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3 05:26

문속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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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하면 살 것이고 살려면 죽을 것이다. 피를 보면 나의 심장은 떨린다. 전율을 느낀다.
  파괴(破壞)와 살육(殺戮)의 미학(美學)을 아는가?》-룬 언그알레이-




꿈.
잘 꾸지 않는 꿈을 꾸고있다.
이것은 꿈이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명석몽(明晳夢).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꿈을 꾸는 현상


누군가가 서있다.
나는 달려간다.
바닥에는 액체가 흥건하다. 거대한 웅덩이 같은 피...


──── 피 냄새다.


그것은 선홍색의...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답고, 불쾌하다 하면 불쾌할 정도로...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 바닥에서 역겨운 피 냄새가 풍겨온다.


짙은... 선홍색의.......
모든 것이 선홍색의 피색으로 물들어져있었다.

아니 피다.
자신의 피는 아니다.
타인의 피.

피. 새빨간 색의 끈적끈적한... 피였다. 주위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 하지만, 그 역겨운 피 냄새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약하게 무언가 가슴을 죄어온다.
나는 뭔가에 의해 강하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두근.

칙.

무슨 소리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한걸음.

두근.

또 한걸음.
나를 향해 다가온다.

두근.

이유 모를 불길함이 엄습해 온다. 심장이 터질듯이 고동친다.


──── 두렵다.


  누구지?
지금 나를 따라오는 누군가가.

-쫓기고 있다.
-누군가에 쫓기고 있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다, 아니, 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불안감이 아니다.

칙.
칙.
칙.
칙.
칙.
칙.

내 걸음에 맞추어 그 소리는 빠르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희미한 발의 움직임은 내가 빠른 속도로 걸어갈수록 나를 조일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걷고 있는 나를. 달리기 시작하는 나를. 그대로 없애버릴 듯이.


-지옥(地獄)이라는 곳에 대해 알고 있나?

누군가가 내게 지껄였던 한마디였다.
그것에 숨겨진 뜻 같은 건 없다. 그저 충고할 뿐이다. 지옥이라는 이름의 곳을...
하지만, 나는 이미 타르타로스(Tartarus=지옥)에 발을 들여 놓아 버렸다.


──── 발밑에 뭔가가 느껴진다.


잔혹하게 떨어져있는 한 인간의 파편(破片).
팔. 육안으로 보여지는 그것은 분명 팔이었다.
눈이 감겨지지 않는다. 동공은 한번 눈을 감는 순간부터 멈추어져 있었다.


──── 그것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팔뿐만이 아니다.
내 주변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뻘건 고깃덩어리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

분출하는 피, 흘러나온 뇌수(腦髓)와 조각난 뼈, 문드러진 얼굴, 잘려진 손가락과 혀...

이마에서 아직까지 피를 뚝뚝 흘리고 있다.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걷는 곳마다 잔혹한 살육의 흔적이 보였다.
얼굴이 반쯤 날아가 땅과 피로 엉겨 붙은 시체,
피부가 꼬일 정도로 심하게 목이 돌아간 시체, 그리고 또 다른 시체들...

몸은 마치 종이처럼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찢어진 부위에서 붉은 색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목은 반정도 찢겨져있었고 양팔과 다리는 으개져있었다.
그나마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는 얼굴또한 한쪽 역시 으깨져 있고,
한쪽은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참혹한 현장이었다.


──── 그냥 무시하고 이 무의미한 공간을 뚫고 나갔어야 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형태를 이루고 있었던 육체다.
아니, 정확히는 '였었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피를 흩뿌린 채, 널려있었다.
피.... 얼굴... 눈..... 뼈...
아무 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 기분나빠.


인간의 걸음이라는 명령은 이미 경직되어버린 상태였다.
이 행위를 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 또한 할 필요가 없었다.

...왜..
왜... 내가 이런 곳에..
알 수 없다..
여기는 대체 어디야?

도망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디로?

온 몸이 떨며 환희를 부르짖었다.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웃고....있다.......?

