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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착한(혹은 멍청한) 남자가 '설레임'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그녀들의 금단현상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녀들은 적당히 나이를 먹고, 감각이 무뎌져 더이상 그 약발이 들지 않는 설레임보다는 안정감이라는 신종 마약을 찾기 전까지 끊임없이 그 마약을 갈구한다. 아니, 안정감이란 마약에 완벽히 중독된 여자 중에도 여전히 설레임을 갈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설레임'은 강력한 마약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10대 중후반, 혹은 그 이전부터 서른을 전후하는 그 나이까지 그녀들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매력적인 이성과의 두근대는 만남… 가슴이 뛰고, 새하얀 화선지 같은 그녀의 가슴 속에 파스텔톤 핑크색 연정이 번져나간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뜻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그 순간 삶은 충만해지고 그 짜릿한 쾌감으로 비로소 자신은 완성된다… '짝'이라는 단어가 그저 숫자 맞추기가 아닌 어딘가 빠져 있던 영혼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더이상 그녀는 그 설레임이라는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직감한다.

그러나…

정말이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의 '진정한 정신적 첫 이별'을 겪고 난 이후 그 상처는 쉽사리 아물지 않는다. 피가 멎고 상처에 딱지가 지고, 그 딱지마저 떨어지고 드디어 상처가 아물지만, 흉터가 남는다. 가슴을 가득 채웠던 설레임의 금단현상도 시작된다. 그 달콤함을 다시 맛보고 싶어진다.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만남을 시작해도 설레임의 순도가 다르다… 99.9%짜리 최고급 성분의 그 '설레임'이 아니다… 70%짜리? 50%짜리? 나름 그럴 듯한 것도 약효의 지속시간이 다르다… 심지어 설레임 자체가 거의 없는 쭉정이마저 있다…
 
이게 아닌데. 누구는 새로운 만남을 시작해서 진짜 100% 짜리도 구하던 것 같던데.

주변의 아는 친구를 붙잡고 묻는다. 이 남자한테는 설레임이 없어요. 헤어지란다. 설레임도 없는 연애를 왜 하냐고 되묻는다. 그런가. 하지만, 다시 그 지옥 같은 이별의 시간을 겪기는 죽기보다 싫은데.

주변의 아는 언니에게 묻는다. 이 남자한테는 설레임이 없어요. 그게 뭐? 란다. 설레임 따위, 잠깐 뿅가는 그런 거에 아직도 구애받느냐며 핀잔 받는다. 그럼 언니는요? 언니는 혀를 끌끌 차면서 안정감이라는 걸 보여준다. 약효를 말해준다.

"이 사람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서도 내 편이 되어준다, 듬직하다, 안락한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편하고 절망적인 미래는 깔끔히 없애준다."

좋다. 저 정도면 이미 마약이 아닌데? 식약청 허가 받은 거 아니에요? 언니 말로는 그게 아니란다. 이게 제일 무서운 마약이란다. 한번 중독되면 이거야말로 절대 못 끊는다고. 흠. 그래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설레임의 짜릿한 맛이 더 나을 것 같다. 언니는 코웃음을 치다가 "그래, 네 나이 땐 그게 더 나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왠지 철부지 취급 받은 것 같아 묘하게 기분 나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언니가 얼마 전 클럽에 가서 모르는 남자에게 한번 설레임 뽕을 맞고 온 것을. 자기도 못 끊으면서.

어쨌든 집에 돌아온다.

새 남친에게 전화가 온다. 왠지 전화 통화가 재미가 없다. 적당히 맞장구치지만 남자는 이미 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끊고 싶어한다. 다른 데는 그렇게도 둔한 인간이 꼭 이럴 때는 쓸데없이 눈치가 빠르다. 기분이 나쁘다.

"왜? 나랑 통화하는 게 귀찮아?"

짜증을 발산해본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설레임 장기복용의 부작용인가. 설레임의 약발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거칠어진다. 아 충전하고 싶다. 하는 수 없다. 꿩 대신 닭이다. 설레임 대신 오르가슴으로 대체해본다.

아…

당분간은 이대로 버틸 수 있겠지만 역시 무리다. 예전 그 환상적으로 짜릿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정말로 감질나서 죽을 것만 같다. 설레임, 아 설레임, 아아… 안 되겠다. 폭발할 것 같다.

"오빠랑은 연애해도 재미가 없어. 설레임이 안 느껴져."

"야, 우리가 지금 사귄 기간이 얼만데. 이제는 설레일 때가 아니라 서로에게 안정감을 느낄 때 아냐?"

"2년 넘게 사귀고도 설레이는 커플 얼마든지 있거든?"

친구 중에도 그런 커플 분명히 있다. 뭐…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경우의 수지만 지금은 말싸움하는 때니까 상관없다. 하여튼, 아! 아는 오빠만 해도 그렇다. 그 오빠랑은 지금 알고 지낸 게 5~6년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보면 설레이고 뭐 그렇기도 한데? 그거랑 그건 다른 거라고? 몰라 상관없어.

그래, 설레임을 주는 방법이 뭐 관계의 참신함 뿐만은 아니잖아. 이벤트를 할 수도 있고(뭐 사실 나는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모처럼의 완벽한 데이트로 줄 수도 있고, 선물로 줄 수도 있고, 하다못해 되게 멋있게 옷 입고 제대로 멋있게 딱 나타나서…

아, 아니다. 오빠한텐 무리겠지. 우울하다. 헤어지고 싶다. 새로운 설레임을 맛보고 싶어진다. 나를 욕하지 마. 설레임을 못 준 오빠 잘못이야.

친구에게 또 상담한다. 또 헤어지란다. 정말 그렇게 할까?
언니에게 또 상담한다. 한참을 웃더니 맘대로 하란다. 아 자꾸 열 받는다. 언니랑은 이제 상담 안 하련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한다. 설레임이 뭐 별건가? 그래, 언니 말대로 그냥 지금 오빠가 주는 안정감으로 내 취향을 바꿔봐? 그러고 보면 친구 중에도 종종 일찍부터 안정감을 즐겨 찾던 애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걔들이 뭘 모르고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더 어리고 멍청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매력적이고 뭔가 내 모든 것을 알아서 착착 먼저 짚어서 처리하고 나를 완벽히 다뤄주는 그런 남자의 설레임, 예측불가의 짜릿함, 설령 좀 내가 힘든 그런 연애더라도 그런 순도 99.9%짜리 설레임을 생각해보면 정말 안정감 그거는 내 취향은 아닌 거 같다.

정말 내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으, 모르겠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6.11 08:08

     설레임과 안정감...영원히 해결못할 문제기라도 한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그 얘기뿐이네요.

     어려운 고민이긴 한가봅니다. 아무튼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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