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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배경을 보면 대략 19세기 삘이 나는 부분이 많지만,
티젯시의 자전거는 또 상당히 신식..!
그밖에도 여러가지로 시대가 짬뽕된 듯한 느낌이 나는군요. ㅎㅎㅎ


그래서 판타지란 좋은 겁니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판타지니까요" 이러면 그만이고~ (<- 이런 멍청이;;)



noir-canta p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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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1. 아귀가 맞지 않을 때의 행동 지침서(11)


 



편평하게 다듬어진 돌길을 달려가던 티젯시는 문득 저 앞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는 브레디를 발견하고 자전거를 멈추었다.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꾹 누르며 브레디가 먼저 말을 걸었다.


“왠지 네가 한 번은 여길 지나갈 것 같더니만..”


주변에 뒹굴고 있는 두어 개의 담배꽁초로 미루어보아, 제법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탈것에서 내려, 한 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서서 무미건조해 보이는 눈빛을 하고 티젯시가 브레디를 쳐다보았다.


“그거 용하네. 마침 만나면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뭘 말야?”


“그것까진 모르나보지?”


입 꼬리를 씩- 올리며 그렇게 말하는 티젯시를 향해 브레디가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대꾸했다.


“알 턱이 있나.”


자전거를 잡지 않은 한 손을 점퍼 주머니 속에 넣으며 티젯시가 그에게 질문했다.


“어제의 시신. 어디로 보내졌는지 알고 있어?”


“핸스턴 병원 영안실이지. 에튼시에선 거기밖에 없으니까.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러시나?”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은 질문의 내용에 브레디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자, 티젯시가 웃으며 해명을 했다.


“헛걸음 하고 싶진 않아서. 확인해 두려고.”


그러나 브레디는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후-하는 한숨과 함께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그게 병원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안전할지 어떨지 장담을 못해주겠는데.”


“그러니까야.”


티젯시는 그렇게 대답하고 장화의 앞굽으로 땅을 툭 쳤다.


“흠...”


브레디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작게 뜬 눈으로 그는 잠시 티젯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씰룩 움직였다.


“뭘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조심하라고.”


“그러지.”


고개를 끄덕거리는 티젯시를 잠시 더 쳐다보고 있던 브레디가 문득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좀 전에 말이지, 얼핏 두 번째 목격자 녀석을 본 것 같은데...”


티젯시의 시선이 브레디 쪽을 향하자, 그는 손가락으로 턱에 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중얼 말을 이었다.


“그게.. 좀 확실치가 않단 말씀이야...”


“됐어. 확실하지 않으면. 무리해서 알려고 할 필요는 없어.”


브레디가 다시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일전의 그 녀석 쪽은 꽤 선명한 이미지가 보였었는데 말이지..”


자전거를 뒤로 하고, 티젯시는 브레디를 향해 몸을 돌렸다. 좀체 흔들림이 없는 새까만 눈동자를 브레디 쪽으로 향한 채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이윽고 브레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볼 즈음, 옅은 입김이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혹시라도.. 아무나 붙잡고 시체 얘길 꺼내거나 하지는 마, 브레디.”


그녀의 말이, 마치 철없는 꼬맹이한테나 할 법한 훈계였다고 생각한 브레디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황당함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이런...”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70먹은 노인을 애 취급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티젯시는 여전히 노파심이 가시지 않은 듯 물었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어떻게 된 거긴..”


브레디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었다.


“첫 번째 발견자 녀석이 어찌나 붙임성이 좋던지, 얼떨결에 저녁때 또 보자고 해버린 거지. 어쩔 수 없잖나?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과연..
그러나 티젯시는 더 이상 그에게 뭐라고 말 하지는 않았다.


‘한두 번 정도라면, 그래. 그 정돈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며 티젯시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발통에 발을 걸치고 출발할 자세를 잡던 티젯시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브레디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참, 브레디..”


다시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를 찾으려던 브레디가 고개를 들자, 티젯시가 질문을 던졌다.


“너.. 혹시 내 이름으로 편지 보낸 적 있니?”


“...무슨 편지? 누구한테?”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묻는 브레디를 잠시 관찰하던 티젯시가 잠시 후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닌 모양이네.”


