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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산포의 축제는 오늘로 사흘째 밤을 맞고 있었다. 온산포(溫山浦)는 본래 이룰내(成江)의 끝자락에 위치한 포구로, 그 앞의 물목은 예로부터 물살이 세게 휘몰아치는 곳이어서 가을철 도성으로 들어가는 세곡선은 으레 물돌이가 잠잠해질 때까지 온산포에 머물곤 하였다. 온산포의 축제는 이 며칠 동안 세곡선을 따라나선 상인들이 포구에 장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여느 포구의 장시와 마찬가지로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들을 교환하는 아기자기한 장터였으나, 세곡선들은 어쩔 수 없이 온산포에 머물러야 하는 가을 물목의 특성 덕택에 가을의 포구장만큼은 특히 성황이었고 그것이 유명세를 타 지금의 축제의 형태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이제 온산포 축제는 이룰내 주변의 봇짐장수들과 등짐장수들이 총집합하여 온갖 물산을 겨루고, 팔도의 모든 놀이꾼들이 쏟아져 서로 재주를 다투는 대규모의 행사로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보통 5일 정도 지속되는 온산포 축제에서 가운데 마지막 사흘은 저녁나절부터 서커스를 볼 수 있기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외국의 기예(技藝)를 토대로 조선의 줄타기 등과 접목시켜 만든 것이 바로 이 천무(天武) 서커스의 원형으로, 여기에서는 팔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묘기들을 맛볼 수가 있었다. 때문에 서커스가 열리는 축제의 마지막 사흘은 숙박을 잡지 못해 들에서 노숙을 해야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소년이 이날 밤 온산장을 찾은 것도 바로 이 서커스를 보기 위함이었다.

  소년은 노개(盧開)에서 대장간을 하는 지온의 아들로, 노개는 이룰내의 위쪽 끝자락에 있는 작디작은 마을이었다.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노개는 이룰내의 큰 지류가 시작되는 발원 지점으로, 둘레에는 돌산이 험준하게 박혀있어 주변과의 왕래가 적은 곳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대장간의 외자식으로 태어난 소년은 한 번도 마을 밖을 나간 적이 없었으며, 외지사람을 만난 적 또한 없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온산장으로 남새를 팔고와 보리쌀로 바꿔온 앞집 윗녀댁의 말에 서커스에 대해 궁금병을 얻어, 소년은 호기롭게 마을을 나선 것이었다.

  온산포 축제에 다녀오겠다는 한쪽 글귀만을 언문으로 적어 남기고 온 채, 소년은 푼푼이 모아온 돈을 가지고 지류를 따라 여드레 만에 온산포에 도착했다. 가지고온 돈은 물론 사흘 남짓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벅찬 액수였으나, 소년은 들르는 마을에서 날품을 팔아가며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온산포의 거대한 장터는 가슴을 쇠망치로 쿵 치는 것과 같은 찌릿한 충격을 소년에게 안겨주었다.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설렘이었다.

  장터와는 조금 떨어진 주막에서 장국밥으로 대강 저녁을 해결한 뒤 소년은 서커스 공연이 잘 보이는 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역시나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시작하는 시간에 이르자 공터는 서커스를 보려는 사람들로 금세 가득 찼다. 공터 앞쪽에는 서커스 공연을 위한 단(壇)이 터돋움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양 옆쪽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스무 간 길이(*약 36m 정도)의 큰 구조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지난해 공연에서 이것을 새끼줄로 엮어 생사를 건 줄타기를 하였다는 봇짐장수들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야 소년은 구조물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단 뒤쪽으로는 공연치들이 드나드는 장막이 쳐져 있었고, 그 둘레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공터 군데군데에는 엿장수들이 돌아다니며 흥을 한껏 돋우고 있고, 더러는 낡은 옷을 뒤집어쓴 아이들이 쥐새끼마냥 구경꾼들의 주머니를 야금야금 털고 있었다. 소년이 자리를 잡은 지 한 식경 정도가 지나가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쩌렁쩌렁 울려대었다.

