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비평) 모기없는 하늘아래 + 다시님 비평

by 시우처럼 posted Aug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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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 같은 주민투표가 끝나고 결국 오세훈씨는 서울시장에서 물러나게 되었네요. 오세훈씨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서울시장에는 또 어떤 인사가 새로 올라올지 궁금합니다.

 

 이번 주 과제는 창도에 올라온 글들을 대상으로 리메이크를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비평 계에 올라왔던 글들을 제외하고 리메이크를 하는 것이 미션의 목표였는데 전 그만 발이 미끄러져 헛발질을 하고 말았네요. 미션 발의자 이신 다시 님이 어떻게 생각해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나저나 아직 다시 님 글을 올라오지 않았네요. 일단 다른 분들 꺼 올린 후에 다시 님 글 올라오면 추가로 덧붙여야 할 듯싶습니다.(그러나 너무 늦으면 제외당할지도? ㅋ)

 

 

Mr, J님의 [우리가 잊은, 우리 최초의 지식]

 

 - 인간이라는 존재를 인간으로써가 아니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묘사한 부분이 좋았습니다. 묘사의 첫 부분을 읽을 때만 해도 어떤 외계인의 모습을 설명하는 건가 싶었지만, 읽어나갈 수록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인간이란 존재라는 점이 새로웠어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묘사함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얻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인간의 대한 속성, 모이면 파멸한다는 글 속의 이야기는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을 보면 유독 인간에 대해 파괴적 종족이다 라는 설정이 등장하더라고요. 그런데 과연 이런 파괴적 성향은 인류만의 것일까요? 만약 실제로 외계인들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정신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에 평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아님 우리 인간보다 더 호전적인 모습일까요? 전쟁을 하고 타인의 물건을 빼앗고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자아를 가진 존재라면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동물들이 그러하듯이요. 그런 이유로 '우리는 잊었다. 인류가 파괴적인 종족인 것을.' 이란 설명은 조금은 식상하고 조금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글의 전개상 이본느가 잿빛 행성에 오게 되는 중요한 이유이긴 하지만 좀 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 이본느의 대사, '더 이상 궁금한 것이 없다.' 라는 말에서 그녀가 삶에 대한 애착이 많이 사라진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주노가 제공한 우주선을 타고 떠나는 그녀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삶에 대한 회의를 가득 품은 존재라면 잿빛 행성이야 말로 죽기 좋은 장소일 텐데 말이죠.

 

 - 주노는 어떤 이유로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외딴 별에 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처음 이본느가 주노를 각성시켰을 때 주노의 반응을 보면 자못 쾌활해서 그가 해왔던 생각이란 그저 사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특히 이본느가 인간임을 알게 된 순간, 주노의 태도가 변합니다. 무거워지고 진중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과연 이본느의 무엇이 주노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자신의 치부, 욕망에 끄달렸던 부끄러웠던 과거를 떠올렸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그 결과 주노가 선택한 것은 생각의 멈춤.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 왜 주노는 죽음을 선택한 거죠? 그에대한 설명이 부족해 결말이 조금은 갑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건천하늘 님의 [아련한 기억의 단편]
 

- 선과 악이라는 입장. 이에 대해선 확고부동한 절대적인 정의는 없을겁니다. 악의 입장에선 자신이 선이고 선은 악일테니까요. 하지만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발키리)은 자신들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무자비하게 마물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학살합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그들만의 편협한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자칫하면 글 속에서 중립적인 성향, 즉 선과 악은 상대적인 개념이다라는 작가의 관점이 드러날 수도 있을텐데 철저히 자신만의 관념속에 빠진 주인공의 성향을 일관되게 잘 유지하신 것 같습니다.

 

- 발키리들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글 속에서 저는 오직 전쟁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만들어진 존재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을까요? 글에서도 꼭두각시 처럼 아무런 의문도 없이 싸움을 반복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잘 드러나지만 글을 읽으면서 문득 주인공이 애처롭게 느껴졌습니다.

