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51 추천 수 2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The Sandstorm when Blow Raged

 

 

1: 정의는 공평하다

 

 

-1.

 

란 왕국, 괴암 마을.

수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는 산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라에서도 벽지(僻地)에 속하고 척박한 토양을 가져 살기 좋지 않음에도 있는 것을 더 빼앗으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오늘은 세금 걷는 날. 사람들의 통곡 소리와 호통 소리가 온 마을을 가득 메웠다.

이놈아! 절대로 그것만은 아니된다, 아니되. 네놈들은 애비도 자식도 없냐!”

나리, 제발 그것만은!”

세금을 걷지 못하자 키우던 개를 가져가려는 관졸의 바짓가랑이를 한 농민이 붙잡으며 애원했다. 관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리를 한 번 크게 움직여 팔을 떨쳐낸 다음 농민의 손을 밟으며 소리쳤다. 농민은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시끄럽다! 딸을 대신 가져가지 않은 것도 고맙게 생각하라구!”

집 한쪽 구석에서는 딸과 어미가 서로 몸을 움츠리고 떨린 눈으로 관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은 개 하나로 봐주겠다. 하지만 다음 달에도 세금이 밀리면너희 둘 중 하나가 끌려올 각오를 하라고!”

관졸은 훽 돌아서며 가버렸고, 모녀는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으엉엉춘애야 이번 달까지만 보겠구나.”

무슨 말씀을 하세요, 어머니. 부모가 어려우면 자식이 돕는게 도리죠. 제가 사또에게 잘 말씀드려 다음 달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말해볼게요.”

어미는 딸이 말한 의미를 이해하고는 대성통곡했다.

내가 무슨 업보가 있기로 고생을 받아야할꼬으엉엉.”

어머니, 그만 우세요. 언젠가 암행어사님이 올거에요. 우리 그때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요.”

암행어사. 왕 직속의 관리로 백성들의 민원을 받아 직무에 성실하지 못한 관리를 잡아 벌주는 사람이다. 암행어사는 각지에 있는 병대 하나를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암행어사의 명이 곧 왕명이다.

따라서 암행어사 자리에는 왕의 측근이 주로 임명된다.

암행어사의 활약으로 많은 관리가 파직되었고, 백성들은 이런 소문을 들으며 희망을 꽃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벽지였다.

그런 소리는 하지 말거라나랏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몸소 여기까지 행차하시겠노더구나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벽지쥐구멍같은 곳에 누가오겠노.”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반드시 올거에요. 그때까지 희망을 잃으면 안돼요.”

맞는 말씀입니다.”

모녀는 다시 부둥켜안고 울었다. 울음소리가 커서인지 다가오는 발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녀가 울음을 그쳤을 때 문밖에 어떤 사람이 서있었다.

당신은 누구?”

우산 대용처럼 얼굴을 가린 삿갓 안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흡사 천사의 음정같은 그 목소리에 모녀는 고개를 돌렸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런건 보면 알아!’

모녀는 항의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지나가는 나그네의 모습을 찬찬히 흩어봤다.

얼굴을 가린 삿갓 아래로 뻣뻣한 모시옷이 발목 아래까지 내려온 남루한 복장, 확실한 진품(?)이었다.

이런 오지에서도 사람이 산다니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나 할까인간이란 역시 대단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며 시를 읊는 듯한 나그네를 보며 모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는 서러워서 울고 있는데, 난데없는 감탄이라니!

뭐라고 한 마디 해주려던 딸은 나그네가 입을 엶으로 할 말을 놓쳐버렸다.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

딸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나그네는 (매정하게) 그 입을 다시 다물게 만들었다.

기적은 한 번 시작되면 그 주변으로까지 퍼지게 됩니다. 연쇄(連鎖)처럼 말이죠. 대륙의 끝까지.”

나그네는 고개를 모녀에게로 돌렸고 모녀는 순간 흠칫했다.

그리고 기적은 이곳 벽지에도 미칠 수 있습니다. 기적은 공평하니까요.”

설마!

마침내, 딸은 생각을 굳혔다. 쥐구멍에 볕들 날이 찾아온 것이다.

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시암행어사님?”

아쉽게도아닙니다.”

그 물음에 답하듯 나그네는 삿갓 한쪽을 올려보였다. 삿갓 안쪽으로 웃는 얼굴이 햇빛에 음영을 만들어냈다.

기적을 만드는 사람, 이라고나 할까요?”

 

 

-2.

 

한편, 마을 구석진 곳간에서는 관졸들이 모여 걷어온 세금(?)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두 다 이것 뿐이냐? 돈은 하나도 없고!”

이 잡듯 뒤져봐도 쌀 한 톨 안나오고 있습니다.”

관졸들이 들어온 것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장롱, 돼지, , 농기구, 이불장부를 확인하던 관졸대장은 적으며 스스로 한심함을 느꼈다.

이래서야 떼먹을게 없잖아!”

바야흐로 무법천지. 나라에서 1할 걷어올 세금을, 관아에서는 5할 걷어오게 하고, 그것을 관졸들은 더욱 늘려서 7할이나 걷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백성들에게서 짜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관졸대장은 그래서 더욱 화가 난 것이다.

에이잉-!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여자들을 불러 모아! 사또에게 넘기기 전에 재미라도 봐야쓰겄다!”

!”

관졸대장은 벌써부터 여자들을 희롱할 망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사또에게는 개봉하지 않은 그대로 가져가야 할 필요가 있기에 표가 나는 짓은 할 수 없다. 그런 것을 생각하니 관졸대장은 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왜 이리 굼떠! 뭐하는 거냐! 어서 여자들을 데리고 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남은 관졸들이 나가려고 할 찰나, 다른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찾을 수고 하지 마시죠.”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 관졸대장은 이 상황을 금방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이 음영의 조화를 몸에 지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풀어줘버렸거든요.”

