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8 00:40

해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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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이 글은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이것저것 짜집기해서 완성된 잉여 레포트임을 알려드리며 읽기에도 재미없으며 별로 유익한 내용도 없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Ⅰ.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에 소외된 것들의 주체화이자, 정형적인 것들의 파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인 지금 세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사회 전반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문학에서는 산업화 이후 사용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자연을 주체로 끌어올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지향하는 생태문학, 과거 억압돼 온 여성들의 권리를 찾고 나아가 여성과 남성의 조화를 지향하는 페미니즘 문학, 현실의 표현에 있어 언어적 한계를 느껴 시적 형식의 파괴를 도모한 해체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우리는 우리나라 1980년대의 시의 전개를 이끈 해체시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해체시에 대해 알기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해체사상(deconstruction)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해체주의는 탈구축(脫構築)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데리다는 지금까지의 서유럽의 전통적 형이상학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그 사상의 축(軸)이 되었던 것을 모두 상대화(相對化)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려 하였다. 그 경우에 먼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리 주어진 것으로서 존재하는 ‘전체성(全體性)’이라는 사고방식이고, 그 다음이 그 배후에 있는 신(神)이라는 궁극의 존재를 지주(支柱)로 하는 서구의 ‘전통적 형이상학’이다.

이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디컨스트럭션은 서구사상의 근저(根底)에 관계되는 어려운 작업이어서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디컨스트럭션의 대상은 사물과 말(언어), 존재와 표상(表象), 중심과 주변 등, 형이상학적 사고에 의하여 지탱되어 온 모든 2원론의 입장을 모두 새롭게 고쳐 구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의미의 불확정성을 비롯한 일종의 혼란상태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데리다의 사상은 결코 고립된 것이 아니며, R.바르트(Barthes: 1915∼1980)나 M.푸코(Foucault: 1926∼1984)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서구사상에 대한 상대화의 시도를 계승한 것이고, 통일적인 것을 거부하여 리좀상(狀)의 것, 유목민적인 운동을 사상에서 구하는 G.들뢰즈(Deleuze: 1925∼1995)나 P.F.과타리(Guattari: 1930∼)의 사상과도 연동(聯動)한다.

해체적인 시는 1930년대에 이상과 같은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실험적으로 쓰여 진 바가 있으며 50년대의 후기의 김구용, 조향, 박인환 등의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쓰여 졌지만 198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해체시가 쓰여졌다. 그 이유는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사상가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해체시는 시인의 세계관이 유보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가 아니라 표절하고 습득하고 인용하는 형태를 취한다. 언어가 더 이상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언어에 대한 불신에서 전통 시형식의 파괴라는 해체의 충격이 가시화된 시가 바로 해체시이다. 그래서 회화, 패러디는 물론, 비속어와 같은 하위개념의 언어를 시에 동원하기도 한다. 당대 본격적으로 해체시를 들고 나온 황지우와 박남철 등의 시인들을 볼 때 이 사실이 자명해진다.

이에 연구에서는 1980년대에 활동하였던 시인인 박남철, 황지우, 장정일의 해체시를 연구하여 우리나라 해체시의 전반적인 특성을 알아보고 각 시인들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전통적인 시형식의 해체

 

1980년대 해체시의 해체의 양상 중 가장 많은 것이 전통적인 시형식의 해체이다. 해체시인들은 글자의 반전, 띄어쓰기의 무시, 패러디를 사용하거나 콜라주기법을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시에서 용납되지 않았던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시를 썼다.

몇몇 시를 통해 알아보겠다.

