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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일 하기 싫어 죽겠으니 소설이 잘 써지나 봅니다. -_-;;;


이번화도 광속으로 써서 올렸네요. >_<


 


근데... 5일만에 올린게 광속이라니 그거 좀 쪽팔리... (먼산)


 



공의경계_통각잔류 Track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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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1. 아귀가 맞지 않을 때의 행동 지침서(9)


 



다음날 아침.
어제 예의 시신이 밀려온 해안가에는 아침부터 몇몇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각자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을 떠들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의 추측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해변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게 중에는 완전히 황당무계한 가설을 진짜인양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상반되는 정보를 들고 와서 서로 맞네 틀리네 하며 실갱이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한 뭉치의 밧줄을 둘러매고 걸어가는 사내를 발견한 무리 중의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거.. 게브 아냐?”


그의 옆에 서 있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낙이 덩달아 게브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저 사람 어제 현장 가까이에 있었다고 그랬지?”


막 게브의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뒤에 있던 누군가가 끼어들며 그녀를 만류했다.


“관 둬. 저 친구, 어제 일에 대한 건 아마 입도 뻥긋 안 하려고 할 걸. 발견자가 브레디 영감이니까.”


그들의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져, 어느새 게브와 브레디에 대한 이야기로 그 화제가 바뀌어 있었다.


“전부터 이상했는데.. 게브 저 사람, 브레디 영감 일이라면 왜 저렇게 과민반응 해대는 거야?”


“예전에 자기 부모가 영감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고 하더라고.”


“어머, 그거 진짜야? 진짜로 그래?”


“나야 모르지. 풍랑을 만나서 변을 당했는데 저주받아 그랬는지, 운이 나빠 그랬는지.. 아무튼 게브는 그렇게 믿더라니까.”


“그럼 뭔가 있는 거 아냐, 진짜?”



저 쪽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브는 해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 쪽으로 흘긋 곁 눈짓을 한 번 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도 어지간히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브레디가 있었다. 그가 현장에 있었다. 마을의 온갖 좋지 않은 일의 가운데는 언제나 그 영감이 있다. 어제의 시체도 어쩌면 단지 그냥 밀려온 게 아니라 브레디가 꾸민 어떤 흉계의 제물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저 근처에 있다간 저주받아 죽을 것이다.
언젠가 브레디와 심하게 다투고 나서 일주일 후,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났던 그의 부모님처럼..


‘괴물 같은 영감탱이..’


그는 입속으로 욕지기를 중얼거렸다.
시체가 있었다는 해안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을 무렵 갑자기 게브가 발을 멈추었다.


저 앞에, 나무 둥치를 잘라 만든 긴 의자에 브레디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라던가 늑대를 피하면 호랑이를 본다던가... 그 모든 속담이 지금의 상황에 그리 잘 들어맞을 수 없다. 아무튼 지금에선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때마침 생각하니 이렇게 나타나나.. 게브는 살금살금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느릿한 동작으로 품속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던 브레디가 게브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그는 게브를 보더니 물었던 담배를 빼 손에 쥐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자네...”


저 영감이 갑자기 날 왜 부르는 거지? 전혀 친하지도 않은데.. 설마...?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게브를 향해, 그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잠깐 게 서게. 나 좀 보세.”


브레디의 말이 절반도 끝나기 전에, 게브는 이미 허둥지둥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뜨고 있었다.


‘방금 내 생각을 꿰뚫어 본 거야. 내가 속으로 저의 욕을 한 걸 알고 있는 거야. 저주를 걸려고 했어. 분명히 나한테 저주를 걸 생각이었어...’


무거운 밧줄을 들쳐 매고 뒤뚱뒤뚱 뜀박질을 하던 게브가 이윽고 어느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브레디가 잠시 후 콧방귀를 뀌었다.


“흥...”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기 위해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성냥갑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성냥을 그어대며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이윽고 낮은 한숨과 함께 한 모금의 연기를 내뱉으며 브레디가 중얼거렸다.