네년이 대신 우리의 노리개가 되겠다는 거냐!”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관졸대장은 멋대로 말을 내뱉었다.

오냐! 내가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널 귀여워해주마! , 각오해야 한다!”

각오해야할건 당신입니다! 윗사람이 바르지 않으면 아랫사람이라도 똑바로 행동해야 할 것을!”

언제부터일까. 관졸대장은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관졸대장에게 검을 겨눈 것이다. 곱상한 얼굴에 차가운 눈은 관졸대장을 다시 화나게 만들었다.

앙칼진 것! 우리가 누구라고 이런 위험한 것을 들어대는거냐! 당장 이 오라질 년을 묶어 탁자에 눕혀라!

굴욕이 뭔지 확실히 몸에 새겨주겠다!”

사또에게 바칠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관졸대장은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여자에게 살기를 느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감히 여자 주제에!

관졸들이 오랏줄과 창을 손에 들고 그 여자(?)에게 달려들 때 그 입술이 다시 열렸다.

이제 와서 말하는데

여자(?)는 품에 숨겼던 검을 관졸대장에게로 찔렀다. 관졸대장의 눈이 경악으로 얼룩졌다.

난 여자가 아니란 말이다!”

이윽고 창고에서는 패대기치는 소리가 바깥까지 울려퍼졌다.

 

 

-3.

 

괴암산성. 칼베린츠 외 다른 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국경방위선으로 한라산맥에서 갈라진 곡두산맥 등성이를 따라 빙 둘러 설치된 요새였지만 지금은 국경이 확장돼 쓰이지 않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 관아가 세워져 있었다. 내려다보면 마을 전경이 보이는 이곳.

괴암 마을은 이 산성 밑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사또는 이곳에서 마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기생의 무릎을 베고 있으면서 말이다.

오늘은 복구네 송아지가 새끼를 낳았대지.”

여기까지 들으면 백성들 생활 곳곳을 알고 배려하는 어진 사또처럼 보이지만,

오늘 밥상은 푸짐하겠지?”

백성들에게 세세하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다름아닌 착출, 그것을 아는 이방은 머리를 조아렸다.

예이~ 곧 도착할 것으로 아뢰옵니다.”

그래그래, 이런 구석에서 뭘 할게 있어야지에잉!”

사또는 이런 벽지에 온게 분통이 터졌는지 옆에 있던 기생을 내쳐버렸다. 기생은 아무 말 못하고 일어나 사또에게서 물러났다. 사또는 곤봉을 잡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 그 능구렁이같은 놈만 아니었어도내가 여기 올 일이 없었는데젠장!”

고정하시옵소서, 나리.”

이방, 자네는 내가 여기에 적당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난 더 넓은 물에서 놀아야 된다고!!”

당장이라도 살림을 부수려는 사또를 보며 이방은 간곡히 말렸다. 사또는 그런 이방까지도 뿌리쳤다. 이방은 늙었는지 몸을 일으키는데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 벗어나야 돼! 그러려면 더욱 많은 재물이 필요해! 어이, 이방!”

예이~?”

젊은 사또에게 내쳐진 것이 분했는지 이방은 다소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당장 광산을 개발해! 금이라도 없으면 은이라도 있겠지!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핑계로 모두 부역에 가담시켜! 이 산 일대를 모조리 파헤치는거다!”

하오나, 사또

시끄럽다! 이방주제에 어디서 토를 다는거냐! 여기서는 내 말이 곧 법이고, 정의다! 너희같은 아랫것들은 그저 내 명에 따르기만 하면 돼!”

그렇다고는 해도 땅거미가 내리려고 하는 시간에 속행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 이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트고 하심이

잔말 말고 해

예이, 사또!”

이방은 사또가 곤봉을 들자 나이도 잊고 허접지겁 달려나갔고 곧이어 삐걱 소리가 들려왔다. 이방은 비명을 질렀고 관졸들은 이방을 부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사또는 혀를 찼다.

에에잉쓸모 없는 것들! 벽촌이라서 죄다 쓰레기들 뿐이야! 젠장!”

벼루가 깨부숴져 먹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그래서 더욱 분이 안풀리던 사또에게 한 관졸이 다가왔다.

사또, 고정하십!”

또 뭐냐! 못하겠다고? 이런 썩을 것들!”

난데없이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관졸은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럼 뭣하러와! 에잉!”

서둘러 도망치던 관졸을 보고 사또는 뭔가를 깜빡했다는걸 떠올렸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저 녀석에게 시켰어야 하는건데!”

 

 

~*

 

한편, 관졸들은 곳간에서 관졸대장을 비롯한 많은 관졸들이 쓰러진 것을 보고 습격자가 나타났다고 규정, 마을 안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나그네의 행동에 애꿎은 백성들만 더욱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진 몰라도 끝내주는데?”

그러게 백년 묵을 뻔한 체증이 싹 날라가는듯하이.”

물론 그런 여론을 관졸들이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

거기 뭐라고 했어!?”

그냥 혼잣말인데유~”

평소라면 그게 비아냥거리는 거인 줄 알텐데, 관졸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보이는 불부터 꺼야했다. 보이지 않으니 찾는 것이고.

윗물이 흐리면 너희라도 잘 해야지!”

!

백성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빌붙어서 떡고물이나 얻으려들고!”

!

나그네는 처음부터 숨을 생각이 없었다. 많은 관졸들을 빈사상태로 만든걸로 미루어, 우락부락하고 무척 덩치 큰 사람으로 관졸들은 생각했겠지만, 정작 그 주인공은 그런 상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가는 팔과 작은 체구의 몸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검등으로 명치를 가격하면 누구나 쓰러지기 마련이다.

역시 벽지 녀석들은 볼 것도 없네.”

