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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청년

 

처음에는 기뻤다.

그녀의 선택은 그의 감정이 전해져 일궈진 결실이라 믿었다.

대체 언재부터 청년의 감정을 알아 차렸던 것일까?

그저 먼 발치에서 봤을 뿐이다. 행여라 청년의 마음이 들킬까봐 최대한 접촉을 피해 왔었다.

그때문일까. 피하는게 몸에 배 습관이 되다보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와 좀더 친해질 개기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바꾸려고 했을때, 그녀의 곁에는 항상 그 사내가 붙어 있게 되었다.

좀처럼 무뚝뚝 해 사교성이 전혀 없는 친구라 생각 했지만 그 사내는 적어도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다.

자연 스럽게 그녀는 그 사내 앞에서 재잘거리는 일이 많아 졌고, 이따금 그녀를 대하는 사내의 행동은 어느 모로 보나 연인 사이나 다름 없었다.

아쉬운 쓰라림 만 남았다.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상념의 상념은 꼬리를 물고 돌이 킬 수 없는 시간에 집착하는 일이 잦아 졌다.

더이상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생각 한들 지나간 일은 돌아 오지 않는다.

어자피 혼자만 품었던 감정. 그 누구 에게도 말한적 없었다.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감정.

이대로 조용히 없었던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로 했을때, 뜯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나랑 결혼할래?"

조용히 자신을 불러낸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꿈을 꾸는 기분이였다.

현실 감 없는 상황에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자 그녀는 수줍어 했다.

아니라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그 사내 앞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앞에서도 이런 저런 일들에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트레이씨 정말 짜증나. 어쩜 그렇게 재멋대로 인지 오늘도 동부에 같이 돌아 보기로 했었잖아? 식수나 음식은 본인이 직접 준비 한다더니 술만 잔뜩 가지고 온거있지? 나참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좋았다. 내용보다는 그냥 목소리 듣는것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정작 듣고 싶어 했던 그녀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왜 항상 붙어 다니던 그 사내가 아닌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한 것일까.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기에는 두려웠다.

괜한 걸 물어서 그녀가 자신을 어렵게 생각 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 것도 몰랐다.

그녀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는 왜 여기에 정착 해 있는 것일까?

왜 '그자'를 양아버지로 삼는 것일까?

물론 그애 대한 해답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본인이 스스로 말할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애초에 의문을 갖거나 물어 볼 필요가 없는 것일까?

다시 상념의 상념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녀를 원했다. 그랬기에 그녀를 알고 싶어 했지만 두려웠다.

그저 의문을 끌어 안고 그냥 그녀의 선택에 순응 하면 되는 것인가.

도무지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였다. 그녀의 뒤를 밟은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알 수 있는 대 까지 알아가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녀와 양아버지의 행적을 쫓았다.

항상 두 부녀는 마을에서 사라지곤 했다.

사냥 이나 주변 동향을 살피는 것이 아닌, 그 둘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그 누구도 그 둘의 행적을 몰랐다.

부녀의 관계대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움직였다.

절벽이 산맥을 타고 우거진 곳이다.

발을 들여서는 안되는 영역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깊은 곳 또한 아니다.

반대편 절벽과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유난히 바람이 거세다.

그 거센 바람 속에서도 빨갛고 녹색열매를 머금은 나무 들이 있다.

그리고 별다른건 없었다.

"......"

사실 이곳에 오면서 의미심장한 구조물을 보긴 했다. 분명 그녀의 양아버지 작품을 것이다.

'그자'로 부터 풍겨 나오는 어떤 기운이 그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 하는 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비슷한 구조 물이 곳곳에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뭔가 좀더 알아 볼까 했지만 조금 있으면 해가 떨어져 뭔가를 찾기엔 어려운 시간이 될 것이였다.

돌아가자.

사실 이곳에 온다 해서 무언가 알 수 있을거 같지는 않았다.

그 부녀의 뒤를 직접 밝지 않는 이상 말이다. 물론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풀 요령이 였을 뿐.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역시나 별다른 것은 없었다. 뭔가 더 살펴볼 생각이 든다면 다시오면 된다.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돌아 가려는데, 한가지 의문이 들어 다시 돌아 보았다.

