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8 13:45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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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안오고 해서 글쓰기 게시판을 살리기 위해 써봅니다.

현대 소설 느낌을 살리고 싶었지만, 1인칭 소설을 쓴 것도 아주 오랜만이고, 현대 소설을 읽은 것도 까마득한 옛날이라 잘 느낌이 안 사네요. 고전 명작들을 자주 읽어야겠습니다.

퇴고라도 해야 하겠지만 빨리 쓰고 뭐좀 사러 편의점 가야 해서 그냥 올립니다 ㅇㅁㅇ

본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전 아직 대학 졸업도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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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선언

 

이것은 내가 대학에 다닐 적, S와의 일화이다. 당시의 S는 봉사단에도 가입할 정도로 남을 돕기 좋아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친구였는데, 행동하기에 앞서 항상 수지타산을 따지고 몸을 사리던 나는 이런 그를 퍽이나 대단하게 여겼다. 마침 그의 성씨가 신 씨였기에, 반쯤 농담 삼아서 나는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 그것은 수업 열심히 듣고, 여자에 관심 없고(그렇다고 S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S의 평소 행실에 똑 들어맞는 별명이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졸음을 눈꺼풀 뒤로 꾹꾹 눌러 담으며 강의실로 향하던 아침이었다. 비몽사몽간에 가방을 옆자리에 툭 던져놓고 책과 노트를 꺼내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S가 보이지 않았다. 항상 누구보다 일찍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책을 훑어보는 것이 S의 일과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날은 왠지 그 자리에 그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 이 신선 놈이 드디어 아랫것들 노는 법을 익혔구나!’ 라기보다는 이놈이 어디 아픈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가 수업에 빠지고 술집이나 오락실을 기웃거린다던가, 그만 늦잠을 자버린 탓에 기름기 가득한 머리를 숨기려 모자를 눌러쓰고 맨발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뛰어 들어온다던가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어쨌든 S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 그 날의 마지막 수업에서(평소와 같이 맨 앞자리에서) 그를 찾아냈을 때 나는 그 자세한 연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집을 비울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급하게 나가봐야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S는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나서서 도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참으로 S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S라는 인간은 그런 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 뒤에 그가 유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나는 그와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으며, 그대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S를 다시 만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5년이 지난 후였다. 그때 나는 새로 나온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서, 소위 초대 이벤트라고 하는 것의 인원을 맞추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클로버 폭격을 뿌려대고 있던 차였다. 그때 실수로 S에게 클로버를 보냈는지, 그에게서 한동안 연락도 없더니 보내는 게 이따위냐하는 식의 장난 섞인 타박이 돌아왔다. 그 뒤로 상투적인 인사말과 간단한 일정 조정이 있은 후에, 나는 그를 식당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잘 드라이한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것이, 어느 정도 번듯한 직장을 잡은 것 같아 보였다. 추억 이야기, 삶 이야기가 지나고 나자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놀랍게도 S의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성격의 그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네가?”

 

그의 직업을 들은 순간, 이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남 등쳐먹거나 하는 인간이 덜 된 직업은 아니었지만, 본인 한 명 잘 되겠다고 꽤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꼴을 못 본 체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한때 신선이라고까지 불렸던 S가 할 법한 일이라고는 믿겨지지가 않았다.

 

어쩌겠냐, 인생 살면서 더러운 것들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잖아.”

 

S의 대답은 이러했다. 틀린 구석 하나 없는, 나도 살면서 구구절절이 느낀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약간이나마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그가 인생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물론 S가 살면서 이 단어를 한 번도 내뱉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의 대학 시절에도 당연히 지나가는 말로 툭툭 햇을 법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느낌으로, 특히 그의 목소리로 듣는 인생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지금껏 듣던 그것과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인간 선언처럼 느껴졌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광복했을 때 즈음, 일왕은 자신이 신의 후손이 아니라는 이른바 인간 선언을 했다고 한다. 역사는 그 정도밖에 모르지만 S의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이 단어가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마치 나는 신선이 아니라 인간이다.’ 라는 말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물론 S를 탓할 수도 없다. 당연히 그는 신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S에게 가졌던, 이른바 환상 같은 것이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멋대로 가졌던 환상이라서 딱히 누군가를 탓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는 산타나 달토끼가 사실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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