“뭐가? 뭐가 아닌데?”


이맛살을 찌푸리며 브레디가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티젯시는 빙긋 웃으며 농담조로 대꾸할 뿐이었다.


“범인이. 만약에 너였으면 바로 코뼈를 부러뜨려줄 생각이었는데, 아쉽군.”


“어이...”


브레디가 입매를 괴하게 일그러뜨리며 따지듯 물었다.


“이것 보셔. 내 나이가 대체 몇인 줄 아는 거야?”


“69살이지. 그런데?”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펀치를 맞았다가 잘못되면 황천길 갈 수도 있는 나이란 말이다.”


티젯시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너라면 코뼈가 아니라 턱뼈라도 문제없어 보이는데..”


“이봐요, 누님... ”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브레디를 뒤로 하고, 다시금 자전거에 몸을 실으며 티젯시가 당부했다.


“황천길 갈까 걱정되거든 담배나 좀 줄여.”



킥킥-


막 발통을 굴리려던 티젯시의 등 뒤에서 문득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들어 올렸던 발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약간 정색된 얼굴로 티젯시가 고개를 돌렸다. 턱을 괸 자세로 몸을 조금 숙이고 브레디가 웃고 있었다.
티젯시가 눈을 조금 내리깔았다. 좀 전과는 달리, 브레디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에서는 약간의 살벌함이 감돌고 있었다.


“동분서주 바쁘시군.. 이번엔 뭐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


갈라진 목소리, 조금 어눌한 어투. 왠지 기분 나쁘게 보이는 인상을 하고 브레디가 한쪽 입을 비죽 올리며 웃었다.


“하지만 난 어림없다고 보는데...”


초점 없는 브레디의 눈동자를 마주 쳐다보는 티젯시의 얼굴이 점차 싸늘하게 변해갔다.


“..신경 끄시지.”


짤막하게 그렇게 내뱉은 후, 그녀는 바로 자전거를 몰아 도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해안가의 한편에서 졸고 있던 레릴을 깨운 것은 갑작스레 밀려드는 오싹한 한기였다. 주변 기온이 순식간에 낮아진 것을 감지하고,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어두워..’


그냥 앉아서 잠시 졸았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주위는 부쩍 어두워져 있었다. 레릴은 순간 자신이 그대로 저녁시간까지 자버린 것인지 하는 착각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가 알아차린 것은 기대고 있던 바위와 자신의 그림자의 방향이 그가 잠들기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시간도 얼마 흐르지는 않았을 터. 이렇게 어두울 이유가 없었다.
잠 때문인지 머리가 멍멍한 기분을 느끼며, 레릴은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가 이상하리만치 어둡고, 춥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까와 비교해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잠시 더 둘러보던 레릴은 이윽고 저 앞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뭔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파도가 밀려드는 물가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모여 있는 곳에 노르스름한 짚단 같은 것이 걸쳐져 있는 게 보였다. 나지막하고 널찍한 돌덩이 위에 축 늘어진 채 파도에 쓸려 흐늘흐늘 거리고 있는 그것은 자세히 보니 짚단이 아닌 머리카락이었다.


‘..사람?’


조금 더 들여다보니 머리 위로 놓인 한쪽 팔, 그리고 바위 옆으로 비죽 나와 마찬가지로 파도가 칠 때마다 흔들거리고 있는 다리가 보였다. 그것은 모로 보나 엎드려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저쪽에 쓰러져 있다. 가서 그의 상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으로, 레릴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당장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레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안 움직여...’


마치 땅에 들어붙어 버린 듯 다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침때처럼 지쳐서 잘 안 움직이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마비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니,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다리만이 아니었다. 팔도 마찬가지다. 아예 몸 전체를 꼼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가위에라도 눌린 것 같았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혹시?’


아직 낮 시간임에도 이렇게 어두운 걸 보면 정말로 꿈일 지도 모르겠다. 레릴은 그나마 조금 움직일 수 있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커멓고 거대한 구름이 일대의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마치 폭풍우가 칠 것 같은 두터운 구름 덩어리가 둥글게 소용돌이치며 드리워져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어두웠던 건 바로 저 구름 때문인 모양이었다.
다시 쓰러진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린 레릴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멀리 낮은 바위 위에 몸을 걸치고 있었는데, 지금 그 사람은 그 앞쪽의 모래사장까지 올라와 있다.