나그네는 손을 탁탁 털며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게나 무책임하게 돌아다니는 데도 관졸은 그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대기 전에 나그네가 징벌을 내리기는 했지만.

저기 있다!”

마침내 들킨걸까? 나그네 주위로 관졸들이 한 무더기로 달려왔다. 지금껏 상대한 관졸보다 많은 숫자, 나그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지? 나그네가 생각하는 와중에도 관졸들은 서로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그들 중 관졸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등을 보이고 나그네 앞에 서며 작게 말했다.

이 틈에 도망쳐! 저 녀석들은 내가 막을게.”

? 왜죠.”

누군가에게 보호 받는 것. 나그네로서는 오랜만이었다. 같이 지내는 동료가 있어도, 뭔가 혼자인 느낌이었다. 보호하는 대신 뭔가 대가를 받는 것. 하지만 이 관졸은 그런거에 상관없이 나그네를 지켜주려고 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한밤중에 나돌아다니면 못쓰.”

글쎄 여자가 아니라니까!!”

나그네는 등을 보인 관졸을 쓰러트림과 동시에 주변의 관졸을 모두 싸움불능으로 만들었다.

 

 

-4.

 

, 정말 미안해!”

저야말로다 이 외모 탓이죠, 하하!”

차라리 상투를 틀고 다니는게 어떨까?”

보시죠. 여기 상투가 틀어져 있잖습니까.”

나그네는 삿갓을 올려 머리를 상투를 틀은 부분을 보였고, 관졸은 할 말을 잃었다. 나그네의 머리칼은 상투를 튼 것보다도 땋아올린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여기는 아까 그 관졸의 집. 나그네가 한바탕 관졸들과 싸우고 있을 동안 정신을 차린 관졸이 서둘러 나그네를 데리고 도망쳤다. 실력만 있었지 힘은 없었던 나그네는 그 길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진상이 공개돼버린 것이다. 관졸의 이름은 나약이었다.

주변에는 관졸들이 나그네를 찾는 소리가 빈번했고, 그런 와중에 나약네 집에 들어오게 된 나그네는 심기가 편치 않았다.

대체 왜 절 구하려고 했죠?”

그러나 알고 싶은건 알고 싶었다. 보통 자신을 볼 때 남자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거나, 흘끗거리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는 쪽. 하지만 나약은 그 중 어디에도 해당되는 점이 없었다.

동생이 하나 있었어.”

짧게 운을 뗀 후 나약은 말을 이었다.

지켜주지 못했거든.”

나약은 계속 말을 이었다.

동생이지금쯤 컸으면 딱 당신만한 나이가 됐을 텐데끌려가는걸그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나약이 들려준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쓰라린 기억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애는 피지도 못하고 져버렸지. 사또가 움켜쥐기에는 너무나 약했던거야. 지킬 힘을 갖고 싶었어. 그래서 관졸에 지원했어. 더 이상 지킬게 없다는걸 알면서도.”

정의는 공평해야 합니다.”

그 말을 나그네가 가로막았다.

?”

나그네는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그 사또에게 복수를 하지 못함은, 지금은 다른 사또이기 때문이겠죠.”

나약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괴암 마을 사또는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행동을 망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제2, 3의 당신같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생깁니다. 마음을 모질게 먹으세요.”

물론 좋은 사또도 있지만 탐관오리가 훨씬 더 많았다. 모아놓으면 일개 세력을 구성할 정도로. 나그네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사또를 죽이러 왔습니다.”

, 그럼 설마 의적?”

나약은 놀란 눈으로 나그네를 바라봤다. 나그네는 나약이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사또를 징벌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복수를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관졸의 눈은 나그네의 눈과 마주쳤다.

정의는 공평합니다.”

나그네는 관아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을 마치며 잽싸게 나약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던 나약은 입을 열었다.

모두에게도 공평한건가?”

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아니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거야!”

괴암산성에 위치한 관아. 사또는 밤이 됐는데도 광산 건과 세금이 오지 않자 초조함과 화가 났다. 부임해서 뭐 하나 잡고 제대로 돌아간 것 하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사또가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관아는 발칵 뒤집혔다.

이것들이 다 탕진하고 노는건가! 이방!!”

주위에 사또를 녹일 기생도 없었다. 그렇기에 불호령은 더욱 위험했다. 늙은 나이에도 이방이 서둘러 달려왔다.

예이~ 아직 소식이 없습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냐! 소식 없으면 찾기라도 해야 할 것 아냐! 나라에 바칠 세금이란 말이다!!”

그 절반이 횡령이지만.

졸들을 풀어서 알아보고 있지만쓰러진 관졸들밖에 보지 못했다고 하외다.”

! 상이 우겨질 듯 주먹을 치는 사또를 보고, 이방의 혼은 이미 집으로 가있었다.

이것들 정말로 뭐하는거야!! 봉기라도 일어난게냐?”

사또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행여나 마을 백성들이 난이라도 일으킨다면, 사또는 꼼짝없이 도읍으로 압송된다. 하지만 이는 관졸들로 치안을 강화하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탐관오리들은 봉기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물며 이런 벽지에서야!

, 조금만 더 기다려봅죠, 나리.”

에잉!”

너무 짜증나서 문책할 기운도 없었던 사또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질타를 받을까 염려하던 이방은 속으로 안도를 했다. 광산 건은 전혀 진척조차 안된 것이다. 은이 나왔으면 진즉에 다 파냈게?

사또!!”

그래! 무슨 소식이라도 가져왔나?”

한 백성이 사또를 만나뵙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 한가한 줄 알아? 돌려보내라고 해!”

그게우리가 거둘 세금을 가져와서는.”

