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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동물 추적관리국 2

-살아있는 호수의 공포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등은 전부 픽션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비하할 의도가 절대 없음을 알립니다.

*검색해서 전편을 봐도 그리 이해가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등장인물 소개

 

김병장-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군바리. 누가 봐도 군바리라고 말할 법한 외모를 지녔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병장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스펙타클한 일은 다 겪고 있다.

안박사-성격 더러운 마법사. 의외로 유능한 희귀동물 연구자라는 것 같다.

존슨- 30세.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가 태어난 동네를 떠난 적이 없다. 

 

#1

 

"이봐 존슨. 저 분지 말야. 어제까지만 해도 그냥 풀밭 아니었어?  모처럼 좋은 날씨라 친구 존슨과 함께 트래킹을 나온 데이브(45, 남, 레드넥)는 정상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나무 몇 그루 제멋대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을 분지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호수는 기묘하게도 불어오는 바람에도 파문 하나 생기지 않고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 참 신기하군." 존슨은 '호수'로 다가갔다. 그는 올라올 때 다 마셔버린 물통을 채울 생각이었다. 마침내 존슨이 호숫가에 도착해서 물통의 뚜껑을 열었을 때, 그는 이내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호수의 밑바닥에 자라던 풀과 나무가 마치 뭔가 대단히 무거운 것에 눌린 것처럼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호수가 갑자기 끓어오르며 존슨을 삼켜버렸다.

 

"존슨!" 데이브가 외쳤다. 그는 호수가 집어 삼켜버린 친구를 구하기 위해 분지의 경사를 타고 내려갔다. "오지 마, 데이브! 이건..." 존슨은 거대한 접착제 통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아무리 데이브가 존슨의 손을 붙잡고 빼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호수 자체가 존슨을 잡아채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데이브가 앞으로 넘어져 버리자, 호수가 다시 끓어올랐다. 호수의 표면이 크게 요동쳤다. 두 사람의 비명소리와 단말마가 멎자, 호수 역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잠해졌다.

 

#2

 

언제나 비좁아 터진 추적관리국 사무실. 날은 이미 겨울에 가까워져서, 김병장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고 눈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세계 최악의 가십 신문 '구라 타임즈'를 보고 있는 가운 입은 밥벌레에게 커피를 타서 갖다주고 있었다. "뉴잉글랜드에서 투명한 괴물에게 짓밟혀 집 여러 채가 붕괴, 현재까지 10명이 사망. 국회의원은 정말로 초능력자였다. ...무슨 이딴 찌라시를 보고 있습니까?" 안박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회전력을 그대로 실어 김병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야!" "넌 어쩜 단세포 아니랄까봐 반응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원패턴이냐? 지겹지도 않냐?" 안박사는 회전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네가 저명한 신문사 편집장이라면 '엘비스 프레슬리는 외계인이고 그의 고향 별로 돌아갔다. 사실 죽지 않았다.'란 기사가 사실인데도 실을 수 있겠냐?" "아님다...잠깐! 무슨 개소리야! 이상한 데로 화제 돌리지 말라고!"


안 박사는 김병장의 싸대기를 후려갈기며 정색했다. "개소리 아니거든? 유감스럽게도 엘비스는 외계인이 맞아." 방금 싸대기를 얻어맞은 것과 별개로 김병장은 할 말을 잃었다. 원래 제정신이 아닌 병신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뭐야. 그렇게 쳐다봐도 비누는 안 주워줘." "됐슴다. 할 말씀 계속 하십쇼." "아무튼 오히려 이런 찌라시우리가 찾을 법한 정보가 그득한 법이지." 참다 못한 김병장은 안박사에게 신문을 뺏어 아무 면이나 편 다음 되는 대로 한 곳을 가리켰다. " '미 중남부에서 등산객 연속으로 실종... 요정의 짓인가?' 예를 들면 이런거 말씀이심까? 세상에 요정 같은 건 없슴다." 안박사는 뭔가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김병장은 0.1초 동안 자신이 너무 심한 말을 한 건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요정은 있어." 안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 건 말인데..." 이번 건? 김병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건 요정의 짓이 아닌 게 확실해." 안박사는 바깥으로 나가더니 악취가 진동하는 연못 물을 떠 온 후 현미경을 꺼냈다. 박사는 연못 물을 슬라이드에 바르고 커버글라스를 씌우더니 다짜고짜 김병장에게 그걸 들여다 보라고 시켰다.