마치 자신의 즐거움을 찾은 것처럼「나」의 마음은 기뻤으며 즐거웠다.
선혈을 통해 느껴지는 즐거움.
주변에는, 역시 붉은 액체와, 고깃덩어리가 있다.


──── 아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어. 더... 더 죽이고 싶어.


보통사람이라면, 미쳐버리거나 토하거나, 제정신이 아니어야할 광경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목도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 나의 몸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 내 육체와 의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제어하는 것 같았다.


칙!

-달린다.

나는 달렸다.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달렸다.

-멈추어선 안돼. 나아가.
-그렇지 않으면,

하지만 그 소리는 내가 뛰어가는 한 걸음 당 한번씩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심장이 끊임없이 통각을 자극하자 끊임없이 춤을 추던 나의 몸도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다.
그것도 내가 걸어가는 속도에 발맞추어서 그 소리도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칙.

-살해당할지도 몰라.

처참하게 뜯겨진 채 머리만 굴러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얼른 지워 버렸다.

몸이 지치기 시작했을 때 그 시계소리도 지친 듯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 곳에서 나는 오래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몸은 얼마 못가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쓰러질 것 같다. 밀렸던 숨을 한순간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통각은 어느새 온몸에 퍼져 경련을 일으키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존재가 내 뒤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바로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이라도 내가 뒤돌아봐주기를 기다리듯이 그 존재는 나에게 끊임없는 통각을 주고 있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 뭔지 알아야 후회가 생기지 않으니까.


나는 내 뒤에 있는 그 누군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다시 나를 쫓아오던 존재가 다가온다.
나를 바라본다. 희미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말을 선뜻 꺼내기 힘들 정도로 나와 그는 희미한 침묵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 지금은 두렵지 않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


 ------------------이것으로 끝이다, 에이이치.”


딱 그 한마디만 들렸다.


────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오른쪽 어깨에 큰 충격이 느껴진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픔 따위는 처음부터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뜨거움...
상단 부위에 기묘하게 생긴 화살이 박혀있었다.
말함과 동시에 내 어깨살을 순식간에 맞춰버린 것이었다.

“이런, 이런······· 그런 공격으로 날 이겼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그 일격은 나의 오른 팔밖에 느껴지지 못했다. 정작 깊은 통각은 내 몸에 와 닿지도 않았지.
「나(我)」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아니면, 인정(人情)이라는 건가?”

“역시,「지금의 너」에겐 이런 공격은 단순한 것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로군….”

가늘게 뜬「나」의 눈은 최초의 일격을 가한 그에 대한 희미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더욱 다가온다.
20걸음도 안되는 거리에 서있다.

헌데, 왜, 얼굴은 안보이는 거지?

-누구야, 너는───.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이 내 귓가에 맴돈다.

알수 없는「희열(喜悅)과 쾌감(快感)」이 세차게 느껴지고, 나의 입은 웃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 화살이 박힌 어깨에서 피가 흐른다. 느낌은 없다.
             단지 정신이 희미해져갈 뿐─


어깨에서 흐른 피가 조금씩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역시… 내 피도 멋지군. 하지만, 아무데서나 보여줄 수 없는 것인데 말이야….”

「나」는 그를 죽여야 할「상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왜 온거지? 왠만하면 다시는 만나지 않길 바랬는데. 나에게 원한이라도 있나?”

“「너」를 죽이기 위해서.”

너무나도 간단하면서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답이었다.

그 안에서「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를 보고 있었다.
바라볼 뿐이다. 그에 대한 생각도「부정」도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살기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기쁨이 있는 눈도 아니었다.


──── 마치, 그저 하나의 풍경과도 같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듯한 그 눈.


무의미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미미한 존재. 그것이「나」라는 존재가 품고 있는 사고.

그는, 더욱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놀라워. 정확하게 어깨의 연결 부위를 맞췄군.
 확실히 너의 실력을 너무 얕본 것 같아. 정말 대단한 걸?
 설마 여기까지 성장할 줄은 예상도 못했는데. 네가 강해졌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

이곳을 감싸는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숨조차 거칠어지지 않아..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죽여야 한다.


