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7 05:21

(비평)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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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왜 그토록 흠칫했을까.


 새 학기, 강단에서 둘러본 학생들 사이에 그녀가 있었다. 대학생치곤 앳돼 보이는 외모 탓에 착각한 건지도 모른다. 안경을 꺼내 쓰던 손이 지나치게 덜덜 떨렸다. 아이들에겐 궁색한 변명을 지껄여대었다.


 나이가 들어선지 영 몸이 제 것 같지가 않아.


 스스로도 민망해 헛웃음을 짓는데, 학생들 얼굴엔 아무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요즘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꾸 그녀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추억이었다. 잊고 있던 과거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녀를 통해 나는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줄만 알았던 먼 옛날의 일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었다. 고백하건데, 그건 정말이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억이었다.






 그녀를 사랑했었다. 비록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지만, 쉽사리 사그라질 사랑은 결코 아니었다.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단 하루도 지겹다거나 불편하단 생각해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


 먼저 고백해온 건 그녀 쪽이었다. 비록 나보다 두 살 어리긴 했지만, 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일찍 성숙하는 법이다. 계기는? 글쎄, 계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는 실연 중이었고, 나는 그녀가 똑 부러지지 못해서 차인 거라고 비웃었다. 아직 고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애송이였던 내가 뭘 알았겠는가. 발끈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행동으로 내 말에 반박했다. 한 마디 말이나 예고도 없었다. 얼떨떨해하는 사이 내 입에 촉촉한 그녀 입술이 닿았고, 깜짝 놀란 내가 그녀를 밀쳐내기까진 꽤 긴 시간이 걸렸던 듯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설렜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무려 14년간 그녀와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각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곧바로 사귀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건이 어떤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전 시간에 수업이 바로 있어서……."


 연구실로 들어서는 학생을 반갑게 맞으며, 곁눈으론 그녀 외양을 은밀히 훑었다. 확실히 이 여학생은 내가 알던 그녀와 무척이나 닮았다. 턱선이나 콧날 등 전체적인 얼굴선이 가는 편에, 도드라진 광대뼈나 그리 넓지 않은 이마가 전형적인 북방계형 외모 특징이 드러나 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며, 웃을 때마다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 흔적까지 눈앞에 있는 이 여학생과 그녀는 소름끼치리만큼 닮아 있었다.


 "아니, 괜찮은데. 그보다 하고 싶은 얘기란 건?"


 보통 신입생이 먼저, 그것도 이런 학기 초부터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차피 신입생들은 앞으로 매 주마다 배정받은 담당 교수와 팀별 상담 및 프로젝트 활동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굳이 자기 담당 교수도 아닌 나를 일부러 지명해 상담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학생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였다. 몇 년 전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던 책이었다. 공저라고는 하지만 실상 예전 발표했던 논문 내용을 조금 편집해 올린 게 일부 들어있을 뿐이라 들어간 수고는 전혀 없었다.


 "혼례에 대한 사회학적 영향 연구를 주로 하셨다고 들었어요. 실은, 입학하기 전부터 이 책을 보고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식의 상담은 정말 뜻밖이었다. 자기 연구에 대해 관심 가져주는 사람 마다할 교수가 어디 있을까. 이 학생에 대한 흥미가 더욱더 강해졌다.


 "그럼 자네는, 내 연구 얘기가 듣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온 건가?"

 "네, 안될까요?"

 "안될 건 없지만, 모처럼 이니 조금만 들려주도록 할까?"


 요청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솔직히 무슨 이야길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전공 공부를 해보지도 않은 신입생이다. 그녀가 흥미를 가질 만한 이야기가 내게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적당한 얘깃감을 찾기 위해 그녀가 꺼낸 책을 펼쳤다. 공저자로 참여한 파트는 금세 찾아냈다. <민족 우생학과 친족 간 근친혼>. 혹시나 이 학생이 뭔가 알고서 이러는 걸까? 본인조차 잊고 있던 내밀한 과거에 대해, 그녀는 뭔가 알고 있기라도 한 걸까?


