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5 08:32

[단편] 슈가 스위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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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봤는데 필력은 물론이고 구성이나 전개가 엉망이네요. 너무 길어서 내용을 반토막낸게 원흉이었나OTL 지울려고했다가 그래도 쓰는데 의의를 뒀기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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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낭만적이고 싶을 때가 있다. 덥지도 않은데 창문을 열고 밝지도 않은데 불을 끄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커피를 마신다. 그 때는 왜인지 그런 생활이 너무 좋았다. 나는 여유로웠을까 아니면 무책임했을까.

두근.

가슴이 한차례 요동치자 숨이 트인다. 차가운 겨울 자정이 지날 무렵. 흰 눈이 아낌없이 내리고 바람이 꺼진 고요한 밤. 한 남자가 길가에서 일어선다. 새카만 머리에 새카만 코트, 새카만 바지, 새카만 구두, 그렇게 온 몸을 까맣게 장식한 남자가 눈을 뜬다.
긴 머리칼로 덮인 그의 얼굴은 한쪽 눈이 없었다. 한쪽 팔도 없고 한쪽 다리도 없는 그야말로 반쪽짜리 인간. 반쪽짜리 몸을 갸누며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빌딩도 차도 나무도 무엇 하나 온전치 못하고 깡그리 찢겨져 있다.
그리고 그 곳에 사람이 하나 있다. 새하얀 긴 머리를 풀은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성이 눈 속에 놓여져 있다. 남자는 이미 없어진 눈을 아픈듯 손으로 눌렀다. 곧 이어 반쪽짜리 비명이 울려퍼졌다.





    슈가 스위트 드림





황금빛 태양이 내리쬐는 황금빛 사막. 그 아래 황금빛 여정을 떠난 한 여행자가 있다. 챙이 달린 갈색 모자에 황토색 코트를 입고서 그는 막연히 걷는다. 어디서 다치기라도 했는지 오른쪽 눈은 붕대로 꽁꽁 머리를 싸듯 감겨져 있다. 남자는 중간중간 망원경을 빼들어 보지만 도무지 목적지까지와의 거리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럴 때면 긴 머리는 오히려 방해만 된다. 장갑낀 손으로 땀을 닦으며 여행자는 물통을 꺼내 입술을 적시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그는 포기한듯 벌컥 남은 물을 전부 들이켜버렸다.

"으엑?! 다 마셔버리면 어떡해!!"

불쑥. 갑자기 나타난 조그만 소녀가 참견을 건다. 요정같이 매우 조그만 키에 등에는 실 같은 날개를 지니고 있는 소녀는 키가 불과 30cm도 넘지 않았고 갈색단발 머리에는 분홍빛 꽃을 하나 머리핀처럼 꽂아놓고 있었다. 요정은 눈썹을 찡그리며 그에게 불만을 표했다.

"다음 도시까지 거리가 얼만지 몰라서 그래? 게다가 내 몫까지 다 마셨어!"
"괜찮아 나레카. 그건 신기루야. 사실 물통 속엔 아직도 물이 한가득있지! 그것만이 아니야! 사실 이 물통은 마셔도마셔도 줄지 않는 구조로 되있다고! 으하하하하하!!"

남자가 웃으며 춤까지 추자 요정은 황당한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레카는 한 숨을 쉬며 그의 모자에 앉았다. 뭐, 그가 미쳤던게 하루이틀도 아니니 말이다.

"나중에 몇 배로 받아낼꺼야."
"아하하하하하! 비가 온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

털썩. 그 순간 정말로 하늘에서 무언가가 둘의 앞에 내려왔다. 물론 비는 절대로 아니다. 둘은 그것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피투성이채로 죽어있는 그것은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곧 또 한사람 다시 또 한사람이 떨어지더니 이어서 마차 하나가 통째로 굴러 엎어졌다.
남자는 놀라서 그만 뒷걸음을 친다. 이제는 땅마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그의 발아래로 커다란 무언가가 치솟았다. 황급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자욱한 모래연기 속에서 그것의 빨간 눈이 빛낫다.

그것은 바위와 같았다. 사람 키에 3배는 더 되보이는 몸은 딱딱하게 돌로 되있는 것이 바위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전갈과 같았다. 바위같은 몸집 양쪽에 다리와 독침같은 꼬리가 달린 것이 전갈을 닮았다.
그것은 뱀과 같았다. 전갈의 몸통에 수십마리의 뱀머리를 가진 그것은 날카로운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통칭 마수(魔獸)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남자는 몸을 갸누며 일어섰다. 마수는 다행히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진 않았지만 마차더미 옆에 있는 한 모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니, 모포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포 옷을 입은 한 여성을 향해 놈의 집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레카!"