 

스리지 뽑으러 창제 인쇄소엘 가면 시인 조태일씨가 있다. 죠우 테일이요

좃태일이요?( 통금위반으로 난는 그와 종로 경찰서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 그는 국문의 역행동화와 모음축약 현상으로 자기 이름이 가끔 좃털이 된다고 너털웃음을 웃는다( 확실히 우리말 사이시옷에는 끊고 싶은 푸른 칼날이 들어 있다).한때 그는 양푼에 소주를 부어 밥 말아 마셨다고 한다.( 나는 질린다 ) 그는 씨름꾼같이 생겼다. 술에 취하면 자주 그는 신길동 집 옥상에 밤늦게 올라 별에게 삿대질을 하며( 방점은 내가 찍는다 ) 고성방가 하였다. 그랬더니( 그가 나쁘다)그의 이웃들이 반상회에서 그를 신고 했다는데, 아무튼 그는 시를 쓰지 않는다. 그가 시를 쓰지 못하는 것과 이 고성방가가 어떤 관계를 갖는다고는 나는 생각지 않는다. 시인은 늙지 않으려면 빨리 죽어야 한다.

나는 창제 인쇄소 주조실에 있는, 머리털이 희끗한 말없는 김씨 아저씨가 좋다. 그 분은 고분고분,떨어져나간 활자를 만든다. 불에 납이 녹는다. 타는 기름 냄새(나는 그대 노예의 살갗에 불붙는 문신을 보는 것 같았다) 오늘 김씨 할아버지는물음표를 한 상자나 만들어 놓으셧다. 이게 몇 자쯤 되느냐고 물어도 그는 기계소리 때문에 말을 듣지 못 한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것을 거울에 비추어볼 것)

왜 그랬을까. 왜 그것이 낚시같이 보였을까? 왜 나는 그것을 시라고 생각 했을까? 꺼꾸로 숙이고 있다가 문득 우리의 확신과 의혹을 낚아채는, 우리의 아가미를 여지없이 낚아채는, 그 이유를 나는 말 못한다.

-황지우, 의혹을 향하여

 

이 시에서 황지우는 물음표(?)를 붙이는 행위를 낚시행위에 비유하면서, 바로 그것이 시라고 말한다. 시인이 익숙하고 낯익은 현실에 의문부호를 놓는 행위는 낚시꾼이 낚시 바늘을 드리우는 것과 같다. 낚시 바늘로 물고기를 낚아채 고기를 잡듯, 시인은 이 물음표 낚시 바늘을 통해 새로운 현실인식을 낚는다. 그러므로 ‘익숙한 것’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 참된 현실인식에 도달하려는 작가들은 수많은 물음표로 무장하고, 대상을 언제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시의 억압된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이 독자에게 깨달음을 준다. 시에서 현실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것, 황지우는 그것을 시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장정일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중략>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이 시는 요리의 과정이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중심에’들어가야 한다는 역설로써 요리를 명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자잘한 것에 전념하는 일상의 모습을 제시한다. 미국식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온갖 잡념을 막고 요리에 전념하라는 화자의 요구는 오히려 세속적 삶의 가치기준을 비웃는 듯이 보인다. 또한 그 요리의 대상이 하필이면 미국식 간식이라는 사실은 외세에 중독된 우리문화를 비판하는 의미를 지닌다.

특이하게 이 시는 조리법을 시에 콜라주 하였다.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라는 구절로서 왜 햄버거 조리법을 시에 콜라주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즉, 시인은 우리가 외국문화에 너무 빠져있고, 우리의 사고마저 그렇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내 詩(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 열중쉬엇, 차렷,// 이 좆만한 놈들이....../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OO, 차렷, 헤처모엿 !// 이 좆만한 놈들이....../ 헤쳐모엿,// (야 이 좆만한 놈들아, 느네들 정말 그 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엉 ?)//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차렷......

-박남철, 독자놈들 길들이기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독자에게 "이 좆만한 놈들이"하고 무지막지한 욕설을 가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독자를 길들이겠다고 하면서 "차렷, 열중쉬엇, 차렷, 열중쉬엇, 정신차렷, 차렷, OO , 차렷, 헤쳐모엿!"이라고 구령을 붙이고 있는데, 이것 역시 시인이 독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다.