 "교수님, 왜 그러세요?"


 그럴 리 없다고 금방 단정 지었다. 그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나 이외에 그녀뿐이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 대담했던 그녀. 가엾고 불쌍한 나의 그녀.


 그녀를 닮은 학생을 앞에 두고, 나는 스스로의 연구에 대해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론과 객관성을 빌어 자기 합리화를 하였다. 예컨대 민족에 따라 친족 간 근친혼은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말. 소수 민족의 입장에서 다수 민족 사이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거나, 혹은 가문 간 유대를 굳건히 하고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여성이 불이익 받을 가능성을 줄이는 등 장점이 분명 근친혼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재작년 중국 한 소수민족 가계를 직접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례들도 곁들여 이야기해 주었다. 회족, 중국 내 이슬람계 소수민족이 어떻게 한족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해왔는지 이야기하는 걸 그녀는 제법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들 소수민족 내 굳건한 결집이 깨지게 된 건, 글에서도 썼듯이 우생학에 기반을 둔 정치 선전 탓일세. 근친혼으로 인해 후대에 유전적 결함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과도한 염려가 젊은 층 사이에 열병처럼 번졌고, 때문에 이들 회족 내부에서도 50대 이상 노년층과 3, 40대 장년층, 20대 젊은 층 사이 근친혼에 대한 찬반 비율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

 "하지만 결함이 생길 수 있단 건, 사실 아닐까요? 현대 과학으로 보아도,"

 "그 위험성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적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사실이야. 자네들이 생각하는 대로라면, 고대 국가들의 왕족들 사이에서 유전병이 만연해 있어야겠지. 몇몇 케이스를 살펴볼 수 있는 정도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야 언성이 조금 높았단 걸 깨달았다. 평소보다 살짝 흥분해 있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의 무지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었다. 비난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무지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네들',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병이나 잘못처럼 치부하는 대중들이었을 뿐이다. 평소 강연이나 학회 등에서의 태도가 무심코 드러난 것이지, 학생을 나무랄 생각은 결코 없었다.


 "내가 좀 목소리가 컸나? 어른답지 않았군, 허허."

 "아뇨, 교수님. 괜찮습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태도에는 확연히 처음보다 거리감을 느끼고 있단 게 묻어나 있었다. 애써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느라 등 뒤에 있던 책장을 뒤지는 척 했다. 열의를 가진 학생에게 추천할 만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기에 서재에서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관심이 있거든 이것도 한 번 읽어보게. 가족 구조에 대해 정책이나 제도 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룬 책인데, 사례 중심이라 이야기 보듯이 조금씩 볼 수 있을 걸세."

 "정말 감사합니다. 잘 볼게요."

 "혹시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탁상시계로 확인한 시간은 6시 반이 조금 넘어 있었다. 집에 돌아가 먹을 생각이라고 학생은 답했다. 평소라면 친구들과 먹겠지만, 오늘은 다들 먼저 헤어져 버렸단다.


 "지금부터 나도 식사하러 나갈 참인데, 혹시 같이 가겠나?"


 고민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그러겠다고 답한다. 물론 별 의도가 있어서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건 아니다. 어쨌거나 저녁 식사에 동행하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니까.

 조교를 불러 함께 건물 로비를 나서면서, 무심코 본 학생의 뒷모습에 또 한 번 흠칫하고 말았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어렸을 적 그녀 모습과 완벽히 판박이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 모습이 그랬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흩날리면서, 나에게서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이었다.


