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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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계속됨에 따라 아이들은 하나 둘씩 수업에 흥미를 잃어가는 모양이었다. 출석부 순서대로 호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자신의 이름이 불리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고, 자신의 차례가 오면 대충 대답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었다. 호안이 처음의 기세와 달리 점점 아이들의 흥미를 유지하지 못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도 결국 저 정도인가 하고 생각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의 흥미는 본래부터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다. 

     다섯 번째로 호명된 학생은 장 현우, 약간 뚱뚱한 체격에 땀이 많은 체질이어서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걱정이 심한 타입이었다. 그의 꿈은 수학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확실히 수학에 관해서는 능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통해 보이는 건 수학뿐이라는 게 결정적인 문제였다. 그의 뒤를 이어 호명된 학생은 김 유아라는 여학생이었다. 그렇게까지 길어 보이지 않는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고 있었다. 문답을 하는 동안 안경 뒤로 비쳐 보이는 눈동자는 항상 교사의 시선과 일치하고 있었다. 바른 생활 타입이라는 것은 그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꿈은 교사가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어떤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냐고 물으니 사회라고 답했다. 그런 대답은 들은 교사는 그것도 좋은 직업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상당히 보람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노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학생들을 훑었다. 다른 짓을 하는 무리가 있었지만, 교실을 소란스럽게 만들지는 않았다. 어제 한 게임 얘기 따위를 하고 있었다. 엎드려 자는 학생도 더러 있었지만, 교사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다음 학생을 호명하기 위해 출석부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여섯 명의 꿈 이야기가 나오는 동안 호안은 여전히 교사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문답의 내용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까 전에 본 눈동자 속의 영상이 과연 헛것이었는가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교사의 눈은 그저 검었고, 문답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안에 비치는 것이라고는 교실 풍경이나 출석부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에 호안은 역시 잘못 본 것이 맞는 것 같다며 자신을 타일렀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호안은 교사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안은 그런 그의 찝찝함을 달래듯 또 다른 화면이 교사의 눈에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흐릿함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 대답을 마친 김 유아의 모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출석부를 보고 있는 교사의 눈에 다른 방향에 있는 학생이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 시점에서 어떠한 수단을 이용해도 보일 리 없는 영상이 교사의 눈을 통해 자신에게 보여지는 것이다. 

     도대체 그 화면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지만 어디까지나 흐릿해 실루엣조차 구분하기 힘든 모습일 뿐이었다. 상훈이나 유아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도 호안 자신의 착각일지 모른다. 그저 잘못 본 것이려니 하고 넘어가면 될 문제인데도 그는 그 화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쉽사리 멈출 수가 없었다. 평생 동안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그를 점차 교실에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학생들의 수군거림도, 교사가 다른 학생을 호명하는 목소리도 점차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느 쪽이 현실로부터 격리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잠깐 동안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흐릿한 두 개의 영상은 어느새 그의 머릿속을 한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개의 화상은 점차 하나로 뒤섞여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형성했는데, 그 곳의 모습을 확인한 호안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눈 앞에 자신이 매일같이 꾸는 꿈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밝은 빛으로 뒤덮인 그 공간에 잉크가 흘러 들어오듯 검은 부분이 늘어나 인간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보였다. 평소대로라면 그는 그 인간의 모습과 소통할 수 없음에 슬퍼하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그 흐릿한 다섯 개의 실루엣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며 호안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공포심이 밀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평소 그 형체가 누구인지, 사람인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고민할 새도 없이 공포와 도망가고 싶다는 감정이 그를 가득 메워버렸다. 그런 그의 귀에 커다랗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호안은 어떻게 현실과 격리된 자신이 교실문을 두드리는 소리만큼은 분명하게 들었는가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순식간에 눈앞의 광경이 무너지면서 꿈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기묘한 체험은 잠시 동안 그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잠시 뒤에 그는 비로소 그것이 백일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실에 앉은 채로,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도중에 잠이 들었다는 얘기다. 백일몽을 꾼 것도, 꿈에서 느낀 감정도, 꿈의 원인이 된 교사의 눈 속 영상도, 불현듯 들려온 노크소리도, 노크소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까지도 전부 호안에게 있어 고민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의 눈은 자연스럽게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전학 서류 처리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확인을 해 주셔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 반에서 수업이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는데, 맞게 찾아온 것인지 확인 해 주시겠습니까?” 

     한눈에 봐도 인텔리라는 느낌이 드는 모습의 청년은 몇 장의 서류를 교사에게 내밀었다. 최대한 공손한 말투를 사용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이 되려 작위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류를 받아 든 교사는 그 내용을 잠시 훑어보더니 학생들에게 잠시 서류 처리를 위해 다녀오겠다며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 말라는 얘기를 남기고는 교실문을 나섰다. 전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청년은 밖으로 나가는 교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몸을 돌리는 와중에 호안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호안은 자신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부끄러워졌다. 인텔리의 오른쪽 입가가 그런 그를 비웃듯 살짝 올라갔지만 황급히 눈을 돌려버린 그에게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뒤 교사가 돌아왔고, 학생들은 그런 그에게 방금 전의 학생은 누구였느냐고 물었다. 교사는 그가 3학년생이라는 말로 짧게 대답했다. 학생들의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나중에 알아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시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교사는 호안을 지목했다.


 


     “박 호안.”


 


     호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질문을 받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더 이상 수업에 집중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박 호안.”


 


     교사가 재차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관심을 돌릴 수 없었다. 눈앞에서 그를 흔들며 다그치지 않는 한 그는 절대로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의문들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었다. 우선 생각해 볼 것은 역시 그의 꿈에 관한 것이었다. 올해 들어 꾸기 시작한 반복적인 꿈과 방금 전의 백일몽, 그리고 그 두 가지 꿈 사이에서 현저하게 달랐던 자신의 반응,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심층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과연 그 무의식에는 어떠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적재되어 있는가? 그의 눈은 교사를 주시하는 듯 허공을 주시하는 듯 하며 멍하니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다른 모든 학생들이 그런 그를 쳐다봤지만, 본인은 그런 것 조차 깨닫지 못했다. 교사는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시금 그를 호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수업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렸기 때문에 결국 말을 끝내지 못했다. 두 차례나 무시를 당한 교사는 다소 심기가 불편해 보였지만,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수업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교실은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


 


꿈. 신학기. 끝.


 


신학기. 자살. 이 시작됩니다.


 


한 권 분량으로 맞춰서 쓰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처음부터 생각해서 쓴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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