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21 16:34

Lady Dragon Knigh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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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르세린은 다른 아침보다도 더 힘겹게 눈을 떴다. 굉장히 오랫동안 잠에 취해 있었던 것처럼 유난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은 채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미르세린은 금세 기억해 내지 못하고 조금 멍한 상태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침상 한편을 짚은 손에 느껴지는 무언가의 촉감과, 자신에게 일어났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때까지.


 ‘머리카락, 레이야가?’


 미르세린의 눈이 그녀의 손으로 향했다. 그제야 침상에 기대어 자는 레이야와,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짚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발견한 미르세린은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들었다. 레이야의 옷차림은 아직 야외복 그대로였다. 아마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밤새 미르세린을 돌본 것이리라.


 “후훗, 이거 미안한데.”


 햇살이 가볍게 감싸 쥔 레이야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미르세린은 조용히 침상을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곧 방을 빠져나가 신전 건물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 탓에 신전 복도를 서성이는 사람들은 물을 길러 나르는 몇몇의 신관들뿐이었다. 그들이 놀람 반 반가움 반으로 건네는 인사를 받으면서 복도를 따라 걷던 미르세린은 결국 한 남자 신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신관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도 용케 쓰러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미르세린이 그의 허리춤에 걸린 열쇠 뭉치에 손을 대자, 그는 흠짓 놀라 비틀거리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 미르세린의 얼굴을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그런 그를 보고, 미르세린은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파엘 주사님, 안녕하세요.”

 “미르세린 님? 어제 일은...” “걱정 마세요, 몸은 괜찮으니깐.”


 활기찬 미르세린의 모습은 주사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든 동시에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미르세린은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진 것처럼 멋쩍은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미르세린의 표정을 보지 못한 주사는 탁자에 놓인 두루마리를 펼쳐 놓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 훈련장까지 오신 이유야 당연하지만, 그런데...”

 “왜 그러시죠?”

 “마침 있는 게....실버 종뿐이라...”

 “실비아요?”


 미르세린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역시나 하는 주사의 표정.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로-게슐링은 구하기가 까다로운 것, 아시잖습니까.”


 드래곤 종중에서 최약체이면서 인간의 능력 한계 이내에서 상대가 가능한 드래곤 종은 로 게슐링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서식지가 비교적 넓었음에도 이 해상에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설령 대륙에서 포획한 녀석을 이곳까지 수송하려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한 선단은 대륙의 원교 국가가 아닌 자연 신앙 국가의 대선단 뿐이었다. 미르세린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던 터라 결국 억지로라도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피엘의 얼굴에는 가볍게 웃음이 번졌다. 자신이 지키고 있던 철문을 열면서 그가 미르세린에게 말했다.


 “그 녀석을 데려 오지요.”


 철문 밖에 펼쳐진 것은 넓은 공터였다. 돌담으로 한번 둘러진 공터를 원주 기둥이 한 번 더 원형으로 나열돼 공터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러한 공터는 미르세린과 주사가 들어설 때까지 햇살과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에 미르세린이 들어서자, 주변 대기는 서서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술렁거림은 기실, 미르세린의 목소리와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도 한숨 같은 한 마디와 함께


 “실비아는 부담스러워...”


 불평하는 미르세린이었지만, 그 드래곤이 반대편의 거대한 문 뒤의 어둠 속으로부터 서서히 빠져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미르세린은 숨이 막히는 착각을 느꼈다. 어느 정도 마음의 대비를 한 후였지만, 직접 대면한 후에 그가 느끼는 감정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슬픔. 레드 드래곤-물론 로 게슐링의 한 종류를 이르는 것이다.― 은 미르세린이 플레임스톤이라고 부를 만큼 단순한 분노의 화신이고, 골드 드래곤은 드래곤은 드래곤 경이라 할 만큼 위엄 있고 절도가 있었지만, 실버 드래곤은 여성명사인 실비아라는 애칭이 유난히도 어울렸다. 미르세린이 ‘우아한 슬픔의 여왕’정도의 의미를 두고 있는 명사인 실비아라는 이름이 어울린다는 것은, 미르세린이 그의 우아한 자태와 그로부터 우러나는 고결함, 그리고 차원 높은 슬픔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미르세린에게 있어서는 실버 드래곤이 적으로써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ឪ!"


 로고스어의 독특한 방식으로 읽혀진 문자는 그 혼자로도 몇 음절에 달하는 긴 문장으로 변해 공명했다. 그와 동시에 미르세린의 주변에서는 기묘한 파동이 일었다. 마치 세상의 흐름이 그 한마디에 움직이는 것처럼 미르세린의 주변 공간은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르세린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손에 맺히는 거친 스파크를 그저 보아 넘길 수만은 없었다.


 “!!”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미르세린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마력의 결집 안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힘을 버텨낼 강한 마력이 없던 공간은 마치 유리 동상처럼 산산 조각나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주사의 눈은 커졌다. 그가 아는 미르세린이라면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보통의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양의 마력을 결집시켜 상대를 그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 미르세린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르세린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시도는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의 행동은, 마치 자신이 결집시킨 마력을 제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의 행동 같지 않은가. 