얼굴은 안보이면서... 저 오드아이는 왜 보이는거지???
그의 청색과 흑색의 오드아이(Odd Eye)에는 명백한 살의(殺意)가 느껴졌다.
날이 선 일본도와 같은, 푸른 살기(殺氣)가 서려 있는 눈이었다.

“쿠쿡! 그 표정 아주 좋아.”


────「나」의 감각에서는 아주 반가운 냄새이자 반가운 살기다.


“하지만, 상당히 거슬리는 듯한 소리가 내 귓가에 들리더군.
 시시한 숨바꼭질에 잠시 동참해줬더니 하는 소리가 끝이다?
 고작 그런 것으로「나」를 죽일 생각이라면 관두는게 좋을 거라고 충고 하나 해주지.
 그저.. 네놈의 추악한 일격에 실망을 느꼈을 뿐이다.”

「나」는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로 이정도 아픔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한다.
몸을 꿰뚫는 아픔을 즐기듯 쾌락(快樂)이라는 극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기쁨으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대 할만한 가치가 있기에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깨죽지에 박힌 화살을 맨손으로 뽑아낸다.

푸슛.

“네 덕에 괜찮은 고통(苦痛)을 느껴본 거 같아. 정말 오랜만이지.
 하지만, 너의 그 행동은 아주.. 단순한 놀음에 지나지 않아. 너를 갖고 노는 놀음 말이야.
 네놈에게 받은 건 되돌려주마.”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화살은 나의 손을 떠나 눈 앞의 상대를 향해 곧바로 날아간다.

카앙-!

희미한 움직임.. 마치 한 줄기의 바람처럼 그의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그「찰나(刹那)」라는 순간에, 그는 여유롭게 내가 날려버린 화살을 튕겨 냈다.

희미한 눈으로 그를 주시한다.
시각은 좁혀진다. 그와「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화살에 의해 꿰뚫린 오른 어깨를 힐끔 쳐다 보았다.
자신의 희미한 양의 피가 화살에 맞은 상처를 서서히 재생시키고 있었다.

“두렵나…?”


──── 오로지 죽일 뿐이다.


웃음이 나온다.


────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모습이 즐거운 것처럼.


“두려워? 내가 두려워 한다고? 네가 무엇을 안다고.. 지껄이는거지?
 내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너는 나를 절대 죽이지 못해.
 그것만큼은 네 녀석이 알고 있을 텐데…?”

“그건 괴변이다. 너는 자신이라는「존재(存在)」를「타인(他人)」이라는 존재와
 분리하려 했어. 정확히는 네 스스로「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고 싶었을 뿐이지.”

입가에 짓는 그 미소는 서서히「타락(墮落)」으로 물들어져 간다.
뭔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 나는 그 기쁨으로 가득히 채워져 가고 있었다.
「나」는 끊임없는 살육의 미소를 보내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즐거움을─


──── 자신을 노려보는 존재를 향해 풀려고 한다.


그저 죽임만을 반복하는 존재처럼─
나의 두 눈은 서서히 금빛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 죽일 것이라는 기분을 느끼자 내 몸은 이미 흥분해 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 따윈「나」에겐 애시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두려움을 느꼈다면 난 너와 적대 하지 않았겠지. 잘난 척은 그만하시지.
 한낮 인간 주제에... 인간 ‘따위’가 뭘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단호하게.


────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나」의 시선은 어느 순간 손에 들려있는 저 번쩍거리는 것에 머무른다.

저것은....나이프.....?
나이프라기보단, 짧은 일본도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마치 그 자체가 강한 섬광 빛을 내뿜는 것처럼 육안으로도 그것은 살육의 빛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나의 금안(金眼)은 서서히 발화되어가고 있었다.

“「존재」가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자신이 ‘살해(墮落)’를 당할지 아니면,
 ‘살인(殺人)’을 할지는 알 수 없다. 정작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 후회감등 그 외의 감정들에 의해 ‘존재’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지.”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난 너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아.
 단순한 즐거움의 표현이라고 해야할까?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군.”


──── 아주 철저하게, 그 몸을 찢고, 베고, 뜯어 밟아서, 그 쾌감을 느껴보겠어.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지만, 지금의 내 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 이미 내 오른 손엔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왜 이 나이프가 내 손에 들려있는 거지????

