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습관처럼 상실이라던가 상실감이라던가 하는 말들을 써왔을 뿐이죠.
비평을 쓰려다가, '그런데 상실이란 무슨 뜻이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런 말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게 됨.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여기서 더 자세히 파고들려면, 철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해야겠지요. 아무래도 와닿지 않아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입니다. 어설프게나마 감이 잡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상실이란 결국 자아 일부가 깎여나가는 것이다.'
상실 혹은 상실감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개 괴롭다고 말하고 헤어나오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본래 자기 것이었던 것을 잃는다, 그것이 상실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어떤 것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과 밀접히 연관되어, 조금 어렵게 말하면 자아를 구성하는 데 참여했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지칭해 상실(喪失)이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죽어서 잃는다(喪失)'란 식으로 표현하진 않았을 거 같아서요.
글을 쓸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면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장담은 못하겠네요 ㅎㅎ
시우 님께서 부탁하신 미션은 '상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 생생히 사라져가는 무언가에 대해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정 표현이 중요할 것 같다, 또 무엇이 상실되는지 알 수 있게 쓰자는 게 부가 사항이겠죠.
이런 미션이었으니까, '상실'이란 뭔지 애초부터 좀 더 많이 고민해봤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가, 막상 그것을 주제로 쓰려고 하니 이렇게나 낯설어 보일 수가 없습니다. 글 쓰는 묘미가 이런 거 아닐까요;
'자기 자신 일부가 죽어 없어지는' 감정을 표현하기엔, 인생 경험이 너무 부족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자신의 글은 남자가 보다 자의식을 갖고 주인공 역할을 하거나, 여자와 남자 사이 유대감을 우선 더 어필했어야 나았을 것 같네요. 다시 님의 글은 주인공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가중시키면서 지구의 운명을 건 승부를 자신의 승부로 내면화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실패로 인해 허탈함, 허무함을 느끼는 것도 상실로 인한 결과 중 하나겠죠. 전체적인 무게감을 좀 더 실었더라면 어땠을까요? 하늘 님 글에선 상실의 조건을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무감정한 주인공이 부모에게서만 상실감을 느꼈다는 부분에서요. 다만 기왕이면 글의 좀 더 많은 부분이 주제를 구성하는 데 참여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무감정, 무관심한 주인공의 시선이 글 거의 전체에 드러나는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으셨던 걸까요?
주제에 관련한 제 평은 이 정도입니다. 다시 님과 하늘 님 글은 조금씩 장점과 약점이 함께 보이는데, 다시 님 글이 좀 더 한 편 글로 잘 엮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 글은 선뜻 판단이 잘 안서네요;; 주제에 대해서뿐 아니라 인물 배치에 대해서도 신경 더 썼어야 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하늘 님 글보다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겠죠;
개별 글에 대해서 다시 나름대로 코멘트 달아 봅니다.
다시 님, <마지막 한방>
- 전반적인 분위기가 좀 더 무거운 편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코멘트는 그 점에 전부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시 님 생각과 맞지 않다고 생각되시면 무시해 주세요 ㅎㅎ- 도입부분에서 사내와 청년이 대화하는 장면을 빼거나 다른 장면을 넣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웃는다'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이야기 전체를 약간 가볍고 유쾌해 보이게 만드는 것 같네요. 특히 좌절로 끝나는 결말이 보기에 따라 허무하게 느껴지는데, 이야기 도입부터 전체적으로 가볍게 되면 결말이 아이러니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을까요?- 갤럭시 탭 등 실제 존재하는 소재를 사용하면 독자가 친숙하게 느껴 몰입감을 형성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친근함은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네요. 태블릿 PC처럼 유사한 의미를 가진 일반명사를 쓰면 그런 점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선 발사 직전부터는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선 발사 부분에서는,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코카콜라 소니를 포함한 지구의 모든 희망...'하는 부분이요 ㅎㅎ-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형성되면, 결말부분에서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하는 대사가 보다 냉소적이고 자학적으로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보통 영미 소설에서 자주 쓰는 유머가 이런 형태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마다 호오가 갈리긴 합니다. 참고되실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건천하늘 님, <사진과 검은 선>
- 첫인상에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냉정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주인공이 부모님을 보곤 처음으로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전까지 주인공이 했던 모든 경험들이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되살려주는 과정이 있었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날 했던 경험을 부모님을 계기로 주인공이 회상처럼 되짚는 건 어떨까요?- 또다른 방법은, 제 생각에, 주인공의 태도가 무관심 일변으로 가기보다 조금씩 기복을 주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서툴게 다루면 오히려 글을 망치게 됩니다만, 독자가 글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주제를 받아들이게 되는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이 방법의 또 한 가지 단점이라면, 건천하늘 님이 형성한 분위기를 망치는 거겠죠. 충격적인 사건에 응하는 주인공 태도는 다분히 냉소적이지만, 한편으론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처럼도 보이네요. 원하시는 효과가 있으셨다면, 첫 번째 방법이 낫겠죠?- 첫 번째나 두 번째 수정이 없는 경우라면, 무관심한 주인공의 시선이 드러나는 파트가 지나치게 길어 보입니다. 친구의 죽음, 연예인의 사망, 무뚝뚝한 뉴스 앵커, 삭막한 아파트 생활, 같은 동네 할머니의 죽음 같은 에피소드가 길게 이어지는데다 그걸 바라보는 주인공 태도는 냉소적이라 독자에게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살짝 불편해하는 건 뒤이어질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지나치게 불편해하게 만들 필욘 없지 않을까요?- 아마 하늘 님께서 충분히 시간 갖고 평소처럼 쓰셨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테죠; 시험 기간이니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해요^^;
충분한 시간이나마나, 어차피 전 퇴고 없이 지르는 소설인 관계로 문제가 없는게 이상한 겁니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