 한 순간이라도 사랑해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애정행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해받지 못할 거란 건 나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어느 저녁, 드라마를 보던 어머니께서 뱉은 말을 듣고서 확신을 가졌다. 헤어져야지, 남매인데. 어렸을 적 헤어진 남매였단 걸 깨달은 주인공 남녀에게 사랑은, 이루어져야만 할 것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랑에 있어서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나는 그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끊임없이 주위 눈치를 보며 시선을 의식하는 내게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길거리에서 그녀가 내 손을 붙잡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며 내치게 되었다. 4인용 식탁 아래서 그녀가 걸어오는 발장난에도 짜증을 냈고, 곧이어 학교 앞에서 친한 척 부르는 그녀 목소리까지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를 단 한 순간이라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내게는 그저 남들의 시선이 두렵기만 했다. 친구들이 무심히 던지는 말에조차 신경이 쓰였다. 너희 여동생 예쁘냐, 하고 묻는 질문에 그런 걸 뭐 하러 묻냐는 둥 과민반응을 한 것이 그 절정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반 정도 지나, 내게도 애인이 생겼다. 상대는 그녀와 다른 여학교에 다니는, 나와 같은 학년 여자애였다.


 내게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는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어느 늦은 오후 그녀는 나를 인근 아파트 옥상으로 불러냈다. 5, 6층 가량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고 기억한다. 워낙 오래된 곳이라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옥상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계단이나 옥상 난간도 높이가 낮았다. 올라가 보니 그녀는 난간 가까이 붙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온 걸 알자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사귀자, 우리. 이렇게 비밀로 하는 거 말고, 진짜로. 그녀에게 진짜 사랑은 공개적인 사랑인 걸까.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엔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TV 프로그램이 없었으니까.


 이런저런 변명을 들어 거절했다. 그녀는 나를 겁쟁이라고 비난했다. 배신자라고도 했다. 그녀에 대해 감추고 다른 여자 친구를 사귀었으니, 거기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않자 그녀는 더욱 분에 받쳐 떠들어댔다. 그렇게 내가 부끄러워? 나 하나도 보호 못해주면서, 그러고도 네가 남자니?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절대 겁쟁이처럼 못 빼게, 아예 다 까발려줄게. 여자 친구한테 먼저 말할까? 당신 애인, 자기 여동생을 사랑하는 변태라고. 벌써 키스도 했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라고. 전부 말해 버릴 거라고. 그 말에 나는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렸다.


 분노와 공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녀 말을 듣고서 나는 이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겁쟁이에 남자답지 않다는 말에 분노를, 그리고 다 불어 버리겠단 말에 공포를. 그것뿐이었다면 비극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공포 말고도 미묘한 감정 하나가 가슴 속 깊숙이 에서부터 끓어오르고 있었다. 겁쟁이, 남자도 아닌 녀석, 똑 부러지지 못한 놈. 한때 실연당해 좌절한 그녀에게 내가 했던 말을 그 순간 그녀가 내게 그대로 되돌려 주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그랬듯이, 나 역시 갑자기 없던 오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녀가 오기로 사랑을 시작했던 것처럼, 나는 오기로 그 사랑을 끝내버릴 셈이었다. 공포는 어느새 기대로 바뀌어 있었다.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을 끝내 버릴 수 있다는 기대감. 비난도, 불안도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그런 기대감 말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오로지 그녀 하나만 없어지면 될 일이었다.


 기대와 분노가 뒤섞여 공격성을 낳는다고 했다. 그 때에 나는 그녀에게 기대와 분노를 동시에 지어주곤 앞뒤 분간 않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저항했지만 두 살 위 오빠에게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가 무게를 실은 탓에, 그렇잖아도 약한 난간이 밖으로 휘었다. 아차, 하는 사이 그녀 몸이 난간 밖으로 떨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곧장 추락하지 않았다. 떨어지는 순간 간신히 팔을 뻗어 내 손을 붙잡은 것이다.