‘움직였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순식간이라고 할 만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가까워진 만큼, 레릴은 쓰러진 사람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쓰러진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데는 별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민 한쪽 팔의 피부는 썩어들어 흐들거리고 있었고, 손가락 마디로 비죽비죽 뼈가 튀어나온 곳도 있었다. 옆으로 내밀고 있다고 보였던 다리 한 쪽은 알고 보니 옆으로 완전히 꺾인 상태였고,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살갗 역시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몸의 부분 부분이 물에 불었는지 부풀어 올라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것은 이미 시체였다. 그렇지만 눈앞의 사람이 이미 죽어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을 겨를이 레릴에게는 없었다. 그것이, 시체가, 조금씩 조금씩 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견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서서히 미끄러지며 레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몸 아래의 모래 알갱이들은 쉼 없이 흐르며 시신을 밀어 올리려는 듯 움직였다. 그리고 이제는 파도도 닿지 않는 위치에 있었는데도, 그 기다란 머리카락은 여전히 앞쪽으로 늘어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듯 했고, 시체의 몸을 인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을 향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한 구의 시체를 보며, 레릴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어제의 일도 그랬지만, 어째서 또다시 시체를 보게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래. 두 번이나.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그 때도, 어째서인지 그가 가는 곳마다 죽은 사람을 발견하곤 했었다. 마치 시체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하지만 틀려. 그 때와는 달라..’


적어도 그 때 발견했던 시체는 저렇게 움직이거나 하진 않았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지 않았었다.
지금처럼 저렇게.. 다 썩어진 팔을 들어 올려 손짓을 하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꿈이야.. 역시 꿈인 거야. 저런 게 현실일 리가 없어...’


뼈가 튀어나온 손을 흐느적거리며 자신을 부르는 듯 손짓하는 시체의 모습을 레릴은 애써 외면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분명 가위에 눌린 것이고, 어제 시체를 발견한 것과 예전에 있었던 일이 겹쳐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일 거야.
그렇게 합리화를 시켜가며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강하게 밀려드는 불안과 공포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거기다 꿈이라고 생각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신이 점점 맑아지면서 현실감은 더욱 또렷해질 뿐이었다.



“너를....부르는구나. 그녀가 부르고 있어....”


누군가 그의 귓전에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그와 동시에, 라고 해야 할까. 느닷없이 레릴의 다리 아래에 있던 모래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레릴은 머리가 쭈뼛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흘러내리는 모래들과 함께, 그의 몸이 조금씩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뒤쪽에서는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고, 속삭이는 목소리도 하나씩 그 수가 늘어갔다.


“널 데려 가려는 게야..”
“그리고 죽음을....”
“데려 갈 테지.”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도망쳐봐. 어디. 도망쳐. 도망쳐봐.”


바람은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강도가 거세지고 있었다. 발아래의 모래들이 흐르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모래가 사방으로 날리면서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거세진 파도는 마치 곧 해일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검푸른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쳤고, 시체는 손짓하던 것을 멈추고, 이제는 비뚤어진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이쪽으로 점점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때였다. 옴짝도 못하고 빠르게 아래쪽으로 쓸려 내려가던 레릴에게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예의 속삭이는 소리들과는 달리, 선명하게 귓속에 내리꽂히는 그런 목소리였다.


-저걸 잡아!


잡아? 뭘? 어떻게?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레릴의 시야에 얼핏 모래에 반쯤 파묻힌 밧줄 자락이 보였다. 순간, 바닥에 있던 돌덩이에 오른쪽 팔이 긁히면서 미약하게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레릴은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간신히 밧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거기에 매달렸다.


