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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욀이라고 합니다. 우연찮게 여기를 발견하게 되어서 예전에 써놨던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1'이라고는 해놨는데 후편이 올라올지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분류야 SF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내용만큼이나 이도 저도 아닌 기괴하고 저질스러운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1

 

남아메리카 어딘가의 빽빽한 정글.

정글의 녹색 그림자 밑에서 군바리 한명과 연구원 한명이 흉포한 생물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싸구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평소에도 온갖 소리로 시끄러운 정글은 두 남자가 도망가면서 내는 비명소리, 거대한 생물의 땅을 울리는 발소리, 거기 놀란 새나 짐승들이 황급히 도망가며내는 소리로 오늘 따라 더욱 활기를 더하고 있다.

 

"분명히 이거 뽑아오기 전에 '간단한 조치만 취하면' 별 문제 없으니까 괜찮다고 그러셨지 말입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대체!  제대도 얼마 안 남았는데 1계급 특진하게 생기지 않슴까!"

 

군바리가 소리쳤다. 그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정체불명의 뿌리를 양손 가득 쥐고 뛰는 중이었다. 머리 위에 지저분한 이파리가 삐져나온 못생긴 아기처럼 생긴 뿌리들은 그 와중에도 빠져나오려고 자신을 움켜쥔 손을 물어뜯고 있었다. 군바리가 놓쳐버리는 바람에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뿌리 몇 개는 바닥에 떨어져서 끈적끈적한 허연 액체를 사방으로 튀기며 무참히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분명히 뽑기 전에 재우라고 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마구 뽑았잖아! 아무튼 뒈지기 싫으면 존나 뛰어!"

 

역시 본의 아니게 죽음의 레이스에 참가한 연구원이 발에 불이 붙을 정도의 속도로 도망가며 외쳤다. 연구원은 군바리가 가진 것과 똑같은 뿌리를 한 아름 안고 있었는데, 이 뿌리들은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연구원의 얼굴에 끔찍한 냄새가 나는 녹색 수액을 토해냈다. 물론 연구원은 그런 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쉬크한 얼굴로 열심히 뛰고 있었다.

 

"클로로포름 적신 거즈라니 무슨 인신매매범이냐 이 정신나간 작자야! 그것도 풀떼기 나부랭이나 뽑아오는 데 쓰고 있고! 장기복무로 협박하건 말건 나 이제 이 짓 때려 칠거야! 네 커피 타는 것도 이젠 지겹다! 십자인대라도 잘라버리고 당장 제대할테니 말리지 ㅁ..."

 

악담을 퍼부으면서 열심히 뛰던 중, 군바리는 길게 뻗어 나온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대로 이마로 받아버렸다. 뭔가 부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난 후 공중에서 살짝 회전한 군바리는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퍼져서 기절해 버렸고, 그나마 몇 안 남았던 뿌리들은 땅바닥에 떨어져서 산산조각 나거나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그나마 멀쩡한 상태의 뿌리들은 허연 액체를 흘리는 채로 절뚝거리며 도망가다가 구덩이를 판 다음 땅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연구원은 뛰어가다가 그 꼴을 보고 뭔가 중얼거리더니 그대로 군바리를 버리고 도망갔다.

 

만일 뒤에서 쫓아오는 생물의 모습을 보고 차나 한잔 마시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군바리도 연구원도 이 생물이 옛날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용'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온통 초록색이랑 갈색에다가 날개는 없고 육중한 덩치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는 것만 제외하고. 아무튼 용은 뛰어오다가 군바리가 들고 있던 못생긴 뿌리들이 으깨진 광경을 봤다. 그러더니 용은 잠시 멈췄다가 엄청난 소리로 표효한 다음, 더더욱 맹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마침내 기절한 군바리와 용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게 된 절체절명의 순간...