이 시체, 아니, 그 전에
이 시체[들]은 무엇이야??

그런 생각을 하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들리지 않는 의문을 제기한다.

“지금의 난 도무지 성이 차질 않아. 무엇을 죽이든, 얼마나 죽이든…
 그래서 널 죽여보려고 해. 너의 피도… 이 공간에 뿌려지면 아름답지 않을까? 큭큭큭큭.”

“너는 왜 죽이는거지?「어둠」만으로는 족하지 않다는 소리인가?”

그 때 나는 내 몸 속에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 널 죽이고.. 천천히 너의 피를 먹어주지.
           너의 사지를 뜯고, 찢어 발겨서 보기 좋게 흐르는 피를 마셔주지.
           걱정마.
           고통은 없게 해줄께.
           네가 느끼는 것은 잠깐의 뜨거움과 앞으로의 안식일 뿐이야.



내가 아닌「다른 누군가의 사념(死念)」이 의식 속으로 밀어부치듯 들어온다.
자신이「피(血)」라는 것을 보인 순간부터 나의 금안은 발화되었을지도 모른다.


──── 그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하…하하하! 아하하하! 정말 우습군. 웃겨..
 너의 그 말은 오히려 나의 실망을 더욱 더 끌어들일 뿐이다.
 정말이지 웃음이 나오는 군. 난 목적이 없어. 단지, 죽이기 위해서 죽일 뿐...
「어둠(暗)」은 혼돈덩어리라서.. 난 그것을 원치 않아.
 그 혼돈을 제어할 수 있는「파괴(破壞)」라는 극에 달하는 감정을 난 원할 뿐이지….”

“…그렇군. 이미 늦어버렸나.「타인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인가.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고 자신을 위해 또 다른 것들을 파괴하고 그렇게 반복되어
  결국 자연의 순환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망각하게 되겠지.”

소름 돋을 정도의 차가운 음성이 내 귀를 괴롭혔다.
그 순간, 청색과 흑색의 눈동자 속에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압도당할 것만 같은 분위기.
죽는다. 더 이상 다가가면 죽는다. 이성 대신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살기, 그것이 증오하는 대상을 향해 날리는,

사람을 죽이려 하는 진심 어린 기운임을「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불쾌하다.


그저 쿡쿡거릴 뿐인 나의 웃음은 오히려 무서울 정도로 기묘하게 들렸다.

“난「이런 것」들 만큼 질리는 건 없어. 그나마「지루함」을 덜어주는 데에 지나지 않으니까.
즐거움이라는 건… 단순히「죽인다」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야.
극에 달하는「감정(感情)」이 있어야 비로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거지.
너는 과연「나」를 얼마만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기대되는걸.”

그렇게 말하며「나」는 바닥에 흩어져 있던 사체의 일부분을 발로 툭하고 찼다.
선혈과 살점이 볼썽사납게 사방으로 튀었다.

“…나를 죽인다고 한들 네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궁금할 정도야.”

“네 놈에겐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지. 네 놈의 그 한마디는 단순히 수명연장에 지나지 않아.”
이제 이 시시한 싸움의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인 것 같군.”

..그 전개만이 나에게는 최고의「즐거움」이다.


──── 아아, 그래. 안 그래도 이딴 녀석들로는 성이 안 찰 판이었는데, 마침 잘 됐어.
           이거, 벌써부터 흥분되기 시작하는데,
           자아········· 어떻게 죽여줄까?



끊임없는 충동(衝動)은 계속된다.


────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인다’라는 행위는 나에게 잠깐의 편안함과 쾌락을 줄 뿐... 그저 죽일 뿐이다.
           죽.여.버.려────



“내가 피를 보이게 한 댓가를 치루게 해주지. 가르쳐주마.
  여기서 끝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네 녀석이다-!”

그것은 마지막의 선고.
단순한 즐거움에 지나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그 속에서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곧..


──── 광기(狂氣)로 물들여지기 시작한다.