  노새에서는 평생에 보지 못할 묘기들이 소년의 눈을 훑고 지나간다. 웃통을 벗은 장정이 나와 불을 뿜어대었고, 그 이어서는 장정의 어깨 위에 장정이 오르고 그 위에 또 다른 장정이 올라타고 그 우에는 또 한 장정이 무동을 타는 기이한 묘기가 선을 보였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이 구경꾼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소년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묘기들에 더욱 짜릿함을 느끼며, 비록 몰래 가출을 하긴 하였으나 온산포에 오기를 잘 하였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그 사이 어느덧 공연은 한 시진이 흘러 마지막을 고하고 있었다.

 

  “늦게 다니지 좀 말랑께. 막걸리도 좀 멀리 좀 허봐. 임자, 열 살짜리 애모냥 말을 안 듣나! 구경꾼 여러분, 드디어 기다리시던 공연이자 우리 천무 서거수단의 마지막 순서인 줄타기가 시작됩니다. 오날은 공연의 첫 날인 고로, 시작을 알리는 겸 하여 놀라지 안헐 만큼만 하것으나 놀라 뒤로 자빠지지 아니 하도록 주의하시길. 더불어 요번 줄광대는 서거수단의 새 일원으로서 온산포 놀음에서는 처음 공연하는 것이니 무엇보다도 기대를 가지고 구경하였으면 좋것습니다. 지금 나옵니다. 박수로 환대를. 아이유!”

 

  서커스단의 우두머리쯤으로 보이는 사내의 말이 끝나자 장막의 오른편에서 조그만 계집아이가 표정을 잃어버린 듯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아이유라 불린 소녀는 서른 간의 구조물 앞에 서더니, 이내 그것을 한 층 한 층 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 보호받아야 할 것 같은 나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소녀가 그 높은 대(臺)를 오르는 것만 해도 충분히 아찔한 광경인데, 구조물에 올라탄 소녀는 마치 동네의 신난 강아지를 쫒아가듯 줄 위를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소년의 눈동자가 솔방울 만하게 상기된 것은 볼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놀란 것과는 별개로, 무대에 나타난 소녀를 본 다음부터 소년은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국밥을 서둘러 먹던 것이 체하였나보다 하고 스스로 둘러댔지만, 이제까지의 체한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연지를 찍고 새끼줄 위를 사뿐사뿐 걷는 모습이 마치 빨간 꽃 등불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꺼질 것이 두렵기라도 한 듯, 설레는 모양새로 밤 공연을 즐기던 소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줄타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도하는 소년이 앉아 있다.

  요리조리 줄을 나다니며 묘기를 부리던 소녀는 치맛자락에 달린 주머니에서 국화 꽃잎을 꺼내어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것으로 온산포 축제의 사흘째 밤은 마무리 지어졌다.

 

  이튿날 소년은 장터의 한 구석에서 나물과 시래기 다듬는 일을 도우며 품을 팔았다. 대장간의 아들이었으나 노새 산골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소년이기에 일은 어렵지 않았다. 소년의 어머니는 마을 어귀의 심마니꾼 집의 고명딸이었는데, 대장간집 지온과 결혼해 첫 아이를 낳던 중 그만 산고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미 없는 집의 아들. 찬거리 장만은 언제나 소년의 몫이었고, 심마니꾼의 피가 흘러서인지 소년은 봄이면 나물을 곧잘 뜯어왔다. 그래서 소년에게는 대장간의 철 냄새보다는 산이 뿜어대는 흙의 향취가 더 깊게 묻어났다. 가을에는 산나물을 흔하게 뜯을 수는 없지만 남새를 말려 시래기를 만드는 일은 가능했다. 바닥에 앉아 못 쓰는 시래기를 솎아내며 소년은 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사가면 화를 덜 내실까 하는 얕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소년의 동그스름한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제 줄광대 노릇을 했던 등불 모양 소녀였다.

 

  “사내애가 예서 왜 나물을 뜯고 있니?”

 

  소년은 어제 소녀를 보았지만 당연히도 소녀는 소년을 모르는 모양이다. 등불 모양을 했던 소녀가 말을 건 것은 단순히 호기심에서였겠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그런 이유를 따지는 것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가을바람은 쌀쌀했지만 조그만 떨림이 증폭되어 소년을 따습게 했다.