“팔푼이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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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비교적 한적한 곳에 위치한 거리. 넓진 않지만 편평하게 잘 정비된 바윗길 도로변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집의 마당에서는 아침부터 공사라도 벌인 듯 시끄러운 진동이 주변 도로를 울려대고 있었다.
지금 테이블 위에 놓인 긴 널빤지에 꼼꼼하게 대패질을 하고 있는 소녀이자 건물의 주인인 티젯시 리로트라젠은 몇 년 전부터 잔니아 마을에 자리를 잡은 배 수리공으로, 현재는 마을에 있는 배의 3할 가량은 그녀의 손을 거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건물은 그녀가 이사 오기 전에도 오래 동안 목공소가 자리했던 곳이었기에 밤낮으로 들려오는 소음을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문득 울타리 건너편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 그녀는 대패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목수입니까...”


킴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무 울타리에 기대었던 팔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마당 안으로 들어와 티젯시가 있는 쪽으로 걸으며 그가 말했다.


“재주가 많으시군요. 리로트라젠 기자님.”


티젯시는 손질하던 널빤지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잠시 킴 쪽을 한 번 흘깃 곁눈질하고는 다시 판자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킴은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짧게 스쳐간 불쾌함의 표정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다시 대패를 쥐고 각도를 잡으며 그녀가 다소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이렇게 이른 시각부터 찾아오실 줄 알았으면 밤새 이사라도 가 버릴 걸 그랬나보네요.”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말 걸면 툴툴대는 건 여전하군..’


킴은 마당 안을 한 번 휘익 둘러본 후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목공소를 하고 있을 줄이야... 어쩐지 예전부터 카메라를 수리하거나 개조하는 솜씨가 심상치 않더라니 기술을 배운 적이 있는 모양이지?


“설마 이런 일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는데요, 좋아하십니까? 배 만드는 일을..”


“썩 재밌지는 않지만... 일이라고 치면 그리 나쁘진 않죠.”


적당히 면이 다듬어졌다고 생각되었는지, 대패를 물리고 티젯시는 판자의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다시 대패를 거머쥐고 밀기 시작하며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크게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지만 딱히 수입에 불만도 없고요.”


그런 의미로 물은 게 아니었는데...
그리 재밌지도 않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지 않다면 어째서 일부러 이런 어촌 구석까지 와서 목수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해 보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군.
작업하는 티젯시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자리가 필요하신 거라면 차라리 저희 회사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상한 소릴 다 하시는군요. 비번스에 제가 필요한가요?”


“필요하다 뿐입니까. 기자님 같은 혜안을 가진 조언자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예전처럼 말입니다. 도와주실 순 없겠습니까?”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고 티젯시는 뭔가 생각하려는 듯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였다.


“그다지 도움을 드린 기억은 없는데요..”


이어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킴 쪽으로 고개를 향하며 그녀가 말했다.


“혜안이니 뭐니.. 아무래도 절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에드워드.”


“..과대평가라니요.”


킴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당신도 버클리씨도 지금의 비번스가 있을 수 있도록 기틀을 잡게 해 준, 제게는 큰 은인이 아닙니까. 도움을 준 기억이 없다니 저로썬 정말 서운한데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기쁘긴 하지만..”


그녀는 대패를 테이블 아래쪽에 내려놓고, 이번엔 그 옆에 있던 긴 사포를 집어 들었다. 한 손에 사포를 들고 까딱까딱 흔들며 그녀가 주절주절 말을 계속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별 거 아닌 말이나 행동 하나가 의외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그런...”


킴의 얼굴에 스치듯 지나간 서운한 표정을 본 것일지, 그녀가 다시 널빤지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지금의 제가 비번스에 필요한 인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군요.”