 

#2

 

1주일 전,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시원한 신비로운 구조로 건축된 어느 건물의 옥상. 어중간한 크기의 옥탑방 문 앞에 '희귀생물 추적관리국-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출력되어 있는 A4지가 붙어 있다. 종이는 언제 프린트했는지도 알 수 없는데다가 여기저기 번져 있었다. 옥탑방 안의 공간은 정수기, 5개 가량의 컴퓨터 딸린 책상, 냉장고, 그리고 '국장'이라는 명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빈약한 자리 하나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옥탑방 안에는 거의 잿빛에 가까운 색의 가운을 입고 있는 연구원 한명, 그리고 대한민국 어디나 가도 볼 수 있는 군바리 한명이 각자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김병장, '만드라고라'라는 생물을 알고 있나?"

 

이미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고도 남았을 컴퓨터를 붙잡고 열심히 문서작업을 하고 있던 군바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부른 연구원을 쳐다봤다. 간부가 그런 표정을 봤다면 뺨이라도 한대 맞고 영창을 14박 15일로 갔다 왔겠지.

 

"뽑으면 비명 지른다는 뿌리 말임까? 에이,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슴까. 문과 나온 저도 그딴 풀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안 박사님 혹시 점심식사에 뭐 나왔는지 기억나심까? 1부터 10까지도 한번 세보십쇼."

 

"닭백숙, 1(중략), 10. 어 그거 말야.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구만."

 

그러면서 안 박사라고 불린 연구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침 물이라도 마시고 일하려고 일어났던 김병장의 쪼인트를 걷어찼다. 김병장은 신음소리와 함께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싹 고쳤다. 한두 번 맞아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야야... 누구 말씀이심까? 전 모르겠슴다."

 

"못 알아들었으면 됐고. 최근까지 만드라고라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서 단편적인 정보밖에는 없는 편이었지만, 최근 아마존 깊은 곳에 있는 벌목 회사의 작업장에서 목격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왔지."

 

"뭐 잘못 드셨슴까? 뭐 언제나 그런 식이시긴 하지만 말임다. 앗! 먹는 이야기 하니까 생각났다. 혹시 냉장고에다 박아둔 제 가봉파이 드신 거 안 박사님 아님까?"

 

"가봉파이는 먹었지만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나? 몇 푼이나 한다고."

 

"이 나쁜 자식아! 쥐꼬리만한 군인 월급으로 산 거 뜯어먹으니까 좋냐! 어쩐지 최근에 한두개씩 사라지더니..."

 

"아무튼. 현장 벌목공의 증언으로는 작업 도중 쉬는 시간에 기분 나쁜 뿌리를 발견해서 뽑았더니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나타나서... 아니, 직접 보는 게 빠르겠군."

 

안 박사는 쪼인트도 걷어차이고 가봉파이도 없어져서 시큰둥한 군바리에게 봉투를 하나 던졌다. 봉투를 뜯어본 김병장은 기겁했다. 일부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들의 사진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어우 토나와... 이거 새로운 취미십니까? 전 여기서 더 이상 일 못하겠슴다. 차라리 소총병이 더 나을 것 같슴다."

 

"멍청아, 중요한 건 이거라고."

 

안 박사는 김병장이 비위 좋게도 계속 보고 있던 사진을 뺏은 다음, 실험복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사진 여러 장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런 다음 김병장에게 사진을 다시 건네줬다.

김병장은 그제서야 스플래터 무비의 스틸 컷 구석에 있는 '중요한 것'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못생기기는 했어도 이목구비는 확실히 다 갖춘, 인간의 모습을 한 뿌리가 있었던 것이다. 뿌리는 죽은 사람들을 비웃는 건지 묘하게 썩은 미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것 참 안 박사님이랑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표정까지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혹시 숨겨둔 자식입니까? 분명히 2X세(미혼)이라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아니, 때리지 마십쇼! 그런데 이 뿌리, 기분 나쁘게 생기기는 했어도 이렇게 사람을 엉망진창으로 찢어놓을 정도로 힘이 세다던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아 그거? 지금부터 설명해 줄게. 이게 현장에서 보내온 샘플인데..."

 

20대가 꺾인 마법사는 김병장의 머리를 쥐어박다가 말고 난잡한 책상 여기저기를 뒤져서 '샘플'을 찾아냈다. 지퍼백에 정성스럽게 담겨 있는 샘플은...