 

1983년 4월 20일, 맑음, 18℃

 

토큰 5개 550원, 종이컵 커피 150원, 담배솔 500원, 한국일보 130원, 자

장면 600원, 미쓰 리와 저녁식사하고 영화 한편 8,600원, 올림픽 복권 5

장 2,500원

표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

준청과물상 金正權(46)

 

령=얼핏 생각하면 요즘

세사에 趙世衡같이 그릇된

 

셨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생

활 태도를 일찍부터 익혀 평

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이다. (李元柱군에게) 아

 

임감이 있고 용기가 있으니

공부를 하면 반드시성공

 

두꺼비.GIF

 

대도둑은 대포로 쏘라

---- 안의섭, 두꺼비

 

(11) 第 10610 號

 

▲ 일화 15만엔(45만원) ▲ 5.75캐럿물방울다이어 1개(2천만원) ▲남자용파

테시계 1개(1천만원) ▲ 황금목걸이5돈쭝1개(30만원) ▲금장로렉스시계 1개

(1백만원) ▲ 5캐럿 에머럴드반지 1개 (5백만원) ▲ 비취나비형브로치 2개

(1천만원) ▲진주목걸이꼰 것 1개 (3백만원) ▲ 라이카엠 5카메라 1대 (1백

만원) ▲ 청자 도자기 3점 (싯가미상) ▲ 현금 (2백 50만원)

너무 巨하여 귀퉁이가 안 보이는 灰의 왕궁에서오늘도 송일환씨는 잘 살고

있다. 생명 하나는 보장되어 있다

-황지우,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하루」

 

첫 연에서는 평범한 월급쟁이인 송일환씨가 하루를 살아가며 사용된 돈의 액수가 나온다. 그리고 다음 연부터 마지막 연 전까지 신문의 기사 내용을 훑어보듯이 시가 전개 된다. 이 신문에서 송일환씨는 값 비싼 물건들의 목록을 본다. 이 목록은 송일환씨의 일상과 대조되며 이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친숙한 소재들을 사용하여 시를 썼다. 평범한 회사원을 등장시키고, 신문의 내용을 콜라주하여 시 내용에 포함 시켰다. 기존의 시의 형식을 파괴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작가의 의도를 나타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2. 작가의 해체

 

전통적인 작가의 개념은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이다. 즉, ‘창조의 주체’인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의 해체시인들은 전통적인 시에서의 ‘창조의 주체’인 작가마저 무너트린다.

 

1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니체

도마뱀의 짦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최승호, 「인식의 힘」, 『문학과 지성사, 1985』]

 

2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라는 니체의 경구를 에피그라프로 하고 있는 최승호의 2행시는 臨濟(임제)의 喝[할]의 그것처럼 힘이 있다.

힘, 힘, 인식의 힘 !

 

“사자가 한번 부르짖으니,

여우의 머리골이 찢어지도다.“

 

이건『西翁潢義臨濟錄(서옹황의임제록)』「東西文化社(동서문화사, 1974)」 중의 「到明化(도명화)」에 대한 서옹스님의 ‘着語(착어)’이다.

-박남철, 「인식의 힘」

 

박남철은 현실의 표절을 넘어 남의 작품도 서슴없이 인용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그의 「詩作스크랩」4편도 순전히 남의 글을 스크랩한 것을 자신의 시 텍스트로 대치시키고 있다. 시작 스크랩은 제재나 동기부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스크랩 자체가 그의 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창조의 원천도 주체도 아니다. 아니 시인고유의 존재가 소멸되어버린다.

나는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쓴다.

상기(上記) 진술은 너무 오만하다( )

위풍당당하다( )

위험천만하다( )

천진난만하다( )

독자들은 ( )에 ○표를 쳐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위험스러운가( )

얼마나 위험스러운가( )

과연 위험스러운가( )에 ?표!표를 분간 못하겠습니다.

부재(不在)의 혐의로 나는 늘 괴로워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감시당하고 있는가( )

당신은 나를 감시하고 있는가( )

독자들이여 오늘 이 땅의 시인은 어느 쪽인가( )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 ) ○표 해 주시고 이 물음의 방식에도 양자택일 해 주십시오.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동 시대와 맺어진 것은 악연입니다.