"뭐가 보이나?" 안박사가 옆에 바짝 붙어서 말했다. "아 비키십쇼 좀. 빛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보임다." 안 박사는 김병장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보이냐?" "별이 보임다... 아니 잠시 기다리십쇼. 종 모양, 벼룩, 꾸물꾸물 기어다니면서 주위 놈들 잡아먹는 덩어리가 보임다." "그래. 마지막에 말한 놈은 '아메바'라고 하지. 넌 판타지소설 덕후니까 슬라임이라는 생물도 알고 있겠지?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거대한 아메바의 일종이야." 안박사는 뒤쪽으로 잠시 사라졌다가, 창고에서 보통 거북이 따위를 넣어놓는 작은 플라스틱 수조를 꺼내왔다. 그 안에는 색도 모양도 거대한 코딱지를 연상시키는 뭔가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김병장이 역겨움과 신기함이 반쯤 섞인 손길로 수조 벽을 두드리자, 코딱지는 김병장이 두드린 부분에 착 달라붙어 싸구려 에로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쭉쭉 빠는 참 저질스러운 소리를 냈다.

"정말 멍청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생물이지. 저렇게-" 안 박사는 거북이 수조 윗부분의 구멍이 숭숭 뚫린 뚜껑 부분을 두드렸다. 놈은 거기 달라붙기는 했지만 틈새로 몸을 쥐어짜내 빠져나올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빠져나올 곳이 많은데도 전혀 못 나오고 있어. 하지만 네가 봤던 것처럼 움직임, 진동-물론 음파를 포함해서-에 매우 민감하고 전신이 사실상 근육섬유와 소화기관이 뒤섞인 형태라 만일 빠져나오기라도 한다면 아마..." 뒷부분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김병장이었지만 그에게는 선택할 권리 자체가 없었다. 귀를 막았지만 망할 박사는 그의 귀에 직접 대고 소리쳤고, 김병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상상해버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갈 뻔했다. "정기적으로 단백질을 먹이지 않으면 쪼그라들다가 결국 시커멓게 썩어버려. 먹이 주는 것도 참 일이지. 어때, 한번 해볼래?" 김병장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밥 주는 건 용팔이(1개월, 만드라고라)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 코딱... 아니 슬라임과 호수의 사건이 뭔가 관련이라도 있는 겁니까?" 김병장이 물어보자 안 박사는 책상 위의 난장판에서 담뱃진과 커피 얼룩으로 더럽혀진 공문 하나를 그에게 던져줬다. 김병장은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위에서 또 조사하래. 아무튼 1주일 정도 생각해 본 바로는 확실히 그래." 조사=출장=개고생의 공식이 유전자까지 각인된 김병장은 표정이 썩어버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너 임마, 표정 안 펴? 죽을래?" 김병장은 1시간동안 갈굼을 받았고, 결국 안박사가 뭘 생각하는지는 듣지도 못했다. 그 후 김병장은 1주일 동안 출국과 기타등등에 필요한 서류 한 뭉터기를 끊으러 다니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3

 

"하아..." 김병장은 안박사가 '꼭 필요하니까 네가 다 들고 가라'고 이야기한 배낭을 메고 힘겹게 산등성이를 타고 있었다. 원래 이런 일은 빌리 전문이었지만, 유감스럽게 빌리는 몇일 전 '고향에 갔다오겠다'면서 휴가를 가고 없었다. 보직 특성상 꽤나 자주 외국에 가기는 하지만 대부분 김병장이 안박사나 빌리 이외의 사람을 보거나 번화한 시가지에 들러보는 건 공항에 도착한 후 목적지까지 이동할 때까지 아주 잠깐뿐이었다. 김병장이 오르고 있는 곳은 콜로라도의 로키 산맥 어딘가였는데, 이번에는 공항도 공항 주변도 그냥 깡촌이라 그를 더 좌절하게 했다.


"잠시 쉬어가자고. 숨도 돌릴 겸." 거의 1시간 만의 휴식이었다. 앞서 가던 안박사가 잠시 쉬어가자며 평평한 돌 위에 앉자 김병장도 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았다. 행여 먹을 것이라도 들어 있을까봐 헛된 희망을 품고 가방을 열어본 김병장이었지만, 이내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군인의 체신을 지키란 말야, 이 말년병장아!" 안박사가 말했지만, 김병장은 듣는둥 마는둥이었다. 안은 알 수 없는 물질이 가득한 페트병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하나같이 유독해 보이는 색을 하고 있어 감히 마시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했다. 휴식은 언제나 그렇듯이, 3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좋건 싫건 간에 한참을 올라가던 중, 김병장은 풀이 우거진 경사를 따라 물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봤다. 보통 물이 흐른다면 땅으로 스며들었겠지만, 이 물은 기묘하게도 풀을 짓누르며 무슨 물엿처럼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병장은 신기한 마음에 그걸 손가락으로 건드려 봤는데 젤리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안 박사가 그쪽을 급히 돌아보더니 호통을 쳤다.

