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16 19:07

영웅의 발자취 序

조회 수 202 추천 수 3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하늘에 멍하니 제사를 올린 지 두 다경이 지났다. 여학자들
의 천막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가 된 것이다. 내려
놨던 정신줄을 급히 찾아 잡고는 비상경계 태세를 취했다.


 


아니, 이건 은유가 아니라 진짜다.


 


사랑이니 뭐니, 나답지 않은 것들을 너무 생각해서 그런가. 아무
래도 오늘은 걸어 나오는 그녀를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4기
가 들어와 부대생활이 풀린 이후로는 처음으로 정자세를 취해 외부
를 경계중인 내게, 자박자박 발소리가 다가왔다.


 


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허억?”


 


내 얼빠진 목소리에 아우렐리에 아가씨는 화가 나신 듯했다.


 


아니, 이미 화가 나 계신 듯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아름다운 아미
를 한껏 찌푸리고, 페넬로페 아가씨보다도 더 심통맞은 표정을 지은
채 내 뒤통수를 쏘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페넬로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루포리? 그 애가 왜 그렇
게 우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히 당신의 부하가 그 아일 깨워
서 함께 나갔고, 당신과 한참 얘길 나눈 그 아인 돌아와서 한참을
울었어요. 울다 지쳤는지 지금은 잠들었지만…….”


 


입을 떡 벌리고 보는 내게 아가씨가 예의 그 화난 표정으로 매서
운 눈빛을 쏘았다.


 


아아, 그 모습도 정말 귀엽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거냐니까요! 이러긴 싫지만, 나 정말 루포리
를 미워할 수도 있어요. 내 말 알겠어요? 정말 화낼 거라구요!”


 


나는 살면서 이렇게 귀엽고도 무시무시한 협박을 들어본 적이 없
었기에 당장 진지하고도 열렬하게 내 사정을 변명했다. 난 사실만을
말했다. 물론 「루포리 종마설」이나 내 몇몇 대사 등 망측한 부분은
살짝 왜곡하면서.


 


한 다경에 걸친 내 전심전력의 변명에 그녀는 조금씩 화를 풀었
다. 데니스의 내밀한 사랑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듣더니,
페넬로페와 내 대화 대목에선 숫제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응응, 그
래서요?’ 하고 재촉한다.


 


“그 말들은 사실 다 연기였습니다. 닥터 컨프턴이 레이디 클라시
에를 사랑하고 있단 걸 전 가장 충격적으로 전하고 싶었죠. 들은 얘
긴데, 불안정한 상태에서 고백을 받았을 때 여성들이 더 잘 받아준
다고 하더라구요.”


 


“아하하, 그런 게 어딨어요?”


 


그녀가 밝게 웃으니 나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제가 봤을 땐 닥터 컨프턴처럼 괜찮은 남자 흔하지 않거든요?
그런 친구랑 어려서부터 친했다면, 레이디 클라시에로서도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으리라 저는 믿어요.”


 


아니라면 큰일이지만. 아가씨는 미소 띤 얼굴로 날 보고 있다.


 


“루포리…… 우선, 아까 화낸 거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나는 깊게 고개를 숙여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심 중얼
거린다. 걱정 말아요. 당신한테라면 이 루포리, 뺨을 맞아도 즐거울
테니까.


 


“그리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어어, 뭐가 고마운 걸까 물어보면 대답해 줄 만한 상황인가, 이
거? 확신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염두를 굴려 보다가, 뭔가가 머리에
팍 떠올랐다. 오오, 그렇다면,


 


“레이디 필모어, 혹시, 레이디 클라시에는……”


 


“응…… 그래요, 루포리. 그 애, 데니스 정말 많이 사랑했어요.”


 


마음으론 감동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린다. 데니스의 짝사랑이 아
니었어!


