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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트노벨에 대한 아즈마 히로키의 정의에서, 라이트노벨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읽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은 라이트노벨이란 가상세계와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가 같은 논리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라이트노벨이 현실에 있는 우리에게 여타 소설들만큼이나 의미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런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런 모습인 이유는, 라이트노벨이 그런 형태가 된 이유와 동일합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 공통된 이유를 '포스트모던함'이라고 지칭하는 듯합니다.


 낯선 용어가 나와 어렵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포스트모던함'이란 말을 엄밀히 정의하지 않고 느슨하게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포스트모던'한 세계에서 산다는 말은, 즉 현대 개개인 서로가 모두 함께 공유하는 공통된 체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각자는 한국이라는 같은 공간, 현재라는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제각기 다른 경험을 하고 삽니다. 과거 선조들이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 있건 거의 비슷비슷한 삶을 살았고,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함께 공유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예컨대 근현대 작가들은 모두 사상의 갈등을 말하고, 전쟁의 슬픔을 말하고, 유신 체제하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에 대해 한마디씩 합니다. 누구나 적든 많든 그 사건과 연관된 경험이 있는 거지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 세대는 일부는 구직난에 시달리고, 또 일부는 야구에 열광하고, 또다른 일부는 정치에 열을 올립니다. 지난 총선이 어땠습니까? SNS에서 활발히 소통하던 사람들은 야당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정작 결과는 야당의 부진과 여당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심지어 야당은 선거 후까지 내외부에서 잡음이 일며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죠. SNS를 체험하는 사람들과 SNS를 체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살고는 있지만 차라리 다른 시대, 다른 역사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역사라는 것, 사람들이 공유하는 체험, 문화, 규범 등을 다른 말로 '이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라면 이 이야기는 정부나 지도자에게서 만들어져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억지로 공유하게 했지만(유신이라던가 새마을운동처럼), 지금은 누구나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SNS를 하는 사람들의 세계와 SNS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세계가 구분되는 것이죠.


 '작은 이야기'의 시대는 한 마디로 동시대 같은 장소에 있는 모두에게 한꺼번에 공감을 주는 게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특정한 이야기, 특정한 체험은 특정한 집단에게만 영향을 줍니다. 보수는 먹는 것, 보는 것, 입는 것을 포함해 정보를 받아 들이고 발산하는 통로까지도 모두 보수들만의 것을 이용합니다. 진보는 진보들끼리만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통로가 따로 있습니다. 애플 팬들은 골수팬끼리만 이야기합니다. 안드로이드 유저들은 저들끼리만 자신들의 스마트폰 경험을 나누고 공유합니다. 각자 다른 경험, 각자 다른 언어로 각자 다른 통로에서 이야기하는 것. 그게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모두가 함께 공유하던 '주류', 예컨대 '조중동'과 같은 거대 권력들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지 않는단 걸 사람들이 깨달은 순간, 그들은 리얼리티를 불신하고 대체적인 경로를 찾아 나섰습니다. 서브컬쳐, 인디 문화, 소셜 서비스 등 각자가 찾아낸 '대체 경로'는 이전에 그들이 썼던 '주류 경로'보다 더 신뢰도가 높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류 문화가 아닌 서브 컬쳐에 열광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처럼, 주류 문화는 없고 오로지 서브 컬쳐들만이 존재하는 듯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서브컬쳐들끼리 우열을 가리는 건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열을 가리는 건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한 일인데, 어느 집단도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치자면, 톨스토이 작, <전쟁과 평화>가 귀여니 작,<도레미파솔라시도>와 같은 선에서 회자되고, 음악으로 치자면 '퀸'이나 '비틀즈'의 노래가 '동방신기'의 노래와 같은 선상에서 논의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말이죠. 마찬가지로, 서브 컬쳐 가운데 하나였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이전엔 고급 문화로 여겨졌던 여타 대중문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전 같으면 동인지를 교환하고 코스프레를 선보이는 동인 행사가 부산이나 양재 등에서 넓은 장소를 빌려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은 한 발 더 나아가, 철저히 현실적인 '자연주의적 리얼리즘'과 철저히 비현실적인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한쪽에선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 대히트를 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선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느 한쪽만 가지고 일본 문화를 논한다는 것은, 일본 문화의 절반만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추세는 2000년보다 2007년 더 분명해졌고, 2012년인 지금에 와서는 훨씬 더 심화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쪽에선 투팍이, 다른 한쪽에선 하츠네 미쿠가 수만 팬에 둘러싸여 공연을 하는 것처럼 말예요.


 라이트노벨은 서브컬쳐인 만화 애니메이션이 극단적으로 성장한 오늘날, 만화-애니메이션이 현실보다 익숙한 동인들에게 공유되는 소설 형태입니다. 하늘 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라이트노벨은 철저히 만화-애니메이션 세계를 글로 옮기는 소설이지, 현실을 직접 묘사하는 소설이 아닙니다. 동인 세계에선 만화 -애니메이션 세계야말로 실제 현실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다소 극단적 얘기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라이트노벨을 쓰고자 하시는 분들은 다른 소설과 전혀 다른 접근을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음 올리는 글에선, 이전 (1)에서 올렸던 라이트노벨의 3요소를 다시 살피면서, 그로 인해 예상되는 라이트노벨 쓰기의 어려움을 조금 적을까 합니다. 다음 화에선 라이트노벨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인들이 흔히 말하는 '모에'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요. 전부 <게임적 리얼리즘...> 속 이야기를 상당히 기대어 빌려쓰는 겁니다만, 그걸로 어중간했던 개념들이 확실히 정리되길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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