사또는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세금수레를 잃어버렸다. 그걸 일개 백성이 갖고 있는건 상식이 되지 않는다. 분명 사기꾼이거나, 그녀석이 난동의 주동자일 것이다. 사또의 밝아진 얼굴은 다시 한 번 어두워졌다. 그리고 분노가 치솟았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무관의 실력을 보여주지. 사실 괴암 사또는 무관시험을 보고 뇌물로 포도대장이나 딸 수 있는 작위를 사또로 높여 받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많은 뇌물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자리였지만.

이게 다 햇굴뚝놈 때문이야!’

사또는 무관들에게나 어울리는 검을 들고 관아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관졸들이 따라 붙었다.

 

 

-5.

 

넌 누구냐.”

사또를 불러주세요. 담판을 짓고 싶습니다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 괴암산성 누각 바깥에서는 나그네와 관졸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그네 뒤로 수레 세 대 정도가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묵직해보였다.

네 이놈-! 사또님을 아무나 만날 수 있는지 아느냐!”

거둬들인 세금이 이 앞에 있는데도 말입니까?”

부드러운 목소리에 관졸들은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공과 사는 철저해야 하는 법. 관졸 하나가 다시 물었다.

네 녀석이 왜 그걸 갖고 있느냐!”

그야 사또를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무엄하다! 여기가 어디라고!”

산성 문을 열고 관졸 네다섯 명이 나와 나그네에게 삼지창을 휘둘렀지만 나그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관졸들이 하나씩 덤벼들었지만 나그네는 간단하게 체술만으로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당신들에게는 못 넘겨줍니다. 사또보고 나오라 하세요.”

나그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걸 깨달은 다른 관졸이 서둘러 관아쪽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사또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누각에 모습을 드러냈다. 뚱뚱한 몸에 인상 사나운 얼굴은 그리 볼만한 장면이 아니었다.

그래, 네놈이 날 보자고 했겠다.”

사또께 꼭 전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성문 아래에는 사또와 나그네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고, 사또 뒤로 아까 나그네에게 당한 관졸 다섯이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성벽 위로는 관졸들이 나그네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나그네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너스레를 떨며 잘도 말을 이어갔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라에서 바칠 세금 및, 사또께 갈 세금만을 여기다 싣느라 너무 힘들었지 뭡니까. 아참, 남은건 모두 곳간에 놔뒀습니다. 내일 백성들에게 찾아가게 하세요.”

사또는 쉽게 도발당했다. 굳이 나그네가 이러지 않아도 이미 도발된 상태나 다름없었지만.

이놈감히 네가 뭔데 감히?”

나그네는 순순히 정체를 밝혔다. 방금까지 고개를 조아리던 태도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개벽당원이다.”

, ?”

사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6.

 

개벽당? 그 도적 단체 말이냐!”

사또는 놀란 나머지 목 쇤 소리로 외쳤다. 개벽당,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는 의미를 담은 단체. 실제로 암행어사에게 호송당한 관리보다, 개벽당에게 제거된 관리가 더 많다는 소문도 있었다. 탐관오리인 사또가 그 위명에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

틀렸다. 도적 단체가 아닌 의적 단체다.”

그게 그거지 뭐냐! 그리고 왜 아까부터 반말을 찍찍 쓰는거냐!”

탐관오리에게 쓸 존칭 따위는 없다.”

거세게 반응하던 사또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기분 나빴다.

뭣들 하느냐! 저 도둑놈을 조지고, 이 땅의 정의를 보여주거라!”

하지만 나서는 관졸 하나 없었다. 일당백을 상대한다는 개벽당의 위명이 벽지에서도 알려진 탓, 사또는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저기에 너희들의 봉급도 들어 있단 말이다!!”

그제야 관졸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의보다 돈에 굴한 것이다. 하지만 그 걸음은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고, 나그네는 이를 십분 이용했다.

3, 회리복토(回利覆土)!”

나그네 주변으로 땅이 뒤집어져 국지적인 소용돌이가 돌았다. 관졸들은 주춤했지만, 곧 자신있게 관졸 하나가 범접하자, 날카로운 흙칼날에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는 무기인 창까지도 놓쳐버렸다. 그를 본 관졸들은 더욱 앞을 나서지 못했다. 돈보다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그를 본 탐관오리는 더욱 화가 났다.

이런 버러지같은 것들, 비켜라! 내가 직접 상대해주마!”

드디어 원흉이 앞으로 나섰다. 디룩디룩 살찐 비대한 뱃살에 사람 키만한 태도(太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또는 생각보다 재빨랐다.

제아무리 네가 희대의 검사라 할지라도 이렇게 가까이 있는 한 나, 사또의 검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희대의 검사가 아닌데……

그건 세요인데. 하지만 대유였으니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사또는 검을 큰 궤적으로 한 번 휘둘러 싸움을 주도했다. 탐관오리였지만 검술은 일개 장수와 다름없는 호기였다. 나그네는 사또의 빈틈을 찾으며 반격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잖아도 오늘 무지하게 열받아있던단 말 이 다!! 기껏 왕도의 신무술을 전해줘도 벽지 놈들은 비리비리하지! 하나 빼고는 아무도 소화 못하지! 모처럼 좋은 돈벌이가 떠올랐는데, 이방놈은 늙끼가 들었는지 비리비리하게 움직이지!”

사또는 이러쿵저러쿵 하면서도 나그네가 반격할 틈도 없이 거세게 몰아붙였다. 나그네는 얼굴을 찡그렸다. 나그네가 배운 검법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나그네의 검은 목도나 다름없었다. 끝이 날카롭기는 했지만 그게 전부.

사또는 탐관오리 주제에 무관 출신이었고, 탐관오리 주제에 무술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악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이대로 거리를 벌려 주술을 쓰려는 순간,

사또는 짧게 검을 움직여 나그네가 거리를 벌리는걸 막았다.

! !

사또는 뒷걸음만 치는 나그네를 보여 기고만장해졌다.

으하핫! 아직 내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네놈이 지금껏 상대한 탐관오리는 나에 비해 종이호랑이였더냐!”