  대답에 물음을 여러 번 반복하다 어느새 조금은 친한 분위기가 났다. 시래기 다듬기를 마치고 손을 대충 씻은 뒤 소년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소녀는 소년을 데리고 장터에서 조금 떨어진 들가의 언덕에 올랐다. 나란히 선 소녀의 키는 소년보다 한 뼘 반은 작았다. 그렇지만 작은 키와 다르게 활발한 쪽은 소녀였고, 소년은 소녀의 목화솜같이 하얀 손에 이끌려 발걸음을 했다. 어제와 다르게 두 볼의 연지는 지워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분홍색이 지워진 그 볼이 연두색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 같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그리고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와 그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낼 것이라는 상상까지 이르자 소년의 볼이 더욱 벌그레 졌다.

 

  “내년에도 난 여기 와서 줄을 타고 있겠지. 너는 내년에 무얼 하고 있겠니?”

 

  붉어지는 소년의 낯과 정반대로 소녀 쪽에서는 갑자기 서글픈 물음을 해온다. 대답을 하고 싶지만 말이 막혀버리고 마는 물음이다.

 

  “옛날에 어떤 임금님에게 두 명의 부인이 있었대. 그런데 그 두 부인은 임금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서로에게 임금님의 사랑을 양보하지 못하고 싸움을 계속했다고 해. 어느 날 임금님이 사랑하는 부인들을 위해 사냥을 나섰는데, 그 사이에 두 사람의 싸움이 커져 한 사람이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대. 사냥에서 돌아온 뒤에 임금님은 그 부인을 찾으러 온 힘을 다해 쫒아갔는데, 끝끝내 부인을 만나지 못했나봐.”

 

  “…….”

 

  “상실감에 터덜터덜 걷다가 임금님은 나무에 주저앉았는데, 그때 꾀꼬리 한 쌍이 즐겁게 노닐고 있더래. 임금님이 그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슬퍼서 그 슬픔을 노래로 지었다고 해.”

 

  처음 들어본 이야기여서 내용이 아리송했지만, 소년은 이야기를 꺼내는 소녀의 얼굴이 임금님의 좌절보다도 더 슬퍼보여서 가슴이 아팠다. 찬바람이 휘잉 불어서인지 어제의 표정 없던 소녀의 눈에는 물기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온산포는 바닷가와도 가까워 바람에는 소금기가 서려있다. 바람을 따라 방아깨비와 메뚜기, 여치 같은 것들이 한 방향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언덕 위에서는 그렇게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거기서 소녀는 더 말이 없었다. 소년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언덕을 조금 훑고 간 뒤, 소녀는 다시 소년을 이끌고 장터로 돌아왔다.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 날 공연에서 자신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장터 저편으로 사라졌다.

  산골짝이어서 칼바람이 몸에 베어드는 노새와 달리 온산포는 나름대로 온기 넘치고 추위가 매섭지 않은 느낌이다. 단지 겨울이 가까워오다 보니 점점 낮이 짧아져 추위를 느끼는 어둠의 시간은 조금 길었다. 주막의 마당 뜰에서 별빛 하늘을 이불삼아 누운 소년은 낮에 소녀가 한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없는 소년으로서는 옛날이야기는 정말로 생소한 것이었고, 늘 아버지는 쇠를 두들기며 말이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소녀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더욱 애썼다. 축제 나흘째의 서커스를 보기 위해 더러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나, 소년으로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그 자리로 잠에 들었다.

 

  “꾀꼬리….”

 

  다음날 소년은 유난히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날은 온산포 축제의 마지막이었기에 봇짐장수들과 등짐장수들은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내를 따라 내륙 쪽으로 올라가는 보부상들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따라나선다면 여비도 아낄뿐더러 노새에 더욱 쉽게 당도할 수 있다. 그러나 소년은 내키지가 않는다. 결국 서커스를 보러 왔으니 오늘밤 마지막 공연까지 마저 보고 떠나야겠다고 자기 옹호를 하고 떠나지 않고 남기로 작심하였다.

