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9 07:26

글라스

조회 수 255 추천 수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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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면 잔은 빈다.

 방금 전까지는 아직 내용물이 남아있는 잔 이었겠지만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이 지나면
 이제 가치가 없다.

 버려지는게 차라리 낫겠지.


 꽉 차있거나 한 방울 남아있거나 빈 잔은 아니다.

 그리고 난 빈 잔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렇게 망연하게 빈 잔만을 바라보는 거겠지.

“손님, 이제 문 닫아요. 죄송하지만 나가 주셔야겠네요.”

 밤을 새웠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게를 나간다.
 차라리 취해서 비틀거리는 걸음걸이였으면 좋으련만, 꼿꼿하게 설 수 있었다.
 7시간동안 칵테일 한 잔, 청소를 하던 점원의 말투가 미묘하게 까칠한 것도 내가 과민한 탓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의 취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일부러 살짝 흐트러지게 걸어본다.

 어슴프레하게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새벽이다. 주변에 깔린 푸른 공기, 푸른 온도.
 으슬으슬하다. 소름이 돋은 맨 팔을 쓰다듬으며 걸어간다.
 집에 가자마자 다시 나올 준비를 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밤을 샐 생각은 아니었는데.'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빈 잔, 마지막 한 방울이 남고, 그 한 방울마저 삼켜져버린 그 텅빈 잔. 그 잔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천천히 마신다고 해도 마시는 이상 잔은 비워진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엎어져 잠이 들었다. 오늘 해야 할 일들조차 잊은 채-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 놓고 세수를 하자마자 전화가 오고, 나는 전화를 받는다. 아무 말도 없다. 전화를 끊고 다시 나갈 준비를 한다.
 옷 정도는 갈아입는게 좋겠지. 머리도 감고, 수업 중에 졸지나 않으면 다행이야.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졸면 안되라고 얘기해 줄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 없어도 중요한 때인것도 알고 있지만.

 어떻게 졸업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졸업작품 정도는 제대로 만들어 보고 싶단 생각도 든다.
 변하지 않을텐데 매번 그래왔듯이 또 기대를 건다.

 하루가 쏜살같이 가고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어느 것 하나 핑계 댈 만한 것도 없이

 시간이 간다.

 그게 아쉽다. 난 뭔가 그럴싸한 이유라도 생기기를 바라는 걸까.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의자에 걸터앉아 메뉴를 쭉 훑어 본다.
 오늘은 상큼하게 미도리 선샤인. 나와는 잘 안 어울릴지도.

 오늘도 난 마지막 한 방울을 붙잡고 얘기를 하려고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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