 살려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발 도와줘, 오빠. 그녀가 오빠, 라고 말하는 걸 듣고선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내게 오빠, 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 생전 처음 그녀가 오빠, 라고 불렀을 그 때에, 나는 비로소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남매 사이였다. 사귀는 시늉도 했었고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지만 어쨌건 친오빠, 친동생 사이였다. 면담을 왔던 학생에겐 일부러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구상 어느 민족, 어느 국가를 불문하고 4촌 너머 친족 간의 근친혼은 있어도, 그 이내 근친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법률은 8촌 이내 친족 간 근친혼은 불가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전쟁 전 관습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암묵적으로 4촌 이내 혼인도 가능하단 얘기도 있다. 학생에게 소개한, 중국 내 회족의 근친혼도 4촌 이내 친족 간 혼인이지 한 부모 아래 친 남매간 혼인 사례는 아니었다. 지구상 어느 법률, 어느 관습을 찾아보아도 나와 그녀 사이를 합리화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가 죽은 지 40여 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지른 비명을 듣고 사람들이 아파트 아래 몰려들었다. 그들 시야에선 그녀가 붙잡은 내 손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보자 나는 짐짓 손에 힘이 풀린 척, 그녀가 붙잡은 손을 조금씩 풀었다. 그녀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애걸복걸했다. 울먹이다시피 하며 그녀가 외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이는 드물었으리라. 누군가 도우러 옥상 위에 올라오기 전, 나는 그녀 손을 놓쳤고 그녀는 10여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얼마 후 누군가의 신고로 구급차가 왔고,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떨어질 때 재수 없게도, 화단 주위 장식 석에 머리를 부딪친 탓이었다. 여동생의 죽음은 불행한 사고로 판명이 났고 나는 불쌍한 유족이 되어 장례식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언뜻 본 영정 사진 속 동생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조금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다. 조금 정리할 게 남았다는 조교를 먼저 보내놓고, 집에 가려는 학생에게 일부러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그녀 집은 다행이도 내가 집에 돌아가는 길 도중에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조금 야릇한 분위기가 흘렀었다. 유난히 친근한 척을 하는 학생 태도를 짐짓 부담스레 여기면서도 제대로 거리를 두지 못한 내 태도 탓이었다. 조교 녀석이 농담 삼아 이런 말 할 정도였으니까. 교수님, 사모님께서 질투하시겠어요. 교수님께서 얼마나 끔찍이 제자들 아끼시는지 아시면. 속뜻을 읽고 나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무심코 라고는 하지만 대체 얼마나 내 태도가 조심성이 없었으면 그런 말이 나왔겠는가.


 한편으론 뭐,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했던 그녀, 그러면서도 주위 눈치 탓에 단 한 번도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던 그녀를 떠올리면, 그녀를 닮은 이 학생에게 저도 모르게 마음 가는 것도 당연하지 않는가. 심지어 그녀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남이다. 바로 지금 옆자리에 앉은 그녀야말로 내게 있어 이상형인지도 모를 일이지.


 다리를 건너는 우리 눈앞에 맞은 편 강변의 휘황찬란한 야경이 펼쳐졌다. 비가 왔는지, 물기 젖은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불빛은 제법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그런 분위기에선, 아무리 늙은이라도 때로는 주책을 부리고 싶어지는 법이다.


 "자네는 꼭 죽은 여동생을 닮았어."

 "그래요?"


 창밖을 보던 학생은 내 말에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윤곽만 드러난 그녀 얼굴은 그야말로 예전 사랑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음 말이 무심코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랑해."


 예상대로 학생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뗬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주책인 늙은이가 우스워 보였던 걸까? 단순히 잘못 들은 걸로 생각했던 걸까?


 실은 그 두 가지 모두 사실과 달랐다. 잠시 후, 이어지는 여자의 말은 내 상상을 완벽히 초월하는 것이었다.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어요."


 자격이라니? 무슨 자격 말인가? 내 머릿속은 금세 혼란해졌다. 사랑할 자격?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단 건 무슨 뜻이지? 대체 그녀는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가? 부끄러운 근친애에 대해서? 아니면 수십 년 전, 옥상에서 내 손을 붙잡은 그녀에게 내가 한 짓에 대해서?


 문득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죽기 전처럼 아름다웠고, 나 자신은 그날 이후 조금도 성장하지 못한 채였다.


 얼이 빠져 있던 나를 향해, 그녀는 두 팔을 뻗었다. 목을 감아올 것처럼 뻗은 가녀린 팔은, 어느 순간 핸들 위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가 핸들을 오른편으로 사정없이 꺾었다.