  장이 파하는 날이었기에 장터에서는 일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때문에 소년은 무언가를 찾듯 장터를 잠시 기웃거리더니 이내 포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포구에는 도성으로 향하는 세곡선이 떠날 준비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소년은 물품을 배로 나르는 일거리를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옮겨야 하는 물건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어물이나 남새 같은 먹을거리에서부터 무명, 삼베, 비단 같은 옷감들, 죽세공품이나 백자, 그리고 비녀나 노리개 같은 패물들이 쌈지에 싸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 보라색 빛이 나는 수보자기가 소년의 눈에 띄었다. 수보자기의 보랏빛에 연두색 꽃봉오리가 겹치어 떠오르자 소년의 볼이 금세 붉어졌고, 그날 소년은 배 주인에게 양해를 얻어 품삯 대신 수보자기를 얻어왔다. 소년은 수보자기를 모에 맞게 정갈하게 접어서 바지에 달린 주머니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서커스 공연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두어 식경이 남아 있었다. 어제의 그 언덕에 올라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소년은 곧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주막에서 시간을 죽이기로 하였다. 포구에서 주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순간 소년은 딴 생각에 잠겨 멍하니 걷고 있었다. 그것이 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소년도 조금 인정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주막에 도착하니 소년의 봇짐 옆에서 소녀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도 못한 일에 소년이 벙찐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소녀가 소년에게 다가와 두어 마디 말을 먼저 꺼낸다. 어디로든 나 좀 데려가 줄래. 갑작스런 말에 소년은 또 말문이 막힌다. 소년은 자신은 노개라는 산골짝 마을에서 가출하여 온 것이고 소녀를 데리고 집에 돌아갈 만한 돈도 없을뿐더러 그럴 용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변명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그저 계속 말문을 열지 못하고 멍하니 있을 뿐이다. 왜 서커스단을 떠나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결국 아무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소녀는 다시 서커스단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이때까지도 주머니에 든 수보자기를 건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보니 어두컴컴하니 벌써 저녁이 되어 있었다. 가을밤 하늘은 다른 때와 달리 유달리 하늘이 깊고 별이 총총 떠있다. 그 사이 오늘 파장 날은 보름이어서 달도 동그랗게 하늘 한 구석을 빛내고 있다. 그 노란 빛이 어두운 하늘을 조금은 거두어 가는데, 소년에게는 왠지 그 광경이 한 쌍이 꾀꼬리가 우는 모습처럼 보였다.

  서커스 공연의 진행 순서는 축제 사흘째 날과 같았다. 묘기의 종류는 그때와 사뭇 달랐으나 마지막 공연은 줄타기로 같았다. 마찬가지로 서커스단 우두머리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 여자 줄광대 아이유입니다. 흥겹게 봐주시면 좋것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나타났다. 이틀 전과 같은 표정 없는 얼굴을 지닌 채로. 그러나 그 무표정에는 어디엔지 모를 우울한 빛이 스미어 있었다.

  소녀는 사흘째 밤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구조물을 타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구조물을 오르고 나서 그 우에 서 구경꾼들을 한 차례 돌아보았다. 그 돌아봄에 시선이 어딘가로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대(臺) 위의 소녀가 화폭 위의 난초처럼 두드러져 보였다. 소녀는 줄 위에 사뿐히 서 순서가 굳어져 있는 듯한 묘기를 하나하나 시행해 보인다. 그 모습을 아래쪽에서 지켜보면서 소년은 다시 한 번 위태로움을 느끼며, 아찔아찔하였다. 일련의 묘기가 끝나자 소녀는 치맛자락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거기 달린 주머니에서 국화 꽃잎을 집어들어 흩날렸다. 그리고.

  꽃잎과 함께 뛰어내렸다. 피어나지 않은 연두색 꽃봉오리가 꽃대가 꺾인 듯 어지러이 떨어졌다. 등불이 꺼지는 듯한 모양새다. 소년은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사람 없는 빈 대(臺)가 마치 꾀꼬리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 홰로 보였다. 그때 소년의 주머니에서는 보랏빛 수보자기가 눈물을 새긴 듯한 무늬로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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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창작은 어렵습니다..ㅠ _ㅠ

리뉴얼 기념으로 단편 하나 써보자고 9시쯤 호기롭게 시작했던 게

늘어지고 늘어져 결국 새벽 2시까지 썼네요..ㅠㅠ

 

단편이니 속전속결로 가자..!! 라는 생각에 역사소설에 치중하기보다는

다소 허구적으로 글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에 온산포나 노개라는 지명은 절대로 실재하지 않구요.

서커스는 당연히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무명 등 일부 옷감은 육의전이 독점하여 판매하지 못 했다는 역사적 사실 등등

싹 무시했습니다.. -_-;;

그런 걸 따지면 수보자기나 노리개 같은 귀중품을 날품팔이에게 옮기라고도 안 하겠지요..ㅋㅋ

 

뭐..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제가 예전에(2007년) 썼던 시를 바탕으로 쓰여진 거에요.

