 솔직히 난 걔가 무서웠어. 눈이 완전히 마약 중독자랑 다를 게 없었거든.

그날 밤에 꿈을 꿨는데, 내가 신혼이라 마누라랑 같이 혼수품 정리를 하고 있지 뭐야. 꿈속이라도 마누라 얼굴이 수지*랑 똑같다니 아주 기분이 째지더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정리하다 보니까 왕창 크고 비싸 보이는 가전제품 상자가 하나 있더라. 마누라가 물어보더군.

*수지: 공신력 없는 자료에 의하면 현역병들 중 아이유보다 수지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오빠, 저건 뭐야? 안엔 뭐가 들어있어?"

애써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감춰보려고 노력하며 난 같잖은 추리를 내놨어. "글쎄? 에어컨이나 냉장고 아닐까?" 발로 툭툭 쳐 보니 제법 묵직하더군. 끈을 끊고 상자를 열어봤는데, 맙소사. 또 뽁뽁이야. 순간적으로 기분이 되게 나빠졌지만 물건 안 상하려면 완충제-스티로폼도 있는데, 왜 꼭 뽁뽁이를 넣은 거지?-는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수지 앞에서 화를 낼 순 없으니까 참았지. 화를 꾹꾹 누르며 뽁뽁이를 뜯어냈더니, 이게 밑도끝도 없이 풀려나오더라. 뽁뽁이만 거의 3m 가까이 풀려나오자 나는 결국 못 참고 상자를 힘껏 걷어찼어. 넘어진 상자에서 기다렸다는 듯 뽁뽁이가 마구 토해져 나오더군. 얼굴에 핏기가 빠져나가는 가운데, 뽁뽁이는 빠른 속도로 발목까지 차올랐지. 뒤에서 마누라가 불렀어.

"자기야, 자기는 왜 그렇게 뽁뽁이를 싫어해?"

돌아보자 그녀의 얼굴은 어느 샌가 그 후임놈으로 바뀌어 있었어. 손으로는 뽁뽁이를 주워서 하나씩, 하나씩 터뜨리고 있었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통에 나는 뒷걸음질쳤지만, 세 발짝도 안 되어서 있지도 않았던 벽이 등을 쳤어. 그녀, 아니 그 새끼가 내 손에 뽁뽁이를 쥐어주며 말했지. "저는 완전 좋아하는데 말입니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서야 그게 꿈이라는 걸 알게 됐어. 용트림을 워낙에 거하게 해서 양 옆에 누워 있던 놈들이 잠결에 짜증을 냈지. 만일 그때 너무 질려 있지 않았다면 놈들을 깨워서 실컷 갈궈줬을지도 몰라. 너무나도 생생한 꿈에 손을 마구 털자 비명 소리를 듣고 와 있던 불침번*이 그야말로 미친놈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더군. '쯧쯧, 전역할 때 다 되서 저 꼴이라니. 나는 정신줄 잘 챙겨야지.' 


*번: 무 는 은 (면 마 원)한 서 는 로 의 고 만, 한 의 는 무 안 는 놈, 아니면 자다.


"...발놈아, 뭘 야려?" 한 마디로 녀석을 쫓아보낸 뒤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뽁뽁이 귀신놈이 자고 있는 쪽을 봤어. 끊임없이 부스럭거리고 있더군.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해봤지만 이미 깬 잠이 다시 올 리도 없었어. 기상나팔이 울릴 때까지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꿈속에서 외장하드 속의 그녀들과 재회하며 내는 신음소리, 그리고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나는 천장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지.

며칠간은 녀석이 잠잠하길래 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어. 찝찝하기는 했지만 전역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런 건 신경끄고 열심히 짱박히며 도망다녔지. 하지만 녀석이 큰 소포를 하나 받으며 문제가 생겼지. 우체국에서 살 수 있는 제일 큰 박스 있잖아. 10호? 아무튼 그걸 녀석이 힘겹게 들고 오더만. 그래서 소녀시대를 보다 말고 고개만 살짝 돌려서 그쪽을 훔쳐봤지. 놈은 처음으로 에로영화 테이프를 빌려와서 VCR에 넣어보려는 것처럼 보였어. 거의 열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녀석이 침대에 누운 애인 다루듯이 박스를 뜯고 꺼낸 게 뭐였는지 이젠 너도 짐작 가겠지? ...발, 뽁뽁이였어. 길이는 키친타올 정도에, 굵기는 어린애 허리통만한 놈을 네 개 상자에 쑤셔넣어 보냈더라고. 틀림없이 집에 전화해서 그랬겠지. "엄마, 내가 필요해서 그런데, 뽁뽁이 좀 보내줘. 크면 클수록 좋아!" 보내라니 어쩔 수 없이 보냈겠지만, 부모님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일 거야. 나는 결국 그 주 내내 놈의 뽁뽁이 터뜨리는 소리를 반주로 삼아 지내야 했지. 내가 전역할 때 또 일이 터졌는데, 그걸 참지 못한 누군가가 윗선에 이야기해 버린거야. 결국 녀석은 뽁뽁이는 다 뺏기고 뽁뽁이 근처에도 못 가게 되었지."

"얌마, 그럼 완전히 끝난 이야기잖아. 왜 아직도 표정이 그래? 삐콤씨 필요하냐?"

내가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자, 벌개진 녀석의 얼굴이 벽돌이라도 깰 것처럼 딱딱하게 굳더군. 내가 따라주겠다고 할 틈도 없이 피처를 조끼에 기울여 넘칠 때까지 붓고 벌컥벌컥 마신 다음 걔가 다시 말했어.

"얘기 다 안 끝났어. 전역하고 부대에 면회를 갔는데, 걔가 안 보이는 거야.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글쎄 얘가 그것도 못 참고 위병소*를 탈출했다는 거야. 초인적인 속도로 도망가서 인근 우체국에서 붙잡혔다고 그러더라. 글쎄, 이놈이 잡힐 때 공포에 질린 사람들 가운데서 거기 있던 뽁뽁이를 풀어서 터뜨리고 있었다네. 잡아가려고 그러자 '어디서 내 뽁뽁이를 건드리고 지랄이야!' 라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지금은... 에이, ...발. 알고 싶지도 않다."


*위병소: 남자는 인생에서 울어야 할 때가 4번 있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 위병소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더니 진짜 그대로네."

그 뒤로 떡이 될 때까지 이놈저놈 불러서 2차 3차 가고, 누가 누굴 부축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녀석을 택시에 태워 보냈었지. 이제 가로등에 기대서 술도 깰 겸 멍하니 서 있었는데, 문득 녀석이 외투를 놓고 간 걸 알아챘어. 지갑이랑 핸드폰 들어있는 거 치고는 주머니가 묘하게 빵빵하더군.

안에는 뽁뽁이가 가득 들어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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