실은 방금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는 정곡이었다. 킴은 늘 불가능할 것 같던 문제를 쉽사리 해결해내던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 능력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 그에겐 뭐든 그녀의 도움을 얻어야 할 만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는 겁니다. 기자님 정도의 인물이 이런 곳에서 배나 고치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빙글빙글 웃으며 티젯시가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제 생각엔 당신 같은 거물급 인사가 이런 곳까지 찾아와서 옛 친분을 이유로 목수 하나를 스카우트 하려는 상황 쪽이 안타까운데요?”


“......”


아무래도 그녀는 이 곳 잔니아에서 배 장인으로서 뼈를 묻을 결심을 확고히 한 모양이다. 킴이 앞으로 뭐라고 설득을 하던 그녀는 조금도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사정이 무엇인지를 말해줄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시 그런 겁니까? 도시 생활은 이골이 나서 이런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전원생활을 만끽하고 싶다던가 하는...”


갑자기 티젯시가 얼빠진 얼굴을 하고 킴을 쳐다보았다. 괜스레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킴이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후,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티젯시가 대꾸했다.


“...그러게 절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다니까요.”


손질이 끝난 판자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두드려 본 다음, 티젯시는 고개를 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전 이래봬도 꽤 바쁘게 살고 있는데, 보기엔 그리 한가하게 보이나요?"


킴이 조금 당황하며 답했다.


“아뇨. 그런 의미는...”


"게다가 그리 평화로운 마을도 못 될 것 같더군요. 아십니까? 어제 일이요."


"시체가 밀려왔다는 것 말입니까?"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티젯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의 의아함을 품은 어조로 킴이 물었다.


"여기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의미모를 미소를 만면에 띠고, 티젯시는 시선을 먼 산 쪽으로 돌렸다. 이윽고 들려온 짧은 대답에 킴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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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바다를 항해하다. 잔니아 마을에 상륙한 의문의...”


한 손엔 스프를 젓던 국자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신문 뭉치를 쥐고 제시가 기사의 머리글을 중얼중얼 소리 내어 읽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마을에 관한 기사를 보는 건 참 기분이 묘하단 말야..
그렇게 생각하며 제시는 읽으려던 신문을 다시 팔에 끼고 앞에 놓인 냄비 속의 스프를 휘휘 몇 번 저어 주었다.


주방으로 들어오려다 말고 출입구 옆에 멈추어 서서 제시의 행동을 지켜보던 크린슨이 고개를 삐딱하게 쳐들며 입을 열었다.


“너 임마. 일 하든 신문보든 한 가지만 해. 뭐냐? 그 꼴이... 옆구리에 신문지나 끼고 서서 얼쩡얼쩡..”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제시가 대꾸했다.


“보면서도 할 건 다 한다구요. 그리고..”


그는 들고 있던 국자를 크린슨 쪽으로 향하도록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 그런 충고 늘어놓기 전에 이실직고 하시죠. 제가 샌드위치 만들려고 저기 놔둔 햄이랑 샐러드 얼마나 집어 드셨어요?”


순간적으로 ‘움찔’ 하는 크린슨의 움직임을 제시는 놓치지 않았다.


“....난 나가서 카운터나 보고 있으마.”


노골적으로 말을 돌려 버리고는 슬금슬금 주방을 나가려는 크린슨의 뒤통수에 대고 제시가 고함을 빽 질렀다.


“이봐요, 아줌마!!”


그러나 그녀는 듣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해 보이더니 나가서는 아예 주방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정말 저 아줌마는 도대체 왜 저 모양인지.. 자기 가게 일에 자기가 제일 거치적거리면 어쩌자는 거야?’


인상을 구긴 채 크린슨이 나간 방향을 노려보며 제시는 새삼 그녀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용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이, 1층 홀로 도망가다시피 기어 나온 크린슨은 또 그녀 나름대로 투덜대고 있었다.