열매가 우거진 나무들, 거쌘 바람이 부는 절벽.

절벽이라 해서 나무가 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뭔가 이상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자 역시 이해 할 수 없었다.

태풍에 견줄 정도의 거쎈 바람이다. 그런 바람이 쉼없이 불어 오는데, 열매는 나무에 매달려 있다니.

심지어는 벌겋게 익은체 그대로.

숲의 바닥을 살펴 보았지만 떨어진 열매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지?

바람에 날리기라도 했나? 그런데 나무에 매달린 저건?

나무에 매달린 열매는 주먹보다도 작다. 손으로 한줌에 쥐어질 정도다.

능금이다.

나무는 분명 사과 나무 였다.

이곳에 뿌리를 오래 박아 뒀는지 그 어디서 봤던 사과나무 중에 가장 큰 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열매가 작아서 바람에 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 치자 그런데 수백년 묵은거 같은 사과나무에서 능금 이라니.

알고 있기론 능금은 어린 사과 나무에서 열리는 걸로 알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적응 하기 위한 것일까.

심장이 쿵쾅 거린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흥분되 었다.

뭐지?

능금 하나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올랐다.

나무가 큰 만큼 사과가 높게 달렸다.

바람이 거쌔 쉽지가 않았지만 능금 하나를 쥘 수 있었다.

때려고 하니 질겨서 떨어지질 않는다. 태풍같은 바람에 버틸만 하다.

칼로 나뭇가지를 잘라내야 능금 하나를 쥐고 땅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곳에 적응 하다니, 대단하구나."

적응인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돌아가자 그녀가 있는 곳으로.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것이다.

모르는 것은 차차 알아면 되지 않을까.

청년은 그녀를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마음이 편해진 탓일까. 몸의 흥분이 가라 안질 않는다.

그래 돌아가자.

능금을 한움큼 배어 물며 얼른 자리를 뜨기 위해 움직였다.

"우엑 퇘앳!"

사과의 일종이라 생각한 이 능금은 먹을 수 없었다.

한입 배어 물고는 바로 뱉어 냈지만 그 강렬한 맛이 혀에 맴돈다.

"....?"

손에 한입 베어문 능검이 검개 변했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 해 보았지만 다시 봐도 검은색이다.

분명 그전 까지는 빨갛게 익은 붉은 색이 였을 터였다.

"대체?"

바람의 흐름이 변했다.

잘못 보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검은 사과의 베어문 쪽으로 바람이 빨려 들어 가고 있었다

거세게 불어 태풍처럼 몰아 치던 바람이 거짓말 처럼 청년이 검은 사과를 향해 빨려들어 갔다.

"뭐지?"

무언가 조짐지 좋지 않다. 

청년은 검은 사과를 떨어 뜨렸다.

하지만. 그것이 실 수 였을까. 

빨려 들어가는 바람이 청년을 휩쓴다.

그리고 청년은 사라 졌다.

검은사과와 함께.

 

 

 

1. 하얗게 센 머리의 노인

 

완전히 하얗게 센 머리를 한 노인이다.

마치 세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머리로 표현 하기라도 한 듯, 노인의 머리는 푸석하고 윤기 하나 없이 거칠었으며 머리털을 간신히 언져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노인의 머리  숱이 얼마 없는 건 또 아니다.
건장한 남자 못지 않게 그 가는 머리카락들이라도 일정 숱 이상으로 붙어 있었다.

단지, 푸석한 머리 만으로도 충분히 노인 그 이상의 세월을 닮겨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본래 나이는 알 수는 없겠지만 차라리 대머리가 더 지금보다는 젋어 보일 법 했다.

노인은 거친 숨을 몰아 쉬고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밤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밤중에 이리 바삐 움직여 본것이 얼마만이가.