나의 사고는 그저 더럽히고 싶다는 강한 짐승적인 본능과
‘죽이고 싶다.’는 강한 파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충동은 그대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한 걸음.. 같은 평범한 걸음이 아니었다. 그 걸음은..

누군가를 부셔버리고 싶다는 느낌으로 가득 메운 걸음 그 자체였다.

거대한 섬광 같은「나」의 움직임은 그의 가슴을 꿰뚫기 위해 정확하게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그냥 아무 이유없이...「나」는 단지 즐길 뿐이다.


그 순간 나의 이성이 잠식(蠶食)되었다.
아니, 내 몸 속의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희미함 속에서 뻗은 손을 뒤로 한 그의 가슴을 향한 나의 움직임에서는 발소리조차도
나의 귓가에는 단순한 잡음에 지나지 않았다.

정면

「나」는 푸른 달빛의 섬광처럼 금방이라도 찌를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 했다.


‘그것은 살육을 위한 춤이었다.’


──── 단 한순간이었다.


손이..

닿았을 때 그 모든 것을 단숨에 꿰뚫어버릴 것이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기에... 그 냉혹한 판단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칼날은 섬광(閃光)으로...
섬광은 거대한 일격(一擊) 으로 변화 된다.


“너와 눈이 마주친 것은 내가 아니다.”


──── 죽음의 일격을 시전 한다.


이런「나」의 행동을 예측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그는 나의 공격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막으려는 행동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프를 그의 가슴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 섬광은「나」자신을..
어둠 속에 잠식시키기에 충분했다.


푸욱-!

배에 찔러 넣은 칼의 감촉이 손에 닿는다.
피 냄새가 진동하며, 그 속에 쇳내가 풍긴다.


“······!!!!!!!!”

“…바로 죽음이지.”


────그것은 마치 섬광처럼, 내 가슴의 한 부분을 꿰뚫어 버렸다.


섬광은 바람처럼 흩날리다가...
번개처럼 떨어진다.

고요해진다.


──── 머리 속은 텅 비어버려,「고통(苦痛)」이라는 단어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 망각한 것을 대신 채우는 것은「공포(恐怖)」


그는 아무런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피에 얼룩진 칼날은 초승달처럼 그의 살을 베며 그의 몸속 깊은 곳에 숨겨진 피를 탐닉한다.


──── 몸이 전율(戰慄)하듯.. 뇌수의 끝에서부터 쾌감이 밀려왔다.


끓어오른다. 이 즐거움... 끊임없이 타오르는 이 쾌락이라는 이름의 즐거움은..
지금이라도 서있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고 싶다는 강한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눈 앞에서 뭔가가 튄다.
무언가 허공에 토해져 나온다.
무언가 역겨운 것이 흘러나온다.

툭. 투두둑!


──── 죽음에 대한 공포는 두렵지 않다.
             다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상대가 피에 젖은 웃음을 흘리며
             날 내려다보는 그 행위(行爲)가, 그「존재」자체가 두려울 뿐이다.


“…왜 그러지? 너무 순간적이어서 당황하고 있는 건가?
분명 나의 일격에 대해서는 충분히 판단을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기억해라. 네 녀석이 느끼게 될 최초의 공포와 무서움을... 그 잔혹함을.”


“아……….”

하는, 단 한 번의 신음.


──── 들려오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주었던 바보같은 충고의 한마디조차 이제는 희미해져간다.
             마치 깊은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것처럼 시각은 흐려져만 갈 뿐이다.
             그 후, 마지막으로 본 녀석의 얼굴은 피에 물든 쾌감을 즐기는 그것이었다.


털썩.

그의 육체(肉體)는 맥없이 쓰러지며 내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바닥에 뿌려진 피는 넓게 퍼져 경계(境界)를 짓는다.

마치…….
마치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이.

적어도「지금의 나」가 아닌「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째서 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나의 본 모습.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하하….”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 나의 본성(本性).


마구 웃어버리고 싶다.
나의 시각(視覺)은 붉은 빛을 주시하고 있었다.


──── 어둡지만.. 그곳에서 보이는 붉은 피 빛....


그것을 통해 나는 즐거움을 느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다시 미친사람처럼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다.