"미쳤어! 지금 와서 의병제대하고 싶은 거 아니라면 당장 관두고 피해!" 김병장은 영문도 모르고 안박사 쪽으로 피했고, 방금까지 손이 있던 자리로 '물'이 마치 두꺼운 촉수처럼 변하며 튀어올랐다. 

"이...이게 뭐야!" 김병장은 물이 흘러온 곳을 봤다. 거대한 언덕이었는데, 위는 지도에 따르면 무슨 분지인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커졌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박사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아까 김병장의 손을 잡아채려고 한 촉수는 다시 물줄기가 되어 천천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물줄기는 뭔가에 닿으면 촉수가 되어 그걸 잡아채서 치워버리고는 했는데, 아름드리 나무도 수수깡처럼 뚝뚝 부러뜨리고 빨아들여 으깨버리고 있었다. 김병장은 순간 불알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만일 손을 빼는 게 조금이라도 더 늦었으면 아마 어깨에는 밑둥치밖에 붙어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괜히 발걸음을 서둘러, 이미 분지 위로 가버려 보이지 않는 안박사를 따라갔다.

 

#4

 

분지에 도착한 김병장은 '바닥에 풀이 깔려 있는' 거대한 호수를 목격하고 탄성을 질렀다. "이야! 안박사님 저것 좀 보십쇼!" 하지만 안박사는 그를 째려봤다. "이 잡놈아, 한번만 더 쓸데없는 짓을 하면 휴가 짤라버릴 거야." 오늘따라 안박사는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일단 가방에서 가져온 거 다 꺼내봐. 빨리!" 김병장은 가방을 거꾸로 뒤집었고, 물통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공문 읽어봤었지? 우리 임무는 실종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근절하는 거지. 젠장, 정규군을 투입해도 모자랄 판에 꼴랑 우리 두 명만 보내다니. 자원봉사자가 따로 없다니까." 안박사가 계속 궁시렁거렸다. 김병장은 호수 밑바닥을 더 자세히 보다가 하마터면 휴가를 짤릴 뻔했다. 여러 구의 시체가 고통스러운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며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역겹게도 각각의 시체는 매우 천천히 녹아들어가 해체되는 중이었다. 대부분 무지막지한 힘으로 잡아뜯은 것처럼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시체 중 일부는 이미 살이 다 녹아 뼈만 남아 있었다. 그들의 눈구멍과 턱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당장 돌아가. 그러지 않는다면 너도 여기서 우리랑 같이 목욕이나 하게 되겠지.'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치는 바람에 김병장은 숨을 죽인 비명소리를 냈다. 물론 안박사였다. "봤냐?" "저... 저건 대체 뭡니까?" 

"저번에 보여준 그거. 사이즈가 엄청 크고, 교활하고, 귀가 먹었고, 소화불량에 걸렸다는 것만 제외하면." 김병장은 경악했다. 뭐? 분지를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생물이라고?

"마음 같아서는 샘플이라도 채취해 갔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너무 위험하니까. 김병장? 물통을 호수에다 던져." 김병장은 시키는 대로 했다. 물통은 호수에 떨어지자 일시적으로 '물'위를 튕겨오르는 것 같다가 곧 튀어나온 투명하고 거대한 촉수들에 쥐어짜여 내용물을 사방에 흩뿌리며 터져버렸다. 그리고 물통 안의 액체가 닿자마자 호수는 격렬하게 요동쳤다. "뭘 한 겁니까?" 김병장은 물통을 하나 더 주우며 말했다. "일종의 화학약품 칵테일이지." 안박사도 물통을 들었다. "세포막의 합성과 ATP 대사를 교란시키거나, 아예 억제... 말해도 모르겠지?" 또 물통이 날아갔고,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심까." "아무튼 즉효성 독약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치사량을 투여하면 놈을 시커멓게 썩은 덩어리로 만들어 줄 수 있거든. 자, 신나게 던..." 안박사는 뒤에서 날아온 뭔가에 맞아 앞으로 굴렀다. 촉수였다. 그걸 신호로 호수에서 수많은 촉수가 뻗어 나왔다.

