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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남자는 수저를 들어 게걸스레 먹었다. 병상에 딸린 접이식 탁자 위엔 그 곰국 같은 국물 빼고 다른 음식은 올려져 있지 않았다. 심지어 국물에조차 별다른 고명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먹는 매 끼니가 죄다 그런 식이었다.

 음식을 준 간호사는 조리대를 정돈하러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병실 한편에 마련된 조리대 주위엔 남자도 잘 볼 수 있게 비닐 커튼으로 된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때문에 남자는 병실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자기 식사가 마련되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병문안 온 여자는 그 조리대가 맘에 들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남자가 먹는 그것이 싫었다. 아마 저 간호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자기가 남자에게 주는 게 정확히 뭔지. 자기가 예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특수한 병동인 탓일까. 남자가 요양 중인 병동은 모든 병실이 1인실뿐이었다. 각 병실엔 화장실뿐 아니라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조리대도 있었다. 자기만의 병실에 처박혀 남자는 벌써 며칠째 병상 위에서 내려올 생각도 않고 제 집에서 가져온 그 허연 국물만 들이켜고 있었다. 이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여자는 그런 남자를 안쓰럽게 바라볼 뿐 말을 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문득 여자 눈이 남자 다리 쪽에 쏠렸다. 탁자 아래 보이는 남자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 부분이 잘려나가고 없었다. 그 모습 보기가 괴로워 여자는 얼굴을 돌렸다. 남자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여자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이제 제발 그만 둬."


 그저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여자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였기에 남자가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여자를 개의치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자기가 이럴 필요 없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아무도 자길 탓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그럴 거지?"


 벌써 수차례 이런 식이었다. 매번 찾아올 때마다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며 사정사정했다. 때론 어린아이 달래듯 어르기도 해본다. 어떨 땐 그만 하라며 막무가내로 소리도 질러 본다. 그때마다 남자는 뚱한 얼굴로 여자를 잠깐 쳐다보기만 했다. 바뀌는 건 없었다. 남자는 여전히 병실에 갇혀 지냈다. 여자는 괴로워하면서도 그런 남자를 매번 찾아와 설득했다.


 "그만 정신 좀 차리라니깐!"


 결국 매번 그랬듯 여자는 남자에게 화를 내 버렸다. 아직 절반쯤 남은 국이 오른 식탁을 여자는 두 손으로 세게 탕 내려쳤다. 여자 태도에 놀란 간호사가 조리대에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수저를 국그릇에 내려놓고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똑바로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해."


 갑자기 입을 떼었다 싶더니 남자는 대뜸 여자에게 사과부터 했다. 여자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입원하기 전보다 남자는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 뺨은 움푹 패었고 두 눈도 퀭한 게 힘이 없어 보였다. 눈동자에 초점이 흐린 건 독한 진통제를 처방받아 정신이 없는 탓이리라. 새하얀 유령 같은 몰골이 얼마 전까지 자신이 사랑하던 바로 그 남자 것이라는 걸 여자는 믿을 수가 없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남자는 무섭다고 말했다.


 "나도 무서워. 내가 어떻게 되어 버릴지 몰라서. 나 때문에 당신이 어떻게 변해 버릴지 알 수 없어서."

 "그럼 그만두면 되잖아. 나가자. 나랑 같이 가. 자기 여기서 이러는 거 나도 싫단 말야."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왜?"

 "내가 사랑하는 건 자기 뿐만이 아니야."


 변명처럼 남자가 꺼낸 말에 여자는 충격을 받는 눈치였다.


 "그 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이해 못하는 거 알아. 하지만 용서해줘."

 "됐어. 더 말할 필요 없어."


 남자에게서 여자는 몸을 돌렸다. 그동안 수차례나 진절머리 나게 했던 말을 여자는 다시 남자 앞에서 꺼낸다.


 "이번엔 진짜 자기 다신 안 볼 거야. 어디 자기 멋대로 해봐!"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자는 제 핸드백을 챙겼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빤히 쳐다볼 뿐 붙들려 하지는 않았다. 불과 일이 분 새 남자는 다시 제 국그릇에게로 눈을 돌렸다. 방금 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아랑곳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태연스레 국그릇을 비워가는 남자를 보는 걸 여자는 참기 힘들어했다. 여전히 남자는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일 순위였다. 불과 몇 주 전만해도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던 그였다. 그랬던 사람이 병실에 틀이 박혀 독한 진통제에 망가져간다. 그 모습을 단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여자로선 견디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말다툼한 게 아무 일도 아닌 양 게걸스레 눈앞에 놓인 접시만 탐닉하는 저 태도란! 이윽고 여자는 깨달았다. 병상에 있는 건 그저 소름끼칠 뿐인 낯선 남자에 불과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그 남자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합리화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도 초라해 보여 여자는 슬그머니 병실에서 빠져나갔다. 