이곳 기후의 특성상 밤이 되면 다소 서늘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뜨겁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노인이 위치 한 이곳은 온통 불바다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구자비로 불이 난 것은 아니다.
이 작은 촌락을 에워쌓은 조잡한 방책에 인위적으로 불을 해 놓았다.
평소 땐 조악하기는 해도 훌륭하게 외부의 침임을 차단 시켜 왔던 방책이다.
외부인은 반드시 이 작은 촌락을 거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지리적 방비 책으로는 제 역활을 확실했다.
노인 또한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일 때 역시 이 촌락을 거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관문으로서의 지리적 위치는 휼륭했지만 오늘같은 경우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노인은 사방에 널브러진 동물의 사체들을 보았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이해되지 않는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육식을 일삼는 포식자에서 부터, 그들을 무서워 하며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을 위한 다리를 가진 피식자 들까지 한대 아우러져 종 구분 할 것 없이 마구 뒤썩여 있다니.
노인은 태어나서 지금껏 이렇게 온갖 짐승들을 한 눈에 본 적은 없음은 물론, 그 비슷 한 사례를 보거나 들은 적도 없다.
지식 범위 내에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사건의 발단은 그리 길지않았다.
전쟁에서나 들을 법한 지면을 두드리는 울림이 먼저, 그리고 수많은 짐승들이 들이 닥쳤다.
산에 살던 모든 산 짐승들이 일제히 산을 버리기라도 한 것 처럼 말이다.

노인이 살고 있는 촌락을 지나면 평원에 들어서게 된다. 짐승들은 그 평원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사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짐승들이 평원을 나서서 어디로 가든 간에 노인이 상관 할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밀물처럼 들이 닥치는 짐승들 덕에 촌락에 살던 사람들이 고립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한마리. 그리고 몆마리가 촌락을 방문 하는 가 싶더니 어느센가 수마리에서 수십, 수백마리로 늘어 나 버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포식동물 이든 초식이든 서로 간에 의식 없이 그저 앞다투어 달리기만 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수의 맹수들 사이에서 촌락 사람들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

이 맹수들이 제정신 이였다면 노인은 물론 촌락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일찍이 명을 다 했을 거라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마냥 방관 할 수 없었던 노인은 촌장과 합의하에 촌락을 둘러 싼 나무로 만든 모든 방책을 불태워 버렸다.

설마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불길에 달려 들지는 않지 않겠는가.

결과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쏟아져 나온 산 짐승 들이 불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길이 자신을 살과 털을 태우자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 정신이 든 것 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 났다.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한 짐승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은 인간의 냄새가 물신 풍기는 구역에서, 그것도 온갖 천적들이 주변에 즐비해 있는데 평정을 유지 할 수 있으면 그건 더이상 짐승일 수가 없을 것이다.
노인 또한 기상천외 상황에서 지금 제정신인지도 의문이니 말이다.
정신을 차린 포식자들. 정말로 제정신인 지는 알 수 없지만 놈들은 자기 구역이 아닌 생소한 곳에서 여러 짐승들을 만나자 가장 자신있어 보이는 발톱과 이빨을 꺼내들어 무차별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동족이든 뭐든 말이다.

그에 영향을 받는 초식동물이나 그들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도 날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포식자들이 평소 자신의 먹이에 불과한 녀석들에게 밟혀 죽기도 하고 뿔에 치받치기도 하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지금 눈앞에서 펄쳐지고 있었다.

불타는 방책에 겁없이 달려들다가 온몸을 불싸지르며 발광하는 녀석들 몆이 일부 집에 들어가 같이 불타올랐다.

이곳에서 유일한 2층집이 그러했다.

제법 견고해 보이는 목조건물 2층집 안에서 짐승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농성을 벌이고 있던 세 놈이 부리나케 튀어나와 옮겨붙은 불을 끄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집 한체는 완전 홀랑 다 타버려 두 형제가 허망한 눈으로 불타는 집을 보고 있었다.

그중 계집처럼 생긴 녀석이 이를 갈며 노인을 째려보았으나 노인은 자연스레 시선을 흘렸다.
다들 제앞가림 하는 녀석들이라 노인은 본인이 해놓은 불로 집이 몆 채가 타튼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지금은 거의 술창고로 쓰고 있는 곳에 인화성 물질이 좀 있는걸로 기억하는데, 안 그래도 지금 불이 붙기 시작해서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창고 주인이 알아서 하리라는 생각에 역시 무시했다.
그 주인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디서 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노인의 주변엔 어느센가 불에타 고기냄새를 풍기는 온갖 짐승들이 즐비했다.

