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14 00:47

흐르는 언어의 바다 #6~8

조회 수 552 추천 수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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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과대평가

 

“하암.”

지루한 수학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다 배웠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과반인 우리반은 석두 말로는 모범생반이라고 한다.

‘근데….’

주위를 둘러보면 반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었다. 자고로 모범생이라 함은 수업태도가 좋고 성적이 좋으며 행실이 바른 학생을 말한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는데 그 생각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반증이 지금 내 눈 앞에 있었다.

‘아니면….’

또 하나의 경우가 있다. 바로 석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 만약 이 경우 석두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의 답을 추측해보자면

 

1.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2.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애석하게도 내 머리로는 이정도 추측이 한계였다. 후자의 경우 석두가 나를 견제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괘씸한 놈.’

나는 수업이 끝나고 석두에게 따지기로 다짐했다.

수업은 여전히 지루했다. 애초에 선생 자체도 학생들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것만 하는 류의 선생이었고 이에 학생들도 잘 적응하여 새벽까지 ‘딸딸이’를 칠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눈이라도 와줬으면 좋겠네.’

사실 눈이 쌓여서 빙판길이 만들어지는 것 때문에 눈을 상당히 싫어하지만 눈이 오면 기온이 올라간다는 소문(?)에 든 생각이다. 히터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지만 창가 쪽이라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히터 바람보다 더 셀 수밖에 없었다. 그저께 눈이 내렸었지만 어젯밤부터 날이 많이 쌀쌀해진 것을 보면 그저 루머일지도 모른다.

‘그렇고 보니 그저께 내린 게 올해 첫눈이구나.’

물고기가 생각났다.

‘이름이 김지수라고 했던가? 생각해보니 올해 첫눈을 같이 맞이했네.’

약간 짧은 단발에 작은 키, 꽤 귀여운 얼굴이었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참 이상한 녀석이란 말이지….”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업은 어느새 끝나고 선생이 출석을 부르고 있었다.

“강철민.”

선생의 입에서 석두 이름이 나왔다.

“강철민? 얘 오늘 안 왔니?”

“아니요, 왔는데요. 자고 있어요.”

“….”

나는 수학선생이 화낼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갔다.

‘의외로 쿨한 면이?’

나중에 알고 보니 결석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어쨌든 쉬는 시간이 되고 나는 자고 있는 석두를 깨웠다.

“야, 일어나봐.”

“음…. 왜?”

“네가 우리반 모범생반이라며?”

“어, 근데?”

“모범생이 수업시간에 다 쳐 자냐? 아니 그보다 왠지 일진 같아 보이는 애들이 많은데?”

“그게 뭐?”

“아니 아까 보니까 애들 빵셔틀 시키는 애도 있고 선생한테 주먹을 흔드는 애들도 있던데?”

“그러니까 그게 뭐?”

순간 조금은 어이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모범생의 뜻은 아냐?”

“공부 잘하면 다 모범생인거 아니야?”

“그래 그런 것도 있긴 한데. 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네 놈을 과대평가했구나.’

며칠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반은 공부도 별로 못한다고 한다. 석두에게 따졌지만 석두는 자기보다 다 잘한다며 반대로 내게 화를 냈다는 석두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7스터디그룹1

 

생각해보니 기말고사가 일주일정도 밖에 남지 않았었다.

‘빌어먹을 시험.’

전학 왔다는 것 때문에 시험에 무신경해 있었다. 아마 누군가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놈은 왜 학기가 곧 끝나는데 전학을 왔느냐고 말이다. 그것에 대한 정답은 ‘부모님의 직업’이다. 우리 가족은 참 특이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아버지는 수필가로서 가끔 소설도 쓰고 평론도 하신다고 한다. 등단 하셨다고는 말씀하시는데 별로 믿음직하진 못하시다. 어릴 때 언젠가 아버지의 산문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버지 말로는 상까지 받은 글이라고 한다.

‘이 글은 마치 색이 있는 유리병과 같단다. 속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뚜껑을 열어보는 수밖에 없지. 아빠는 이 글이 수상한 이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10년 가까이 된 기억이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이 말이 잊어지지가 않는다.