나는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도저히, 그러나,

한 시대를 감시하겠다는 사람의 외로움의 질량과 가속도와 등거리도 양지하 여 주시기 바랍니다

죄의식에 젖어 있는 시대, 혹은 죄의식도 없는 저 뻔뻔스러운 컬러 텔러비 전과 저 돈 범벅인 프로 권투와 저 땀범벅인 아시아 여자 농구 선수권 대 회와 그리고 그 때마다의 화환과 카 프레이드 앞에,

-황지우, 「도대체 시란 무엇인가」

 

 

첫 행 ‘나는 시를, 당대에 대한, 당대를 위한 당대의 유언으로 쓴다.’는 시인이 당대현실에 대해 쓴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음 행부터 질문이 나온다. ‘상기(上記) 진술은 너무 오만하다 위풍당당하다 위험천만하다 천진난만하다’라는 질문들은 첫 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며 O 표 하라는 것은 독자에게 질문에 대해 생각할 빌미를 마련한다.

‘그러나 나는 위험스러운가 얼마나 위험스러운가 과연 위험스러운가’라는 질문에 ‘?’와 ‘!’를 구분 할 수 없다는 것은 ‘질문’인가 ‘한탄, 혹은 외침’인가를 구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1980년 대 당시에는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시를 쓰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당신은 나에게 감시당하고 있는가 당신은 나를 감시하고 있는가’는 당시의 억압된 현실을 나타내며, ‘독자들이여 오늘 이 땅의 시인은 어느 쪽인가 어느 쪽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당시에 시인들은 억압되었으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 시대가 가고 또 한 시대가 왔지만 우리가 우리의 동 시대와 맺어진 것은 악연입니다.’라는 것은 시인은 이미 끝난 일재강점기 때에도 억압이 있었지만, 1980년대 또한 사회적 억압이 있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지막 행에서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끝낸 것은 당시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들이 아직도 많고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는 독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고 하고 있다. 작가는 ‘창조의 주체’라는 전통적인 시의 관념을 깨고 있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함으로서 자신이 말하고자 함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3. 전통적인 종교관의 해체

 

지금, 하늘에 계신다 해도

도와 주시지 않는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나라를 섣불리 믿을 수 없사오며

아버지의 하늘에서 이룬 뜻도 아버지 하늘의 것이고

땅에서 못 이룬 뜻은 우리들 땅의 것임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고통을 더욱 많이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미움 주는 자들을 더더욱 미워하듯이

우리의 더더욱 미워하는 죄를 더, 더더욱 미워하여 주시고

제발 이 모든 우리의 얼어죽을 사랑을 함부로 평론치 마시고

다만 우리를 언제까지고 그냥 이대로 내 버려 둬, 주시겠습니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이제 아버지의 것이

아니옵니다(를 일흔 번쯤 반복해서 읊어보시오)

밤낮없이 주무시고만 계시는

아버지시여

아멘

-박남철, 「주기도문, 빌어먹을」

 

황지우, 장정일 등과 더불어 1980년대 가장 과격한 해체적 실험을 감행했던 박남철의 이 시는 기독교의 주기도문 내용과 완전히 전도된 현실을 통렬히 야유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는 ‘사랑’의 부재로 이 둘은 이제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되었다. 이 시 전반의 부정적, 냉소적 태도는 결말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신과 관계 맺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속성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도 아무 대책 없이 졸고 있는 하나님을 아울러 꾸짖음으로써 사랑 즉 인간성의 부재와 신성 부재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4. 해체시인들의 특징

 

1. 황지우

 

황지우의 해체시는 개인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산물이라는 데 그 특징이 놓여있다.