보통사람들에게겐 구미가 당기는 냄새겠지만 노인에게는 도통 적응되기 힘든 역겨운 냄새다.

일부 사체는 지금도 불타고 있었다.

주위로는 열기가 가득했지만 노인이 숨을 내쉴때마다 입에서는 한기가 나왔다.
유독 한기가 노인의 주변에는 머문것처럼 보인다.
"크르르르!"
그때, 맹수 한마리가 노인에게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들개처럼 생긴 녀석은 노인의 몹집에 반만한 크기지였지만 들어낸 송곳니로 굉장히 위협적임을 들어 냈다.
노인은 지팡이를 꼬나들었다.

허리가 굽어 걷기위한 지팡이가 아니다.

지팡이는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조형한 것처럼 볼품은 없었지만, 지팡이 머리부분은 십자 형태로 네가닥이 뻗어나가 둥굴게 구형태로 말렸다.

그리고 그안에는 맹열히 회전하는 화염이 구체로 형성되어 있었다.

"후으-"
노인은 숨을 몰아 쉬더니 지팡이를 휘두르며 외쳤다.

"이젠장맞을 녀석이 어딜!"

날카로운 송곳니로 노인의 목덜미를 물어 듣기 위해 달려 들던 녀석이, 노인의 허리회전의 탈력을 받아 힘껏 휘두른 지팡이의 네가닥으로 뻗어나온 딱닥한 돌기가 나있는 부분으로 아가리를 적중맞아 나가떨어 졌다.

충격을 받은 녀석은 그대로 거품 문 체 쓸어지고는 일어날 생각 없이 부들부들 떨었다.
꾀나 충격을 줬음에도 화염은 십자가로 뻗어나 말린 구형태 안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해서 맹렬히 회전했다.
"하아 -. 하아 -. 칫."
그거 한번 휘둘렀다고 힘들어 하는 스스로를 노인은 못마땅해 했다.
한숨 돌린 노인은 주변을 다시 둘러 보았다.
방금 날려버린 그 한놈을 제하고는 모두 불에 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노인에게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는 아직도 많은 짐승들이 있지만, 다행이도 더이상 노인에게 달려들 기미를 보이는 녀석은 없어 보였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사람들 대부분 무사한 모양이다.
지붕위에서 활을 들고 있는 소녀가  올라오는 녀석만 발길질이나 활대로 쳐내 떨어드렸다. 화살은 진작에 비어버린 모양이다.
그 지붕 아래에서는 육중한 몸을 가진 중년의 여성이 자신의 몸만큼이나 육중한 둔기를 휘둘러 달려드는 짐승들의 머리통을 아작내 버렸다.
소녀와 지붕에 같이 올라 갔으나 혼자만 지붕위에서 주저 앉아 떨어졌는지 소녀의 옆에는 의미심장한 구멍이 나 있었다.

백발의 노인보다도 더 늙어보이지만 머리는 그렇게 세지 않은 할매가 집밖 처마 밑에 놓인 흔들 의자 위에 앉아있다. 일정간격으로 몸을 흔들며 유유자적하게 육포까지 씹는 모습이 백발 노인을 질리게 만들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저건 좀 심한거 같은데...

죽을때가 되서 짐승들이 시체로 인식하는 것인가. 신기하게도 짐승들은 그 할멈에게는 전혀 위해를 주거나 다가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는 지팡이를 든 백발의 노인 만큼은 아니지만 샌 머리를 한 노인이 검을 들고 집안으로 오려는 놈들만 처리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계신 할매가 태평하게 있음에도 그 검을 든 노인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자기에게 위해만 가하는 녀석들만 처리하여 노인의 주변처럼 사체가 쌓여 있지는 않고 최대한 싸움을 피하고 있었다.
다들 요령껏 적당히 상대하고 있다지만은 계속해서 밀려드는 짐승들을 보아 좀처럼 상황이 정리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촌락을 버리고 몸을 피해 상황이 정리 될 대 까지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들끼리 싸우는 저 사나운 맹수무리를 뚤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모두들 지금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합류하기도 쉽지 않다. 사방이 짐승들이 깔려 있기에 조금만 움직이는 것으로 녀석들 싸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어찌해야 할지 마냥 고민만 하고있는 상황이다.
한 댕기머리의 여성이 노인의 시선을 끌었다.
여성을 발견한 노인의 얼굴에서 노골적으로 못마땅한 표정이 들어 났다.