어머니의 직업은 사진작가이다. 대학교까지는 공대였다는데-그래서 사내대장부 같으신 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진작가가 됐는지는 알 수 없다. 물어봐도 그냥 됐다고만 하신다. 아버지 말로는 어머니가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알아주는 사진작가라고 한다. 우리집 수입도 많은 부분 어머니가 번다고 하신다. 어머니가 찍으신 사진들은 대부분 인간의 생활에 관련되어 있다. 과거 내가 걸음마 할 때쯤 사진 중에 회색 콘크리트 담벼락이 이어진 작은 골목길 사진이 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세발자전거와 담벼락에 하얗게 쓰이어진 낙서들. 무언가 뭉클해지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무 흔한 사진이라며 기회가 되면 태워버리고 싶다고 하신다. 문학과 예술 쪽에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러한 상황에 우리가족은 이사를 자주 간다.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번에는 이 동네에 찍고 싶은 풍경이 많다고 한다. 아버지와 나의 약간의 반대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투항으로 결국 이사하기로 결정됬다.

‘그건 그렇고 말이지….’

“아오 시험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미치겠네.”

나는 머리를 잡고 절규했다.

“여, 소년 나와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석두아내였다.

‘아니, 잠깐!’

무얼 한다는 것인가! 순간 19금이 될 법한 상상이 머리를 지나갔다.

“뭘 해?”

“시험공부 말이야.”

“아, 난 또….”

“음? 왜?”

“아, 아니야.”

나는 스스로 석두아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꼈다.

“아무튼 할래?”

“석두도 같이 하는거?”

“응.”

“안할래.”

 

 

#8스터디그룹2

 

석두의 참전이라는 소식을 듣고 당차게 스터디그룹 제의를 거절한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인물이 내게 스터디그룹을 제의해왔다.

“여, 전학생 우리랑 시험공부 같이 할래?”

이 녀석은 김철수라는 놈이다. 이름 그대로 크게 존재감 없는 아주 무난한 학교생활을 하는 학생이다.

“뜬금없이 시험공부를 같이 하제?”

“아니 그냥 시험공부도 할 겸 친해질 겸.”

‘아니 그러니까 평소에 인사도 잘 안하는 사이인데 친해지자는 거냐고.’

이상하게 전학 온 이 학교에서는 내가 인기가 많은 것 같다.

“글쎄 그….”

“잠깐! 이놈은 나랑 공부하기로 했어.”

갑자기 석두가 끼어들었다.

“내가 언제?”

“뭐야? 당연히 하는 거지! 우리는 베프잖아.”

“누가 누구 베프야!”

이번에 전학 오면서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특히 남녀공학이라는 소식을 듣고 여성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여자친구도 사귀고 말이다. 그런데 전학 오기 전날부터 석두랑 엮여버렸다. 이놈은 친구도 없는지 나만 줄줄 따라다닌다.

“왜 그래? 아무튼 야, 김철수 넌 포기해.”

“뭐야, 선약이 있었군.”

하면서 김철수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야!”

‘저 녀석은 포기가 왜 이렇게 빨라! 아니 그보다 석두의 말을 듣는 거야?’

절망이었다. 이 현상은 석두와 내가 이미 절친이라는 인식이 우리반에 박혀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이 시간 이후 석두를 피해 다니자고. 내 근심을 알 리가 없는 석두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베프 맞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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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시 2011.01.14 02:39

    읽기에 길이가 적당한것 같아요. ㅋ 여기는 부담이 없는게 좋은듯

  • profile
    윤주[尹主] 2011.01.14 07:52

     ㅋㅋ 재밌어요. 캐릭터들 만담하는 것도 보고 싶은데, 언젠가 나올까요?

  • profile
    Yes-Man 2011.01.14 10:46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profile
    시우처럼 2011.01.15 07:11

    예술가 집안이군요?

    대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것 같아요.

    부럽습니다. ㅜ.ㅜ

    다음 화 기다리고 있을께요.

  • ?
    乾天HaNeuL 2011.01.16 23:01

    뭐지 이런 건 처음 보는 스타일이나 다름 없어! ㅋㅋㅋ

    그나저나 모범생. 그것은 사람을 옭아매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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