 

"이거 그냥 나뭇잎 아님까? 확실히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종류는 아니긴 한데 말임다."

 

안 박사는 샘플을 꺼내더니 바닥에 던졌다.

 

"밟아보게."

 

제대를 100일 남짓 남겨두고 있는 군바리는 이 인간이 돌았나, 하고 생각했지만 까라면 까야 하니까(그리고 쪼인트 까일 게 두려워서) 군홧발로 나뭇잎을 밟았다. 놀랍게도 나뭇잎은 바스라지거나 찢어지는 대신, 날카로운 모서리로 군화 밑창에 파고들었다.

 

"이걸로 보통 나뭇잎은 아니란 걸 확실히 알았겠지. 이런 게 현장에서 수십개, 희생자들의 시신에서도 발견됬다는군."

 

군화 밑창의 샘플을 뽑다가 손을 벤 안 박사는 괜히 또 김병장의 쪼인트를 걷어찬 뒤("아야! 뭐하시는 검까!") 힘들게 뽑아낸 샘플을 다시 지퍼백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그런 후 안 박사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설마..."

 

"너는 '설마 아마존으로 가려는 건 아니겠지 말임다?"라고 말한다. 잘 아는구만. 내일 당장 출발하니까 유서 쓰고 집에 전화하고 짐이나 잘 챙겨 놔. 이 이파리의 주인을 찾으러 간다."

 

김병장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 박사는 그걸 깔끔하게 무시하고, 어디선가 꺼내온 무지막지한 트렁크에 잡동사니를 계속 쑤셔 넣었다.

 

"커피나 타와. 차나 한잔 마시고 해야지."

 

"예 알겠슴다."

 

김병장은 막시무스 커피 믹스를 따서 종이컵에다 때려박은 후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런 다음 안 박사가 트렁크에 정신이 팔린 동안 종이컵에다가 침을 가미한 후 티스푼으로 열심히 저었다.

 

"다 안다. 너 자꾸 그러면 너한테 그거 마시게 시킨다?"

 

김병장은 작은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린 후, 커피를 부어버리고 새로 타기 시작했다.

 

#3

 

"Get off of my car, b●stards!"

 

빌리-희귀생물 추적관리국의 몇 안되는 멤버 중 하나이며, 거구의 근육질 백인 남성이다. 과거에 유명한 사이트의 슈퍼스타였다는 등, 극악무도한 살인마였다는 등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수많은 억측이 떠돌았으나 정작 그를 스카웃해 온 국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나마도 국장이 말 자체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더더욱 미궁에 있었다-는 무지막지하게 거칠게 운전하고 있던 자신의 지프를 정글 한복판의 흙길에 세우더니 그 안에 실려 있는 안 박사와 김병장과 짐을 관성의 법칙으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둘은 토하느라 정신없는 상태였고, 카시트 역시 그 둘의 ...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다시는 네 차 안 탄다..."

 

"방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눈 앞에 보였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빌리는 차 문을 닫은 다음에, 뭐라고 몇 마디 지껄이더니 자욱한 먼지만 남기고 가 버렸다.

 

"뭐라는 겁니까?"

 

"일 다 끝나면 핸드폰으로 연락하라는데?"

 

김병장은 안 박사를 멍하니 쳐다봤다.

무엇보다 여기는 정글 한복판이지 않은가. 벌목회사가 차량용으로 뚫어놓은 길 외에는 그저 나무, 나무, 나무, 나무, 군인, 마법사밖에 없었다. 아마 가장 가까운 중계철탑이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는 떨어져 있겠지. 핸드폰이 터질 리가 없다.

 

"뭘 그렇게 쳐다보나? 역시 거부할 수 없는 나의 매력에 반한 모양이군. 하지만 내 후장은 소중하니까... 이건 내 핸드폰인데 이걸 봐줘. 어떻게 생각해?"

 

안 박사는 비 맞은 중 마냥 중얼거리면서 구석기시대에도 안 썼을 법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괴물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크고 아름답습니다."

