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위홍 (문성왕 12년(850)~진성왕 2년(888))
어릴 때는 심한 무병(巫病)을 앓아서 비실댔던 병약쇼타였는데 어느 순간 신라 최강의 먼치킨 소년이 되어 나타났심.
경문왕(문성왕 8년(846)~헌강왕 원년(875), 즉위년 861)의 친동생으로 16세에 병부령 자리를 꿰찼지요.
다들 저 침대 위에 깔기 딱 좋은 사이즈에 닭 모가지 하나 비틀 힘도 없어 보이는 소년 병부령을 낙하산 인사라고 수군거렸지만 1년 후에 그런 소리는 싹 들어갔(...) 사실 상당히 무서운 사람이라죠.
(아 참고로 신라때 키설정 같은 건 무리니까 애초에 하지 않지만 지금의 느낌으로 168cm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원래 병부령은 3명이 공동으로 하는 거였는데 나머지 두 병부령을 슥삭(...)해버리고 자신에게 병권을 집중시켰다죠. 극도의 신정정치를 추구했고, 일례로 경문왕 11년 황룡사 9층목탑이 벼락맞고 불타자 친히 중건을 책임졌습니다. 경문왕 사후 조카인 헌강왕(경문왕 2년(862)~정강왕 원년(886), 즉위년 875) 대에 이르러서는 상대등까지 해처먹(...)었고 당시 10대소년에 댄스가수 아이돌킹인 헌강왕은 뭐했냐 하면 나라살림은 죄다 위홍에게 맡기고 자기는 신나게 노래부르고 춤추고 놀았다고밖엔...
그 대단한 세도는 헌강왕의 여동생인 진성왕(경문왕 7년(867)~효공왕 원년(897), 즉위년 887)때까지 이어졌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카딸인 진성왕과 그렇고 그렇게 해먹었다고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는 근거가 됩니다...라지만 사실 그때 시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달까요. 다만 17살 차이나는 커플이니 야이 도둑놈아-_- 라고 말할 수는 있을지도...
신정정치의 일환으로 향가집인 삼대목을 편찬했고, 대략 888년에 죽었다고 되어있는데 진성왕이 슬퍼하면서 추존 혜성왕으로 봉했댑니다=ㅅ=; 직계비속이 왕 안 된 사람 중에 왕으로 추존된 사람은 추존 흥무왕 김유신 빼면 이님하가 유일.
뭐 제 소설은 판타지니까 얘가 888년에 죽는 게 아니라 신계로 가서 신계의 메인 컴퓨터를 캐박살내고 무려 2007년에 이르기까지 정신체는 살아 있다는 무시무시한 설정;;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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