남자는 자리를 박차 달리며 요정을 불렀다. 그녀가 알았다는듯 곧 머리에 장식해둔 꽃의 잎을 하나 따더니 그것을 입으로 불어날렸다. 손에 쥐었던 꽃잎은 한 장이었지만 그녀의 입김에 날리자 곧 수십수백장의 잎들로 늘어나더니 거친 바람을 불며 마수를 방해했다.
귀찮은듯 그것이 집게를 이리저리 휘두르다 이윽고 힘껏 꽃잎바람을 뚫고 마차를 내리찍는다. 하지만 그 곳에 이미 노리던 인물은 가고 없었다. 녀석은 반대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남자가 막 여성을 내리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히 그는 자리를 피하며 마수에게 다가갔다. 요정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갑각형이야. 머리를 전부 없애야해."
"알고있어."

쉬익. 대화를 제대로 마칠새도 없이 뱀머리 하나가 목을 길게 늘여 그를 덮쳤다. 한발짝 급히 물러서며 남자는 간발의 차로 그것을 피한다. 그리고는 코트 안쪽에서 샷건을 꺼내 모래속에 파묻힌 놈의 머리를 쏘았다.
타앙!
수십발로 나눠진 탄환이 뱀머리를 꿰뚫는다. 찢어진 그 피부는 새하얗게 빛나며 분해되더니 이어서 몸까지 이어진 목 전체가 폭죽이 터지듯 사라졌다.

"일단 하나."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차 방아쇠를 당긴다. 강렬한 발포음과 함께 다시금 탄환이 날아갔지만 녀석이 곧 집게를 들어 머리를 막았다. 총알은 망치를 때리듯 마수를 공격하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껍질에다간 쏴봤자 분해할 수 없다고!"
"제길."

이빨을 갈며 그가 총을 고쳐들었다. 곧바로 숨도 고르지 않고 난사. 하지만 적은 예상외로 침착했다. 마수는 몸을 웅크려 적극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한다. 슬쩍 옆으로 몇 발자국 움직여 다른 각도에서 쏴보지만 그정도 각도로는 소용이 없다.
탄창을 갈던 중 이번엔 페이크를 해서 왼쪽으로 달려들던 중 크게 오른쪽으로 몸을 비꼈다. 허나 그것이 덫이었다. 공격이 멈춘 틈을 타 사각에서 마수의 꼬리가 그를 힘껏 내동댕이 친다. 각목 부러지듯 소리가 나오는게 마치 차에 부딯친 것 같다. 그렇게 날려간 몸을 주체할 틈도 없이 이번엔 놈의 두 집게가 양 팔을 구속해 왔다.

덥썩

꾹 누르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팔이 잘리진 않았지만 이대로는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 마수는 남자를 들어올리며 승리를 확신한듯 껍질 속에 숨겨둔 머리를 전부 내밀며 그를 향해 이빨을 들이내밀었다.
그 때였다. 끝장을 내기위해 그를 들어올리자 돌연 품안에서 수류탄이 몇개 핀이 뽑히며 데구르 굴러온다. 뱀머리가 일제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Bang."

그 직후, 둘 사이로 플래쉬가 터져나왔다. 폭죽을 터뜨리듯 푸르스름한 새하얀 빛이 눈부시게 빛나더니 마수의 머리가 별가루처럼 분해된다. 힘이 풀린 집게가 픽하니 떨어졌고 남자 또한 픽하니 쓰러졌다.



    *    *    *



꿈. 꿈을 꾸고 있다. 아늑하고 편안해서 결코 깨고 싶지 않은 꿈이다. 하지만 꿈은 예고없이 깨는 법이다.
벽에 기댄 채로 남자는 눈을 떳다. 아직 햇살이 따가운게 정오를 조금 지났나 보다. 고개를 돌리자 한 여성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있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새하얀 긴 머리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연약해보이기 그지 없다.
그녀는 한 쪽 눈이 없었다. 한쪽 팔도 한쪽 다리도 없는 반쪽짜리 여자. 그녀가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덜컹 덜컹 덜컹

거치른 비탈길을 구르는 탓에 마차가 불안하게 흔들린다. 불과 몇십미터 떨어진 곳은 사막이건만 이곳은 숲이 울창히 퍼져있다. 마차 한 구석에서 남자는 조용히 눈을 떳다. 그리고 곁에서 한 소녀가 그를 보고 있음을 눈치챈다.
16세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청바지에 조끼와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분홍꽃이 하나 꽂혀있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꿈 꿨어?"