나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입가에서부터, 옷, 그리고 손.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마치 감상한다는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육에 물든 악마의 손 같았다.

“그럼.. 너의 피를 한번 즐겨볼까?”

핣짝!

“역시…감미로워.”


──── 단지 그것으로 만족했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를 쫓아오던「그」를 죽였기에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와의 싸움에서「즐거움」이라는 윤회(輪廻)를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어버렸기에
죽여버린 그에게 어떠한「감정」을 가져야 할지 조차 망설임을 느끼고 있었다.


──── 존재한다는 것 자체엔 의미가 없다.
             어떻게 존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죽는 것도 마찬가지일까?


나는 무엇일까?
이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일까?
아니면 나의 또 다른 거짓일까?

아니,「나」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 죽인다거나, 죽는 것 자체엔 의미가 없어.
             무엇 때문에 죽이느냐, 죽는냐에 그 의미가 있는거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그 존재 자체엔 의미가 없어.
             그 과정이 중요할 뿐이지....
           「지금의 나」에게도 그런 의미가 있는걸까?


“어이, 어차피 보고 있겠지. 어때,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한 감상은?”

뭐, 뭐야. 방금 뭐라고 한거지?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찔렀다. 그 외에 뭔가 필요하나?”

단지,
그것뿐.
단지, 그것뿐.

...결국은 단순한 이유로 그를 찌른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갑자기 짜증나기 시작한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찔렀지. 그게 전부. 아아,「너」의 의식은 잠시 억누르고 있었군.
자, 봐. 저 녀석이 과연 누구일 거라고 생각했나?”

갑자기 망설여지고 두려워지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그 죽음은, 아직 내 눈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 시선의 끝에는, 방금 죽인 그의 시체가 있었다.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는 누가 봐도 위험할 듯한 많은 양이 흘러나오며 배 부근만이 아니라 옷 전체로...
마치 그의 생명을 서서히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 점점 붉게 물들어져 가고 있었다.
얼핏드러난 윤곽으로 추정하건데, 키는 나와 비슷하고,
흐릿해서 잘안보이지만 느낌상으로 17살은 되어보이는 소년이었다.

“아아, 그리고 아직 녀석은 죽지 않았어. 죽어 가고는 있지만, 살 확률도 있지.
대략 50 대 50 이랄까? 너무 그렇게 낙심할 필요까진 없겠지. 단순한「변덕」일 뿐.
그리고, 이런 곳에서 죽임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는 것은「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런「나」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알아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눈치채버렸다. 라고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조차 모르는「지금의 나」에게는─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것이 남아있을까?’

-그런...바보 같은. 그는... 아니, 이 녀석은...


“그래, ‘인현신’, 바로「너」의 친구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자면..
존재에게 있어서 죽음은 단순한 것일지도 몰라.
그저 존재가 그 편안하면서 따뜻한 안식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
하지만, 녀석은 그 안식조차 느끼지 못할 것 같군. 죽음은 녀석에게 미소를 짓지 않아.
그저.. 녀석의 자괴하는 모습을 바랄 뿐이지... 큭큭큭.”



「진정한 극악(輪廻)은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 숨겨진 극악무도한 잔인함에서 시작한다.
  바로 쾌락이라는 이름의 어둠이라는 것에서 말이다.
  ‘어둠’은 그 속에서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향해..
  희미하면서도 아름다운 ‘죽음’을 즐기고 있다고.」



                                             -To be continued-

──────────────────────────────────────────

                                                  <작가 후기>

연참..이긴 하지만, 미리 전에 써뒀던 내용이기에 한편을 더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번 편은 프롤로그 편에서 인현신이 말했던「그 녀석」이 등장합니다.
선혈이 난무하고, 사실상 전투는 거의 없는 거나 다름 없긴 하지만,
후에 진행되어질 이야기의 복선 역활을 하는 부분(이 되어질 예정)입니다.
문체가 나스 버섯(?)씨와 조금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군요;;
저도 이 이야기를 쓸때 공의 경계를 많이 참조한 편이라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내일이나 모레 쯤 0화 中편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소설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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