"김병장, 시간이 없으니까 그 물통들 전부 발로 차서 보내버려!" 촉수 서너개가 안박사의 사지를 꽉 붙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하지만 김병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잡아당기는 힘이 너무 강해 몸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호수는 한 입에 넣기 좋은 먹이를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5

 

김병장은 전신이 찢어져 나가는 고통 속에 이등병 시절에 갈굼당하던 기억, 집에 두고온 야동, 그리고 세달 후의 말년후가가 차례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저 멀리서 엄청나게 큰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죽기 직전의 환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뺨과 목에 풀도 마구 튀는 것 같았다. 하하. 지옥에서도 풀을 깎아야 하는 모양이구나. 역시 어딜 가도 사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죽어가던 김병장은 갑자기 땅에 떨어졌다. 눈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자, 전투헬기 하나가 저만치에 떠 있었고, 익숙한 얼굴이 하나 등산복을 입고 초연이 피어오르는 기관포좌에 앉아 있었다."빌리? 빌리가 왜 여기 있지?" 김병장이 혼잣말을 했고, 마찬가지로 촉수에서 풀려나 바닥에 나뒹굴던 안박사가 중얼거렸다. "놈의 취미가 등산이라 살았군..." 보통 등산할 때 헬리콥터를 몰고 다니게 되어 있나? 아무튼 김병장의 팔다리를 잡고 있던 촉수는 끊어져 징그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미사일과 기관포탄이 마구 쏟아졌고, 폭발과 파편이 마구 튀었다. 이러다가 졸지에 파편에 맞아 죽게 생긴 김병장이었지만 역시 빌리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호수는 오징어 타는 악취를 풍기며 요동치더니, 빠른 속도로 몸 전체를 이용해 산등성이를 타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휴가 한철동안 완전히 망가져버린 좌변기처럼 호수가 역류하는 것처럼 보였을 터였다. 


"빌리! 저 놈이 밑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둬서는 안돼! 밑은 수천명이 살고 있는 마을이야!"

안박사가 외쳤고, 김병장은 쏟아지는 유탄과 파편을 피하며 손에 잡히는 대로 페트병을 집어 호수에게 던졌다. 하지만 호수는 페트병을 그냥 몸 안에다가 잡아둬 버렸다. 시체들의 얼굴이 멍청한 놈이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마침내 호수가 분지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치명적인 홍수가 되어 쏟아져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헬기는 끈질기게 놈을 공격했지만 호수를 완전히 죽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수의 꽁무니에는 과일 젤리 밑바닥에 깔린 통조림 과일마냥 김병장이 던진 페트병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김병장의 시커먼 얼굴이 놀랍게도 하얗게 변했다. 그는 호수가 밑으로 흘러 내려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당할 일보다는 자기가 받을 징계에 더욱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마 구속은 확정이겠지. 좌절하던 김병장은 문득 아까 호수가 '칵테일'이 닿기만 해도 요동치던 것이 생각났고, 동시에 미사일이 맞은 부분에 있던 시체들이 폭발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잘게 다져지는 것도 봤다.

 

"놈의 후미를 노리란 말야! 미사일로! 당장!"

김병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과 로터의 소음이 뒤섞여 빌리는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안박사가 한심하다는 듯 김병장을 쳐다보더니 핸드폰-저번의 그 선사시대 유물-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고, 안박사가 영어로 몇마디 씨부리자 즉시 미사일이 날아가 호수의 후미를 강타했다. 페트병은 전부 터져버렸고 안의 액체 전부가 호수의 몸 안으로 빠르게 스며 들어갔다. 호수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요동쳤고 전신에 흉측한 구멍이 숭숭 뚫려 거기로 끈적끈적한 체액을 마구 쏟아냈다. 콧물 같은 성상의 액체는 코를 찌르는 악취를 내며 서서히 증발했다. 호수는 10분여간을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미끈미끈한 거죽과 먹었던 것들의 잔해만을 남기고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김병장은 "...같은 영어..." 라고 중얼거리다가 안박사에게 걷어차여 뒹굴었고, 뒹굴던 중 바로 옆에 반쯤 소화된 시체가 누워있는 걸 보고 옆에다 토해버렸다. 안박사는 벌써 죽은 놈의 거죽을 잘라내서 조심스럽게 보존액 통에다가 넣고 있었다. 헬리콥터가 분지에 착륙했고, 빌리가 거기서 내렸다. 헬기의 다른 승조원들이 빌리에게 경례를 붙였고, 빌리 역시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수례했다. 