덜커덩. 마차가 다시 흔들리며 바퀴를 굴렸다.



    *    *    *



얼마쯤 또 시간이 흘렀을까. 두터운 성문이 열리고 마침내 마차는 도시에 들어선다. 곳곳이 엉성하게 땜질되있고 건물도 다 헐은게 생각만큼 좋은 곳은 아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이미 이곳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이곳도 마수에게 걸려든 것이겠지.

"아무래도 먹을 것만 챙기고 금방 가야할거 같아."

쪼르르르. 빨대로 쥬스를 마시며 나레카가 말했다. 남자도 빨대로 자기 주스를 마시며 동의했다.

"그래야겠네. 그럼 2,3일만 쉬기로 하자."
"어? 오늘 바로 떠나는거 아니야?"

예상외의 답에 나레카가 되물었다. 자금사정상 둘은 보통 일자리라도 얻을 수 없는 이상 그날 재깍 떠나는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남자가 다시 답했다.

"다치기도 했으니까 조금은 쉬고 싶으니까. 설마 이틀 내에 돈이 바닥나겠어?"
"어, 어, 그럼 말야!"

나레카가 말을 더듬으며 머뭇거린다. 평소와 다른 행동에 그도 주의를 기울였다.

"모, 모처럼이니까. 다시보니 여기는 카페가 있기도 하고...없기도 하고... 몇 일정도는 같이 어디라도, 아니, 그래, 함께 쇼핑이라도!"
"미안한데 선약이야."

찰칵. 갑작스럽게 불쑥 끼여든 목소리. 생전 처음 본 여성이 둘 사이로 의자를 가져와 앉는다. 그리고 매우 자연스럽게 남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자신의 손목에 연결시켰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둘은 말문이 막힌다. 허나 그녀는 아무렇지도않게 이제는 그의 쥬스를 뺏어 마시기까지 한다.

"날 살린 책임은 확실히 받을테니까!"

삑.

한 손에든 리모콘의 버튼을 누르자 맞은편 건물이 폭발했다. 정교하게 연속적으로 일어난 폭발은 정확히 건물을 식당쪽으로 떨어뜨린다. 나레카는 곧바로 자리를 피했지만 문제는 남자쪽. 수갑이 서로 채워진 상태인데도 여자는 눈썹하나 까닥않고 그 자리에서 여유롭게 쥬스빨대를 쪽쪽 빨고만 있었다.

"야 이 미친...!"

쿠웅. 먼지가 이는 가운데 나레카가 기침을 하며 그를 찾는다.

"라펜드! 괜찮아? 살아있어?"
"....어떻게 살아는 있어."

잔해 너머로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수갑으로 연결된 채 그는 여성을 안고 있었다. 물론, 박스를 쥐 듯 그냥 잡은거지만 말이다. 숨을 헐떡이며 그가 소리쳤다.

"너 임마 무슨 짓을 하는거야!"
"라펜드? 상표 같은 이름이네."

삑. 다음 순간 또다시 그녀가 버튼을 눌렀다. 이번엔 반대쪽 목장이 무너지더니 말들이 뛰쳐나온다. 아니, 폭발도 하나 둘 일어나면서 분명히 그 둘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지겹기만했던 거리가 단 1분만에 아수라장. 하지만 이 여자는 여전히 머리카락 한올 움찔거리지 않는게 완전히 관심제로. 그녀는 오히려 그런 그를 보며 여성은 소근거리듯 얘기했다.

"엘시아 이비트. 그냥 엘샤라고 불러."

잠시 후 연기와 함께 말들이 식당을 덮쳤다.



    *    *    *



단숨에 태양이 떨어진 저녁. 결국 도시를 뛰쳐나와 들판에서 라펜드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엘샤는 그를 옆에서 보며 '체력도 좋네'라고 감탄을 날린다. 그는 아우성을 치듯 말했다.

"헥. 헥. 대체 원하는게 뭐야."
"몰라. 그러니까 니가 책임지고 알려줘."
"뭐?"

또다시 날아온 엉뚱한 답변에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엘샤는 말을 이었다.

"그냥 놔뒀어야했어."

천천히 이번엔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때 죽었으면 아무런 걱정도 없었을텐데 살아버렸잖아. 그러니까 살려놓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지."

