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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일 하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

 종종 물건 들고 분주히 나르고 있을 때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꼭 아줌마 한 두 사람이 자기 똑 닮은 애들 데리고 와서 하는 말이

 

 "우리 영현이는 나중에 공부 열심히해서 저 아저씨 처럼 되면 안되요~"

 

 오늘은 다행히 나한테 한건 아니더라. 그래도 저 되먹지 못한 말을 자기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한테 말하더군. 웃기게도 그렇게 말하는 지들은 전세 살면서 말야. 다른 사람한테 이 말하면 에이 요즘 세상에 진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하는데 진짜 있다. 그런 사람이 지목한 사람들은 보통 노가다하는 아저씨들, 나같은 택배 알바들, 경비 아저씨들 등등 자기네들이 딱 봐도 좀 수준 떨어진다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

 

 '지랄하고 있네.. 느네집 영현이 커서 저 경비원 아저씨 처럼 되면 성공한거야.'

 

 저 미친년은 알고나 있을까? 저 경비원 아저씨, 젊을 때 고대 법대 졸업하고 판사하다가 정년 퇴임하고 할 거 없어 심심해서 하는 거라는걸? 저런 애들은 죽어도 모를거야.

 

 "아저씨. 906호에 온 택배 없어요?"

 

 잠시 물건 땅에 세워두고 엘리베이터 내려올 때 까지 기다리고 있다보니 뒤에서 왠 앙칼진 목소리의 여자가 물어온다. 뭐지 싶어서 돌아보았다. 이 아파트 오기전에 지금 집에 있는 지 물어보려고 할 때 받았던 여자중에 한명이다. 틀림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소리가 참 거슬린다.

 

 "여기 짐 올리고 난 후에 찾아볼게요."

 

 "지금 찾아 주세요. 급하단 말이에요."

 

 나는 알겠습니다하며 빠르게 그 여자를 지나쳐 갔다. 소심하게도 입에서 나오지 않고 머리 속에서 욕설이 맴돈다. 나는 고대는 커녕 대학물도 못 먹어봤지 않은가. 그러면서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길래 사람 짜증나게 하는건지 빠르게 찾아보았다. 짜증나게도 잘 안찾아진다. 뒤에서 그 년이 도끼눈으로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참 찾다가 906호 물건 안들고왔나라고 생각할 즈음, 의외로 물건은 허탈하게 찾았다. 나는 그 물건을 여자한테 주며 뭐라 한 소리하려고 했다.

 

 "여기 사인해 주세요."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내 마음과 다른 말을 말하였다. 여자는 낚아채 가듯 물건을 가져갔다.

 

 '하 시발. 마스크팩이 급하단다, 아오 시발.'

 

 급하다길래 큰 건줄 알았는데 마스크팩 20장 묶음이더라. 큰 물건들 위주로 찾다가 못찾아서 나오다가 발에 걸리는 작은 박스에 906호 대문짝 만하게 쓰여 있어서 찾았다. 너무너무 화가나지만 일단 참는다. 그래, 일단 참는다.

 급한건 다른 집 택배다. 어떤 등신같은 년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여유 있게 돌리고 담배하나 딱 피고 가려했드만 잘못하면 늦었다고 혼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안된다. 혼나는 건 문제가 안된다. 늦으면 일당도 삭감되고 늦게 퇴근해야한다. 참 더러운 사실은 5분 늦어도 그런다는 것이다. 그래도 난 참아야한다. 나는 고대가 아니니까...

 물건 돌리다 보니 906호를 지나갔다. 집 문은 훤히 열어서 밑에 고정시키는 걸로 안닫히도록 하고는 방충망이 되어있는 작은 철문만 닫아놨다. 아마 덥다고 이런 식으로 한 것 같다. 복도식 아파트다보니 주의 깊게 안 살펴봐도 그냥 안이 훤히 보인다. 안에 6~7살 애가 있는 것 같다. 다는 안보이지만 아까 그 망할년도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쉬울것 같다.

 

 "저기요! 이 집애가 아까 물건을 흘려서 놓고 갑니다!"

 

 목소리를 굵직하게 해서 말하였다.

 

 "민규야! 또 뭐 나두고 왔어? 빨리 가지고 와!"

 

 계획은 성공이다. 황급히 자리를 떴다.

 12층까지 택배를 다 돌리고 내려왔다. 다행히 어느정도 시간이 남아 담배 한대를 빨았다. 인간들이 문제이긴 하지만 인간들만 빼면 이 아파트는 살기 좋아 보였다. 옛날 박정희 시절에 일본에서 만든 아파트인데 과거엔 아주 부자들만 살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파트가 어디 하나 부실공사 없이 야물기는 엄청 야물다. 30년이 지나도 멀쩡한 거 보면 말이다. 지금은 주변에 엄청난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렇지만 여기도 나쁜 편은 아니다. 좀 구식이긴 하지만 적당한 가격에 전세 또는 평생 살 아파트 자리로 부족함이 없다. 나는 이런 구식 아파트가 좋다.