저 깐깐한 시어머니 같은 녀석은 당최 융통성이란 게 없단 말이야.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일하다 배고프면 보이는 거 좀 주워 먹을 수도 있지. 그걸로 제가 설교를 하려고 들어? 일 잘한다고 오냐오냐 했더니 이젠 고용주의 머리꼭대기에 오르려고 하는군 그래. 건방진 자식...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한참을 궁시렁거리다 이윽고 조금 쓸쓸한 눈을 하며 다시 생각했다.


‘그렇지만 역시 제시가 음식도 맛있게 하고 다른 일도 조금 잘하는 편이긴 해. 그러니 약간 건방지더라도 내가 성인군자 같은 마음가짐으로 참는 쪽이 낫겠지..?’



여하튼 카운터를 보겠다느니 말하며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이른 시각에 카운터를 지키고 있어야 할 정도로 손님이 있을 리가 없다. 식당에는 아침 배를 탈 예정인 선원 서너 사람이 아침을 먹고 있었지만 식당 안팎의 전경은 한없이 조용한 상태였다. 하릴없이 카운터 앞에 앉아 그녀는 오후까지 뭘 하며 시간을 때울지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홀의 청소라던가 테이블 정리라던가 빨래라던가.. 아니, 생각하면 오히려 할 일은 많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청소 빨래를 하느니 차라리 무료함을 달래며 그냥 앉아있겠다’라고 제시가 들으면 입에서 불이라도 뿜을 결심을 하곤 앉은 채 상체를 벽에 납작 기대고 눈을 데록데록 굴리며 생각했다.


‘이참에.. 나도 담배나 한 번 배워볼까?’


담배는 오래 전 작고한 그녀의 어머니가 즐기던 기호품이었다. 커다란 목도리를 턱이 덮이도록 두르고 말 위에 올라앉아 담배를 물고 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크린슨의 눈에는 그렇게 폼이 나 보일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녀가 ‘도대체 무슨 맛이 있어서 그런 걸 피우냐’고 묻자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시원스런 웃음을 지으며 ‘인생의 맛’이라고 대답했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난 누굴 닮아 허구헌 날 요 모양이지?’


그렇게 혼자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크린슨은 문득 열린 문 밖에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얼쩡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어서 옵쇼~오... 흠?”


문 바로 밖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가게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어제 오후부터 줄곧 보이지 않던 레릴이었다. 어렵잖게 그를 알아보고 크린슨이 반갑게 말을 건넸다.


“아이구, 이게 누구시래? 어제는 사건 땜에 에튼시로 가셨다더니, 그런데 뭐하다 이제 들어오슈?”


크린슨의 목소리를 들은 레릴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크린슨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뭐여, 사람 첨보시나?’


멍청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서서 이쪽을 보고만 있는 레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크린슨이 한 마디 할 생각으로 입을 비죽비죽 치켜들 무렵 가까스로 그가 입을 떼며 말했다.


“저.. 킴 사장님...”


그녀는 레릴에게 한바탕 퍼부으려고 벌렸던 입을 대꾸를 하는데 써야 했다.


“..자작 나리 말이유? 아침부터 어딜 급히 나가시더니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


“그렇군요....”


왠지 맥 빠지는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하고, 식당 안을 연신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레릴은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가버렸다. 크린슨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치 좀비 같은 걸음으로 휘적휘적 걷고 있는 레릴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왜 저러지, 저 사람? 좀 이상하네? 꼴은 또 왜 저래? 어디 흙밭에서 넘어졌나?’



여관에서 나와 터벅터벅 얼마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던 레릴은 잠시 멈추어 서서 고개를 들어 멍한 시선을 여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흙투성이가 된 양 손과, 마찬가지로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는 코트와 바지자락을 쳐다보았다.


‘설마 여기까지 걸어왔나? 밤새?’


얼핏 계속 걸어 다녔던 기억은 나는 것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한 탓일까, 갑자기 다리가 주체할 수 없이 욱신거리는 감각이 밀려왔다. 레릴은 가까운 창고 건물의 벽을 등지고 바닥에 주저앉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브레디 영감님을 찾아가 봐야겠어.’