 

#6

 

여전히 좁아터진 추적관리국 사무실. 빌리는 여전히 휴가중이었고 평소에 비어 있던 국장석에는 아마 독자 여러분은 처음 볼 중년여성-즉,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크고 두꺼운 선글라스를 쓴 데다가 사무실의 침침한 조명 탓에 얼굴에 그림자가 져서 나이를 제외하고는 전혀 얼굴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안박사. 언제 와도 이 방은 냄새나고 지저분하구만." 아줌마가 말했다. 그렇게 말한 주제에 국장은 종이컵에 물휴지를 쑤셔넣어 재떨이 삼아 시가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마치 어제 태워먹은 아침식사같은 향기가 났는데, 가뜩이나 환기가 안 되는 조건-창문이 죄다 막혀 있어서-이라 안의 공기는 거의 독가스실에 필적할 정도였다. 구석에서 졸고 있던 김병장은 졸다 말고 산소부족으로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고 있었다. 참다 못한 안박사가 문을 열었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바람에 다시 닫아버렸다. 사무실 안에는 아까부터 빗방울이 천장(싸구려 슬레이트)을 때리며 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충분한 시간과 예산만 주시면 저희 병사에게-" 김병장은 갑자기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날 불렀나?' "-청소라도 하라고 시키겠습니다. 빗자루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서 말이죠." 안박사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그의 등허리는 원리 그랬던 것보다 더 굽어 펴질 줄을 몰랐다. 

"아무튼, 안박사. 이번에 처리한... 뭐라고?" 안박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긴 라틴어를 말한 뒤 "... 입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러더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 뭔가 꽂히는 소리와 함께 안박사의 가슴에 시가 자르는 나이프가 돋아났다. "쌍놈아! 알아듣게 이야기하라고!" 국장이 옆에 놓여 있던 시가 자르는 나이프를 던졌던 것이었다. 김병장은 그 광경을 보고 순간 "살인이야!"라고 외칠 뻔했지만 다행히 안박사는 앞주머니에 수첩을 넣어두고 있어서 무사했다. "속칭 '살아있는 호수'입니다, 국장님." 여전히 나이프를 대롱대롱 달고 있는 안박사가 말했다. 국장은 다 피운 시가를 아쉽다는 듯 질겅질겅 씹다가 종이컵 안에다가 넣었다. "그랏체. 그러면 되잖아. 왜 쉬운 우리말 두고 외국어로 떠들고 있나?" 김병장은 안박사의 표정이 0.1초 정도 썩는 걸 봤다. 


"그 건 덕분에 고맙다고 표창장이 왔더군. 쟤 휴가나 보내줘. 어차피 나도 너도 진급이고 뭐고 다 글렀잖아? 이런 부서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말야." 김병장은 속으로 쾌재를 했다. "에이, 말년병장인데 휴가 보내줘서 뭐합니까." 이어진 안박사의 개소리에 김병장은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만, 국장이 '그런 식으로 하면 이번에는 네 넓은 마빡 한복판에다가 시가 나이프를 꽂아주겠어' 로 풀이되는 표정과 몸짓을 해 보였고 안박사가 굽실대는 걸 보고 안도했다. 


"아무튼 나 간다. 오늘은 다 접고 퇴근해." 국장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우산을 집어들고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국장이 우산을 펴기가 무섭게 뒤집어졌다. "...발..." 바닥에 흥건한 물자국을 남기고 문이 쾅 닫혔다. "흥, 국장은 가라고 했지만-" 안 박사의 허리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펴졌다. 그래봐야 지독한 새우등이라 별 차이는 없었지만, "-노는 자유에 모뮈아냐. 요태까지 구래와꼬 아패로도 깨속." 안박사는 김병장에게 엄청난 달필로 가득 채운 노트 몇 권을 던져줬다. "오늘 이거 다 치면 퇴근시켜 줄게. 그럼 나도 간다? 내일 아침에 왔는데 안 끝나 있으면 휴가 짤라버릴 줄 알아." 안박사도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지만 진짜 뼈와 가죽밖에 없는데다가 바람이 너무 심해 쓸려가 버렸고,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긴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병장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3층 높이에서 떨어진 안박사는 놀랍게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4주 정도 입원해 있었고, 그 동안 김병장은 무사히 휴가를 갔다 왔다.

 

-CASE 2,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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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2.01.06 08:40

    김병장 위에 안박사, 안박사 위에 국장...;;

    과연 김병장은 무사히 제대라도 할 수 있을까요?

    (아, 직업 군인이라면 대략 난감...)

  • profile
    윤주[尹主] 2012.01.08 02:40

     재밌게 봤어요~

     워낙 특이했던 얘기라 지난화 봤던 기억이 나네요 ㅎ 앞으로도 간혹 올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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