갈색 댕기머리 여성은 자신의 키 만큼이나 긴 양날 검을 한손으로 들고 있었다.

그것도 검의 면적은 손바닥 정도지만 그 길이 만큼이나 무게를 가졌음에도 오른손은 그 검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

여성의 얼굴에는 그 검을 들고 있음으로서 드는 힘이라는가 현재 상황에 대한 긴장감 같은 그 어떠한 감정도 전혀 들어내지 않았다.
앞에는 방금 노인이 쓰러뜨린 녀석과 같은 무리로 보이는 짐승이 세마리가 대치하고 있었다.
여성은 그들을 무심하게 바라만 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세 녀석중에 한 녀석이 먼저 도약하며 달려들자 이따라 두 녀석들도 달려 들었다.

먼저 도약한 녀석은 높게 도약해 여성의 목덜미를 노렸으며 뒤따른 두 녀석은 여성의 팔과 다리를 노렸다.

한 녀석이 먼저 달려들자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맞춰서 뒤로 가볍게 물러서더니 그대로 오른손에 쥔 검을 아래에서 위로 한번 휘둘렀다.

그 한번의 동작은 먼저 달려든 녀석을 처참하게 좌 우로 머리부터 엉덩이 까지 검의 길이에 맞게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 어떤 저항감 도 없이, 두부 썰리 듯이 그렇게 동강 났다.

여성은 이번엔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다리를 노리던 녀석의 주둥이가 허공을 물었다. 올려치던 검을 그대로 내리자 녀석이 앞 과 뒤로 나눠저 분리됐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마리. 여성은 검을 앞으로 쭉 뻗어 세로로 세우고는 앞으로 맞달려 들었다.

검 날이 손목을 노리던 녀석의 주둥이에 가볍게 파고들었다.
여성은 앞으로 나아가던 힘을 멈추지 않고 그래도 체중을 실었다.

주둥이 부터 파고든 검이 엉덩이 살을 배고 나오자 녀석은 포를 뜨듯 위와 아래가 분리되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용물을 쏫아냈다.

춤이라도 추는 듯한 가벼운 동작이였다.

세마리를 모두 해치운 여성은 처음 서있던 자세 그대로 섰다. 허리까지 늘어진 댕기머리 만이 흔들리며 방금 전까지 여성이 움직였음을 알렸다.
그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심지어는 얼굴에 피가 튀어도 눈동자조차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서있는 위치가 조금 바뀐 것과 몸에 더많은 피가 튀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검도 처음 그대로 깨끗했다. 옷과 얼굴에도 피가 튀는데도 말이다.
대신 검에는 서슬퍼런 오로라 같은것이 서려 있었다.
여자는 가쁜 숨 고름 하나없이 그저 평온 하기만 했다.
노인은 여성의 주변에 그렇게 같은 운명을 맞이한 수많은 짐승들을 보며 혀를 찻다.
검은 정말 깔끔 하지만 그 검이 훍고 지나간 흔적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보이는 것 족족 닥치는 대로 죽였는지 더이상 여성의 주위에는 움직이는 짐승은 없었다.
여성으로 부터 시선을 돌린 노인은 여성과 비슷한 누군가를 찾았다.
여성과 같은 머리색에 짧게 친 머리를 한 사내가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밝은 계통의 머리색에 비해 그 둘만 유난히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계의 머리색을 가졌다.
여성 못지 않게 사내 또한 주변에 많은 짐승들이 널부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것이라면 여성처럼 주변의 사체들이 내용물을 쏟는 다거나 같이 난잡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왜 쓰러져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주위엔 맥없이 쓰러진 짐승들 에게선 그 어떠한 외상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내가 쥔 검은 여성의 비해 길이와 검의 면적이 절반수준으로 거의 손락 두세마디정도로 폭이 좁았지만 여성과 마찬가지로 서슬퍼런 오로라 같은것이 서려 있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무표정에 목석처럼 서있고 수많은 짐승의 시체를 쌓았음에도 아무런 표정의 미동조차 드러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처음으로 여성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눈동자를 움직인것이다.