 

"위성 뭐라더라? 아무튼 그런 기술이 적용되어 있어서 크기는 이만해도 지구 어디서건 배터리만 있으면 통화가 되지. 어때? 대단하지 않나?"

 

아, 예. 대단하고말고요. 그런 건 나한테 줘도 안 씁니다. 김병장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지금은 스마트폰의 시대라구요. 까지 덧붙였다. 그런 뒤 김병장은 바닥에 내팽겨쳐진 짐을 풀기 시작했는데, 안에서는 역시나 온갖 연구기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김병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질에 온 지 5일은 지났건만 삼바 추는 미인과 뜨거운... 이라던가 스테이크는 어디에도 없었고, 이놈의 밀림에서 전투식량이나 먹고 모기 물어뜯는 바깥에서 자기만 3일째였기 때문에(물론 나머지 이틀은 정글로 오는 과정-즉, 비행기나 기타등등-에 소요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김병장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얌마! 그거 개당 백만원은 하는 도구였단 말여! 네 나라사랑 카드에서 청구할테다!"

 

"이미 유리로 된 건 다 깨진지 오래지 말입니다? 정 물어내라고 하고 싶으면 이거 패대기친 빌리한테 달라고 하시지 말입니다."

 

순간 안 박사의 표정이 굳었다. 안 박사는 저번에서 목욕탕에서 비누를 줍다가 빌리에게 험한 꼴을 당한 이후에 빌리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김병장의 말이 의외로 트라우마를 자극했는지, 안 박사는 김병장의 쪼인트를 걷어차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미안ㅋ"

 

"아무튼 사전에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여기가 문제의 벌목장 주변인 모양인데,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군. 자, 가자. 물론 짐은 네가 들고 가는거 알지?"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날파리와 모기를 쫓으면서 잡동사니를 주워담던 김병장은 밀림에 들어온 이후 또다시 물파스를 짐에 넣으려다가 귀찮아서 던져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물론 버스는 떠나간 지 오래였지만.

 

#4

 

한참을 걸오 도착한 벌목장은 괴생물 출현 사건 이후로 회사에서 완전히 포기했는지, 인기척 자체가 없었다. 컨테이너로 된 빈 사무실과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는 벌목도구의 잔해만이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다. 언제 또 그 괴물이 나타날 지 알 수가 없어서 급하게 정리하고 간 후 두번 다시 오지 않았던 모양으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흔적들 또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썩다 만 손가락 끄트머리라던가, 다리 한쪽이라던가... 아무튼.

 


"여기 무슨 공포영화 세트장임까? 저는 더 들어가기 싫슴다."

 

"닥쳐."

 

"아야!"

 

하지만 안 박사와 김병장은 실없는 대화나 주고받으며 벌목장 주변의 정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정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아까랑 모기와 날벌레들의 수가 차원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김병장. 평소에도 큰 얼굴이 더 크게 보이는군. 눈의 착각인가?"

 

"아닐 겁니다. 이러다간 괴물이랑 맞닥뜨려서 죽는 것 보다는 전신의 피가 다 빨려나가서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제 강에서 OO의 OO으로 OOO가 들어올 뻔한 이후로 맞이하는 최대의 고비인 것 같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찬가지로 퉁퉁 부어오르는 얼굴로 안 박사는 주위의 바닥을 가져온 막대기로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뭐 걸리는 거나 있슴까? 제가 보기에는 그냥 그게 다 그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네 머릿속 뇌 쪼가리는 콘플레이크 사이즈밖에 안 된다는 소리를 듣는 거지. 여길 봐라."

 

"어? 그러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말입니다."

 

안 박사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김병장의 얼굴에 던졌다. 그걸 받아본 김병장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려나간 팔다리나 토르소가 적다는 것만 제외하면 사진 속의 풍경이랑 아주 똑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 주변에 확실히 있는 겁니까? 도중에 움직였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살인범은 범행현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이야기도 있잖아. 조금 옆으로 비켜 보겠나?"