따라서 황지우의 시는 시각적 충격보다 오히려 언어 내적 의미 공간으로부터 더 많은 충격을 받게끔 한다. 황지우의 시에서는, 형태적 해체와 시적 의미 내용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양면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시는 그가 살았던 억압의 시대가 탄생케 했다. 황지우의 자유분방한 개인적 상상력은 시대의 감옥에 구속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지우는 해체의 자유로움을 반항의 몸짓으로 던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황지우의 해체시는 평면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들에게 상당한 김장감과 복합적인 시대의식을 맛보게 한다.

황지우에게는 파괴와 해체 그 자체가 목적은 결코 아닌 듯싶다. 구속과 제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상상력의 자유로움과 더불어서 기존의 양식으로는 자신의 넘치는 고통과 한을 표현해 낼 수 없는 까닭에, 그는 새로운 양식을 발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해체시 혹은 양식의 파괴야말로 젊은이의 의욕과 패기가 살아 꿈틀대지 않는다면 쉽사리 획득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세계를 뒤바꾸고 새롭게 그것을 변혁시키며 일구어 나아가려는 해체의 몸부림은, 달관한 선시와 비교할 때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황지우의 해체시가 진지한 울림을 뿜어 내려는 데는, 어둡고 긴 낭하의 고통이 배경으로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황지우의 해체시는 상황이 어두울수록, 시절이 불안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나며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2. 박남철

 

박남철의 해체시 창작은 시작의 첫날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황지우의 해체시는 그가 해체시 양식을 추구하는 일이 너무나 인간적이며, 그 안간힘 속에서 일종의 연민과 같은 감동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박남철에게도 또한 이 느낌을 느낄수 있다. 첫 번째 시집 「지상의 인간」속에는 박남철의 가식 없는 진실이 중량감 있게 스며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 「반시대적 고찰」에선 해체를 위한 해체라는 비평을 듣기도 한다. 해체가 자유로움의 표상이라기보다 그를 구속하는 하나의 올가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반시대적 고찰」은 박남철의 의식의 정도를 보여 주면서, 또 한편 해체시의 나아갈 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시사해 주기도 한다.

시인은 자신이 형태적 해체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유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가 창작해 낸 작품이 균형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꾸미고 해체하려는 의도보다 그의 절실한 내면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었을 때, 시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3. 장정일

 

형태 파괴적 실험시나 해체시가 일반적으로 시각적 효과를 노리고 있는 데 반하여, 장정일의 해체시는 시각적 효과에 비교적 무관심 하다. 이와 같은 특징은 그의 해체시를 일단 이전의 해체시와 구별 지어 주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장정일의 해체시가 보여 주는 해체적 특징은 언어와 언어를 결합하여 한 편의 시를 전개해 나아가는, 방법의 특수성에서 찾아진다.

 

길안에 갔다.

길안은 시골이다.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 왔다. 라고

나는 썼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서두를 새로 시작해야 했던가 ?

타자지를 새로 끼우고, 다시 생각을

정리한다. 나는 쓴다.

길안에 갔다.

길안은 아름다운 시골이다.

그런 길안에 저녁이 가까워 왔다.

별이 뜬다.

이렇게 쓰고, 더 쓰기를

멈춘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나는 끼워진 종이를 빼어,

구겨버린다. 이놈의 시는

왜 이다지도 애를 먹인담. 나는

테크놀러지와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갈등을 추적해 보고 싶다. 종이를 새로

끼우고, 다시 쓴다.

(...생략)

-장정일, 길 안에서의 택시잡기

 

이 시는 무려 아홉 페이지의 분량에 달한다. 그것 말고도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시의 본문과 시적 문맥이 함께 작품의 본문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시인들이 자신의 내면의 정서를 할 수 있는 데까지 여과시켜, 잘 빚어진 것들로만 시의 본문을 만들어 나아간다. 그런데 장정일은 이러한 시적 과정을 무시하고 해체한다. 그는 마치 자동기술법이라도 사용하는 듯이 내면의 자연스러운 심적 변화과정을 있는 그대로 언어화한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시적 세계와 일상적 현실세계는 그대로 맞붙어 있다.