별것 아니긴 한데 전혀 아무런 미동도 없었던 터라 그 눈동작 만으로도 충분히 뭔가 평소랑은 달라 보였다.

사내의 시선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검으로 향했다. 검에 서려 있는 서슬퍼런 오로라 같은 것을 보는가 십더니 갑자기 사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앞에는 정신 못차리고 두리번 거리는 짐승이 있다.

곰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덩치가 큰 녀석이다. 녀석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포호했다.
"크오오오!"
상체를 키켜세운 녀석이 사내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지만 사내의 검이 먼저 녀석의 미간을 꿰뚫었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검은 두부에 파고 들듯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가볍게 파고 들었다.
다른 것은 사내의 검은 아주 살짝 녀석의 미관에 파고들어 절명시긴 뒤 바로 빼내었다.
사내의 체구에 두배는 넘는 녀석이 맥없이 쓰러지자 사내가 재빨리 품에서 벗어난다.
여성이 긴 검신을 크게 한번 휘둘러 두쪽으로 만드는 것에 비해 사내의 검은 딱 급소만을 깔끔하게 노리고 바로 빠져 나왔다.
사내는다시 눈동자를 움직여 자신의 검을 보았다.
검에 서린 오로라 같은 것이 바람앞의 촛불 마냥 요동치는가 싶더니 사라 졌다.
"큭."
무표정 하던 사내의 얼굴에서 신음이 터져나오며 자세가 허물어 졌다.
한쪽 무릅을 꿇어 그대로 주저 앉아 간신히 쓰러지는 것을 모면했다.
"크악!"
변화는 갑자기 찾아 왔다.
아까 곰같은 녀석의 미관에 검을 박을 때만하도 숨하나 안고르던 사내가 일순간에 근방이라도 숨넘어 갈 듯이 헐떡이는 것이다.
"하악-, 하악-, 크..."
얼굴과 온 몸에 땀이 샘솟았다. 오랜 중노동 끝에 탈진 한것 마냥 사내는 그 자세 그대로 숨을 헐떡이며 검만 간신히 손에 놓지 않았다.
사내는 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뭔가를 발견한 사내는 갑자기 심하게 동요하더니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썻다.
"누나!!!"
사내는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그상황에서도 오른손은 검을 굳게 쥐고 놓지 않았다.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바닥만 길 뿐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이상행동을 이해한 노인은 재빨리 지팡이를 앞으로 뻗었다. 풀 스윙으로 들개 같은 녀석을 날려버릴 따와는 전혀 다른동작으로 두손으로 곱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던 뎅기머리 여성이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전만해도 순식간에 세놈을 해치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의 위로는 발톱과 송곳니가 긴 녀석이 올라타 여성의 오른팔을 물어 뜯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녀석의 발톱은 여성의 흉부를 깁게 찔러 있는 데다가, 주둥이에 물려있는 오른팔은 검을 손에 놓지 않는게 신기할 정도로 난자되어 있었다.

오른팔을 다시 쓰기가 불가능 한 것은 물론. 여성의 위에 올라탄 녀석의 발톱 길이를 생각 해 봤을때, 흉부에 파고든 저 발톱의 길이는 이미 치명상이었다.