 

김병장이 귀찮아 죽겠다는 식으로 날벌레를 쫓으며 옆으로 비키자, 안 박사는 아까만 해도 김병장이 서 있던 자리에 위화감 넘치는 모습으로 삐죽 솟아 있던 기묘한 풀을 막대기로 건드렸다. 그러자 풀이 순간 바들바들 떠는 것처럼 보이더니 금새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군."

 

"그런 거 같슴다. 그런데 이거 뽑아도 괜찮은 검까? 분명히 '뽑았더니 뭔가 나타나서 다-죽였다'고 하지 않았슴까."

 

"내가 보장할 테니 당장 뽑도록 하게. 우리 사무실에 100만원 줄 돈도 없을 정도로 예산 안 들어오는거 알잖아. 그것보단 우선 이걸 준비하도록."

 

안 박사는 '클로로포름'이라고 적힌 라벨이 붙은 갈색 유리병 하나랑 거즈 몇개를 가방에서 꺼냈다.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겠지?"

 

"아, 이렇게 말씀이심까?"

 

김병장은 병 안의 액체를 거즈에 듬뿍 적시더니 안 박사의 코와 입에 갖다 대려고 했지만, 안 박사의 무자비한 응징으로 나가 떨어졌다. 안 박사는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바닥에서 애처로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뒹구는 김병장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더니 남은 거즈를 죄다 클로로포름에 적시기 시작했다.

 

"내가 고자라니이이이!"

 

"나대지 마라? 나 말고 만드라고라를 뽑자마자 기절시키란 말이다, 이 화상아."

 

"아오! 이제는 부려먹다 못해서 풀뿌리에다가 젖은 수건 갖다 대기라니.... 못해먹겠네."

 

"가봉파이 사주고 포상휴가증도 줄게. 당장 뽑아. 주위에 꽤 많이 있으니까 다 뽑아."

 

"뭐!...본부대로 합지요."

 

김병장은 포상휴가라는 말에 눈이 뒤집혀서 안 박사가 뭐라고 했는지도 까먹은 채 냅다 발 밑의 뿌리부터 움켜쥐고 뽑아버렸다. 의외로 손쉽게(그리고 끊어지거나 한 부분 없이) 딸려 올라온 뿌리에는 정말 못생긴 인간의 이목구비가 다 있었으며, 뿌리가 갈라져 팔과 다리 같은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뿌리는 눈이 부신지 심하게 찌푸리더니 눈을 뜨고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이 멍청아! 기절시키라고 했잖아!"

 

김병장은 만드라고라 울어제끼는 소리 덕에 안 박사의 잔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고, 곧 들고 있던 것을 내팽개친 다음 주위에서 다른 뿌리까지 찾아 차례차례 뽑아버렸다. 나중에 뽑힌 만드라고라들까지 빽빽 울어대는 통에 김병장과 안 박사는 골통이 깨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포상휴가의 기대에 들떠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는 김병장과는 다르게, 안 박사는 어째서인지 새파랗게 얼굴이 질려가고 있었다.

 

"김병장, 땅 울리는 소리 들리지 않나?"

 

"무슨 소리심까? 하긴 어제 먹은 전투식량이 맛이 간 것 같기는 하던데 말입니다."

 

평소라면 쪼인트라도 걷어차 줬을 테지만, 안 박사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그런 건 이미 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김병장 역시 안 박사가 말했던 '땅울림'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밀림 속 깊숙한 곳에서 '용'이 걸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목질로 된)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뿜으면서 천천히 걸어오던 용은 김병장과 안 박사가 하고 있던 짓을 보고는 분노에 가득 찬 포효를 내질렀다. 김병장은 순간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허겁지겁 뿌리를 닥치는 대로 가득 움켜잡았다.

 

"역시 울음소리를 들으면 죽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나...! 김병장! 뒈지기 싫으면 개처럼 뛰어!"

 

안 박사는 잽싸게도 어느 샌가 뿌리를 챙기고 이미 도망가고 있었다. 용은 그쪽을 잠시 째려보더니, 가까이 있는 김병장에게 고개를 휙 돌린 후 무섭게 노려봤다.