꼭 그렇진 않지만. 벽촌에 이런 녀석이 있다는건 정말로 의외였다.

이번에는 매우 운이 없었구나!! 하필이면 이런 벽지까지 찾아왔는데 예상치 못한 실력자를 만나 죽게되다니! 개벽당도 별게 아니로구나!”

우리 개벽당을, 우습게 보지 마……!!”

사또의 틈은 바로 마음이었다. 기고만장한 마음이 사또에게서 틈을 만들어냈다. 나그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주절주절 떠벌이지만 않았으면 실력자가 맞을 수도 있었을 텐데..”

,

가슴에 치명적 일격을 맞은 사또는 분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나그네는 90개에 이르는 인체 급소를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틈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다.

후후후후후

죽을 때가 다 되니 실성한건가? 하지만 죄는 뉘우치고 죽었으면 하는데.”

우하하하하하!”

사또의 태도가 놀랄만큼 수상했다. 그때였다.

!”

나그네의 가슴이 아파왔다. 이상하다. 사또의 가슴을 찔렀는데, 그 통증이 스스로에게로 돌아온건가? 하지만 놈은 주술을 쓰지 못한다. 하물며 벽촌이니 주술사가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는건

소개하지. 왕도의 무술을 유일하게 득파한 나, 사웅의 수제자이자, 일등 포졸

나그네는 등뒤를 돌아봤다. 과연, 아는 얼굴이었다. 나그네는 배신감을 표정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나약이다.”

사웅이 나그네의 마음에 사형을 선고했다.

 

 

-7.

 

어째서

나그네는 정신이 혼절할거 같은 상황에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상황은 변해, 사또는 관졸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일어났고, 상처 하나조차 없었다. 나그네의 급소를 찌르는 실력이 정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그네는 정교하지 못한 공격을 받고 가슴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그네의 머리 위로는 나약이 있었다. 하지만 배신자의 얼굴이 아니라 침통한 표정이었다.

복수하기 위해

?”

나그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약은 전 사또에게 동생을 잃고, 현 사또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체념한게 아니었던건가? 복수라니?

사또 님은, 여기서 벗어나면 내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그제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체념한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여동생을 지게 만든 관리를 찾아, 직접 복수하려는 것이었다. 탐관오리 사웅은 그런 나약의 마음을 이용한 것이겠지. 복수심은 고통조차 넘어서는 법이다.

나약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러니 난 사또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내 마음이 일그러지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당신을 만나고 그 생각은 확고해졌습니다.”

이런, 나약이 무슨 처지인지도 모르고 조언한게 화근이 돼버렸다.

역시 정의는 공평해야 합니다. 그러니, 내 동생을 죽인 사또도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그래야 공평하니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어떻게보면 나약의 생각은 맞았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이런 물물교환법?은 사라졌다. 왜 그럴까? 폐단이 되었으니까. 연쇄하는 정의가 아니라, 연쇄하는 복수가 될 뿐이다.

그러기 위해, 난 당신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또님의 계획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죽여야 됩니다만, 그렇다면 이긴 사람이 정의가 되겠군요.”

제가 정의가 될 겁니다!”

나약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그네를 공격해 들어왔다. 탐관오리 사웅과 나약은 닮은 점이 많았다. 둘 다 복수심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말이 많다는 것.

나그네는 다쳤다고 믿어지지 않을 속도로 나약을 선공했다. 허를 찔린 나약은 사정거리가 긴 창을 이용해 우위를 점하려 했지만 나그네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2, 토문겁단(土門怯斷)!”

나그네의 주변이 흐려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흙의 속성은 동화다. 나그네는 나약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가까이 접근해 나약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

거기입니까!”

놀랍게도 나약은 나그네의 위치를 간파한 뒤 창을 내찔렀다. 과연, 왕도어기술. 1초만 더 늦었다면 산꼬치가 될 뻔했다. 하지만 나그네는 자신 있었다.

, 말도 안돼.”

창은 사정거리가 길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정거리가 긴만큼 회수하는 시간도 비례한다는 것. 하지만 왕도어기술을 익힌 나약은 그 정도는 빠르게 그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나그네는 바로 그 틈을 노린 것이다. 고작 몇 순 사이를!

이게 고작 당신의 정의입니다.”

과연. 나약은 수긍해버렸다.

,

나약은 나약했다. 정의를 관철시키려면 그만한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 것, 하지만 나약은 산을 넘기도 전에 포기했다. 정의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더냐. 강해야 비로소 정의인 것이다.

에잉, 쓸모도 없는 자식, 활을 쏴라!”

, 쉬쉬쉭!

수많은 날선 화살이 나그네를 노렸고, 나그네는 검으로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검으로 다 막을 수는 없었는지 어깨에 화살을 맞고 말았다. 다리도 표적으로 좋았다. 나그네는 나약을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보기 꼴사나웠다. 여자같은 나그네가 남자인 나약을 지키다니……

나약은 그저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정의를 입에 담는 단체답군! 아주 보기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일그러진 얼굴을 풀지 않았다. 이제 사웅은 누각으로 올라가 있었다. 나그네와 나약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걸 짐작한 것이다. 나약은 믿었던 정의(로 분장한 불의)에게 버림받았다.

사웅 님!”

억울해 하지 마라. 네놈의 복수는 내가 해줄 것이야.”

, 그런

내 계획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 쉬쉬쉭!

사웅의 외침과 함께 화살이 다시금 나그네들에게 쏟아졌다. 궁수들이 사웅의 말을 잘 들어서라기보다는 이제 시위 먹이는걸 마친 것이다.

네놈이 주창하는 정의도 이런 벽지에서 끝이군!”

나그네는 몸에서 화살을 떼어내면서 힘겹게 답했다.

정의는평등하다! 괴암(기괴한 바위)을 편암(반듯한 바위)으로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기적. 기적은 정의와 함께한다.”