노인의 지팡이 위에 회전하던 화구의 속도가 더더욱 격해 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시도하려던 노인은 주저했다.
자칫하다간 불꽃에 여성이 말려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싫은 녀석들이다. 특히나 지금 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녀석 은 더더욱.
하지만, 지금같이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은 싫다.
흉부에 파고든 손톱의 길이를 생각하면 이미 여성은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뭘까, 노인은 저런 낭자된 팔로도 검을 놓지 않는 정신력이라면,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으-."
노인은 이를 악물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언제나 노인의 능력 밖이였으니 말이다.
한시가 급한일이라 주저할 수는 없다.
만일의 가능 성이 있다면,
불꽃에 여성이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면,
노인은 시선을 여성위에 올라탄 짐승이 아닌 좀더 위쪽을 노려 봤다.
화염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그때.
"크앙!"
아까 노인이 주둥이를 날려버려 거품물고 쓰러진 놈이 튀어나왔다.
노인의 시선이 놈에게 향하자 들개 같이 생긴 녀석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쓸렸다.
"케에엑!"
반대로 노인의 손에 쥔 지팡이에 회전하던 불꽃이 중심지에 휘말리듯이 맹렬히 소용돌이쳤다.
노인이 지팡이를 거두자 놈의 몸을 불싸지르던 불꽃이 사그러 들었다.

순식간에 단백질 기름덩어리가 된 놈을 남아있는 불씨가 마저 태우기 시작했다.

녀석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힘이 약해 뇌진탕을 덜 일으킨 모양이다.

이렇게나 약해지다니, 노인은 뭔가 자괴감이 들었다.
지팡이에 회전하던 화염구가 방금 소모된 건지 현저히 약해졌다.
노인은 서둘러 다시한번 정신을 집중하여 다시 그 화염구의 구체를 키우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더욱 짙어진다.
맹열히 회전 하던 화구가 월래의 모습을 되찾는가 십더니, 지팡이 머리 밖으로 열기가 배출되면서 완전히 사그라 들었다.
"으득."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지팡이를 쥔 손이 지팡이와 함께 서리가 얼어붙었다.
재빨리 지팡이를 떨쳐내자 손의 일부 살점이 같이 떨어져 나갔다.
"으으---."

노인이 극심한 추위에 몸을 떨었다. 일부 살점이 떨어 졌음에서 손에서는 피 한방을 맺히지 않았다.

손은 거의 얼어붙다 시피했고, 짙은 한기가 노인의 근처에 맴돌더니 월래 창백하긴 했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혈색을 모조리 앗아가 버렸다.

멀쩡하게 뜬 눈에도 서리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야가 점점 하얀 서리로 뒤덥혀 간다.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노인은 현재상황이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렇게 하무하게.
모든게 부질없이.
그렇게 자괴감에 휩사이는데 뒤덥혀 가는 하얀 서리 사이로 무언가 섬광이 보였다.

[빠직-.]

여성위에 타올라 있던 짐승이 무언가 맹렬히 돌진한 부유물에 부딪쳐 튕겨저 나간다 싶더니 갑작스러운 섬광에 맞아 즉사했다.

"무슨?"
노인이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분명 구름한점 없는 훤환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다.
쓰러져 있는 뎅기머리 여성 위로 둥둥 떠다니는 구체 형태의 부유물을 보니, 뇌리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귀를 막고 눈을 감으세요!"
그 말을 듣고 제대로 이행한 사람이 몆이나 될까.
너무나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지시다.
하지만 곧 그 뜯을 이해하기도 전해 귀를 막고 눈을 감아야 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하늘에서 밝혀진 것이다.
서리에 뒤덥힌 노인의 눈이 찡그릴 정도니 그 빛은 어마어마 했으리라.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오밤중에 뜬금없이 태양이 솟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였다.
천지를 울리는 폭음의 소리는 곧 청둥소리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청둥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 귀를 막지 않고는 괴로웠다.

노인은 두 남매가 싫다. 그 두사람은 노인의 평생을 밝혀온 상식과 지식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석은 노인이 알던 세상의 범위에 벗어나 있었다.

"크.. 무슨짓을 한거냐. 프리실."
노인은 서리에 눈이 멀어져가는 눈을 강제로 뜨고 하늘에서 연속해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백광을 뿜어 대는 두 구체를 보았다.
그것이 노인이 서리에 두눈이 뒤뎝힌 체로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빛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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