 


“실은, 곁에서 보기에 좀 안쓰러웠어요. 같은 백작가라 하지만 무
가인 클라시에 가문은 이미 그 힘이 쇠락해 가고 있었거든요. 비록
장자가 아니라 하나 촉망받는 젊은 컨프턴을, 클라시에의 장녀는 데
릴사위로 맞을 엄두를 낼 수 없었죠. 그것뿐이면 어떻게 되련만, 소
꿉친구였던 두 사람,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페넬로페는 자
기가 참 못났다고 말하곤 했어요. 누구에 비겨 본 걸지는 안 봐도
뻔하죠. 누가 봐도 완벽하고, 눈부신 소꿉친구가 늘 그녀 곁을 지켰
으니까요. 그 행운이 오히려 그녀에겐 자괴감이 된 거에요. 그녀의
단점까지 속속들이 아는 저 완벽한 사람이, 그녀를 결코 사랑할 리
없다고 단정했던 거죠. 나도 데니스와는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
중재해 주질 못하고 그저 시간에 맡기고 있었는데, 아, 다행히도 신
께서 무심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당신을 보내 데니스도 페넬로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려 줬으니, 이제 두 사람은 모든 장애를 뛰
어넘을 거예요.”


 


오랜 고민을 털어놓듯 얘기한 그녀는, 이제 따스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뭘 했느냐고? 난 불경스럽게도 그녀를 외면
한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야말로 너무도 감사했으니까, 내가 믿
는 하늘의 아저씨한테.


 


“거기 가게 되면, 정말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황당한 혼잣말에 당황한 아가씨께 설명했다.


 


“저 겁먹고 있었어요. 제 심정 짐작 되세요? 만약에 레이디 클라
시에가 제 말을 안 믿거나, 아니면 데니스를 좋아하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고 소문이라도 낸다면 어떻게 수습해야 되나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구요. 그런데 저기 계신 아저씨가 제 소원을 이뤄주셨네요.”


 


아가씨는 내 이상한 방식의 숭신(崇神)을 듣곤 밝게 웃었다. 그리
고 물었다.


 


“소원까지 빌었나요, 루포리? 뭐라고 빌었어요?”


 


“좋은 여자가 좋은 남자를 좋아하게 해 달라고요. 근데 이거 너무
당연한 건가요? 하핫!”


 


아가씨는 잠깐 놀란 눈으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렇게 이상한 소
원은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다.


 


아가씨는 이내 나처럼 즐거워했다.


 


“응, 당연한 소원이네요. 그래서, 그 소원 이뤄질 것 같아요.”


 


“하핫, 무슨 말씀을, 이뤄진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뻐하고 있잖
아요? 맞죠?”


 


아가씨는 너무 기뻤는지, 밝은 얼굴에 한 줄기 눈물 선까지 그리
며 웃고 있었다.


 


아우렐리에 아가씨는 웃음이 잦아질 때 즈음, 눈인사만을 남기고
천막으로 돌아갔다. 난 아쉬움에 그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5기 애
들을 깨울 시간이 됐음을 깨달았다.


 


새 하루의 시작이었다.


 


 



식사 후에, 난 데니스와 페넬로페 아가씨의 방문을 받았다. 대단
하다. 진실이 알려진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 이미 서로서로 달콤해
진 듯 보이는 이 신생 커플은, 어째서 자기들끼리 달콤함을 나누지
않고선 멍청한 이 솔로를 놀리러 온 것일까?


 


“루포리, 너는…… 너의 맹세를 지켰구나.”


 


데니스는 감동받은 표정으로 꿈결처럼 말했다. 으으으, 닭살 돋아,
이 양반아!


 


“고맙다, 넌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을 주었단다.”


 


페넬로페 아가씨는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이제 더는 초롱
초롱한 눈빛을 보내지 않아 부담을 던 나도 유쾌하게 대답했다.


 


“닥터 컨프턴, 레이디 클라시에.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십쇼. 10년
안에 세계를 주름잡는 해결사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이 문구 어떻습
니까? 해결사 루포리 일스터 : 연인들의 큐피드!”