자신의 긴 머리를 옆으로 쓸으며 그녀가 감추고 있던 한쪽 눈을 내민다. 화상이 심하게 더해져 부르터진 피부에 감싸인 그 눈은 눈동자를 잃었다. 검은자가 없고 흰자만이 있는 이런 상처는 필시 마수에게 당한 상처다.

"재생수술을 몇 번이나 했지만 소용없었어. 거기까진 좋았어. 근데 그 날부터 아무도 사람으로 보질 않아. 그 날은 춤도 잘 춰보려고 드레스도 샀고 머리도 몇시간이나 만졌는데 이제는 대화조차 하기 힘들어. 너도 이 기분을 모르진 않겠지?"

엘샤는 머리카락을 내리고선 그의 왼손을 잡았다. 차갑고 딱딱한 그 왼팔은 의수. 기계로 이루어진 가짜 팔이다. 마수에게 당한 상처는 결코 낫지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추악한 흉터를 남긴다.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조금 달랐을까?"

엘샤는 들판아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엉망징창이된 거리 안에서 나레카가 분주히 뛰며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녀는 눈 하나를 잃었지만 아무도 없었고, 그는 눈을 포함해 몇 개나 더 잃었지만 동료가 하나 있었다.
오른쪽 주머니에서 엘샤는 열쇠를 꺼냈다. 이제 다 상관없는듯 '미안'이라고 한마디 하고 열쇠를 수갑에 끼운다. 그는 그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춤 추자."

그리고 곧 장작을 긁어모아 화약을 뿌려 불을 지핀다. 그 갑작스러움에 이번엔 그녀가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물었다.

"화약 요즘 비싸지 않아?"
"사람 목숨보다야."

펑. 갑자기 작은 연기가 터지며 둘의 얼굴을 더럽힌다. 수갑찬 손으로 하느라 양을 적절히 재지 못한 탓이다. 뭐 잘못해서 폭발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새카매진 얼굴을 서로 바라보니 그만 분위기가 깨졌다.

"후후후."

그리고 그녀가 웃어보았다. 잠시 후, 조그만 불꽃을 옆에 두고 둘은 댄스를 하였다. 간단한 사교댄스였지만 그가 얼마나 엉성한게 춤을 춘다기 보다는 가르친다는 표현이 더 옳을 지경. 하지만 엘샤의 얼굴엔 결코 싫은 내색이 보이질 않았다. 그 날은 둘 다 오랜만에 조그만 축제를 즐겨보았다.




    *    *    *



이제는 이미 달빛이 비치는 시각. 희미한 가로등 빛을 의지하며 엘샤와 라펜드가 도시로 걸어왔다. 엘샤는 난간 같은 곳에 올라서서 양 팔을 벌리며 중심을 잡아 걷고있다.

"그래서 모레 떠나는거야?'
"아마 내일이겠지. 이미 누구님께서 난장판을 벌여서 좀 일찍 가야겠어."

쿡쿡. 입을 가린 채 그녀가 웃음짓는다.

"그럼 말야."

그리고 슬쩍 말을 끼얹었다.

"나도 같이 가도 될까?"

푹.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무언가가 엘샤의 가슴을 뚫고서 나온다. 새카만 창살을 몸에 꽂고서 그녀가 쓰러졌다. 라펜드는 이 때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엘샤!"

그러고보면 거리가 너무 이상하다. 아직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인데 어느 집 하나 불을 켜놓지 않았다. 도리어 다들 밖으로 나와 둘을 중심으로 빽빽히 모여든다. 먹칠마냥 새카맣게 변색된 눈을 부라리며 팔다리가 뜯긴 몸으로 그를 향해 다가왔다.
마수(魔獸)다. 마수에게 입은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수에게 당한 상처에 그 피가 더해지면 같은 마수로 변한다. 짐승도 사람도 예외는 없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라펜드는 이빨을 갈며 품에서 샷건을 양 손에 들어쏘았다. 하나 둘 탄환에 가격당한 사람들이 - 마수들이 새하얗게 반짝이며 분해된다. 아직 완전치 못한 상태라 걸음도 느려서 대처하는게 어렵진 않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카앙. 머리를 향해 내려쳐진 삽을 왼팔로 막는다. 기계팔이기에 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삽은 코트에게도 상처하나 줄 수는 없었다. 케블라 섬유에 속을 강철조각으로 이어놓은 그의 코트는 방탄방검에 탁월하다. 라펜드는 막았던 삽을 밀치고는 탄환을 쏘았다. 한발한발 점점 총알마저 떨어져 간다. 거기에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하나 하나 인간의 형태를 한 마수의 무리가 천천히 몸을 곧 하나로 이뤄간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더 모여들어 결국에 그 크기는 소형 아파트마저 넘어버렸다.