 

"아오...항상 이런 식이라니까!"

 

김병장은 본능적으로 목숨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 뒤를 용이 무서운 속도로 뒤쫓았다.

 

#F

 

"HA HA HA! B●TCH! GO TO HELL!"

 

처음으로 돌아가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김병장의 뒤쪽에서 갑자기 죠니 브라보를 닮은 거대한 백인 남성이 RPG-7-별명은 알라의 요술지팡이고, 혼다 1톤 트럭, AK-47과 함께 테러리스트의 삼종신기 중 하나에 포함된다.-을 들고 나타나더니 냅다 용에게 그걸 쏴 버렸다. 굉음과 함께 발사된 로켓탄은 '용'에게 깔끔하게 날아갔고, 미친듯이 달려오는 통에 미처 피할 틈이 없었던 용은 그걸 정통으로 맞은 뒤 나뭇잎과 끈적끈적한 수액과 파편을 사방에 흩뿌리며 펑 터져 버렸다. 물론 엎어져 있던 사람이 그걸 피할 수 있었을 리는 없었으니까, 김병장도 기절한 채로 그걸 잔뜩 뒤집어썼다.

 

"아놔, 그걸 흔적도 없이 박살내버리면 어쩌잔 거야! 분명히 생포하자고 했잖아!"

 

안 박사가 저만치 떨어진 수풀에 숨어 있다가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서 길길이 뛰며 소리쳤다. 여전히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초록색 오물을 토해내는 못생긴 뿌리를 가득 안고 있는 채로. 빌리는 '무슨 개소리야?' 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한번 으쓱 하더니 떡실신한 김병장을 어께에 들쳐 메고 대기시켜 놨던 지프차로 여유롭게 걸어갔다.

안 박사는 만드라고라 유생들을 클로로포름 적신 수건으로 기절시키랴, 용의 잔해에서 샘플 채취하랴, 얼굴에 묻어 있는 오물 닦으랴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지프의 시동 소리를 듣고 빌리가 향한 곳을 쳐다봤다. 빌리는 기절한 김병장을 뒷좌석에 대애충 구겨 넣은 뒤 이미 엑셀을 밟고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서너브빗취커먼렛츠고! 이 인정머리 없는 놈아 같이 좀 가자!"

 

안 박사는 되려 용에게 쫓길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서 겨우 지프 뒤에 매달렸다. 물론 끝까지 기절시킨 만드라고라와 샘플은 놓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김병장 하나로 만원인 비좁은 지프 뒷칸에 우겨넣은 것이었지만. 그때 멀리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

 

"FOck."

 

뒤를 본 빌리의 표정이 잠시 일그러지더니 액셀을 풀로 밟았다. 아까와 비슷한 '용'이 한 마리 더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안 박사는 순간 지옥을 맛봤다.

 

"빌리! 야 임마! 너 정말 이러기냐아아아아!"

 

안 박사는 결국 바닥에 질질 끌려가면서 정글을 애처로운 비명소리로 가득 채웠다.

 

#E

 

만드라고라를 발견한 날에서 일주일 뒤. 비좁은 옥탑방의 추적관리국 사무실은 빌리, 안 박사, 김병장으로 더욱 미어터지고 있었다.

 

"안 박사임? 아마존에서 가져와가지고 뒤뜰에 심어 놓은 뿌리 있지 않슴까. 그 중에 제일 오래된 거 최근에 보니까 전에 그 괴물처럼 변하고 있던데 말입니다. 땅 위로 올라와서 네 발로 걸어다니며 일광욕 따위나 하고 있슴다. 물론 이제는 장마철이니까 그 짓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뒷산에서 내려온 고라니나 멧돼지도 잡아먹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목에 깁스-그 정도로 끝났다는 게 매우 신기하기는 하지만-를 하고 있는 김병장이 사건의 사후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말했다. 보고서의 대부분은 샘플의 국내반입에 관한 멀고도 험난한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빌리? 뒷뜰 주변에 매우 튼튼한 울타리를 쳐 놔. 저거 밖으로 나가면 정말로 큰일 난다. 곧 겨울인데 귀중한 샘플이 얼어 죽으면 곤란하니까 업체에 이야기해서 비닐하우스나 온실도 짓고."