 손가락이 뜨겁다. 담뱃재를 털고 자리를 떴다.

 

 일이 끝났다. 일당으로 받은 돈은 6만원. 가끔 힘든 물건이 있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일이다. 밤새 공단 내에서 상하차하고 큰 돈 받는 것 보단 이렇게 물건 배달하고 소박하게 받는게 낫다. 그래도 상하차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상하차는 육체적 스트레스고 나같은 사람은 정신적? 그런 샘이다. 취미 생활을 해야한다. 그래야한다.

 저녁 6시쯤 되서 해가 저물기 시작하지만 아직 환하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제일 싫다. 깔끔하게 검은색 정장으로 갈아입고 소품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매고는 집에서 나왔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를 몇번 반복하다보니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침에 택배기사였을 때와 지금 모습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보니 경비원 아저씨도 날 몰라본다. 다행이다. 아파트에서 큰 길로 나가는 쪽 상가에 있는 슈퍼에 들려 선물셋트 한개를 샀다. 다시 되돌아가서 1층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타기전에 우편함을 살펴본다. 김영호씨 앞으로 온 카드 내역서가 보인다. 다시 쑤셔 넣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906호 앞에 섰다. 여전히 철문만 닫혀있지만 안에는 조용하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과감히 안을 들여다보니 애는 있는 것 같은데 지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너무 잘된것 같다. 초인종을 누른다. 순수하고 아직 때묻지 않은 아이가 달려나온다.

 

 "누구세요?"

 

 "여기 서미영씨 집 맞니?"

 

 "네, 우리 엄만데요?"

 

 나는 아이 눈 높이에 가깝게 허리를 숙이고 웃으며 말하였다.

 

 "엄마의 사촌 오빠 되는 사람인데 근처로 출장 왔다가 잠깐 들려서 말야. 혹시 너가 김민규니?"

 

 "네."

 

 "들어가서 기다려야겠다. 선물셋트도 무거우니 민규가 얼른 이거 가지고 들어가야지?"

 

 아이는 너무나 순수해서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자기 몸뚱아리 만한 선물셋트를 영차하고 받아든다. 웃음이 다 터져 나올것 같다.

 

 "그리고 민규야. 혼자 있을 때는 이렇게 철문으로 하는 거 아니야. 대문 잘 닫았야지?"

 

 나는 철문을 치우고 밖에 고정해준 대문을 닫았다. 문까지 잠궜다. 내 신발은 신발장안에 넣었다. 이제 준비는 다 된것 같다. 취미생활을 해야겠다.

 

 "엄마 어디 계시니?"

 

 "엄마 아까 시장갔어요."

 

  아이는 탁자위에 선물셋트로 놓아두고 멀뚱히 서있다. 나는 웃으며 말하였다.

 

 "아저씨는 신경쓰지 말고 방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으렴."

 

 "네."

 

 아이는 금새 방안으로 들어간다. 너무 순수하고 재미있다. 난 가방에서 내 물건들을 꺼내 놓았다. 언제든지 준비는 끝났다. 이 집에 사는 그년도 이 아이도 오늘 잊지 못할 하루가 될거라 생각하니 너무 즐겁다. 여유롭게 몸을 풀고 계획을 살피고 있으니 문이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웃으며 옆으로 숨었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지나가 문을 열어준다.

 

 "대문을 왜 닫아놨니?"

 

 906호 여자가 아무것도 모른채 내가 숨은 옷방을 지나쳐 들어간다.

 

 "하하하하하!"

 

 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며 옷방에서 나갔다. 오른손과 왼손 가득 그들을 위한 진짜 선물을 가진 채로. 

 그들과 나는 빨갛게 웃는다.

 

 저녁 9시쯤 되어서 집에서 나왔다. 오늘 함께 나와 놀아준 그들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자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남편과 아침에 싸워서 그랬다는데, 그래서 까칠해 진건데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욕한 것 같다. 나도 마음을 이제 곱게 먹어야겠다. 다행히 남편과 아내는 서로 만나서 화해를 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아내는 그 화해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제 906호에 사는 그들은 나 덕분에 남편도 아내도 귀엽고 조그만했던 그 아이도 영원히 행복할 거라 믿는다.

 

 "어서 집가서 자고 일해야지."

 

 나는 복도식 아파트가 좋다. 이런 감동적인 일을 하는게 CCTV에 찍히는건 부끄러운 일이니까. 파하- 담배연기가 하늘로 사라져간다. 담뱃재가 하늘에 날린다. 오늘도 한 가정에 사랑과 행복을 전해준 것 같아 참으로 기분 좋다.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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