사웅은 코웃음을 쳤다.

! 그 정의가 네 명을 오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승자가 정의이고, 기적은 한낱 표상일 뿐! 강자라 할지라도 약자를 감싸는 그 순간부터 약자일 뿐!”

강자가 약자를 감싸지 않는 순간, 이미 정의는 세상에서 사라지니까.”

그렇다면 그 잘난 정의와 함께 죽어라!”

화살이 중력가속도를 타고 나그네에게로 쏟아졌다. 나그네는 나약을 감싸는 자세로 앞을 굳건히 바라보며 화살비를 맞았다. 성한 곳이 있나 살펴봐야할 정도였다.

장렬히 사망하는군.”

역시 당신도 전임 사또가 다를게 없어. 더 이상 내 아픔과 같은 슬픔을 겪게 만들지 않을거야!”

하지만 나약의 분노는 곧 화살세례를 받고 주저앉았다.

이름대로 나약한 녀석, 넌 정의가 될 수 없다.”

깨달았어. 정의는 자기 손으로 스스로 쟁취하는거라는걸, 그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여동생 닮은 나그네여.”

그 말에 나그네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거 같지만, 기분탓일거다.

 

 

-8.

 

그래서, 고작 한 몸으로 저항을 하시겠다?”

스승이었던 자의 얼굴은 기름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니 저건 기름살이 아니라 피살이다. 민초의 피를 말려 혼자 배부른 대가였다.

…… 혼자가 아니오!”

저놈이 드디어 실성을 했구만.”

사웅의 조롱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약은 외쳤다.

내 뒤에 있는 수레가 보이십니까. 여러분들의 가족이 애써 일한 결과입니다. 그런데도 저기 서 있는 원님이란 작자는 그런 산물을 아무 값 없이 챙기고 있습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가 저놈의 노예입니까? 왜 저새끼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합니까? 민중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기뻐하는게 어진 관리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빌어먹을 돼지는 방구석에 틀이박혀 있으면서 살만 꼴불견으로 찌고 있습니다! 저게 옳은 나으리의 규범입니까? 언제까지 종처럼 살아가야 깨달을 겁니까!”

나약은 꺠달았다. 왜 나그네가 힘이 센데도 약자의 편을 든 것일까.. 그 해답은 간단했다. 정의는 자신의 생각을 모두에게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정의는 공평해진다. 나약은 지금까지 복수를 위해 사웅에게 붙어 모두의 정의를 외면한 것이다. 백번 죽어도 마땅할 대죄였다.

저 놈이 스승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만.”

너같은 귀축을 스승으로 모신 한때 내가 원망스럽다.”

이렇게라도 말을 들어줬으니 고마워 해야 할 것이다. 저놈도 화살꼬치로 만들어버렷

하지만 궁수들은 주춤하고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에 힘을 얻은 나약은 더욱 힘 있게 소리쳤다.

이제 꺠달으셨죠? 저기 있는 돼지는 어려분의 상사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가족의 친척까지 몰매질 하며 빼앗고, 못내면 노비로 부리는 잔인한 원수입니다. 그 원수가 눈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저같으면 당장 달려가 죽일 겁…….”

푸하하핫!!”

사웅의 웃음소리가 나약의 말을 막았다. 나약은 당황했다. 저 돼지도 역시 실성을?

바보 같은 것. 이들에게 이미 가족은 없다. 몰랐느냐? 나는 고아들을 직접 모아 훈련시키고, 내 수족으로 삼았다. 그러는 너도 고아이지 않느냐!”

……!”

그랬다. 나약 자신부터가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여동생과 근근하며 지내오다 전 사또가 데려간 이후로 나약은 줄곧 혼자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아. 그렇다는 것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사웅은 미친듯 웃어제꼈다.

알겠느냐? 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미련은 없다. 오직 나에 대한 충성만 있을 뿐. 네놈에게는 불행이도 난 수족을 버려두지 않는다. 배블리 먹이며 안락하게 만들어주지. 네놈도 어제까지 그리 살지 않았더냐?”

!”

탐관오리 짓도 하려면, 여기를 써야지.”

사웅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산성 밖에 나가사는건 여동생을 잊지 못한 나약 혼자 뿐이었다. 당한 것이다. 이제 끝이다.

나그네님, 역시 저는 나약했나 봐요…….”

화살촉이 일제히 나약에게로 향했다. 나약은 비록 실패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이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여동생과 살고 나서 오랜만에 겪는 감정이었다.

…….”

나약은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이었다. 나그네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당신…… 은 용감…… 했어요. 이제…… 제가…… 나설…… 차례…….”

질긴 것, 아직도 죽지 않았더냐.”

사웅은 잠시 경악했지만, 다시 악당처럼 웃었다.

같이 사이좋게 날려버려라!”

화살비가 일제히 쏟아졌다. 나그네는 힘든 와중에도 나약을 감싸 안았다. 덕분에 궁수들의 조준은 더욱 손쉬워졌다.

뭣들하느냐, 가서 수레를 끌고오니라.”

이제야 적을 모두 처치한 마음에 기분이 홀가분해진 사웅은 성문을 열어 수레를 끌고오게 했다. 하지만 관졸들이 나그네를 지나칠 때, 죽은 줄 알았던 나그네가 두 팔을 벌려 길을 막고 섰다.

그렇게…… 둘 수…… 없다.”

나그네의 아름다운 얼굴은 보기 흉했다. 당연히 가슴을 펴고 화살을 맞았으니 그럴 수밖에. 입을 열 때마다 화살촉이 입속을 뚫고 들어와 말하기 불편해보였다. 사웅은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기운을 되찾았다.

질기고로. , 잘 됐다. 창으로 저 죄인의 몸을 산산조각 찢어버려!”