==================================================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딱히 변명할 말도 없네요;

 지난 주 별 것 아닌 시험을 본답시고 공부 살짝 할 때는, 공부하면서 쓸 수 있을 줄 알았죠; 주말에 시험 끝나고 여동생이 놀러왔고....차마 그 앞에서 쓸 수 있는 내용은 아니더군요;;
 이렇게 된 건, 전부 제가 지난주 무계획했던 탓입니다. 죄송해요; 비평 못 받게 되도 제 탓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ㅠ
?
  • profile
    시우처럼 2011.07.27 06:09

    확실히... 여동생 옆에서 쓰기에는 좀 그렇겠네요. ;

    현실과 회상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마지막 부분은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가는건가요? 아님 여동생의 귀신이 들린건가?

     

    아무튼, 느낌이 딱 이상문학상 전집에 실린 글 같은 느낌입니다.

    차분하면서도 파격적이고.. 잘 정돈되어 있고. 잘 읽었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7.27 07:22

     마지막 부분은...보시는 분들의 해석에 맡길게요 ㅎㅎ


     사실 계획대로 안된 게 참 많은 글이었네요;; 초반 회상부분도 본래 간략 서술이 아니라 한 개 사건으로 연출하려 했었고, 마무리도 자동차가 아니라 모텔 장면으로 하려 했는데 자연스런 연결을 못시켜서 좌절했네요;;; 동생도 산골짜기에서 계곡으로 추락사시키려고 했는데 ㅠㅠ


     제 실력이 더 있었더라면, 무엇보다도 여자 캐릭터를 더 잘 살렸을텐데 아깝기만 합니다.;;

  • ?
    모에니즘 2011.07.27 06:37

    핸들을 오른쪽으로 꺽었다라... 사고로 그녀는 죽게되고 교수만 운 좋게 살아남아서 또 후회하게 되는 내용이 될지도... (지어내기인 것인가...)

  • profile
    윤주[尹主] 2011.07.27 07:24

     대신 후일담 스토리는 구상 탄탄히 해서 잘 지어내셔야 합니다 ㅎㅎ


     일단 저는 지금 결말로 그럭저럭 만족해요. 끈질긴 캐릭터는 인기없어요^^;

  • ?
    별난별 2011.07.27 19:31

    재밌다!! 그냥 우연히 와서 우연히 이 글을 봤는데 재밌었습니다.

    오오, 과연 이게 비평계 작가님의 실력이군요...

    첫 시작 문단의 글들이 상당히 흡입력 있네요. 사실 끝까지 볼 거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ㅋㅋ;

    정말 빨아들이는 맛을 느꼈습니다. 

  • profile
    윤주[尹主] 2011.07.28 00:51

     이런 극찬을 ㅎㅎ 감사합니다;

     사실 실력은 그렇게 좋지 않아요. 실력 저보다 더 좋은 다른 분들도 많은데^^;

  • ?
    乾天HaNeuL 2011.07.28 02:18

    여름맞이 납랑특집인가요? 쿨쿨쿨.

    근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근친 결혼 자체가 날아갔지만

    이집트와 신라 시대를 보면 근친 결혼(남매와 삼촌 사이)이 존재했던 것만은 확실치 않을까 생각을.


    거의 다 유전적 문제로 금지된 거고

    사실 사촌 간의 결혼은 유전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나 어쨌다나. ㅇㅇ;;

  • profile
    윤주[尹主] 2011.07.28 04:00

     근친혼 관습이 현재진행중인 곳도 있으니까요. 남매혼에 대해서는, 조금 찾아보니 신화에선 자주 등장하는데 실사례는 찾기 힘드네요. 말씀하신 데로 유전적 문제를 경험적으로 인식한 게 아닐까...사촌 간 근친혼에서 유전적 문제가 일어나기란 드물긴 한가 봅니다. 근친혼 풍습을 가진 집단 스스로가 그렇게 증언하는 걸 보면요.


     다만 특수한 경우 1대에 한해 근친혼을 허가하는 법률이 일본에 있다는 소문이 있군요;;

     나름 자료조사하면서도 느꼈지만, 신기한 이야기가 많네요 세상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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