아무 이유도 없이 어딘가를 돌아다녔던 것이 벌써 두 번째. 지금 자신의 상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에 씌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니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구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브레디 뿐일 것이다. 영감님이라면 뭐든 알고 있을 것만 같다. 어제도 그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고..


어쩌면 지금 킴이 여관 안에 없는 것은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이런 상황에 킴이 심부름이라도 시킨다면 골치 아파진다. 또 어느새 도깨비에 홀려서 정처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기나 할는지 모를 일이 아닌가.



갑자기 그의 머리 위로 긴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레릴은 고개를 들고 그림자를 만든 사람이 서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이런데서 뭐 하세요, 킴 자작님의 비서씨?”


맑고 쾌활한 목소리. 들은 기억이 있었다. 여전히 한여름에나 입음직한 얇은 옷을 입은, 밝은 감빛 머리칼의 소녀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나양이다.’ 레릴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상하리만치 입이 무거워 쉬 떼어지질 않았다. 좀처럼 말이 튀어나오지 않아 그는 멀뚱히 안나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이 없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히죽 웃으며 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고민 있어요? 심각해 보이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다 레릴은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안나가 다시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거 잘 됐네. 나랑 같이 낚시 갈래요?”


‘이보세요, 안나양.. 사람이 고민 중이라는데 잘 됐다는 건 뭡니까? 게다가 뜬금없이 웬 낚시?’


레릴의 생각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안나는 저 나름의 설명을 시작했다.


“낚시는 세상 모든 고민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레크리에이션이거덩요. 사양 말고 따라와요. 내가 그동안 갈고닦은 노하우를 특별히 알려드릴 테니깐.”


그렇게 말하며 안나는 팔을 휙휙 돌리며 낚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배팅 동작을 반복해 보였다. 지금 낚시를 가르쳐주겠다는 건지, 야구를 가르쳐주겠다는 건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안되겠다. 잠자코 있으면 안 되겠어. 뭐라고든 말을 해야겠다. 말을 하자. 늦기 전에 거절해야해. 지금은 도저히 낚시든 뭐든 할 컨디션이 아니야. 레릴은 그렇게 결정하고 힘겹게 입을 뗐다.


“저기..”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안나가 힘차게 창고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문을 벌컥 열고 안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내 부스럭거리며 물건을 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늦었다. 벌써 늦었어..’


그런 생각이 레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등에는 식은땀마저 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긴 낚싯대와 미끼통, 망태기 등을 지고 들고 둘러맨 안나가 밖으로 나왔다.


“여긴 거의 제 창고나 다름없답니다. 그래서 짐의 절반은 다 여기 놔두고 다녀요. 여기 주인아줌마랑 꽤 친하걸랑요~”


늦은 감은 있어도 다시 한 번 거절해볼 생각으로 레릴이 손을 들어 몇 번 가로저었고, 그의 제스처를 거꾸로 이해한 안나가 들어 올린 손을 덥석 붙잡았다.


“자, 자, 어서 가죠. 일어나요.”


그리고 그녀가 레릴의 손을 힘껏 잡아끌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방금까지만 해도 다리가 바닥에 붙어 도저히 떨어질 것 같지 않았건만, 의외로 그는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스스로 일어나고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레릴은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히죽 웃으며 안나가 레릴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왠지 안나가 손을 끄는 것이 아니라 등 뒤에서 뭔가에 떠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레릴이 덩달아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리만치 걷기가 쉬웠다.


저 추워 보이는 복장 탓에 당연히 차가울 거라고 생각했던 소녀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밤새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부들부들 떨리던 몸에 약간의 온기가 도는 느낌과 함께 왠지 모르게 약간의 안도감마저 느끼며 레릴은 안나를 따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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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릴은 안나를 따라 걸었다.
이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운명을 알 지 못한 채...(<-어이!! -ㅁ-;;)


잘가라, 레릴. 널 잊지 않으마...(뭉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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