 “파이어 월(Fire Wall)!"


 미르세린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는 듯 마법 명칭까지 부르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미르세린 정도의 마법사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신에 맺힌 영상만으로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발동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치 처음 마법을 배운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주사는 조금씩 그녀가 자신의 신전의 대신관인지에 대해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심은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주위에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녀가 서 있었던 자리를 드래곤의 숨결이 새까맣게 불태울 때 그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단지 자리를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미르세린님, 갑자기 무슨 일이?”


 주사는 일단 그녀를 불러내기로 작정했다. 그녀가 정말 대신관이건 대신관을 사칭하여 아직 잠이 덜 깬 그를 놀린 단순한 침입자이건 간에 그녀가 자신이 관리를 맡은 이곳 훈련장에서 죽는다면 가장 꺼림칙할 사람은 바로 주사 자신이었다. 그는 현명하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상대가 당황하여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우선 상대의 농간에 넘어가는 척 맞장단을 쳐 주었다. 저 여자는 머리가 좋아 보인다. 설령 대신관이 아니더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을 테지. 하지만 여자에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았던 듯 했다. 목소리까지도 대신관과 비슷한 여자는 자신에게 되레 차분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지 않는가.


 “주사님, 저 녀석을 멈춰 주세요, 어서.”


 아무래도 여자는 신전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정말로 대신관 본인인 것이 확실하다. 주사가 그 작고 흉포한 용족의 말단 존재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보니. 물론 주사는 마법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그 괴물을 다루는 것은 그의 마법이 아니라 신전의 시설이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모른다면 자기에게 직접 도와주라고 했을 테지. 주사는 자신의 옆에 있던 손잡이를 당겼다. 순간 훈련장의 한쪽 벽이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청록색의 돌이 박혀 있는 벽으로 변했다. 원형의 공간 벽 여기저기에 박혀 있던 성력 석들은 저마다 일정한 마력을 가지고 공명하지만, 그 청록색의 돌 하나가 없으면 그저 쓸모없는 장식 돌에 불과했다. 청록색의 돌이 제 자리에 옴으로써 성력 석들과 돌은 자신들의 마력을 공명시켜 드래곤을 돌처럼 굳게 할 수 있다.


 “휴우…….”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여자를 향해 주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기꾼이라면 되도록 도망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 마을 사람들과 되도록 친분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래야 술이라도 한잔 얻어 마시고, 배라도 한 번 더 얻어 탈 수 있을 것 아닌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순진하기는 하지만, 좀 더 확실한 보증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빚진 것에 대해서 이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가 원하는 데로 배도 빌려 줄 것이고 술도 조금 줄 것이다. 그러나 주사의 꿈은 주사가 여자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희미해져만 갔다. 주저앉아 있는 여자는 분명 대신관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미르세린 님.”


 주사가 물었지만 미르세린은 답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지금의 당황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마력이 줄어들기라도 한 것처럼……왜?”


 순간 미르세린의 머릿속을 어떤 생각이 휙 하니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을 간신히 붙잡은 미르세린은 그 생각을 천천히 해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숨어 있던 사실은 서서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분명한 모습으로, 그리고 짤막한 한 마디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

 “무슨 생각이라도?”

 “아니에요, 레이븐을 혹시 보게 되면 좀 불러주세요.”


 그러고는 그녀는 바쁜 걸음으로 신전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조각상처럼 서 있는 드래곤을 보며, 주사는 자신도 그녀가 깨달은 이유를 알게 되길 기대하면서 끙끙 앓는 소리마저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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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DK> 3화 올립니다.
 다른 연재 두 개, 단편과 <시크릿>은 무사히 완결까지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재 주기는 지금처럼, 이틀에 한 번 꼴로 번갈아 올릴 테지만 이 두 글에 대해서는 연재가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인터넷이 끊기지 않는 이상;;
 <LDK>는 좀 더 오랫동안 보시는 분들 괴롭힐 것 같습니다;; 양도 꽤 되고, 옛날에 쓴 글이라 제가 봐도 어색한 부분이 많고요. 조금씩은 고치겠지만, 본격적으로 뜯어고치진 못할 것 같네요...글 전체를 통째로 들어낼 엄두는 안 나서; 가끔 보면 시한폭탄 만지는 기분도 듭니다. 전선 하나 잘못 건드리면 회로 전체가 엉망이 되는, 그런 폭탄이요.

 23일날 단편 두 번째 화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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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4.22 06:52

    와아, 여러 글 올리시는 군요.

    클레어는 그럴 재주가 없다 보니 ㅠㅠ

    그나저나 다른 세상으로 떨어진 예희양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4.22 08:55

     아예 첨부터 쓰는 글들이었으면 저도 이렇게 연재 못해요; 어느 정도 분량 빼놓고 업로드만 시키는 거죠;

     <생일 축하해...>같은 경우, 짧은 글이라 다 써놓긴 했어요. 연재속도 조절하는 셈 치고, 또 읽기 편하게 나누어 올리는 것뿐이고요;


     예희 양은 두 화 이내에 나올 거예요.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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