 


뜬금없는 농담을 지껄이는 내게 당황해서 괜찮은 문장이다, 관심
을 끌 수 있겠다 등등 실없는 감상을 얘기하고 나서 그들은 말을
그쳤다.


 


잠깐의 침묵 후, 데니스가 내게 기다란 목함 하나를 내밀었다.


 


“네게 혹여 닥칠 위험에서 이것이 널 지켜줄 수 있다면 좋겠구
나.”


 


눈치를 살살 보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번개처럼 목함을 열어 봤
다. 선물은 역시 받은 자리에서 보는 게 제 맛 아닌가?


 


목함 안에는 한 자루 검이 칼집과 함께 들어있었다. 호화로운 비
단 안감 위에 놓인 검은 의장용 검처럼 아름답고 빛났다. 그러나 그
날과 재질은 결코 멋만 부린 의장용 검의 것이 아니다. 이 재질은
필시-


 


“저기, 닥터 컨프턴, 이거 미, 미스, 스릴 아닙니까?”


 


잠깐 고민하던 데니스가 밝게 웃었다.


 


“아하하, 루포리, 「미스릴」이라고 말한 거냐? 음, 네 생각대로다.”


 


내가 「까무러치기 일보직전」 표정을 짓자 그가 변명(?)했다.


 


“물론 도금일 뿐이야. 잘 벼린 칼에 아주 얇게 한 겹 미스릴이 덮
여 있다고 하더군. 허나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전투에선 이가 나가
지도, 부러지지도 않겠지.”


 


에잇, 그 뿐이 아니다! 같은 미스릴이 아니고선 어떤 칼도, 갑옷
도 이 검을 막을 수 없다. 도금일 뿐이라고? 아니다, 결코 부서지지
도, 깨지지도, 녹지도 않는 신비의 금속 미스릴은 한 겹만 있어도
풀 플레이트 메일의 강도를 웃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미스릴로 만든 칼이란 건 마법시대의 유물로 이제는 만들 수도
없는 희소품, 즉 초초초고가의 사치품이란 말이다!


 


“끄악, 못 받아요! 이런 걸 제가 어떻게 받습니까!? 이거 하나면
우리 용병대를 사고도 남을 걸요?”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내가 이 검의 재질을 알아본 것도 미
스릴제 검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묻지
말라. 「성난 소」 용병대의 대장이 미스릴제 검을 갖고 있다는 건 극
비 중의 극비니까.


 


데니스는 왠지 이상하다는 투로 갸웃거린다. 내가 뭔가 실수한 걸
까? 데니스는 갑자기 웃었다.


 


“하하, 루포리,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네게 준다고 했어?”


 


응? 그 말 아니었나?


 


“잠깐 빌려주겠다는 거야. 네가 이 검의 도움 없이도 몸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만큼 강해졌을 때 내게 돌려줘. 그리고 그 때
우리의 아이에게-”


 


데니스는 페넬로페 아가씨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다정한 눈빛을 주
고받는다.


 


“너의 그 강해진 검술을 가르쳐다오. 이 나라의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강한 검사가 되도록 도와줘. 이 검의 임대비용이 그
정도는 되겠지?”


 


오오, 이 친구 장삿속도 있었군. 엄청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게
좋은 상재(商材)는 아닌 듯하지만.


 


우선 목함을 닫는다. 누가 보면 큰일이니까. 그리고 곰곰 고민한
다. 이걸 받아, 말아?


 


페넬로페 아가씨가 데니스와 눈짓을 하더니 내게로 다가왔다.


 


“루포리, 넌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어. 우리도 네게 뭔가
해주고 싶단다. 그 검을 못 받겠다면 다른 걸 줄 수밖에 없지.”


 


응? 다른 거?


 


아가씨는 내게 좀 더 다가와 소곤거린다.


 


“새벽에 네가 말했잖니? 튼실하니까, 언제든 불러 달라면서?”


 


끄아악! 끄아악!


 


“이 검,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잘 지키다가 훗날 돌려드리겠습
니다!”