 

 - 요정과 주인공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은, 글에서 중요한 부분임에도 조금은 간략하게 설명 된 듯 싶습니다. 물론 우연이란 것은 일상다반사로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날아오르려던 주인공이 갑자기 요정과 부딪친다는 설정은 좀 갑작스럽네요. 요정은 왜 그때 그곳을 날고 있었을까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유유자적하게 날고 있다가 주인공과 부딪친 건가요? 아님 어떤 급한 일로 서둘러 날아가던 중 인가요? 아무래도 후자인듯 싶습니다. 왜냐면 주변을 잘 살피지 않고 충돌가능성이 있는 대상에 근접해서 날았기 때문이죠. 아니면 요정은 애초에 어떤 결심을 하고 주인공과 부딪친 걸까요? 혹시 육신을 갖기 위해서?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네요. 뒷 부분에서 자연의 수호자로써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요정의 후회가 나오는 걸 보면요. 아무튼, 일인칭 시점이다보니 요정의 입장을 설명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선 조금 '응?'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윤주님의 [충동 ; 여행의 끝]

 

  - 여신이 호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아님 저 넘어 신들이 노예로 부릴 존재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낙원이란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요? 글에서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도달 할 수 있는 장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을 보건데 죽음 이후에도 영혼이 남아 도달하는 장소인 것 같군요. 그러면 부름을 받은 자는 메시아 일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에게 낙원으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  그런데 여신의 말이 조금은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같아요. 마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이유를 설명할때는 사람들의 구원 받고자 하는 욕망과 영원히 살고자 하는 욕망이 마리를 이곳에 오게 했다고 하고선 뒷 부분에선 그들이 그들의 의지만으로 오롯이 호수에 당도해서 낙원으로 향했다 라며 타인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도착한 나약한 너와는 다르다 라고 말하네요. 제가 보기엔 타인의 뜻으로 호수에 도착한건 마리와 주인공이 모두 같은 것 같은데 말이죠.

 

 - 주인공이 여신의 말에 갑자기 무릎을 꿇은 것이 조금은 공감이 되질 않았습니다. 왜 무릎을 꿇는 거죠? 잊고 있었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기까지 희생되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무게가 갑자기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그런 주인공의 심리는 설명되지 않고 행동만이 묘사되서 왜 갑자기 무릎을 꿇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까지는 마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주인공이 입장이 확고부동한 느낌이었는데 무릎을 꿇는다는 이 부분부터 갑작스럽게 주인공의 입장이 무너지고 여신의 몰아부침에 이러저리 휘둘리는 느낌입니다. 결국 갈등끝에 주인공이 내린 결론은 애초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난 마리를 원할 뿐이다라는 입장으로 되돌아가는데 말이죠. 고민끝에 새로운 결론에 도달한 것도 아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인데 여신의 말에 흔들린다는 부분이 조금은 이상하게 읽혔습니다..
 
- 말이 어렵고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가끔 있는 것 같아요. 예를들면, 욕망이 끝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욕망도 가능하다라는 여신의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욕망이 끝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욕망도 부질없다라는 생각이 더 맞는 것 같은데... 아님 모든 욕망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은 욕망을 더한들 문제가 없다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요. 좀 더 생각해보면 분명 의미를 알 수 있는 구절이겠지만 그로인해 전체적으로 난해한 느낌의 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다시님의 [언제나 제르딘 중심]

 

  - 처음엔 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랄까... 그야말로 독특한 형식이네요. 다시님은 저번 미션 때도 그렇지만 새로운 방식을 잘 찾아내시는 것 같습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주인공은 평범한 여중생이네요. 다만 소설을 쓰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요. 반에 좋아하는 남자, 철우가 있습니다. 그녀는 철우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 자의와는 상관 없이 철우를 씹게되는 에피소드 한 개, 두 번째는 방과후 하교 이벤트가 발생하네요. 그런데 저에게는 글의 주제가 확실히 잡히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김소하의 짝사랑 이야기 인가요? 그런데 궁금한 건 다시님은 이 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걸까요? 다시 말해 글에 제시된 사건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수렴되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관련이 없는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것 나름대로도 재미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에 나오는 어구인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라는 의미. 그러니까 현실(극 중, 소설가가 존재하는 세계)의 에피소드를 이용해 소설을 쓰는 방식인가요? 현실의 이야기가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라... 재미있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 궁금한게 있는데 제르딘 그라디우스는 정확히 누굴 모델로 한거죠? 아닌가 철우가 성전환되서 제르딘이 된건가요?  그럼 왜 소설속의 인물은 실제 모델이랑 성(sex)가 다른가요? 중간에 같이 뒷담화 했던 여자친구는 아마도 남자가 되서 소설속에 등장한 것 같은데(맞나요?) 혹시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그리고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글의 말미에서 김소하(주인공)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던 남자애와 드디어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짝사랑하는 철우가 먼저 말을 걸어왔는데도 주인공의 반응이 좀 밋밋한 듯 싶네요. 좀더 격양되거나 흥분하거나 그런 모습이 나올줄 알았는데 말이죠. 예를 들면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더듬는다든지, 왜 얼굴이 빨개졌냐는 말에 날씨가 더워서 그렇다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든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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