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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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를 잡고 웃는다는 말은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웃고 보니 웃음보가 터지면 배를 잡는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회를 잡아 엄습하는 복통이 허리조차 피지 못할 정도로 심해서, 혼자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큭큭대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관상 이라고요? 지금 이거…… 도…… 를 아십니까…… 같은 건가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고개를 들기가 너무 힘들어 그냥 업드린 채 물었다.

     “안믿는대도 어쩔 수 없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가벼운 말투인 걸로 보아 마음이 상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바지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울었기 때문에 엎드린채로 확인했는데, 아버지가 보낸 문자였다. 아버지는 시간이 괜찮으면 회사에 들렸다가 같이 집에 들어갈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이 비상식적인 자리를 회피하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변명거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 너무 비웃는 얼굴로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몸을 추슬렀다.

     “믿고 안믿고를 결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게 애둘러 말했지만, 그는 그 대답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만족했다기 보단 내 반응 따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실실거리며 “그래, 그런가.” 하고 말할 뿐이었다.

     “더 얘기를 하고 싶지만, 아버지한테서 연락이 왔네요.”
     “아, 그래. 그러면 어서 가봐야지. 다음에 또 같이 얘기 하자.”

     의외로 순순히 보내주는 것이 도리어 수상했다.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게 도리어 의심이 가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요즘은 사이비종교나 도 연구회 같은 곳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친절함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지금 이 상황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인텔리(이미 그 이미지는 깨진지 오래였지만)가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했고, 내가 2층에서 사라질 때 까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준 것이 왠지 고마움마저 느껴졌다.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이상한 피라미드 사업 같은 데 끌려가게 된다면 곤란하겠지만, 지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버지의 직장으로 향하면서 몇 통 정도 문자를 더 보내보았지만 답이 없었다. 그저 일이 바쁜 것이겠거니 하고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 속에 찔러넣었다. 버스 안은 사람들로 빼곡해서 상당히 불편했다. 되도록 주변을 신경쓰려고 하지 않으면서, 원래대로라면 서점에 갔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니, 꼭 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별로 문제될 건 없었다. 다만, 그 인텔리와 꿈 중에 어느쪽이 더 흥미로운가 하는 의문이 들어 버스안에서 30여분간 두가지 주제를 비교해 보았는데, 현재로선 어느쪽이든 더 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버스가 정차했다.

     아버지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중소기업 중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항상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켜가며 회사와 집을 왕복하던 아버지는 내게 있어 성실함 그 자체였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건 성실함 보단 자기 속내를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점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내 문제인 것이다. 아버지는 좋은 직장인, 좋은 가장,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은 하고 있다고 평가 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오, 호안이냐. 아버지라면 사무실에 계실 거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일찍 퇴근한 것 같던데, 오늘 무슨 날인가?”

     낡은 티비를 주시하던 경비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따로 무슨 일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적이 없다고 답했다. 경비는 알았다고 짧게 말을 줄였고, 이내 화면을 다시 주시하기 시작했다. 잡티가 심한 화면 속에서 야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예의상 경비에게 인사를 하고 아버지가 계신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얼마전에 새로 페인트칠을 했는지 잔향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내 강렬하고 불쾌한 냄새가 페인트향을 잡아삼키며 문틈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안한 느낌에 재빨리 문을 열어젖혔다.

     목에 넥타이를 잘못 두른 화이트 컬러가 한 명, 오물더미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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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자살. 끝. 다음은 자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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