하지만 다음 순간 상황은 반전 됐다.

5, 토양동유(土陽動愈)!”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나그네의 몸에 다닥다닥 붙은 화살이 절로 떨어져나간 것이다. 오직 옷만이 나그네가 직전에 어떤 상태에 처했는지를 말없이 전할 뿐이다.

한낱 주술놀음 따위에 속지 마라. 쳐라!!”

사웅의 판단은 정확했다. 아무리 주술이라도 괄목할 치유를 낼 수 있는건 없다. 단지, 눈속임을 보인다면 모를까. 하지만 알지 못했다.

나그네가 쓴건 주술이 아니었다.

……? 아앗?”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자 사웅은 수하를 시켜 성문을 걸어잠갔다. 역시 훌륭한 탐관오리다운 대처방법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 이제 어떻게 할거지? 나는 아직도 우위에 있고, 네놈은 여전히 열세다.”

그럴까?”

나그네는 검을 쥐며 웃었다.

네 목을 따는데는 몇 순이면 돼.”

 

 

-9.

 

나그네는 나약의 몸을 수레 곁으로 옮겨놨다. 사웅에게는 아직도 궁수가 남아 있었지만, 아까 일을 통해 헛수고라는걸 알고는 가만히 내버려뒀다.

치료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그네는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나그네는 만족했다.

8! 토란승룡(土瀾陞龍)!”

나그네의 행동은 재빨랐다. 나그네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땅이 물결쳤다. 성안의 관졸들은 땅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삼지창과 오랏줄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여파가 누각까지는 오지 않음을 안도한 사웅은 곧. 더욱 놀라야했다. 나그네 뒤로 땅이 솟아오르더니 기다랗게 하늘 끝까지 솟아올랐기 때문에.

용이었다. 태양을 등지고 황금으로 빛나는 용.

괴암 사또 가람주리 사웅은 들으라!”

허억-!”

머리를 위로 들어서야 사또는 나그네가 어딨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외모에 갈색 머리칼을 위로 땋아올린 얼굴은 남자라고 보기에는 곱상했지만, 지금 눈동자에 비친 결의는 남자보다도 강했다. 나그네는 황혼을 등지고 용머리 위에 서있었다.

네놈의 파렴치한 행각은 익히 둘러보고 알았다. 이제 그 죄값을 받으라!”

사웅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퍼런 눈을 뜨고 노려보는데 달리 대처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연오가 탐관오리를 심판한다!”

나그네의 이름은 연오였다. 하늬바람 연오. 하지만 명성은 그렇게 높지 않아, 사웅이 고개를 갸웃함도 이해가 갔다.

먼저, 탐관오리인 죄!”

크헉!”

용의 가속도에 더해진 연오의 주먹을 맞은 사웅은 누각으로 나동그라졌다. 주변 관졸들은 경악했지만 아무도 연오를 공격하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개벽당을 욕한 죄!”

푸헉!”

사웅은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그 피는 수많은 민중들의 고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오가 다시금 떨어지자 사웅은 겁이 났다. 뒷걸음치다가 발을 헛디딘 나머지 누각에서 떨어졌다. 성문을 지키던 관졸들은 사또였던 고깃덩이가 떨어지면서 피를 흩뿌리자 뒤로 피했다.

마지막은 스스로가 선택한건가.”

연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누각에 내리고는 용을 사라지게 했다. 그래도 연오를 공격하려는 관졸은 없었다. 탐관오리는 다 그렇다. 그런 사또에게 충성을 품는 관졸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아우, 더러워…….”

눈살을 찌푸리면서 연오는 사웅의 손목을 끄집어냈다. 그러더니 품에서 종이를 꺼내고는 사웅의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곧바로 잡고 있던 손목을 버리고 붓으로 뭔가 쓰기 시작했다.

괴암 사또, 호숫가빈터 사웅. 처치. 이걸로 7명인가…….”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손이 잡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나 사웅의 손이었다. 사웅이 아직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중상만 당한 것이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않았지……?”

무지막지한 연오의 힘을 보고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처음부터 실랑이 버리지 않고 누각 위로 올라와 사또를 죽이면 돼지 않겠냐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상대의 무력에는 그에 비례한 무력으로 맞설 뿐이다.”

왕도의 누구누구랑 같은 말을 하는군.”

, 정말 의적 단체답군. 역겨워. 사웅은 이 말을 끝으로 고개가 떨어졌다.

,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한다~?”

당연히 관졸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미 그 위용을 봤으므로 가까이서도 죽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잘못한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다 먹고살고자 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 그게 심한건줄 몰랐습니다. , 저희는 상관의 명을 따, 따랐을 뿐입니다.”

겁에 질린 모습을 보니 정말로 모르는 듯 했다. 이참에 원님백서로 뿌리고 다닐까 생각이 들었다.

제 임무는 사또만 죽이는 겁니다.”

나그네는 남자라도 반할 미소로 산뜻하게 웃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세요.”

 

 

-10.

 

어느덧 해가 지고 괴암 마을에도 밤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밤은 해가 내리쬐는 어떤 때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밥 짓는 구수한 냄새

괴암 마을은 오랜만에 평온을 되찾았다. 그것을 보니 연오도 마음이 흐뭇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으려나. 자신이 구제한 마을을 등 뒤로 하고 길을 나서려는 순간,

연오 님!!”

연오와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체구는 연오보다 머리 두개가 더 컸고, 새우같이 축 처진 눈에, 주름살과 수염이 군데군데 자라있어 입고 있는 누더기 외투와 더불어 너저분해보였다. 그러나 얼굴 자체에 담긴 온화한 할아버지같은 인상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

남자는 지금 화가 나있었다.

도대체 어디 가신겁니까!”

? 쉽게 끝날 것 같기에 다른 마을을 둘러보던 중이었는데.”