 때마침 담당 의사가 병실 앞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건넸다. 답례 인사를 하면서 의사는 힐끔 병실 문 앞에 표시된 환자 명을 보았다. 


 "환자분 일은 안타깝게 됐습니다."

 "그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대로 계속 저렇게 지내야 하나요?"


 여자 질문에 의사는 난감한 듯 안경테를 매만졌다.


 "현재로선 치료 방법이 없는 정신 질환입니다. 일단 진행을 최대한 늦춰보곤 있습니다만. 여전히 환자분 집에서 가져온 그것 말곤 안심하고 드시질 못하더군요."


 음식 얘기에 여자는 또 한 번 불쾌해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를 보곤 의사는 말을 이었다.


 "일단 환자분 몰래 수면을 유도한 뒤 약물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환자분은 모든 약물 투여에 대해 거부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분 동의를 받아 다소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죠."

 "혹시 음식은요? 식사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없나요?"

 "약물 치료 시 링거 주사로 최소한의 영양 공급은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한계입니다. 환자 분 증세 탓에 지금으로선 그 이상 조치는 저희도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의사 설명을 듣고 여자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의사는 그런 여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자 했다.


 "그나마 일찍 알아차리고 신고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과다 출혈 때문에 그 자리에서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대체 어쩌다 그이가 이런 병에……."


 울먹임 탓에 여자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의사는 그런 그녀에게 더 뭐라 건넬 말을 찾지 못했다. 가장 최신의 질병에 대처하기에 현 인류의 의료 지식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우로보로스 증후군. 남자를 포함해 전 세계 십 수 명에게서 첫 발병 사례가 확인된 후 이 신종 질환은 이후 한 달 사이 백여 명의 추가 환자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개 개인인 의사가 환자의 하나뿐인 연인을 위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저 사무적인 목소리로 병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게 전부일 뿐.


 "환자분은 지나치게 남을 사랑했던 것뿐입니다. 너무나 타인을, 심지어 동물이나 식물들까지도 사랑한 나머지 그것들을 차마 먹을 수 없었던 것뿐이에요. 이 세상에서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들 합니다. 환자는 그 사실을 남들보다 조금 민감하게 받아들인 겁니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현재 여러 연구소에서 치료 방법을 찾고 있으니 조만간은 방법이 생길 겁니다."


 의사 목소리는 다소 자신감없이 들렸다. 여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사랑하는 연인의 병을 처음 알게 되었던 때를 그녀는 생생히 기억했다. 남자 집안은 이상할 정도로 훈훈했고, 가스레인지 위에선 커다란 냄비가 펄펄 끓었다. 가스레인지 주위며 주방 바닥 모두 온통 피범벅이었다. 신음소리를 들은 여자는 마음을 졸이며 부엌에 들어섰다. 식탁 의자 하나가 넘어져 있었다. 4인용 탁자 아래 온 몸을 오그린 채 고통과 오한에 떠는 남자가 있었다. 멀쩡하던 한 쪽 다리를 잘린 채 피를 흘린다. 붉게 얼룩진 전기톱이 그 곁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깜짝 놀라 여자는 119에 신고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는 그 동안에도 기세 좋게 들썩이며 이젠 거의 넘치기 직전이 되어 있었다. 파스타 삶을 때나 쓸 법한 큼직한 냄비다. 이이는 대체 뭘 하다 이 지경이 되었나? 여자는 가스 불을 끄고 덜컥대던 냄비 뚜껑을 열었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나오며 심한 노린내가 났다. 곰국처럼 희뿌연 국물에 푹 담가진 뭔가를 여자는 보았다. 처음엔 그것이 무언지 여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큼지막한 뼈. 살코기 여러 뭉치. 국물 위에 둥둥 뜬 지방 덩어리 약간. 요리라기엔 지나치게 투박하고 왠지 모르게 불쾌한 그것을 여자는 외면했다. 진실을 알아볼 눈이 여자에겐 없었다. 여자가 119를 기다리는 동안 남친의 왼쪽 다리는 그 식어가는 냄비 속에 조금씩 녹아 사라지고 있음을 그 당시 그녀는 알지 못했다.

 구급차가 오기 전 남자는 여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겨우 의식 한 가닥 붙든 채 열에 들뜬 사람 헛소리하듯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이었다. 여자는 그저 울며 아무 말 없이 남자 소원을 들어줬다. 그때는 그게 마치 사랑하는 그이가 하는 마지막 부탁인 것 같았으므로.


 "저거, 파스타 냄비에 국을 끓였어…. 뽀얗게 우린 곰국이야……. 그래, 맛 좀 보게 도와줘. 벌써 사흘째 아무 것도 못 먹었거든…….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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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 사정이 조금 생겨서,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올립니다.;;

 조금 복잡한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괜찮았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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