 

"Shut up boy."

 

빌리는 의자 등받이를 최대로 뒤로 젖힌 채로 발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있던 안 박사에게 침을 뱉더니 연장을 챙기고 일하러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침은 안타깝게도 안 박사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다. 물론 안 박사는 침이 날아오자 그걸 피하려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다가 바닥에 자빠졌지만.

 

"오 나의 엉덩이야... 아무튼 최근 관찰하고 연구한 바에 의하면 고기도 먹고, 광합성도 하는데다가 유생은 땅 속에서 다른 나무의 뿌리에 기생하다가 성장해서 거대한 도마뱀 비슷한 생물이 되는, 뭔가 이상한 생물이라는 게 확실해졌군."

 

"고기를 먹는 시점에서 이미 식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말입니다."

 

"아니, 식물이야. 자네 식충식물이라고 알고 있나? 큰 종류는 작은 동물까지도 소화해서 잡아먹는다고 하더군. 우리가 아마존에서 가져온 만드라고라와 보통 식충식물의 차이점이라면, 만드라고라는 째째하게 소화액으로 가득 찬 통이나 끈끈이 같은 함정을 파지 않고 직접 사냥을 한다는 것 뿐이지."

 

안 박사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더니 다시 의자에 더없이 거만한 자세로 퍼질러 앉았다.

 

"광합성을 하는데 왜 고기는 먹는 겁니까?"

 

"밀림에서는 좀처럼 햇빛을 받기가 힘들지. 그래서 땅에 박혀서 주위 나무에 기생하는 형태로 자라는 유생이라면 모르겠는데 성체 같은 경우에는 이제 영양분을 얻기가 꽤나 힘들어졌단 말야.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동물을 사냥해서 영양분을 보충한 거겠지. 아무튼 여기야 날씨는 좀 춥고 그래도 햇빛은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까, 흐린 날이 장기간 지속되지만 않는다면 저게 맹수로 돌변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저번에 왜 우릴 그렇게 죽일듯이 쫓아온 겁니까? ...아니, 실제로 절 죽일 뻔 했지만."

 

"식물 주제에 새끼에게 대단한 애정을 가진 모양이더군. 아마 유생의 울음소리는 어미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거겠지. 박쥐와 비슷하게 말야. 아무튼 더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어. 곧 장마철이고 하니 먹이라도 줘야 잡아먹히는 걸 면하겠지만 말야."

 

한참 문서작업 중이던 김병장은 먹이를 준다는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귀찮은 잡일은 자신이나 빌리 몫이었으며, 만일 지금 울타리와 온실 때문에 가뜩이나 빡쳐 있는 빌리에게 먹이 주라고 그랬다가는 당장에 벌거벗고 레슬링을 하거나 목이 꺾일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먹잇값은 어디서 대는 겁니까?"

 

"네 월급."

 

"아, 이해했슴다...뭐라고?! 이 도둑놈아! 이젠 가봉파이에 이어 대놓고 내 월급이냐! 그리고 포상휴가는 나올 때 훨씬 지났는데 왜 안나오는 거야!"

 

"뭐? 포상휴가라고?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안해! 나 안해!"

 

"어허... 너는 힘으로 나를 못 이긴다."

 

퍽. 김병장은 또 쪼인트를 까이면서 '나는 지금까지 쪼인트 까인 횟수를 기억하고 있는가?"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
  • profile
    시우처럼 2011.02.11 06:48

    하하, 좀 기네요. 나눠서 올려주셨으면 집중이 더 잘 됐을 것 같은데.

     

    아무튼, 잘 봤습니다.

    아마존의 만드라고라를 캐러다니는 연구소 직원들이라니.

    뭔가, 만화같기도 하고, 유쾌한 대사들도 재미있었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2.27 00:44

     재미있게 봤어요.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글이네요 ㅎㅎ

     만드라고라가 용이 된다는 설정도 재미있었고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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