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직장을 옮기고 게임제작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자, 그 다음 날에 직접 연락하여 창조도시에서 다시 활동할 것을 권하셔서 반갑기도 하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그동안 저는 창조도시를 떠나면서 "나는 다른 데는 몰라도 창조도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굳게 다짐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 게임을 만들어보라는 여러 유저나 옛 동료 제작자들의 권유도 다 뿌리치며 살았습니다. 나름 한국 인디게임계의 큰 터전이었던 곳이 실시간으로 일베나 디시 수준의 난장판 소굴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운이 묵어가는 것은 정말로 이렇게 벗어나기 힘든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이건 창조도시 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대형 커뮤니티들이 끌어안게 된 전염병의 결과에 가깝지 않나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활동한 당시부터 21세기의 새로운 문화활동의 창구역할을 하던 인터넷이 점차 정치적 담론의 대립과 갈등이 몰리는 싸움터로 변모하려는 여러가지 징후들이 가시화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디시나 일베 모두 처음부터 정치적인 색채를 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과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거쳐,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 때까지 계속 쌓여만가는 정치적 불신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불만과 분노를 쌓이게 하였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들 삶의 곳곳으로 - 특히 현실보다는 검열의 수위가 낮고, 익명의 대중이 큰 숫자로 몰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 전체에 걸쳐 거침없이 정치적 담론이 맞붙어 헐뜯게 되는 굉장히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가게 했습니다. 현실세계의 분쟁과 갈등을 제대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일단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서 허물을 덮으려는 과거와 오늘날의 정치인들의 잘못이 국민들의 삶과 심신을 정말로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아주 힘든 와중에서 그래도 소수나마 존재하는 순수한 크리에이터들의 명맥을 지켜보고자 정말로 힘든 개혁을 진행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이곳 새로 태어난 창조도시에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 동단위로 난립하던 무수한 게시판들을 정리하여 창작활동 이외의 분쟁에 대한 안전판을 두셨고, 홈페이지 전체에 걸쳐 '게임제작'이라는 모토에 맞도록 모든 컨텐츠를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크리에이터들간의 대립을 원천 봉쇄하시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큰 일을 해주셨다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정말로 많이 늦은 시점이지만, 그래도 한 포털이 완전히 명맥이 끊어지기 직전에 기사회생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게임제작계를 떠나 사실상 야인으로 지내던 저를 직접 찾아와 불러주셨고, 제 눈으로 직접 크게 개혁한 창조도시의 맨얼굴을 느껴보라고 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더이상 분란을 일으키던 잡스러운 무리들은 존재하지 않고, 정말 뜻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집을 짓고 있음을 저도 많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의 민중총궐기에서 최루액을 직접 마셔가며 난장판이 되어버린 일그러진 시대의 맨얼굴을 직접 목격하고 온 저로서는 우리사회도 이렇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갖가지 생각이 듭니다.
개혁은 부폐로 인해 위기에 처한 한 집단이나 사회가 생명을 유지시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알고 있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창조도시가 이제는 또 다른 디시나 일베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한국의 창작게임계의 열린 플랫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저도 한 사람의 아마추어 게임제작자로서 여러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