여전히 바람은 강하게 불어왔고, 시체는 이제 레릴의 발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시체의 팔이 다리를 때리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이어 그것의 손이 레릴의 옷자락을 꽉 쥐고 당겼다. 피부가 벗겨지고 뼈와 근육이 드러난 손이었지만 아귀의 힘이 상당했다. 점점 힘이 빠지려고 하는 오른손이 밧줄을 놓지 않도록, 레릴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거센 모래바람에 좁아진 시야로 시체가 고개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한쪽 눈동자가 쑥 들어가고 부패한 피부 사이로 이빨이 훤하게 드러난, 역시 끔찍한 몰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말을 했다. 어눌한 목소리였고, 발음이 몹시 흐렸다.


[죽고... 싶지...]


시체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않아.....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시체의 형상은 무너지듯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밧줄을 붙잡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던 레릴의 귀에 들려온 것은 누군가의 발소리와, 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였다. 레릴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느껴져, 그는 눈을 찌푸리며 숨을 참으려 애를 썼다. 주위는 어느새 다시 밝아져 있었다.


레릴이 있는 쪽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실로 기가 막힌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온몸에 모래범벅이 되어 웬 밧줄을 움켜쥐고 있는 레릴과, 그 발치에 얹혀 있는 부패한 한구의 시체. 달려온 네 사람 중 두 명은 코를 쥐고 멀찍이 떨어져 아예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네 대체.. 예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아, 저...”


레릴은 겨우 자신의 상황이 꽤나 난처해 진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이 시체는 또 뭐고? 자네 짓인가? 자네가 죽인 거야?”


“그럴 리가요...”


조금 과장될 정도로 어이없다는 얼굴을 해보이며 레릴이 변명을 시작했다.


“전 어제 여기 처음 온 여행객입니다. 이 사람은 척 봐도 죽은 지 한 달은 넘은 것 같은데, 제가 그랬을 리 없잖습니까.”


“그럼 대체 왜 다리 위에 사체를 얹고 있냐 말이야. 자네가 여기로 끌고 온 거 아닌가?”


‘그야 제 쪽으로 다가왔으니까요. 제가 끌고 오기는커녕 절 끌고 가려고 했었단 말입니다.’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 레릴이었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거나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상황은 악화될 뿐이다.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하면 저 사람들이 납득하기 쉬울까. 레릴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전 그냥.. 이 시체가 저쪽 바다에 떠 있기에, 뭍까지 옮기려고 했던 건데요...”


머리를 긁적이며 레릴은 다소 어수룩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게.. 여기까지 가져오다가 넘어져서... 어쩌다보니 이렇게....”


흐릿하게나마 시체가 바다에서부터 여기까지 이동한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고, 그것은 흡사 레릴이 시체를 옮기려 했다는 말을 입증하는 듯 보였다. 어쨌거나 잔뜩 부패되고 물에 퉁퉁 불어있는 이 여인의 변사체가 레릴과 관련 있는 듯 보이지는 않았기에, 어부들은 그의 말을 완전히 믿는 눈치였다.


“흠... 어쨌거나 우린 경찰에 연락을 취할 테니, 자네랑, 그리고 자네들도 여기 있게나.”


제일 처음 말을 건넸던 남자가 그렇게 말했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레릴을 향해 어부들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그나저나 그 줄은 왜 그렇게 잡고 있나?”


그제야 레릴은 자신이 아직 밧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손을 폈다. 어찌나 꽉 잡고 있었던지, 손바닥이 완전히 굳어버린 느낌이었고, 붉고 선명한 밧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어서 레릴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이 잡았던 그 밧줄이 안나의 ‘에이올디프 1호’의 선수부에 매어져 있던 그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 감탄과 고마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낡은 배를 쳐다보다, 곧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뭍은 흙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휴가 와서 연속 이틀을 경찰서행이라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레릴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레릴의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시커먼 구름이 걷힌 하늘은 다시 청명하고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가기 전에 어디서든 샤워라도 좀 해야겠는데.’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레릴이 생각했다. 시체의 비릿한 냄새가 이미 코에도 옷에도 배여 있어 머리가 다 아파올 지경이었다.


레릴은 다시 한 번 시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것은 완전히 평범한 한구의 변사체가 되어있었다. 보고 있던 레릴은 왠지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중얼거렸던 한마디가, 다시금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어.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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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귀신이니 뭐, 좀 그렇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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