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0 02:27

성배:1번 기록(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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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기록을 남기는 것을 쉬어야겠다. 과다출혈로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글씨를 쓰느라 피를 많이 흘렸다. 물어뜯은 손가락이 아리다. 빳빳하던 구레나룻 털도 이젠 피를 먹어서 펜으로 쓰기가 마땅찮다. 하지만 글자를 쓸 공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30. 글자를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다. 배가 고프다. 눈도 피곤하다. 잠들면 끝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차라리 잠을 자다가 그 끝이란 걸 맞는다면 그걸로라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남기는 기록이 되겠지.

 

 31. 아직 안 죽었다. 하지만 여전히 갇혀있다.

 

 32. 문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꿈쩍도 안한다.

 

 33. 수납장에 놓여있던 타원형 물체들을 하나씩 집어서 문에 가져다 대보았다. 사실 문이라고 해봐야 벽면에 사람이 드나들만한 크기의 면적을 에둘러 색이 다른 부위가 있는 것 뿐이다. 카드 같은 것으로 여는 게 아닐까 해서 시도해봤지만 안된다.

 

 34. 타원형 물체들이 잡기 쉽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제부터 그것들을 핸디라고 부르기로 했다. 한국 사람이면서 곧죽어도 영어를 들먹인다. 나란 인간이 좆만도 못한 놈이라는 생각에 열불이 치솟는다.

 

 35. 핸디로 저글링을 해봤다. 하나 하나가 다 살생도구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나한텐 별 상관없는 이야기다.

 

 36. 갑자기 문이 열렸다. 아니 이게 문이 맞았다!

 

 37. 나가야할지 남아있어야할지 망설여진다. 보험 차원에서 내 시체가 올려져있던 책상을 문간에다 끼웠다. 다시 닫혀버리는 일은 막았다.

 

 38. 커다란 하얀색 사각형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핸디를 들이대보았지만, 안먹힌다.

 

 39. 문득 이 곳이 집도를 하는 수술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핸디를 집어들어 내 시체에 대어보았다.

 

 40. 안된다. 역시 여기서는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게 없다.

 

 41. 문이 닫히려고 했지만 다행히도 책상을 끼운것이 먹혀들었다. 하지만 이젠 조바심이 나서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 나는 책상을 딛고 내 시체를 넘어 문 밖으로 나왔다.

 

 42. 나는 괴물들 한가운데에 있다.

 

 43.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모습을 한 것들이다. 하지만 원초적인 감이란게 있다. 이것들은 나를 죽였던 그 괴물과 같다. 그 괴물은 나를 죽였는데.. 이것들은 어째서인지 나를 가만히 보고만 있다. 이런 상황에 기록을 하는 나란___ _   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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