사실 연오는 괴암 마을에서 떨어진 식읍 마을의 탐관오리를 제거하라는 명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 남자는 그 안내인이고. 연오 직속 안내인.

, 경비도 허술하고 부하들도 사또를 싫어했기에 쉽게 끝났습죠.”

역시! 그래야 천하의 연오의 대리자라 할 수 있죠.”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연오의 대답에 남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농담하는게 아닙니다! 연오 씨는 쉬운 일도 일반인인 저로서는 힘겹습니다! 더구나 이런 늙은 몸에……

남자의 한탄 섞인 잔소리를 연오가 무시하자, 투정이었다는 듯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저 마을은 아직 대상이 아닌데, 왜 가신겁니까.”

정의는 공평해야 하니까요.”

연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연오는 식읍에서 괴암 마을 이야기를 듣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나이에 맞게 열혈이랄까나외모는 그것과는 거리가 먼데. 연오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남자는 피식 웃으며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저 사내는 도대체 누굽니까.”

?”

연오가 뒤를 돌아보니 봇짐을 장대에 매단 나약이 서있었다. 화살에 맞은 자국이 성한데도 정신을 차린게 몸은 나약하지 않나보다. 연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가는 마을마다 이런 사람이 안보이지 않는거지.

왜 오셨습니까?”

저를거둬주십시오!”

돌아가세요.”

이제 깨달았습니다. 비슷한 처지를 겪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모진 결단입니까.”

나약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 녀석 안되겠군.

연오는 나약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고로 못생긴 얼굴보다 아름다운 얼굴이 무서울 때는 더 무섭게 느껴지는 법.

당신은 정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없앨 수 있습니까?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한없이 악해질 수 있습니까?”

, 그거야 당신이 결단케 해줬으니까

설령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등을 돌린다 하더라도 그 의를 관철할 수 있겠습니까!?”

걷는 길에 피와 시체가 강과 산을 이룰지라도 꼿꼿하게. 그것도 흐트러짐이 없이. 나약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우리를 도와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요.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주시면 됩니다. 굳이 이런 길을 걸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보통은 여기까지 하면 떨어져나간다. 하지만 나약은 면죄부를 받고 싶은게 아니었다. 조금이지만 결단했다. 비록 나약한 결단이지만 굽힐 생각은 없었다.

지킬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야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 연오는 제아무리 구슬려도 나약의 눈동자만큼은 꺼버릴 수 없었다.

각오는 남이 해주는게 아니에요. 스스로가 하는 겁니다. 어둠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 한 정의를 받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남기고 연오는 뒤로 돌았다. 나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이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뿐. 같이 가던 남자는 불만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쓸데없는 말을 하셨습니다.”

단지옛 생각이 났을 뿐이야.”

동병상련을 느꼈다 이겁니까.”

연오는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자도 대답을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가자. 흙바람이 몰아치게 하려면 더 바빠져야 해.”

분부대로 합죠.”

그들은 다음 의뢰를 받기 위해 영매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읽고 덧글다시는 분 용자

?
  • profile
    윤주[尹主] 2012.06.25 16:53
    홍길동같은 의적이 모티프라고 하셨는데, 가만 보면 전우치와도 닮아 보이고, 최근 걸로는 만화 신암행어사와도 비슷한 분위기네요. 물론 대략적인 분위기가 그렇단 거고 실제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목표하는 바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지만요.
    잘 봤습니다. 장편의 첫 시작으로 적절하네요. 호기심도 유발하고, 주인공의 성향도 엿보이고요 ㅎ
  • profile
    ㄴㅏㄹㅏㅣ 2012.06.25 20:38
    신암행어사와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웹툰으로 선보이려고 했는데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아 소설로 먼저 써봅니다;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다면 한편 더 올려보도록 할게요(역겁정략 못 올리는 날)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4400 힙합 노래 1 file 강민찬 2010.04.25 459 1
4399 힘을 갖고 싶다 사브낵 2011.06.20 775 0
4398 노래방 히트가이J 2기엔딩 - ひかり [크으ㄱ.. 쪽팔려라... ////] file 베넘 2007.11.13 1175 5
4397 히키코모리 2 평운 2009.11.15 515 2
4396 히드라 3 크리켓≪GURY≫ 2009.08.18 644 3
4395 노래방 흰목걸이 - 슬램업 파티 아라드 전기 1기 Ending 11 file 흰목걸이 2010.02.12 1458 6
4394 노래방 흰목걸이 - 감기송 리메이크 16 file 흰목걸이 2010.05.15 1290 2
4393 노래방 희재part2 2 file 샤이, 2010.04.14 1131 1
4392 희생양 1 Invictus 2009.08.01 657 2
4391 희귀동물 추적관리국-그것은 분화구 너머에서 왔다 3 욀슨 2012.12.08 418 3
4390 희귀동물 추적관리국 그 2-살아있는 호수의 공포 2 2012.01.05 728 1
4389 희귀동물 추적관리국 그 1-만드라고라의 비명소리를 따라서 2 2011.02.08 781 2
4388 흡혈소녀의 꿈 비올레쿤 2015.09.06 104 0
4387 흡혈귀 1 크리켓≪GURY≫ 2009.04.22 831 2
» 흙바람이 몰이칠 때-정의는 공평하다 2 ㄴㅏㄹㅏㅣ 2012.06.24 451 2
4385 흙바람이 몰아칠 때-intro 3 file ㄴㅏㄹㅏㅣ 2012.06.24 474 2
4384 흔들리 눈에 乾天HaNeuL 2009.12.19 716 1
4383 흑백의 거울-레이 편 <1화-1> 뢰진격 2009.01.22 1245 1
4382 흐르는 언어의 바다 #9~10 1 Yes-Man 2011.02.01 621 1
4381 흐르는 언어의 바다 #6~8 5 Yes-Man 2011.01.14 552 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0 Next
/ 220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