 


데니스는 웃었다.


 


“아니, 그 칼로 네 생명을 지키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받아 줘서
고맙다. 우리 아들 가르칠 검술도 잊지 말고 잘 만들어야 돼?”


 


페넬로페 아가씨가 데니스의 곁으로 돌아가자 이성이 좀 돌아왔
다. 휴우, 십년감수했다.


 


팔자에 없는 검술 개발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그들을 배웅한다.
젊은 학자 커플은 정답게 대화하며 멀어졌다.


 


“그런데 페넬로페, 어떻게 저 친구를 그렇게 쉽게 구슬렸어? 무슨
비결이 있는 거야?”


 


“아, 그거? 응, 나중에 쟤가 말을 잘 안 들으면 말해. 가르쳐 줄
테니까.”


 


무무무무슨! 그걸 가르쳐 줬다간 데니스는 분노에 몸을 떨고 난
공포에 몸을 떨게 될 것이다! 데니스의 말이라면 이제 무조건 복종
하기로 결심하며, 떠나는 마님의 등에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왠지 슬프다.


 


 


 


 


 


------------------


- 자, 일주일의 끝입니다.


그리고 또 내일은 일주일 분량을 써야 할 텐데...


음, 읽어주는 분도 없는 데 성실연재란 건 참 보람 없는 노력이네요.


 


... 아니지, 애초에 보여주려고 쓴 글도 아니고,


습작 답게 성실하게 계속 써 나가겠습니다.

?

  1. UI 디자인 연습

    Date2023.05.24 Category기타 By최참치 Views584 Votes0
    Read More
  2. 인솔렌스 맵배치

    Date2021.09.05 Category맵배치 By로란 Views569 Votes0
    Read More
  3. 곤약 심판

    Date2019.08.24 Category ByRPG란무엇인가? Views729 Votes0
    Read More
  4. 잃고잊힌세계) 용암이 끓는 폐허 도시

    Date2018.10.04 Category맵배치 ByOnLew Views1025 Votes0
    Read More
  5. 잃고 잊힌 세계) 신전 도시 맵배치

    Date2018.09.15 Category맵배치 ByOnLew Views880 Votes0
    Read More
  6. 대충... 맵배치?

    Date2018.09.04 Category맵배치 By루다 Views814 Votes0
    Read More
  7. 유럽맵배치 초안 첨부

    Date2017.11.25 Category맵배치 By심심치 Views1234 Votes0
    Read More
  8. [VXA] 광산 맵배치

    Date2017.10.17 Category맵배치 By루다 Views1218 Votes0
    Read More
  9. [VXA] 세스타니아 테라산 맵배치

    Date2017.10.01 Category맵배치 By루다 Views1235 Votes0
    Read More
  10. 02- 제드 : 산신 - 20

    Date2016.11.10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871 Votes0
    Read More
  11. 02- 제드 : 산신 - 19

    Date2016.11.08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1082 Votes0
    Read More
  12. 02- 제드 : 산신 - 18

    Date2016.10.26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872 Votes0
    Read More
  13. 02- 제드 : 산신 - 17

    Date2016.10.25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831 Votes0
    Read More
  14. 02- 제드 : 산신 - 16

    Date2016.10.24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784 Votes0
    Read More
  15. 02- 제드 : 산신 - 15

    Date2016.10.20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807 Votes0
    Read More
  16. 02- 제드 : 산신 - 14

    Date2016.10.20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788 Votes0
    Read More
  17. 02- 제드 : 산신 - 13 [촌장님의 집무실]

    Date2016.10.13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792 Votes0
    Read More
  18. 02- 제드 : 산신 - 12

    Date2016.10.09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842 Votes0
    Read More
  19. 02- 제드 : 산신 - 11

    Date2016.10.08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1419 Votes0
    Read More
  20. 02- 제드 : 산신 - 10

    Date2016.10.06 Category By복권장군 Views724 Votes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9 Next
/ 219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