 

Ⅲ. 결론

 

우리 시단에서 해체시의 양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멀리 1930년대 이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상은 시의 기호를 문자언어를 넘어 숫자나 그림 등으로 종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시 쓰기에 대해 혁신적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시 쓰기는 시에 대한 관념을 깨뜨리고 언어체계를 파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1980년대 시단의 중요한 한 현상이 해체에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논자들에 의하여 지적된 바 있다. 이와 같은 해체적 경향은 어느 시대이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항상 존재했던 시적 경향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1980년대는 특히나 해체의 특징이 강하게 부각된 시대이다.

시인들은 어디까지 해체할 수 있는 것인가. 기존 문법을 송두리째 무시한 해체는 독자들로서는 따라가기 너무 어렵다. 시인들이 기존의 목소리를 전혀 무시하고 끝없이 앞으로만 달음질 칠 때 그들의 해체적 양상은 해체를 위한 해체로 머물거나 삶의 기반을 무시한 초월이기가 쉽다. 이렇게 볼 때, 해체의 시가 빛날 수 있는 것은 기존 질서나 삶의 실상에 바탕을 두고 자신과 다른 방향의 시와 만나기도 하면서 긴장의 끈을 드리울 때 가능한 것이다.

시는 그 시대의 상황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제탄압의 현실을 드러냈으며 광복직후에는 사상적으로, 사회적으로 혼란한 당대현실을 드러냈다. 해체시 또한 다르지 않다. 사뭇 낯설게 느껴지는 형식으로 표현하여 난해해 보이지만 그 ‘해체’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해체시가 가장 많이 선보였던 1980년대는 정치적 억압이 강했으며, 당시 사회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다. 시인들은 단지 형식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닌 ‘해체’를 통해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고자 하였던 것이라고 하겠다.

 

-참고 문헌-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문학과비평사, 1992

송용호, 『우리시대의언어와 문학』, 충남대학교출판부, 2008

나병철, 『근대성과 근대문학』, 문예출판사, 1995

정효구, 「우리 시의 해체주의-1980년대 시를 중심으로-」,『현대시사상-해체주의』, 고려원, 1988

이승진,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황지우 시의 비교연구」, 1999

권택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자연주의에서 미니멀리즘까지』, 민음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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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乾天HaNeuL 2011.01.08 02:06

    님.. 귀찮은 레포트를 쓰셨구려... ㅡ,.ㅡ ㅋㅋㅋㅋㅋ

    본인의 이런 분야에 관한 관점을 짤막하게 말하자면

    기본 다수의 의견이 중시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감상함에 있어서 자신에게 아닌 건 아닌 거다... 뭐 그런 거임. 그래서 여기에 나온 몇몇 시는 시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며, 우길 수도 있으나, 귀찮으니... 그냥 입 다물고 지나간다.


    뭐 그렇게 됩니다. 문학성이나 팔리는 거나 신 개념, 독창성 등등 고려할 게 많은게 문제.... ㅡ,.ㅡㅋ

  • profile
    Yes-Man 2011.01.08 04:10

    과거에는 인정 받지 못하였겠지만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시대입니다.

    이 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한 해체시 생태문학, 페미니즘 문학 등등

    이었다는...

     

    포모시대이기에 올바른 용도로 사용된다면 시에 똥칠을 해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럴 짬도 안되고 능력이 있는것도 안되지만

    가끔 창도에 올라오는 시를 보면 참 한심한 것들도 보입니다.

     하지만 내 의견이 정답도 아니고 시를 쓴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하는데

    비평하는 것은 실례일 뿐이지요.

     

    어쨌거나 80년대의 해체시는 시대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많이 왜곡 했다고 생각합니다.

    황지우의 묵념 5분 27초 라는 시의 경우에는 내용이 없습니다.

    제목에 5분 27초는 5월 27일, 즉 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죠.

     

    이래저래 말이 많아졌는데 이 글을 올린건 걍 이런 것도 있구나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거였죠.ㅋ

    저도 이 과목 배우기 전까진 해체시라는게 있는지도 몰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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