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정말 친한 친구 녀석에게 연락이 왔다. 드디어 휴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전화에 나는 마치 첫사랑 하는 여중생마냥 두근두근 됐다. 막상 만나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친구 녀석이 입대하고 반년 만에 만나는 것이라 그런지 왠지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을 때 나는 폭포수 떨어지는 것처럼 끊임없이 말을 퍼부었다. 아쉬웠다. 그 아쉬움이 추운 날 밖에서 3시간을 잡아먹어버렸다. 그리고 그 녀석이 떠나고 나는 다시 훈련소 가는 날을 앞 둔 평범한 방학 중인 대학생, 아니 그보다 더 늘어지고 게으른 여분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틱틱틱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내가 방심을 하는 순간 내 고막에 꽂힌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내게 정체하고 있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눈앞에는 환한 빛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에 웃고 울고 화내고 즐거워하며 문 밖에 돌아다니는 것에 대한 대체품으로 애용한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지나간 추억이 담긴 지식들과 책상에 대충 버려져 있는 과자봉지, 휴지, 먼지 그리고 나.
거울을 본다. 그곳에는 내가 있다. 아닌가? 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이는 누구인가?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내 앞에 이는 누구인가. 아아 거울이다. 거울 끝없는 반사의 산물. 저 사람은 거울이다. 내가 아니다.
나를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진자 내 모습인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들어가서 확인하자.
하품이 나오더니 눈앞이 뿌연 해졌다.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통로를 지나 안개 가득 낀 도시에 나는 홀로 서 있다. 사람들이 내게 몰려온다. 나는 그들을 피해 달아난다.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등골이 오싹해온다. 그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등 위로 벽이 느껴졌을 때 안개가 걷혔다. 이놈도 내 마음대로 안되나하며 약간 짜증을 낸다. 단지 짜증날 뿐 싫지는 않다.
주머니에서 미량의 움직임이 발견되었다. 나는 즉시 마린에게 명령을 내려 미확인 물체를 사살하고 싶지만 그것은 게임 속 이야기. 현실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 망해라라는 저주의 메시지였다.
하얀 알갱이를 컵으로 퍼서 그릇에 넣는다. 이번엔 조금 다른 알갱이를 넣는다. 충분하다. 이제 물을 넣어 알갱이를 휘젓는다. 그릇은 끓어오를 용광로다. 곧 내게 비명을 지르겠지.
1월 11일 거대한 것이 몰려온다고 한다. 뭐야하고 넘어갔지만 여기도 저기도 그 이야기 뿐이다. 시점변경이 어떻느니 타격감이 어떻느니 먼 나라 이야기가 오고 간다. 하품이 나온다. 별로 끼어들 생각도 없다. 오늘도 그냥 자야지.
양심의 경계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양심 들먹이는 놈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경계를 정하고 그 잣대로 상대를 나무란다. 예절이란 무엇일까. 이놈은 법처럼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법도 논란이 되는 마당에 이놈이라고 안전 할 수 없다. 지켜야 하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도 모르겠는 이것은 수학 7대 난제보다 어려운 영영 풀리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시계를 바라봤을 때는 벌써 6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이었지만 최근 골방에서의 생활보다 무의미하고 무계획적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이 활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이 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자’라는 단 하나의 동기부여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골방에 처박혀 수많은 생각을 하고 지우고 되뇌며 머릿속은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언젠가 밤에 물을 마시러 나왔을 때 창밖으로 눈이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언제 눈이 왔데.’하며 너무 좁은 범위에서 생활한 나를 질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질타는 질타일 뿐 의미 있는 것이 머릿속에서 아무리 자전한다고 해도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늘도 이 글을 쓰며 36.5도로 자전한다. 머릿속도 돌고 지구도 돌고 나는 여전히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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