"욱!"

눈치를 못 챈 것은 아니지만 몸이 따라오질 못한다. 하나의 거인이 된 마수가 손바닥으로 그를 내리쳤다. 가시모양의 형태를 이룬 그 손으로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물장구가 튀기듯 피가 튀기며 그가 죽은 개구리마냥 축 늘어진다. 마수는 그의 다리를 잡고선 입으로 손을 옮겼다. 그 때 꽃잎이 한장 둘 사이를 파고 들었다.

퍼엉!

마수의 턱과 손목을 불사르며 꽃잎들이 터져나온다. 분홍빛 불꽃을 터뜨리며 그것들은 계속 녀석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동시에 부드럽게 남자를 놈의 손에서 내려놓는다. 어느 샌가 나레카가 그의 곁에 다가와있었다.

"라펜드!"

머리를 안으며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이 없다. 온몸에 창살이 박혀 고슴도치처럼 변한 몸에 피도 더이상 흐르지 않는다. 그녀가 그를 붙잡고 계속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 때문일까?
마수의 몸에서 피어나오던 꽃잎이 멈췄다. 불길은 사그러들고 찢어진 새카만 몸을 검은 피가 채우고 잇는다. 부풀어 오른 양손이 서로를 감싼다. 마수는 천천히 팔을 들어서 나레카를 향해 내리쳤다. 그리고 같은 순간. 나레카 또한 귀신같은 얼굴로 놈을 노려보았다.
곧, 마수는 다른 커다란 것에게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 뜯어졌다. 초록색 줄기 몸을 지닌 꽃 모양의 그것. 몸 중간에 요정 같은 날개를 지닌 그것은 틀림없는 마수였다. 그렇게 밤이 끝났다.

조금씩 햇살이 나비치며 아침이 시작된다.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 속에서 라펜드는 일어섰다. 몸에는 여전히 크고 작은 창살이 박혀있건만 그는 삐거덕대며 몸을 일으켰다. 돌조각만 굴러가는 거리 위에서 그를 도와준 한 작은 생명이 눈 앞에 보인다. 그리고 다른 인물도 하나 눈에 들어온다.

삐그덕

망가진 몸을 누그러뜨리며 엘샤가 걸어왔다. 몸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창살이 박혀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이 새카맿다. 흰자만 있어서 새하얗던 한쪽 눈도 지금은 먹보다 더 까맣게 물들여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가볍게 속삭이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죽고 싶을 때는 죽지 못하게 하더니 살고 싶을 때는 살지 못하게 해."

남자는 오른손으로 총을 빼들어 그녀에게 겨눈다. 새까만 그녀의 눈 아래로 새까만 눈물이 흘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태어나지 말 꺼 그랬어."

나지막히 말한 그 목소리가 상대에게 도달할 무렵. 총알이 한방 그녀의 머리에 꽂혔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됐는지 모른다. 어쩌면 돕지 않았어야만 도울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상관없다. 지나간 시간을 쫓는 것만큼 무의미한 행동도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무의미한 행동을 하기에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은 또 흐르고 흘러서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무렵. 사막과 숲이 불과 몇m 경계 안에서 크게 대조를 이루는 한 작은 지방. 그 곳에 있는 한 작은 도시에서 한 여성이 눈을 뜬다.
어째선지 모르나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그녀의 손에는 왠 수갑이 쥐어져 있었다. 멍하니 일어선 그녀를 향해 작은 새 한마리가 날아간다. 그 새를 쫓아 고개를 돌리자 웬 거울조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곳에는 고운 눈동자가 비춰져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가린 눈이나 가리지 않은 눈이나 양쪽 다 상처하나 없는 맑은 눈동자. 그녀의 모습이 사진처럼 곱게 비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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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5 16:19
    잘 봤습니다. 비욘더님 글 보는 건 오랜만인 거 같네요^^;
    글 재밌는데요 뭐. 단편이지만, 장편으로 라펜드와 나레카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즐거울 거 같아요.

    다음에 글 쓰시면 꼭 올려주세요~ ㅎ
  • profile
    비욘더 2012.06.05 18:5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으 많이 노력해야겠어요.
    전콘보니까 기억이나는데 윤주님 혹시 예전 아이디가 misinfect였나요? 요즘 기억력이 많이 둔해져가네요ㅎ;
    댓글 감사드리고 윤주님도 건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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