거기에 황조가라는 고전적 모티브가 첨가된 거지요.

예전부터 쓰고 싶었던 소설이긴한데,

처음 구상에서는 고전 배경이 아닌 현대 한국의 제주도를 배경으로 삼았었어요.

뭐.. 이것도 그렇다고 합니다.

 

미약한 소설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

 

덧붙여 예전에 썼던 시를 첨부합니다.. ㅇ_ㅇ

 

< 어느. 야시장 (2007.2)>

 

서서히 내려가는 어느 겨울에

붉은 비닐봉투가 잊혀져가는,

야시장의 등불은 올라갔었다.

 

하얀의 비닐들이 한(寒)적막으로

그 즈음

꽃밭의 밝은 설움은 시작 날아간다.

 

줄에 매달린 그녀, 연지 삐에로.

그 날이 비닐 유리 철새(鐵璽)이기에

어쩌면, 그래서 야(夜)시장일까......

 

잊혀지는 사이엔, 그이 아무도

발 밑을 보아줄까 그 야시장은

그날, 등불과 하늘 노-ㅍ이 있었습니다.

?
  • profile
    클레어^^ 2011.01.07 21:11

    오홋, 리뉴얼 축하 기념 소설인가요? 천무 서커스단...;;

    아, 아이유면 가수 이름 아닌가요?  요새 잘 나가는 가수...

  • ?
    로케이트 2011.01.08 06:35

    그냥 무심코 넣은 건데 다들 짚고 넘어가시네요...ㅋㅋㅋ

    저는 작명에는 그다지 무게를 두지 않는 편이어서요..ㅋㅋㅋ

  • ?
    乾天HaNeuL 2011.01.08 02:19

    그러나 소년은 내키지가 않는다. 결국 서커스를 보러 왔으니 오늘밤 마지막 공연까지 마저 보고 떠나야겠다고 자기 옹호를 하고 떠나지 않고 남기로 작심하였다.

    이거 문장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갑니다.... 떠나는 건가요? 남는 건가요?


    그리고 아이유라니... ㄷㄷㄷ

  • ?
    로케이트 2011.01.08 06:34

    상인들을 따라나서는 게 내키지 않는 것이지요..ㅋㅋ

    같이 가면 빨리 집에 갈 수 있지만, 소녀를 보기 위해서 하루 더 남는 것이죠..ㅋㅋ

     

    그리고 아이유는.. 전 별로 관심 없지만 그냥 가볍게 투척..ㅋㅋ

    자세히 보면 서커스 단장 대화에 잔소리 가사 개작도 있습니당..ㅋㅋ

  • profile
    윤주[尹主] 2011.01.08 08:55

    역사적 사실따위 가볍게 무시해주는 겁니다 ㅎㅎ

    배경이 흔하지 않아서 재미있게 봤어요. 다음 화를 기대합니다~

  • ?
    로케이트 2011.01.09 06:06

    흐흐.. 아쉽지만 죽은 소녀가 좀비로 부활하는 장면은 없기 때문에..ㅋㅋㅋ

    단편으로 마치고, 새로 쓸 건 좀 더 보편적인 장르를 해볼까 생각합니다..ㅇ_ㅇㅋㅋ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8 22:01

    로케이트님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니 서커스 단장이 과연

    잔소리 노랫가사를 패러디 하고 있군요. .ㅋ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애절한 감정선이 절제된 문체임이도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전 좀 의야스러운 것은

    초반에 주인공이 첩첩산중 마을에서 어떤 계기로 마을을 떠나게 되었냐는 거지요.

    혹시 누가 와서 온산포장의 위엄을 말해줬던 걸까요? ㅎ

  • profile
    시우처럼 2011.01.09 08:03

    아, 거기 있는 것을...

    제가 읽다가 잠시 줄을 놓쳤던 모양인가봐요. ㅎ

  • ?
    로케이트 2011.01.09 05:58

    소설 앞부분에, 온산장에 다녀온 적이 있는 윗녀댁이 바람을 넣었다는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ㅎㅎ

    부족한 글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ㅋㅋㅋ

  • ?
    여노 2011.01.09 03:14

    ㅋㅋ지온의아들

  • ?
    로케이트 2011.01.09 06:05

    군대서 낳은 아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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